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무소식이 무관심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그녀는 왠지 조금 서운했다.그리고 그 서운함은 자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넷째 날. 유리는 아침 산책을 나갔다.라탱 지구의 좁은 골목길. 혼자 걷는 그 길 위에서그녀는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 남자.요리 수업에서 만났던,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다고 믿었던 사람.그는 유리를 보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어… 안녕하세요?”“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유리도 당황했지만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잠깐, 같이 커피라도 하실래요? 전 지금 막 시킨 참이라…”유리는 고개를 저을까 하다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았다.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에게이건 단지 커피 한 잔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저 파리의 겨울, 햇살과 안개 사이에서묘하게 따뜻한 시간을 공유했다.그리고 그 대화의 마지막,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혼자 남은 시간이 길면사람은… 작은 친절에도 마음이 열리게 되죠.”유리는 그 말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그건 그가 지나온 감정의 고백이었고,그 순간 유리는 그의 말 속에서 자신의 오늘을 보았다.그날 밤, 이현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오늘 하루는 어땠어요?’단순한 문장이었지만 유리는 한참을 망설였다.답장을 보내기까지 십 분, 이십 분이 걸렸다.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조용했어요.혼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이현은 짧게 답했다.‘내일은 더 조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그 말은 어딘가 외로움이 스며 있는 다정함이었다.그리고 유리는 그 다정함이 자신에게 여전히 필요한 온도라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그날 밤, 유리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하루가 비어 있는 것이 어쩌면 사랑의 부재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그 빈 하루 속에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들어올 때, 마음은 어느 쪽으로든 흔
“본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잠깐, 도쿄에 들어오라는 연락이.”“출장이에요?”“응. 일주일 정도. 아마 미팅과 회의가 이어질 거라서, 급히 가야 할 것 같아요.”그 말은 단순한 출장의 언급이 아니었다.유리는 그 말의 너머에 또 다른 제안이나 결정이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그래서 더 묻지 않았다.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언제 가요?”“모레.”그 짧은 대답은 모든 것을 압축하고 있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TV에서는 무채색 뉴스 화면이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그것에 집중하지 않았다.유리는 담요를 무릎 위로 끌어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현 씨.”“응.”“거기서… 더 오래 있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그 질문은 지금 이 공간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그 공간의 모서리를 미리 만져보려는 손끝 같았다.이현은 잠시 정지된 듯한 시선을 보였다가 답했다.“솔직히 말해도 돼요?”“응.”“나… 조금, 마음이 기울고 있어요.”그 말은 이현이라는 사람의 책임감과그가 품고 있는 야망이 그동안 어떻게 눌려 있었는지를 은근히 드러내는 말이었다.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면… 난 어떻게 돼요?”유리가 묻자 이현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당신을 데려가고 싶다’는 말과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유리는 그 눈빛이 어쩌면 대답보다 더 정직하다고 느꼈다.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 밤, 유리는 혼자 안방 침대에 앉아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았다.이현의 옷장에서 출장 준비를 위해 꺼낸 셔츠들이 조용히 정리되어 있었고,그 정돈된 풍경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가 되는 파리’를 상상해보았다.그리고 그 상상은 뜻밖에도 너무 쉽게,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그건 두려움이 아니라 서늘한
파리의 겨울 햇살은 유난히 느릿하게 기울었다.오전과 오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 유리는 부엌에 서서 국물의 간을 보며숟가락 끝에 얹힌 뜨거운 그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입술에 닿게 했다.싱거웠다. 하지만 다시 간을 맞추진 않았다.그날은, 그냥 그렇게 먹기로 했다.식탁을 차리는 동안 이현은 아무 말 없이 유리의 옆에 있었다.그녀가 손을 뻗으면 조용히 그릇을 건넸고, 접시를 내리면 묵묵히 젓가락을 맞췄다.두 사람은 어느새 함께 요리하는 호흡에 익숙해져 있었지만,그 익숙함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조심’으로 이뤄진 합이기도 했다.식탁 위엔 버섯 크림 파스타와 그 위에 소복이 얹힌 파르메산 치즈,그리고 가지 토마토 구이와 바게트가 올려졌다.파리는 언제나 식욕을 깨우는 도시였고, 유리는 그 도시의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요리를 올렸다.그런데 그날의 식탁은 음식보다 ‘말’이 더 필요해 보였다.조용히 숟가락을 들던 이현이 작은 숨을 토하듯 말을 꺼냈다.“유리 씨.”그 짧은 호명이 그녀의 손끝을 멈추게 했다.“혹시… 당신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그 말은 기다려온 대화의 문이었다.그동안 서로가 말하지 않았던 것, 말할 수 없었던 것들.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유리는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았다.그리고 물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낮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걸 나도 요즘 매일 물어요.”그녀의 눈동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그 시선은 아주 먼 곳을 보고 있었다.“내 마음이 지금 어디 있는지, 당신 곁에 있는 건 맞는지…아니면 그냥 여기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그녀는 말을 이었다.“사랑이라는 감정이 처음엔 아주 선명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이 무게로만 남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이현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당신 마음이 내 곁에 있다는 걸 매일 확인하고 싶었어요.그게 불안이라도 상관없었어요. 당신이 내 옆에만 있어준다면.”그의 고백은 처음으로 내
두 사람은 섬 중앙 작은 골목 어귀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섰다.따뜻한 커피와 아몬드가 박힌 조각 케이크가 나왔고,그들은 서로의 손에 닿지 않는 컵과 컵 사이의 공간을 두고 마주 앉았다.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어제까지의 침묵과는 달랐다.이젠 누군가 먼저 말할 수 있다는,그리고 그 말을 받아줄 용기가 생겼다는 기류가 작게, 그러나 분명히 흐르고 있었다.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요즘 당신, 전보다 많이 생각이 깊어졌어요.”유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게 좋은 건가요?” “좋다고 말하기엔… 마음이 복잡해졌다는 뜻 같아서요.”그녀는 살며시 웃었다. 그 웃음은 얇았지만, 속에 담긴 감정은 진짜였다.“맞아요. 예전엔 그저 내가 다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이제는… 내가 감당한 만큼 당신도 상처받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그 말에 이현의 시선이 깊어졌다.“그래서일까요. 당신 말 한 마디에 내가 더 조심스러워졌어요.”“서로가 서로를 자꾸 조심하게 되면… 함께 있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유리가 물었다.이현은 그 말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대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래도 나는 그 어려움을 감수하고 싶어요. 당신이니까.”그 말은 짧았지만 단단했다.그 순간, 유리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마치 겨우 붙들고 있던 감정의 실이 조금 느슨해지는 듯한 순간이었다.카페에서 나와 걷는 길.그녀의 손이 작게, 그러나 분명히 이현의 손등에 스쳤다.이현은 그 손을 붙잡지 않았다.대신 천천히 걸음을 멈춰 유리를 바라보았다.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침묵 안엔 '이제 괜찮다'는 메시지가 부드럽게 담겨 있었다.그래서 이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다.유리는 이른 아침, 부엌 한가운데 멈춰 선 채 오래된 유리병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작은 잼병. 뚜껑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안쪽에 흐르는 꿀과 잼은 시간이 지난 탓인지 가장자리에 미세
밤이 깊었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는 늦은 불빛 몇 점만이 잊힌 듯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고,그 불빛 아래 유리는 홀로 부엌에 앉아 있었다.식탁 위엔 작은 유리병이 하나.그 안의 잼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유리는 그것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에 들었다.차가운 유리의 촉감이 손끝에 닿는 순간, 그녀는 작은 숨을 들이켰다.이건 선물이 아니라 잔여물이었다.그 날, 그 사람의 마음보다도 이현의 눈빛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었던 ‘묻히지 않은 장면’의 조각.그녀는 그 조각을 이제는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유리는 잼병을 조심스럽게 들고 부엌 한켠의 쓰레기통 앞에 섰다.뚜껑을 열고 손에 든 병을 천천히 들이밀었다.그런데 이상하게, 손끝이 떨어지지 않았다.그저 유리병 하나일 뿐인데 그 작고 가벼운 것을 왜 이토록 오래 붙잡고 있는 걸까.유리는 그 병 안에 남은 마음을 스스로도 모르게 훑어보고 있었다.그건 오히려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려는 태도였다.“그 사람은 나에게 감정을 주지 않았고, 나는 그걸 받지도 않았다.다만… 그 사람 앞에서 내 마음이 설명 없이 움직였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사실이 이현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사랑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란 걸 유리는 알고 있었다.뚜껑을 닫는 순간, 뚝~하는 작은 파열음이 들렸다.그것은 유리병이 아니라 그녀 안의 감정이 금이 가는 소리 같았다.그 순간, 문득 뒤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유리는 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거기 서 있는지 알 수 있었다.이현이었다.샤워 후 물기를 말리지도 않은 머리로,베란다 앞에 서서 그녀의 움직임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유리는 놀라지 않았다. 단지, 오히려 안심했다.“왜 안 자요.”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걸음을 옮겨 유리의 맞은편에 조용히 섰다.그들의 시선 사이엔 아직 버려지지 못한 감정이 작은 병 속에서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이현이 조용히 말했다.“
그날 아침, 유리는 눈을 떴을 때처음으로 이현의 부재를 '편안하다'고 느꼈다.늘 어깨 너머에 머물던 무게가 없어진 자리에 스며든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그녀는 곧 그것이 편안함이 아니라 ‘회피’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식탁 위엔 전날 버리지 못한 작은 잼병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작은 유리병 하나가 이 집 안의 공기를 바꿔놓고 있었다.이현은 아침을 먹지 않았다.출근 준비를 마치고 셔츠 단추를 채우던 그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거울 앞에 선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그의 눈빛은 거울 속 자신과 어디에도 초점을 두지 못한 채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오늘, 저녁은 늦어요.”그가 말하자 유리는 고개만 끄덕였다.말이 짧아졌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도 그 공백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그건 애써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조심이었고,동시에, 서로를 오해하지 않으려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오후가 되자 하늘이 흐려졌고, 유리는 장을 보기 위해 익숙한 시장 골목으로 향했다.그녀는 손에 닿는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문득 그 남자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저는 곧 떠나요. 이 도시도, 이 골목도 다 그냥 스쳐가는 시간이니까요.”떠날 사람. 남지 않을 사람.유리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는지 생각했다.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정말 그는 그녀의 마음 어디에도 스며들지 않았을까.그날 저녁, 유리는 조심스럽게 식탁을 차렸다.된장국엔 버섯을 많이 넣었고, 잡채는 이현이 좋아하던 당면을 넉넉히 삶았다.하지만 식탁의 중심에 앉을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시계를 몇 번이고 보다가 결국 국을 데우다 식히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늦은 밤. 이현이 현관을 열고 들어왔을 때, 유리는 마치 기다리지 않은 사람처럼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식사… 했어요?”그녀가 묻자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당신 요리 냄새가 집안에 남아 있어서
밤공기가 차갑게 식어가는데도,유리는 어딘가 온몸이 달아오른 듯 잠시 가게 문 앞에 멈춰 서서바람에 흔들리는 간판 소리를 들으며 혼자 속삭였다.“…나… 이러면 안 되는데.”유리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분주히 움직였다.주방 안을 바삐 오가며 냄비 뚜껑을 열어보고, 칼을 쥔 손끝을 재촉했지만,그럴수록 마음 한편은 더 조급하게 요동치는 느낌이었다.주방 창가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에 눈이 시리도록 부딪힐 때마다,그 골목 어귀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오늘은 안 올 거야. 그럴 리 없지. 근데,
이현은 문 안으로 들어서며 느긋하게 웃었다.유리는 순간 칼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쥘 뻔했다.“진상님… 진짜 왜 이렇게 매일 와요. 그만 좀 와요.”“싫은데요?”이현은 짧게 웃으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보고 싶어서 왔는데요.”조유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 뒤돌아서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꾹 눌렀다.‘조유리, 이러지 마… 진짜, 정신 차려…’그날 저녁, 은별은 가게 문턱을 조용히 넘었다.“회장님, 식사 시간이 이렇게 중요하셨나요?”은별
은별의 미소 속엔 알 수 없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회장님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매일 이곳에 오시는지.”이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비서님, 일은 일이고, 제 사생활은 좀 놔두시죠.” 라고 말했다.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그들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기류가 한순간 식당 안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가게 정리 중, 유리는 문을 닫으려다 또 골목 끝에 서 있는 이현을 발견했다.“진상님, 진짜… 오늘은 왜 안 가세요.”이현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며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냥… 보고 가려고요.”유리는 한숨을
“조유리 씨,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신경 많이 쓰세요?”그 말에 유리는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휙 돌리며“손님 관리 열심히 하는 게 잘못인가요?” 하고 받아쳤다.이현은 피식 웃었다.“잘못은 아닌데요, 굳이 그렇게 변명하실 필요는 없잖아요.”유리는 국자로 찌개를 휘젓다 턱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그 와중에도 심장이 자꾸만 빨리 뛰는 게 더 화가 났다.문득 식당 문이 열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렸다.조은별이었다.완벽한 정장 차림, 미소를 얹은 얼굴,그러나 그 안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누구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