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만독여향: 비단 위에 핀 꽃: Kabanata 71 - Kabanata 80

101 Kabanata

71화

베틀 돌아가는 소리와 실 스치는 소리가 익숙한 숨결처럼 공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그때였다.안쪽에서 바쁘게 실타래 꾸러미를 안고 오던 만수수가 설아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마침 잘 왔네요.”만수수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품에 안고 있던 실타래 뭉치 하나를 설아 쪽으로 내밀었다.“이걸 받아요.”“어… 네!”설아는 황급히 두 팔로 실타래를 받아안았다.생각보다 꽤 묵직한 무게였다.잘 정리된 면사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이 품 안 가득 전해졌다.만수수는 그런 설아를 힐끗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오늘 배울 일이에요.”설아는 얼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조심스럽게 실타래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만수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베틀 위에 걸린 면사를 정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우리가 면화 솜으로 짜내는 천은 크게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요. 상, 중, 하.”설아는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곧게 허리를 세우고 만수수의 설명에 집중했다.만수수는 베틀에 걸린 실 한 올을 손끝으로 가볍게 튕기며 말을 이었다.“하목은 소낭자께서 지금까지 짜셨던 포대 자루 같은 거친 천을 말해요. 질기고 튼튼해서 짐꾼들이나 상단에서 많이 쓰지요.”그녀는 다른 쪽에 놓인 면사를 들어 보였다.“그리고 중목은 일반 백성들이 생활복으로 가장 많이 입는 천이고요.”마지막으로 만수수는 가장 매끄럽고 고운 면사를 조심스럽게 손끝에 감아 보였다.햇빛을 받은 실이 은은하게 빛났다.“상목은 귀족들이나 쓸 법한 최고급 천이에요. 아주 얇고 부드럽고, 피부에 닿는 느낌부터 완전히 다르지요.”설아의 눈빛이 절로 반짝였다.같은 면사라도 이렇게까지 다르다니.만수수는 새로운 실타래를 베틀 위에 천천히 걸기 시작했다.이번 면사는 이전에 사용하던 하목용 실과는 확연히 달랐다.조금 더 가늘고, 매끄럽고, 훨씬 섬세한 느낌이었다.“오늘부터는 바로 이 중목 천을 짜기 시작할 거예요.”설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그렇군요……”만수수는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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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진평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눈을 깜빡였다.“…… 예?”연백리는 괜히 심기가 뒤틀린 얼굴로 문첩을 툭 덮었다.“네가 알아서 송부인과 정해라.”“아… 예. 알겠습니다.”진평은 속으로 짧게 한숨을 삼켰다.섣불리 주군의 심기를 위로하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연백리는 다시 문첩을 펼쳐들다가, 이내 더 볼 생각도 없다는 듯 툭 집어던졌다.“내일은 날이 밝는 대로 채비해라.”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야철소로 갈 것이다.”진평이 순간 고개를 들었다.검악산 야철소.창랑군의 병장기를 전담하는 경무왕부 직속 군용 야철소였다.우수한 흑철 광산이 있는 데다, 산 아래 거대한 용광로와 수십 개의 단야장이 이어진 곳으로, 창랑군의 검과 창, 갑옷 대부분이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진평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아직 주문량의 절반도 주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려가시기엔 조금 이른 듯합니다만……”그러자 연백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러니까 가보려는 거다.”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뭐 때문에 아직도 절반밖에 못 만들었는지 직접 확인해야 할 것 아니냐고.”그 말과 함께 연백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휑하니 옷자락을 날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게… 왕야.”진평은 서둘러 입을 열었지만, 이미 연백리는 모습은 사라져 버린 뒤였다. 진평은 난처한 얼굴로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지금 떠나시면 포목점 개점일에 맞춰 돌아오시기 어려울 텐데요……”쾅.문이 닫히는 소리만 서재 안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잠시 뒤 홀로 남겨진 진평이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아무래도 단단히 삐치신 모양이군.”***만화각 안은 며칠째 정신없이 분주했다.들여온 광목 견본들이 방 안 가득 펼쳐졌고, 새로 짠 천들을 정리하는 손길도 쉴 틈이 없었다. 영묘와 소채는 장부와 물건 목록을 맞춰보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양부인은 새로 들여놓을 물건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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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며칠 전부터 풍안 시장 골목골목에는 희한한 소문과 함께 기이한 전단지가 돌기 시작했다.장락사라는 낯선 이름이 적힌 전단지를 무심코 받아든 시장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곱게 접힌 종이를 대충 펼쳐보던 순간, 안쪽에 끼워져 있던 뽀얗고 정갈한 광목 손수건 한 장이 툭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아니, 이 집은 어떻게 된 가게야? 이게 진짜라고?”시장 여인네 한 명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전단지에 진짜 광목 손수건을 끼워 돌려?”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손끝 야무진 시장 여인네들은 곧바로 손수건의 결부터 살폈다. 손가락 사이로 천을 거칠게 비벼보기도 하고, 양손으로 잡아당겨 튼튼한지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만져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놀라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어머나.”“이거 실이 엄청 촘촘한데?”“그런데 왜 이렇게 부드러워?”험한 물질과 잦은 세탁에도 쉽게 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짜여 있으면서도, 살결에 닿는 감촉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게다가 전단지 밑단에 적혀 있는 가격은 더더욱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이 가격에 판다고?”“거짓말 아니야?”“이 정도 광목이면 원래 훨씬 비싸잖아!”사람들의 눈빛이 단번에 달라졌다.그날 이후, 장락사라는 이름은 풍안 시장 전체를 휩쓰는 소문이 되었다. 전단지에 진짜 광목 손수건을 넣어 돌린 포목점이라느니, 광목 질이 기가 막히다느니, 심지어 경무왕부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그리고, 그 파격적인 홍보의 위력은 개점 당일 그대로 드러났다.장락사의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포목점 앞 골목에는 이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단지 속 손수건의 감촉에 반해버린 시장 여인들부터, 광목을 떼러 온 중소 상인들, 단순한 호기심에 구경 나온 사람들까지 뒤엉켜 장락사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정말 오늘 문 여는 거 맞지?”“손수건이 그 정도였으면 천은 얼마나 좋겠어?”“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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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여인네들이 장난스럽게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하자 계산대 주변이 금세 시장통 다운 활기로 시끌벅적해졌다.설아는 그제야 상념에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눈앞 풍경에 넋을 놓고 서 있을 때가 아니었다.“아… 맞다!”설아는 얼른 계산대 뒤쪽에 준비해두었던 나무 상자를 열었다.상자 안에는 작은 광목 주머니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정갈하게 짜낸 광목 안에 굵은소금을 넣어 만든 소금 주머니였다. 눅눅한 장마철에 찬장이나 그릇장 안에 넣어두면 습기를 잡아주는 데 요긴한 물건이었다.“이 상자를 밖으로 꺼내주시겠어요?”임 주부는 재빨리 하인 둘을 불러 함께 묵직한 나무 상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설아는 상자가 계산대 앞으로 옮겨지자 활짝 웃으며 사람들에게 광목 소금 주머니를 하나씩 건네기 시작했다. “개점 선물이에요!”뜻밖의 선물에 여기저기서 반가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어머나, 이것도 주는 거예요?”“세상에, 손도 야무지네!”“이런 건 집에 두면 정말 잘 쓰지!”사람들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그러자 뒤쪽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우르르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저도요, 저요!”“여기 하나 더!”“우리 집 며느리 것도 좀!”순식간에 장락사 안은 다시 웃음소리와 사람들 목소리로 떠들썩해졌다.영묘와 소채는 급히 설아를 도와 상자를 나르기 시작했고, 양부인은 정신없이 주문서를 정리하면서도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풍안 시장이 오늘은 장락사 이야기뿐이겠는걸.”송부인마저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흐뭇하게 웃었다.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장락사 안을 가득 메웠던 광목 더미가 하나둘씩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염색 광목이며 명주 옷감까지 차례로 팔려나갔다. 계산대 위 장부에는 쉴 새 없이 주문 내역이 적혀 내려갔고, 임 주부는 땀까지 뻘뻘 흘리며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어머.”어느새 양부인이 텅 비어가는 진열대를 바라보며 작게 숨을 삼켰다.“정말… 다 팔렸네요.”준비해두었던 광목과 명주 옷감이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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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보화궁 안은 한낮의 햇살로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초영황후는 창가에 놓인 의자에 기대앉아 향기로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문득 시선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점심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닫고 곁에 서 있던 시녀를 불렀다.“승명전으로 사람을 보내거라. 오늘은 폐하와 함께 식사하고 싶구나.”“예, 황후마마.”시녀는 공손히 예를 갖춘 뒤 곧장 밖으로 물러났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시녀의 얼굴은 어딘가 잔뜩 굳어 있었다.“무슨 일이냐?”황후의 물음에 시녀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황후마마. 폐하께서는 지금 궁에 계시지 않다고 하옵니다.”“뭐라?”초영황후의 미간이 단번에 좁혀졌다.“폐하께서 궁에 안 계신다고?”“예, 마마.”“대체 어디를 가셨단 말이냐. 당장 알아오지 못할까!”황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시녀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궁 안에서 황제의 행적을 함부로 캐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보화궁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은 바로 그때였다.“호들갑 떨지 말거라.”문밖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시녀들이 황급히 길을 열었다.현정태후였다.초영황후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태후마마를 뵙습니다.”“되었다. 앉거라.”현정태후는 익숙한 걸음으로 안쪽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그녀는 이미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얼굴이었다.“황상은 잠시 잠행을 나갔을 뿐이다.”“잠행이요?”황후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갑자기 무슨 일로 말씀이십니까?”“흥.”태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무슨 바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하북 영주의 풍안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더구나.”“풍안 시장이요?”황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하북 영주에 대체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이리 아둔해서야.”태후는 혀를 차며 황후를 바라보았다.그 시선에 황후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일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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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교지.태후는 마치 내일 아침 장을 보러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쉽게 말하고 있었지만, 황제의 후궁을 들이는 일은 결코 그렇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더구나 지금 황제는 궁에도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그녀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 우선 경북후부를 불러 상의하심이 어떠실지요?”“상의는 무슨 상의!”현정태후가 곧바로 쏘아붙였다.“이미 결정된 일 아니더냐? 교지를 내려야 후부에서도 사주단자를 보내고 길일을 정할 것이 아닌가!”황후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저리 몽니를 부리는 모습이라니.황제의 생각은 어떤지 확인되지 않았고, 자칫 잘못하면 조정 전체가 들썩일 수도 있었다.그러나 그런 말을 정면으로 꺼냈다가는 오히려 태후의 분노만 더할 뿐이리라.초영황후는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을 넓은 소매 속에 감추었다.그리고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태후마마, 이 일은 시침 궁녀 하나를 품는 일과 다릅니다.”현정태후의 눈빛이 가늘어졌다.황후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계속했다.“교지를 내리는 날짜부터 사천대에서 길일을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황실 혼사는 작은 절차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법이니, 만에 하나라도 폐하께 흉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태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잠시 말문이 막힌 태후는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흠.”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면 어쩔 수 없지.”잠시 후 태후는 몸을 일으켰다.“황후가 알아서 잘 진행해 보도록 하게.”“예, 마마.”초영황후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태후는 마지막까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보화궁을 나섰고, 그녀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황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초영황후는 꼿꼿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넓은 소매 아래 감춰진 손끝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식은땀이 흥건했다. 문밖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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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한편, 황제 연각은 꿈에조차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랜만의 잠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자신이 쏘아 올린 공이 어떤 오해를 부르고, 어떻게 황후에게 지독한 덤터기를 씌웠는지를. 폭풍 전의 바다가 되려 고요한 까닭이랄까.미복 차림으로 저잣거리를 거닐던 그는 이따금 걸음을 멈춰 상인들의 흥정을 지켜보기도 하고, 길가에서 군것질을 파는 노점상을 흘끗 바라보기도 하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주변에는 평범한 행인처럼 꾸민 금위들이 눈에 띄지 않게 호위하고 있었고, 뒤쪽으로는 수십 년째 곁을 지켜온 중년의 태감이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공자님, 저곳이옵니다.”마찬가지로 미복 차림인 태감이 조심스럽게 앞을 가리켰다.연각은 고개를 돌려 목 좋은 시장 한복판에 자리 잡은 커다란 건물을 바라보았다.새로 단 간판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장락사(長樂司).“하.”연각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여기가 바로 그 포목점이군.”그는 잠시 간판을 올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형님께서 꽤 신경을 쓰셨는데 그래?”시선은 간판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가 떠올린 것은 글씨를 쓴 사람의 얼굴이었다.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연각은 부채를 펼치며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가게 안은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다.벽면을 따라 광목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손님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견본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연각은 판매대 위에 올려진 광목 한 필을 집어 들었다.손끝으로 천의 결을 쓸어본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생각보다 괜찮군.”그는 다시 천을 내려놓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포목점이라고 해봐야 양곡 시장 한복판이니 비단 장사는 어려울 테고, 결국 광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인가.”그 말투에는 비웃음보다는 흥미가 섞여 있었다.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벌인 장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연각은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꽤 여럿이서 흥정을 붙이는 손님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점원들.하지만 정작 찾고 있는 얼굴은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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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자네가 이곳의 주인장인가?”“예. 그렇습니다.”설아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운이 좋아 포목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운이 좋아서라.”연각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가게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장락사는 이제 막 문을 연 포목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넓고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진열된 광목들 역시 제법 품질이 좋아 보였다."그렇군. 어린 나이에 이토록 번듯한 포목점을 차릴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운이 좋은 것이겠지."그 말에 설아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다시 마주한 연각은 전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서글서글한 외모와 속내를 알 수 없는 가식적인 미소, 진심인지 체면치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매끄러운 말투까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듯하면서도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분위기는 기억 속 황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끝에 힘을 주었다.이 자가 이곳까지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다른 속내가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시장 구경을 나왔을 리는 없었다. 경무왕 때문일까. 아니면 풍안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살펴보러 온 것일까. ‘아니면, 설마… 나 때문에?’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전생의 기억을 떠올릴수록 더욱 그랬다. 황제 연각은 결코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직접 움직이는 경우라면 더더욱.그러나,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낯빛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그러자 연각이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이 온 건가?”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주인장 표정이 영 밝지 않군.”“아닙니다.”설아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흠.”연각은 부채 끝으로 제 턱을 가볍게 두드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아니면 내가 계속 빈손으로 서 있어서 그런가?”그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뭐라도 하나 사주면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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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송부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설아의 안색부터 살폈다.“예. 괜찮아요.”설아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옅게 웃어 보였다.“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별일은 없었어요.”“별일은 무슨 별일이 없습니까!”임주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어디서 저런 망나니 같은 공자가 찾아와서는 남의 가게 주인을 희롱한단 말입니까! 다음에 또 나타난다면 이 임지강이가 혼쭐을 내줄 테다!”그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며 이를 갈았다.하지만 송부인과 양부인은 그런 임주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시선을 마주쳤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송부인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임주부.”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았다.“절대 그래서는 안 돼요.”“예?”임주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돌아보았다.“왜 그렇습니까? 저런 망나니는 가게에 발도 못 들이게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야지요!”송부인은 미간을 꾹 눌렀다.“임주부.”그녀는 다시 한번 나직하게 말했다.“혹시 저 공자가 누군지 알고서 하는 말인가요?”“예?”임주부의 얼굴이 굳어졌다.“대체 누군데 그러십니까?”송부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주위를 한번 둘러본 그녀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말을 삼키고 말았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양부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황궁에서 나온 사람이에요.”순간 임주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양부인은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걱정되는 듯 주변을 한 번 더 살핀 뒤 목소리를 낮췄다.“앞으로는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해요.”“뭐라고? 황궁에서 나왔다고?”임주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그럼... 황족이란 말입니까?”“그래요.”양부인이 짧게 대답하며 검지를 입술 앞으로 가져다 댔다.“쉿.”임주부는 그제야 자신이 방금 전까지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린 듯 입을 다물었다.송부인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이 일은 그냥 넘길 수 없겠어요.”그녀는 천천히 장락사 안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했다.“황궁에서 어찌 이 양곡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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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초영황후는 숨을 한번 고른 뒤 입을 열었다.“이번 하지제에서 경무왕에게 예복을 만들어주었다는 경북후부의 둘째 딸이 있어요. 돌아가신 선황후폐하와 똑같은 솜씨를 가졌다며 황궁 안팎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아버지도 들으셨을 거예요.”“들었습니다.”가회안이 담담히 대답했다.“하지제 당일에도 사람들이 경무왕을 칭찬하며 선황후폐하를 입에 올리더군요. 그 아이 때문에 괜한 말들이 나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하북 영주에 포목점까지 열었다고 하더라고요.”“흠.”가회안은 가볍게 수염을 쓸어내렸다.“계속 말씀해 보십시오.”“어제 폐하와 점심을 함께하려고 승명전에 사람을 보냈는데, 폐하께서 궁에 계시지 않았어요.”황후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데 태후마마께서 직접 보화궁으로 찾아오셨지요.”“태후께서 말입니까?”“예.”초영황후는 이를 악물었다.“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폐하께서 하북 영주로 잠행을 나가셨다는 거예요.”가회안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하북 영주라.”“예. 바로 그 포목점이 있는 풍안 시장 말이에요.”“호오.”이번에는 가회안도 흥미를 보였다.“확실히 특이한 일이군요.”황제가 직접 궁을 비우고 지방 시장까지 내려가는 일은 흔치 않았다.더구나 하필이면 경북후부 둘째 아가씨가 포목점을 열었다는 시기와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가회안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그래서 태후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초영황후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그게 문제예요, 아버지.”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태후마마께서는 그 계집을 후궁으로 들이자고 하셨어요.”순간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내렸다.가회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방금까지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춘 것을 본 초영황후는 아버지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계속 말씀해 보십시오.”이번에는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목소리였다.“태후께서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한 마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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