Lahat ng Kabanata ng 만독여향: 비단 위에 핀 꽃: Kabanata 61 - Kabanata 70

101 Kabanata

61화

그 소리를 들은 만수수가 다가와 설아가 내민 포대 자루 두 개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훨씬 고른 결이었다. 짜임새도 어제보다 훨씬 나아져 있었다.설아는 은근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만수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표정 없이 포대 자루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내일은 오지 마세요.""……네?""하루 쉬고, 다음 날 오세요."설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왜요? 제가 잘못한 게 있나요?"만수수는 대답 대신, 품에서 작은 연고 단지를 꺼내 설아에게 내밀었다."손이 나아야 일을 하죠. 그렇다고 너무 쉬어버리면 손에 익지를 않기 때문에, 하루 정도가 딱 좋아요. 잊지 말고, 꼼꼼하게 잘 발라요."만수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몸을 돌렸다."오지 않는다고 해도, 난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직조실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설아는 연고 단지를 손에 쥔 채, 만수수가 사라진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칭찬 한마디는커녕, 내일은 오지도 말라는 말이 왠지 서운하게 느껴졌다.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송부인이 조용히 다가와 설아의 곁에 섰다."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소낭자.""…….""생각해 보면, 그동안 이 일을 시작했다가 포기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러니, 그 마음을 좀 이해해 주죠."설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설아는 연고 단지를 꼭 쥐며 어색한 표정으로 조용히 웃었다. 서운한 마음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만수수가 연고 단지를 건네준 그 마음만큼은 충분히 느껴졌다.둘은 나란히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만가직방을 뒤로하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아는 손에 쥔 연고 단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어느새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왕부로 돌아오니 이미 날이 저물어 사방에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저 멀리 산등성이에는 사라져 가는 노을의 끝자락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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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송부인이 황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설아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송부인은 슬쩍 연백리를 돌아보았다.“혹시… 그 말씀을 전해주시려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건가요?”송부인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그를 훑어내렸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쫓아가 봐.”연백리는 어림없다는 듯 대답하지 않고 딴청을 피웠다.“또 엉뚱한 데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테니까.”그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설아가 사라진 쪽을 턱짓했다.송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설아가 사라진 쪽으로 총총걸음을 옮겼다.홀로 남은 연백리는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몸을 돌렸다.어느새 중천에 오른 초승달이 그의 어깨 위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설아는 치맛자락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외거 구역 쪽으로 무작정 달려갔다.밤이 깊어질수록 왕부 안은 더 조용해졌지만, 외거 구역만큼은 아직 여기저기 등불이 남아 있었다. 하인들과 의원, 약재를 나르는 사람들까지 늦은 시간에도 드문드문 오가고 있었다.하지만 외거 구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설아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드물게 지나가던 사람들을 붙잡았다.“저기요, 혹시 청아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하지만 돌아오는 건 애매한 표정뿐이었다.“청아는 어디 있나요?”점점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여갔다.그 모습을 본 하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할 무렵.“소낭자.”뒤늦게 그녀를 따라온 송부인이 설아의 팔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이쪽이에요.”설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송부인을 돌아봤다.송부인은 말없이 설아를 데리고 외거 구역 안쪽의 비교적 조용한 별채로 향했다.문 앞에는 은은한 약재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송부인이 문을 살며시 열었다."청아야!"설아는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침상 위에 청아가 누워 있었다. 온몸에 멍든 상처가 가득했고, 얼굴은 시체처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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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은은한 침향 냄새가 감도는 서재 안에는 잔잔한 불빛만이 고요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연백리는 책상 앞에 앉아 붓을 든 채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먹빛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문첩 위로 유려한 손가락이 붓과 함께 매끄럽게 춤을 추는 듯 보였다. 고요한 서재 안을 울리는 문 소리에 연백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설아를 바라보았다.이 늦은 밤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 설아를 보았지만, 그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설아는 순간 괜히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붉은 등불 아래 드러난 연백리의 얼굴은 어딘가 나른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이었다.설아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왕야. 소설아이옵니다.”연백리는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청아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잠시 정적이 흘렀다.연백리는 그런 설아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더니, 천천히 필산에 붓을 내려놓았다.툭.작은 소리가 조용한 서재 안에 낮게 울렸다.그리고, 연백리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느리게 그 뒤를 따랐다. “날… 싫어하나?”설아는 눈을 깜빡였다. “예…?”너무 뜻밖의 말이었다.“그게 무슨……”연백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난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최대한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거든.”그는 손끝으로 허공을 휘휘 저었다.“이렇게.”마치 사람을 멀리 밀어내듯.“곁을 주지 않지.”설아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아, 아니에요 왕야.”그녀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그런 뜻이 아니라… 정말 감사해서……”“그러니까.”연백리가 낮게 말을 잘랐다.“날 싫어하냐고.”“아니라니까요!”설아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절대 그렇지 않아요.”그 순간, 연백리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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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영원과도 같았던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연백리는 한 발 뒤로 물러선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의 화려한 검은 장포 자락이 조용히 흔들리며 서재 밖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설아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심장은 아직도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설아는 떨리는 손끝으로 제 입술을 천천히 쓰다듬어 보았다. 뺨은 여전히 뜨거웠고, 입술에는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안 되겠어……’설아는 거세게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이대로는 정말 위험하다. ‘빨리 떠나야 해.’그러나 그 생각과는 달리, 한동안 설아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설아는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송부인을 찾아갔다.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얼굴이었다. 연백리의 품 안에서 느꼈던 뜨거운 숨결과 마지막 순간 흔들리던 눈빛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이대로는 안 된다.더 늦기 전에 거리를 두어야 했다.송부인은 막 아침 차를 준비하던 중 설아를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소낭자?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설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송부인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평소보다 훨씬 긴장한 얼굴에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이었다.송부인도 금세 분위기를 눈치챈 듯 찻잔을 내려놓으며 설아를 바라보았다.“앉아서 말씀하세요.”하지만 설아는 끝내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서 있었다.“저… 왕부를 떠나고 싶어요.”순간 송부인의 안색이 굳어지며, 눈가에 당혹감이 스쳤다.설아는 얼른 말을 이었다.“운수현은 왕부에서 오가기엔 너무 멀어요. 매일 왕복하다 보면 길에서 보내는 시간도 너무 많고요. 아직 청아도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고, 포목점 공사도 달포는 더 남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배우는 걸 멈출 수는 없어서요.”그녀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노력했다.“그래서 풍안 시장 근처 객잔에 머물면서, 운수현까지 마차를 빌려 다니며 배웠으면 해서요.”설아의 말이 끝나자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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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송부인을 바라봤지만, 송부인은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소낭자가 왜 갑자기 왕부를 떠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연백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턱 근육만 눈에 띄게 굳어갈 뿐이었다.송부인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왕야께서도 잘 아실 거예요. 호국대장군 경북후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그런 집안의 막내 아가씨가 이렇게 남의 집살이를 전전하고 있을 땐… 그만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으세요?”그 말에 연백리의 손끝이 눈에 띄게 떨렸다.“그런 사람에게 감정을 나누길 원하고, 사랑을 요구하면, 그걸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있을까요?”하지만 그는 끝내 부정하지 못했다.어젯밤 설아가 마지막에 자신을 밀어내던 순간의 얼굴이 아직도 너무 선명했으니까.연백리는 천천히 이를 악물었다.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질 만큼 주먹이 단단하게 말려들어 갔다.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벌떡 일어나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쾅!문이 거칠게 열렸다 닫히며, 서재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었다.송부인은 떠나가는 연백리의 뒷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마마… 부디 왕야를 도와주세요.’***연백리는 거의 걸음을 내던지듯 설아의 거처로 향하고 있었다.복도를 가로지르는 발걸음마다 억눌린 감정이 터져나가듯 둔탁한 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쾅!예고도 없이 갑자기 문이 열렸다. 막 차를 마시려던 설아가 깜짝 놀라 찻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왕야…?"연백리는 평소와 달리 잔뜩 상기된 채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아래로 억눌린 감정이 터져나갈 틈을 엿보았다.그는 문 앞에 선 채 설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왜 거짓말했어?”설아가 눈을 깜빡였다.“예…?”“나 안 싫어한다며.”연백리의 목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다 거짓말이었어?”설아는 당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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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그는 설아를 조금 더 품 안으로 끌어당긴 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포목점을 차려준 것처럼, 내가 가진 건 널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는데.”설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걸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걸… 왕야도 알고 계시잖아요.”그녀는 젖어드는 눈가를 애써 감추려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제가 왕야 곁에 있으면 결국 약점이 될 거예요. 왕야를 찌르는 화살이 되고 말 거라고요.”연백리의 눈빛이 깊게 흔들렸지만, 그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되나?”포기할 생각 따윈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설아는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힘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왕야……”연백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널 붙잡지는 않을게. 하지만… 널 포기하라는 말은 하지 말아 줘.”설아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목이 메어왔다.방 안에는 다시 길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연백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설아를 품에 안고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그녀를 잃어버릴 것 같은 사람처럼 숨을 죽인 채 가만히 그녀를 안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머리 위에 뜨겁게 입을 맞춘 뒤 아주 천천히 품을 풀어주었다.그러고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방 밖으로 걸어 나가버렸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 뒤에도 설아는 한동안 그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가슴 어딘가가 아프게 조여오는 느낌에 그녀는 떨리는 손끝으로 주먹을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혼잣말과 함께 끝내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왕야… 죄송해요. 전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그러기엔 과거의 상처가 너무 깊게 얼룩처럼 남아 있는걸요.울먹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설아의 눈꼬리를 따라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다음 날 아침.운수현으로 갈 채비를 마친 설아는 한동안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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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다 못하고 가도 상관없어요.”만수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대신 온전히 세 개를 짤 수 있게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기로 해요.”설아의 얼굴에 생기가 돌며, 금세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정말요?”만수수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작업장 안쪽을 턱짓했다.“그러니까 우선 베틀 앞으로 가요.”설아는 활짝 웃으며 얼른 뒤를 따라갔다.그리고 그날부터 그녀는 정말 정신없이 포대 자루만 짜기 시작했다.타닥, 타다닥.베틀 돌아가는 소리가 하루 종일 귓가를 울렸다.손놀림은 여전히 서투른 편이었다. 실도 자꾸 엉켰고, 장력을 맞추지 못해 중간에 다시 풀어내는 일도 많았다.북을 고쳐잡을 때마다 붕대를 감은 손끝의 통증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설아는 포기하지 않았다.점심때가 지나고,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까지 베틀 앞에 붙어 있었지만 결국 그날 완성한 건 포대 자루 한 개 반 정도가 전부였다.설아는 아쉬운 얼굴로 완성되지 못한 천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만수수는 별다른 말없이 다음 날도 같은 자리를 내어주었다.그다음 날도.또 그다음 날도.설아는 매일같이 운수현으로 향했고, 베틀 앞에 앉아 포대 자루를 짰다.처음보다 손놀림은 조금씩 빨라졌고, 실을 다루는 감각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붉은 노을빛이 작업장 안으로 길게 스며들던 저녁 무렵.설아는 포대 자루를 짜던 실의 마지막 매듭을 지었다.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완성된 포대 자루를 하나씩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그녀의 앞에 완성된 포대 자루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해냈어. 드디어 세 개를 해냈다고!”설아는 감격에 겨워 포대 자루 세 개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그리곤 벌떡 일어나 완성된 포대 자루를 그대로 품에 안은 채 만수수에게 달려갔다.“만 소저!”숨이 찰 정도로 뛰어온 설아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설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포대 자루 세 개를 만수수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드디어 다 만들었어요!”그 말끝에는 숨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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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정말 사람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그 마음을 거절한 것은 분명 자신이었음에도. 연백리에게 선을 긋고, 더 이상 다가오지 말아 달라고 말한 것도 자신이었는데, 막상 그날 이후로 정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괜스레 야속하게 느껴졌다.위험하다.멀어져야 한다.절대로 마음을 주면 안 된다.이번 생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었건만. 그런데도 정작 지금은 연백리 생각 때문에 한밤중까지 잠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한심하고 속상했다.경북후부를 떠나고, 황궁과의 인연을 끊어내면, 전생의 비참했던 삶도 함께 끊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어째서 다시 경무왕부와 엮이게 된 걸까.설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이 또한… 하늘의 뜻인 걸까.’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아니면 더 늦기 전에 도망쳐야 하는 걸까.하지만 이미 연백리의 도움으로 포목점을 열고 있는 마당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설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아니 이미 답이 정해져있는 일을 미련이 남아 털어버리지 못하는 못난 자신을 탓하며 눈을 감았지만… 이내 다시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만약 연백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을 정비로 맞아들인다면?자신보다 더욱 지체 높은 가문의 규수.너무도 아름답고 완벽해서 누구도 흠잡을 수 없는 미모의 여인.경무왕과 나란히 서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고귀한 사람.연백리가 그런 여인을 품에 안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떠올랐다.따뜻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다정하게 손을 맞잡고,사랑스러운 아이마저 품에 안은 채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까지.그 순간, 설아는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는 감각에 숨을 삼켰다.“읏…!”마치 누군가 심장을 잡아뜯는 것처럼 가슴이 욱신거리며 조여왔다.설아는 갑자기 깜짝 놀라 그만 벌떡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허억… 흑!”설아는 떨리는 손으로 제 가슴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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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마차는 첫눈에 봐도 보통이 아닌 듯한 고급스러운 건물 앞에 멈춰서 있었다. 붉은 기둥과 화려한 단청으로 꾸며진 커다란 건물은 근방에서 가장 으리으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고, 입구에는 비단 차양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왕부귀족이나 거상들이 머무를 법한 최상급 객잔이었다.설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송부인을 돌아보았다.“송부인, 혹시 만나셔야 할 중요한 손님이라도 있으신가요?”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하지만 송부인은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뇨.”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소낭자도 같이 들어가셔야 한답니다.”“예…?”설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라 내리는 사이, 객잔 안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설아와 송부인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잘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 하나가 황급히 달려 나와 허리를 깊게 숙였다.“송부인께서 오셨군요!”그 뒤로 객잔 하인들까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길을 터주었다.“어서 오십시오!”“방은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설아는 그 광경이 어색한 나머지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자신까지 괜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송부인은 익숙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 뒤 설아를 데리고 객잔 안쪽으로 향했다.삐걱.삐걱.고풍스러운 붉은 나무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자 복도 끝에 자리한 커다란 객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문이 열리는 순간 설아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우와……”말도 못 하게 크고 넓었다.웬만한 별채 하나만 한 크기의 객실 안에는 붉은 목재 가구들과 비단 병풍,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까지 놓여 있었고, 격자창 너머로는 풍안 시장의 번화한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햇빛까지 환하게 비쳐드는 탓에 객잔의 숙소라기보다는 작은 별궁에 가까운 느낌이었다.설아는 넋을 잃어버린 듯한 얼굴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정말 멋있는 방이에요……”그러자 송부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왕야께서 마련해 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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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송부인은 그런 설아를 바라보며 한시름 놓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제 좀 안심이 되네요.”객실 안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던 그녀가 흐뭇한 얼굴로 덧붙였다.“당분간은 운수현에 양부인과 같이 다니면 되겠어요. 차차 포목점 일은 양부인에게 넘기도록 할게요. 저보다 더 손끝이 야무진 사람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별말씀을 다하세요. 전 그저 송부인께 고마운 마음 뿐인걸요.”설아는 눈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으며 겨우 말했다. “자, 인사는 이만큼 해두고 어서 우리 출발해요. 짐은 왕부에서 보내줄 거고, 정리는 영묘와 소채가 알아서 해줄 거예요.”송부인은 왕부의 내집사다운 능숙한 솜씨로 상황을 정리하고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배웅하는 임주부와 영묘, 소채를 바라보면서 설아는 송부인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정말 뭐라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제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될까요?""은혜랄 것까지 있나요."송부인은 낯빛이 어두워져가는 설아를 보며 가볍게 손을 저었다."이제 앞으로 더욱더 재미나게 잘 살면 되는 것을. 행복하면 그뿐이죠.""전 그냥 포목점을 차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말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바로 그거예요!"송부인이 무릎을 치며 대답했다.“어떤 포목점을 차릴지는 왕야의 마음인 거죠. 그러니까, 부담 없이 받으면 돼요. 부족한 게 있다면 이참에 더 말해두는 게 좋을 거예요.”짓궂은 송부인의 말투에 양부인이 옆에서 못 말리겠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우리 양부인과는 꽤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해온 사이에요. 그러니, 저를 대하듯 편하게 대해주세요. 이참에 포목점 일로 넘어오게 되어서 아주 마음이 든든하네요.”“그렇게 가깝게 일하신 분이 저희 쪽으로 와도 괜찮은 건가요? 저는……”“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왕부에는 능력 있고 출중한 사람들이 많으니, 저를 도울 일손은 충분하답니다.”송부인은 양부인을 옆눈으로 흘깃 바라보았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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