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Kapitel 11 – Kapitel 20

30 Kapitel

제11화

“진짜 천생연분이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박태경 씨 같은 분이 직접 아내를 데리러 오는 걸 보면 사이가 엄청 좋으신가 봐. 정말 부러워.”사람들의 목소리가 꽤 큰 탓에 강윤서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지난 기억을 되돌이켜봤다.박태경은 7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녀를 데려다준 적이 없었고, 그녀와 함께 공식 석상에 나선 적도 없으며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한 적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박태경은 그녀의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그러고 있었다.서다빈은 곁눈질로 사람들 틈 사이에 서서 둘을 바라보는 강윤서를 바라봤다.그녀는 박태경의 아내가 맞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는 얼굴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박태경을 바라볼 뿐이었다.박태경은 서다빈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더니 그것에 답하듯 미소를 지었다.곧이어 한 젊은 여성이 뺨을 감싸 쥐며 호들갑을 떨었다.“세상에, 진짜인가 봐!”그 말을 들은 서다빈은 미소가 더 짙어졌다.서다빈은 박태경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털털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저희는 식사하러 가야 해서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할게요.”박태경도 조금 전 사람들이 서다빈을 그의 아내라고 하는 걸 들었으나 그는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자 손을 들며 서다빈을 감쌀 뿐이었다.박태경은 고개를 살짝 들며 크지는 않지만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다들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서다빈과 박태경의 모습을 본 강윤서는 서다빈의 자신감이 어디서 생겼는지를 깨닫게 되었다.서다빈은 박태경의 아내인 강윤서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그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다.서다빈은 강윤서가 당장 달려들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박태경의 아내임을 밝히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박태경은 절대 서다빈이 상처 입게 두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오히려 강윤서가 두 사람 사이에 눈치 없게 끼어든 것처럼 느껴졌다.비록 이혼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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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강윤서는 서다빈과 말다툼하거나 따질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아이 엄마 곁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의사예요. 제가 아이를 안고 있으면 응급처치를 하기 더 편할 거예요.”아이 엄마는 눈물을 벅벅 닦은 뒤 감격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강윤서도 한 아이의 엄마였기에 여자가 얼마나 정신이 없는 상태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게다가 강윤서는 아이를 돌본 경험이 많았다.강윤서는 서다빈의 불쾌해하는 눈빛을 무시하고 아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그녀는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응급처치를 하기 편하게끔 아이의 몸을 받쳐 주었다.서다빈은 강윤서의 행동에 못마땅함을 느꼈다.그녀의 눈빛에 경멸이 스쳤다.서다빈은 강윤서가 사람들 앞에서 나대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강윤서는 그녀가 사람을 살리면 옆에서 함께 주목을 받으며 공을 나눠 가질 생각일 것이다.그러나 서다빈은 그런 수작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허리를 숙이고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그녀는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알레르기 때문에 기도가 부었어요. 간단히 응급처치를 하고 바로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강윤서는 가만히 있었다.옆에 있던 사람이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구급차를 불렀다.알레르기인 건 맞지만 서다빈의 처리 방식은 조금 부적절했다.서다빈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에피네프린 자가 주사기를 가지고 있는 분 있나요?”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서다빈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혈 자리를 누르는 방법으로 응급처치를 시도했다.그녀는 손가락 관절로 아이 인중을 세게 눌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윤서는 입술을 깨물며 눈살을 찌푸렸다.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응급 상황에서는 효과가 미미한 방법이었고, 자칫하면 시간을 지체할 수도 있었다.강윤서는 더 이상 서다빈이 그런 방식으로 응급처치를 하는 걸 기다릴 수 없었다.결국 강윤서는 서다빈의 손을 밀어내고 아이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뒤 아이의 엄마에게 말했다.“아이 다리를 높게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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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서다빈은 이미 박태경 곁으로 걸어가 마치 자신이 아내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다정한 태도로 말했다.“배고파. 우리 먼저 밥부터 먹을까?”박태경은 시선을 거뒀다. 강윤서가 아이를 낳은 적 없고 그녀가 아이와 접촉할 수 있는 건 응급실 환자들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방금 그 어머니의 말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좋아.”박태경의 차갑고 깊은 눈빛이 강윤서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이어서 신사답게 서다빈의 차 문을 열어줬다. 두 사람에게 시선이 쏠렸다. 박 대표에게 저토록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 서다빈을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일행이 자리를 떠난 뒤에야 강윤서는 속으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박태경과 서다빈이 저토록 노골적으로 구는 것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온몸이 쭈뼛 서는 긴장감만이 남아 있었다.당연한 일이었다. 조금만 방심했어도 권하람의 존재가 드러날 뻔했다. 다행히 박태경은 의심하지 않았다. 마지막 석 달, 단 한 순간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석 달만 더 버텨 이혼 서류를 손에 넣으면 설령 박태경이 권하람의 존재를 알게 되더라도 이미 늦은 일이 될 테니까.‘이혼 합의서에는 이미 서명이 된 상태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강윤서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권하람과 관련해 아직 몇 가지 대비책을 더 마련해야 했다.그녀는 그 어머니와 아이를 무사히 구급차에 태웠다. 그때 배건하도 나타났다.“아까 무슨 일이었어?”기자들의 질문을 피하려는 듯 배건하는 강윤서를 살짝 끌어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강윤서는 박태경과 서다빈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아이를 구했다는 것만 간략히 말했다.배건하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만약 사람들이 그 아이 목숨을 살린 게 ‘데이온’ 처방의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자 게다가 그 처방의 개발자라는 걸 알게 되면 자기들이 정말 운 좋았다고 생각할걸.”강윤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다 옛날이야기예요.”배건하는 손을 들어 강윤서의 머리를 살짝 튕겼다.“혼자서 해온을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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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대가족은 대대로 자손을 중히 여겼다.강윤서는 배건하의 걱정을 읽고 차분하게 말했다.“걱정 마요. 박태경이랑 이혼 합의서는 벌써 7년 전에 다 끝냈어요. 그 사람이 서명한 걸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이고 이혼은 이미 정해진 일이에요. 게다가 하람이는 권씨 성을 쓰잖아요. 권씨 가문은 박씨 가문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요.”그것도 애초 그녀가 딸아이를 그 남자의 호적에 올리는 데 동의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배건하는 권씨 가문의 그분을 잠시 떠올리다가 이내 가볍게 웃었다.“그렇겠네. 이혼 서류만 받으면 박태경도 돌이킬 수 없으니까.”배건하와 식사를 마친 후, 강윤서는 혼자 경원에 있는 어린이집 몇 곳을 둘러봤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어린이집 하나를 막 나온 참에 교차로 신호에 걸려 차를 멈췄다. 강윤서는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벤틀리가 멈춰 서더니 남자와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둘은 동시에 뒤를 돌아 차 안으로 손을 내밀었고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두 손을 덥석 잡고 신나게 뛰어내렸다. 평소 차갑기만 했던 박태경의 눈매에 낯선 온기가 어렸고 서다빈은 그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셋은 나란히 쇼핑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흡사 행복한 세 가족 같았다.강윤서는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꽉 쥐었다. 우습게도 그녀는 오랫동안 저런 그림을 꿈꿔왔다. 박태경과 하람이와 함께 꼭 저렇게 웃고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이제 곧 행복해질 거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메마른 결혼 생활을 해가 바뀌도록 버텨왔다.그런데 감정이 다 닳아 끝에 이른 지금, 그녀가 수년간 간절히 바랐지만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던 것들을 박태경이 너무나 쉽게 서다빈과 낯선 아이에게 건네고 있었다.강윤서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참 씁쓸하고 아이러니했다.서다빈에게 남동생이 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 명은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갔고 한 명은 아직 어리다고 했는데 눈앞의 저 아이도 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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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강윤서가 박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섣달의 눈보라가 사납게 휘몰아치고 있었다.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 최미진과 김혜민이 나란히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강윤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최미진의 시선이 강윤서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으며 아직도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입만 열면 ‘죽어라’라는 말을 쏟아내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강윤서! 어떻게 수습할 건지 두고 보자고! 속도 좁아라, 시기질투로 박 대표 헐뜯더니 이제 어르신께서 그 기사 보고 충격받아 병까지 나셨잖아!”김혜민은 비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죄를 한꺼번에 강윤서에게 뒤집어씌웠다.강윤서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다급하게 몰아붙이는 김혜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왜 못된 짓을 한 장본인한테는 따지지 않고 피해자인 저를 문제 삼으시는 거예요? 제정신이세요?”게다가 할머니 눈에 띄지 않게 처리했어야 할 게시글을 방치한 건 도대체 누구인지, 이 일을 악의적으로 키운 건 또 누구인지 따지기 시작하면 할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너 지금 말 다했어?”김혜민이 책상을 탁 치며 소리쳤다.“어른한테 그 입버릇이 뭐야, 싸가지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네!”“그렇게 못마땅하시면 안 보시면 되잖아요.”인내심은 진작에 바닥났다. 강윤서는 더 이상 한 마디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김혜민을 지나쳐 곧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김혜민은 말문이 막혔다. 한때의 강윤서라면 감히 박씨 가문 어른에게 이런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늘 고개를 숙이고 시키는 대로만 했던 년이!’분이 치밀어 오른 김혜민은 강윤서의 등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독설을 쏟아냈다.“하늘이 무섭지도 않나! 능력도 없고 덕도 없는 것이! 서다빈도 똑같아, 둘 다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강윤서는 발걸음을 멈췄다.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문 앞에는 이미 한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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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태경이한테는 이혼하려는 게 그냥 홧김에 한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강윤서는 본능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최혜란은 그녀의 손을 더 꼭 쥐었다.“할머니가 이혼하지 말라는 게 아니란다. 다만 네가 다시 결혼하기 전까지만 서다빈에게 박태경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줬으면 해서.”“할머니가 곧 좋은 혼처를 마련해줄게. 가문도 인품도 부족함 없을 테니 결혼하면 일찍부터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야.”“하지만 박씨 가문은 뼈대 있는 집안이잖니. 재원이도 언젠가는 나올 테고 그러면 형제들 사이에 금이 가면서 집안이 뒤숭숭해질 거야. 그 아이가 아직 자리도 못 잡은 상황에서 이혼 사실이 먼저 새어나가면 서다빈이 박태경 곁으로 다시 파고들 수도 있어.”강윤서는 최혜란이 이런 태도를 보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할머니, 저는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박태경과의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에 하루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권하람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에는 응할 수 없었다.최혜란은 강윤서의 단호함을 읽어내고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이혼 문제, 너와 박태경 모두 충분히 생각한 거지? 이견은 없고?”강윤서는 잠시 생각했다. 박태경은 이미 이혼 합의서를 받았고 원칙상 내용을 검토했을 것이다. 이후 따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걸 보면 모든 조항에 묵인한 셈이었다.“그이도 동의했어요.”“그럼 윤서야, 우선 서다빈에게는 알리지 말아라. 네 시어머니와 다른 친척들도 이혼 계획을 눈치채선 안 돼. 이 일은 우리 셋만 아는 걸로 하자. 태경 쪽은 할머니가 직접 단단히 못 박아서 1년 안에는 서다빈에게 이혼 사실을 흘리지 못하게 할게.”최혜란은 서다빈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이 문제는 정면 돌파보다 우회하는 편이 낫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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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왜요. 저희가 이혼하길 바라세요?”박태경은 여전히 무심한 태도였다.최혜란은 헛기침을 한뒤 강윤서가 이미 이혼을 결심했다는 말은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대신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물론 아니지. 만약 네가 강윤서와 이혼 문제로 소란을 피우면 혼날 줄 알아.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서다빈의 혼인은 내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든 집안 안에서 끝내.”“알겠습니다.”박태경은 최혜란에게 귤 한 조각을 건네며 입가에 무심한 미소를 띠었다.최혜란은 알 수 있었다. 박태경이 그냥 적당히 넘기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굳이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팔십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강윤서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강윤서는 박태경도 이 사실을 알고 동의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박태경의 태도는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최혜란은 예민하게 감지했다. 분명 두 사람 사이에는 무언가 오해가 있었지만 굳이 지금 그것을 들춰낼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박태경이 이혼을 기정사실처럼 여기지 않는 현재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여겨졌다. 두 사람이 다시 화해해 계속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바라는 결말이었으니까.만약 정말로 안 된다면 그때는 강윤서에게 다음 혼처를 찾아줄 생각이었다. 박태경에게 이혼 사실을 알리는 시점도 적절히 조율하면 됐다. 어차피 언제 알게 되든 결국 동의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가 되면 누구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한편, 강윤서는 저택을 바로 떠나지 않았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가정 의사를 따라가 최혜란의 약을 처방하고 부엌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는 사이, 그녀는 권지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양육권 합의서’ 하나 작성해 줘. 최대한 빨리.]노트북을 가져오지 않아 관련 조항을 직접 나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박씨 가문에 오라는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이혼 합의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7년 전 서명한 합의서에는 자녀 관련 조항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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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강윤서는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은 그녀는 가방끈을 단단히 움켜쥔 채 결연한 걸음으로 차고를 향했다.할머니의 상태가 어젯밤 크게 안정됐으니 이제 박태경에게 양육권 합의서에 서명을 받을 차례였다.차고에 도착하자 멀리서 운전기사가 박태경의 차 문을 열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박태경은 본채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번져 있었고 평소 냉담하기 그지없던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라 그런지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7년 동안 그런 표정을 짓는 그를 본 기억은 거의 없었다. 누구와 통화 중인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어젯밤 그는 본채에 머물렀다.‘그런데 왜... 별채로 돌아오지 않은 걸까.’강윤서의 눈동자에 문득 깨달음이 스쳤다. 박태경은 그녀를 피하고 있었다. 이제는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것조차 꺼리는 듯했다. 어쩌면 서다빈에게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도 몰랐다.아마 강윤서의 시선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던 탓일까. 박태경은 차에 오르기 직전 턱을 살짝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그는 곧 차에 올라 자리를 잡았고 차량은 정원을 부드럽게 빠져나가 멀어졌다.대화를 나눌 시간도 서명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강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차에 올랐다. 박태경이 피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 동의서에는 반드시 그의 서명이 필요했고 시간을 지체할 여유도 감정적으로 흔들릴 틈도 없었다.출근길 교통 체증이 심해 노영 그룹 건물 지하에 도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로비에 들어선 강윤서는 프런트 데스크로 다가가 정중하게 물었다.“대표실에 연락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잠깐 망설였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박태경을 만나야 했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박태경 대표 아내인데요.”이혼 서류를 아직 공식적으로 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효율이 우선이었다.프런트 직원은 그녀를 한번 훑어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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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박태경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걸음을 옮기는 사이 손으로 재킷 단추를 풀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간 시선이 강윤서에게 닿았다.“무슨 서류가 그렇게 급한 거야?”강윤서는 그 말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허락도 없이 회사를 찾아온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그는 그녀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다.‘서다빈의 이미지에 흠이 갈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강윤서는 가볍게 웃으며 걸어가 서류를 그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피한 채 책상 위 서류를 가리켰다.박태경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첫 장으로 내려갔다.‘혼인재산계약서.’“외할아버지께 집을 사드리려고 해요. 제 개인 통장에서 비용을 내고 대출도 받을 계획이에요. 서명해서 개인 자금이라는 걸 확실히 해주세요.”강윤서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혼 합의서에 직접 조항을 추가하자고 하면 박태경이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확인할 게 뻔했다. 그럴 수는 없었기에, 결국 우회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박태경은 서류를 대충 훑어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왜 대출이야? 얼마 필요한데. 내가 보내줄게.”강윤서에게 온전한 가족이 없다는 건 박태경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기댈 가족이 없다시피 했고 늘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살아왔다.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그는 의외로 관대한 편이었다.다만 강윤서가 먼저 요구한 적이 없었고 박태경 역시 스스로 나선 적이 없을 뿐이었다. 사랑하지 않았으니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경원시 집값은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큼 비쌌고 응급실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인 그녀가 넉넉한 자금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대출 형식으로 서류를 꾸미는 편이 가장 자연스러웠다.“나중에 부부 공동재산 문제로 분쟁 생기는 건 싫어요. 제가 친정을 위해 산 건데 나중에 당신 돈 썼다는 식으로 말 나오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박태경이 그제야 그녀를 바라봤다. 강윤서는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고 대신 대출 부담을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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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강윤서에게 필요한 건 단 2초뿐이었다.그녀는 단 한 번도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서다빈이 아래층에서 발목을 삐었다는 급박한 상황 때문인지, 박태경은 그녀가 건넨 서류 뒷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였다.그는 살짝 찌푸린 얼굴로 서류를 한번 훑어보더니 결국 그녀가 펼쳐둔 페이지 위에 펜을 들어 깔끔하게 서명했다.종이 위에 강렬하게 새겨진 글씨는 자유롭고 날카로웠다. 힘 있는 필체에는 그의 성격과 기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윤서는 한 획 한 획 종이 위에 새겨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다른 일은 없나?”박태경이 펜 뚜껑을 닫으며 물었다. 그녀가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구실을 만드는 건 아닌지 떠보는 눈빛이었다. 질문에는 은근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강윤서는 이제 그가 자신을 어떻게 오해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서류를 다시 거둬들이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고 드물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없어요.”박태경은 그 표정을 본 순간 짙은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빛을 담은 채 몇 초간 그녀를 바라봤다.강윤서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고마워요.”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태경은 이미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서다빈의 발목이었다.강윤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열렸다 닫히는 문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속으로 낮게 읊조렸다.‘그리고 축하해요.’그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결국 서다빈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서명한 서류가 ‘양육권 합의서’라는 사실 역시 끝내 알아채지 못했다.박태경이 서다빈에게 망설임 없이 쏟아부은 편애는 이제 강윤서에게 독이 아니라 구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는 다른 여자를 향한 그 편애 때문에 결국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포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터였다.한때 그녀를 가장 아프게 했던 행동이 이제는 오히려 그녀에게 숨 쉴 틈을 열어주고 있었다. 목을 조르던 칼날 역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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