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บทที่ 61 - บทที่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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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가로챈 부름

내관이 편전을 나와 회랑을 절반쯤 갔을 때 상궁이 앞을 막았다.막았다기보다 마주 걸어오다 그 자리에 선 것이었는데, 회랑이 넓은데도 비켜 갈 자리가 없었다.상궁의 뒤로 궁녀 둘이 등을 들고 있었고, 등불이 낮아 바닥만 밝았다.어디 가느냐는 물음에 내관이 폐하의 분부라고 아뢰었다."무슨 분부.""…육가 안주인을 다시 들이라 하셨사옵니다."상궁이 손을 내밀었다.손바닥이 위로 향해 있었고, 손톱이 짧고 깨끗했다.내관이 소매에서 명첩을 꺼내 그 손에 올렸다.올리고 나서 두 손을 모았다."폐하께서 밤에 잠을 못 이루시어 아무 말씀이나 하실 때가 있다.""…예.""그런 말씀을 밖으로 옮기면 폐하께서 곤란해지시지.네가 곤란해지는 것은 그다음 일이고."명첩이 상궁의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회랑에서 등불이 두 개 더 꺼졌다.* * *육가에 사람이 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궁색 옷이었다. 지난번 어공을 내리러 온 자와 다른 자였는데 신코에 흙이 없는 것은 같았다.마당에 선 채로 목록도 펴지 않고 말만 전했다.부름이라고 했다. 날짜는 모레, 시각은 사시, 들 곳은 태의원이 아니라고 했다.집사가 어느 처소냐고 물었다.대답이 오지 않았다.대답이 오지 않는 것을 마루에서 대부인이 들었다.굳은 손이 이불 위에서 한 번 움직였고, 그 움직임을 오어멈이 보고 이불을 여며 올렸다.* * *그날 밤 곁방에 등불이 늦게까지 있었다.서란은 종이를 펴 놓고 붓을 든 채 오래 앉아 있었다.먹이 마르도록 첫 자를 쓰지 않았고, 마른 먹을 다시 갈았다가 또 그대로 두었다.한 줄을 쓰고, 그 줄에 먹을 덧칠해 지웠다.지운 자리가 검게 뭉쳤다.새 종이에 다시 썼다. 이번에는 짧았다.부름이 있었다는 것과 날짜와 시각.들 곳은 모른다고 적었다.모른다고 적으면서 붓끝이 한 번 멈췄다.아는 것을 모른다고 적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접어서 소매에 넣고 등을 껐다.끄고 나서도 한참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 *그날 밤 육정은 서하당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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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얼굴

향이 무거웠다.침향이 아니라 안식향이었다.태우면 방바닥에 가라앉아 오래 남는 향이라,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목 안쪽에 단맛이 얕게 붙었다.처소 안은 낮인데도 어두웠다.창을 다 닫고 발을 드리운 방이었고, 발 안쪽은 그보다 반 자쯤 더 어두웠다.어디서 목소리가 오는지 가늠하려면 시간이 걸렸고, 가늠하는 동안 말이 저절로 짧아졌다.한경은 방 가운데 놓인 자리에 앉았다.무릎을 모으고 치마 폭을 앞으로 눌렀다.절을 올리라는 말도, 올리지 말라는 말도 없었다.* * *기다리는 동안 방 안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아랫목에 놓인 낮은 서안, 그 위의 경전 한 권, 펴지 않은 채 오래 놓인 표시로 겉이 바랜 것.벽에 걸린 족자에는 글씨가 없고 먹으로 친 난만 있었다.화로에 재가 두껍게 앉아 있었는데 불씨는 살아 있었다.궁녀 둘이 벽을 따라 서 있었다.둘 다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었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한경은 무릎 위의 두 손을 겹쳐 놓았다.남색 치마의 도련이 방바닥에 닿아 은실 물결이 그늘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흰 배자의 앞섶이 무릎 위에서 반듯하게 갈라져 있었고, 갈라진 사이로 잿빛 저고리의 은단추가 셋 보였다.닳은 금가락지가 손가락에서 한 번 돌아갔다. 바로 놓았다.* * *"육가에 시집온 지 몇 해나 되었느냐."열 해라는 대답이 나왔다."열 해면 짧지 않구나.그 열 해 동안 성 안을 걸은 것은 올여름이 처음이라 들었다."그렇다는 대답에는 아무 대꾸도 오지 않았다.발 안쪽에서 염주 알이 한 번 굴렀고, 그 소리가 방바닥을 타고 무릎까지 왔다.선단 이야기가 나온 것은 한참 뒤였다.성약을 두고 수은이라 하였다지, 하는 물음이었다.목소리에 나무람이 없어서 더 조심스러웠다."수은이 맞아서요.""어찌 아느냐.""색이랑 결이 그래요.먹은 사람 손이 떨리고, 잇몸에 검푸른 선이 앉고, 잠을 못 자고, 성정이 변하고요.넷 중에 셋이면 수은이에요."발 안쪽이 조용했다.조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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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기억

"기억이 안 나요."대답이 짧아서 방 안에 놓일 자리가 없었다.안식향이 다시 한 번 피어올랐고, 황태후의 눈은 여전히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열 살이면 다 큰 나이라는 말이 왔다.그 나이에 다녀온 데를 잊는 아이는 드물다는 말이 뒤에 붙었다."열 살에 뭘 했는지 기억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네가 겁이 없구나.""겁나요." 한경이 무릎 위의 손을 고쳐 놓았다."겁나는데 기억이 안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요."발을 걷어 올린 채로 방이 조용해졌다.상궁이 숨을 죽였고, 궁녀 하나가 등잔 심지를 돋우려다 손을 도로 내렸다.황태후가 물었다. 밤에 물소리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흰 등을 보면 어떠하냐고.별채라는 말을 들으면 어떠하냐고.한경은 그 셋에 다 같은 얼굴을 했다.물소리는 물소리고 흰 등은 상갓집이며 별채는 손님 두는 데가 아니냐는 대답이 차례로 나왔다.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얼굴이었다.염주가 다시 굴렀다.한 알, 두 알, 세 알, 넷."…네 아비가 잘 지웠구나."* * *무슨 말씀이시냐는 물음에 대답이 오지 않았다.대신 다른 말이 왔다.네가 네 시어미를 멈추게 했다지, 하는 말이었다.멈추게 했을 뿐 고치지는 못했다는 대답이 그대로 돌아갔다."멈추게 하는 손도 귀하다.이 궁에는 고치겠다는 자만 많아서."황태후가 상궁 쪽으로 손을 들었다.상궁이 소반에 무언가를 받쳐 올렸다.비단에 싼 것이었고, 비단을 풀자 옥으로 만든 패였다.손바닥 반만 한 것에 글자가 하나 새겨져 있었다.궁문을 드나들 때 보이면 묻지 않고 들여보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한경이 그것을 받지 않고 봤다."제가 이걸 왜 받아요.""어공을 낸 집 안주인이 궁에 드나들 일이 앞으로 없겠느냐.""없으면 좋겠는데요."상궁의 어깨가 굳었다.발 안쪽에서 웃음소리 비슷한 것이 났는데, 웃음인지 숨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받아라."받았다. 옥이 차가웠고, 손바닥에 놓이자 그 차가움이 오래갔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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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도둑

문서 상자가 열려 있었다.강목의 방은 태의원 뒤채에 딸린 작은 방이었고, 문에 자물쇠를 달지 않은 것은 가져갈 것이 없어서였다.십수 년 동안 아무도 그 방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상자 안에서 열두 해 전 장만 없어졌다.그 앞뒤 장은 그대로였고, 순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빼 간 자가 어느 장을 빼야 하는지 알고 왔다는 뜻이었다.강목이 문지방에 앉아 그 상자를 오래 봤다.손이 무릎 위에 있었고, 그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방을 나서면서 문을 닫지 않았다.* * *사라진 관원의 집은 성 밖 개천 건너에 있었다.고향에 급한 일이 있어 내려갔다던 자였다.문이 안에서 걸려 있었고, 마당에 빨래가 널린 채로 사흘 밤 이슬을 맞아 뻣뻣했다.이웃은 그 집 사람이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강목이 개천을 따라 아래로 걸었다.물이 얕은 데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삿대로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중이었고, 끌어당길 때마다 물이 흐려졌다가 도로 맑아졌다.건져 놓은 것을 강목이 봤다.이틀쯤 물에 있었던 몸이었다.얼굴이 부풀어 알아보기 어려웠으나 왼손 새끼손가락이 굽어 있었다.문서를 오래 쥔 자의 손가락이 그렇게 굽는다.강목이 그 손을 들어 손톱 밑을 봤다.흙이 없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댄 자의 손톱 밑에는 개흙이 들어차 있어야 했다.손톱은 깨끗했고, 손목 안쪽에 눌린 자국이 두 줄로 남아 있었다.물에 빠진 자가 아니었다.건져 낸 자들이 관가에 알리자 했다.강목은 그러라고 했다.그러라고 하면서,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그 손목의 자국을 그대로 옮겨 그렸다.* * *그날 저녁 강목은 태의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시전 서편 골목을 지나 육가 쪽으로 걸었다.걷다가 두 번 멈춰 뒤를 봤다.두 번 다 아무도 없었다.세 번째에 있었다.담 모퉁이에 삿갓 하나가 서 있었다.서 있다가 강목이 돌아보자 걸음을 옮겼는데, 숨는 걸음이 아니라 보라는 걸음이었다.강목이 그 자리에 섰다. 삿갓도 섰다.두 사람 사이에 골목 하나가 있었다.저녁 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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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덮개

대부인은 그 물음을 사흘 뒤에 다시 했다.미음을 반 그릇 비우고 입가를 닦인 뒤였다.오어멈을 물리고 초하까지 내보낸 방에서, 굳지 않은 쪽 손으로 며느리의 손목을 잡았다."너, 명주 맞느냐."한경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잡고 나서 손가락 하나하나를 폈다가 다시 접었다.굳은 손을 푸는 일을 며칠째 하고 있었으므로 손이 그것부터 했다.맞다고 하지 않았다."어머니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한참 뒤에 말이 나왔다.반쯤 뭉개진 말이라 알아듣는 데 시간이 걸렸다.명주는 밥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열여섯에 시집와서 열 해를 그랬는데, 올여름부터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다고 했다.명주는 문지방을 넘을 때 늘 오른발부터였고, 명주는 사람이 무어라 하면 먼저 눈을 내렸다고."명주는 내 눈을 십 년 동안 안 봤다."한경이 그 손을 계속 폈다 접었다."…지금 나는 보고 있죠.""본다."방이 조용했다. 창호지에 마당 쪽 그림자가 하나 지나갔다."…아니어도 됐다."한경의 손이 멎었다.* * *창으로 든 볕이 이불 위까지 와 있었다.대부인의 손등은 살가죽이 얇아 뼈와 힘줄이 다 비쳤고, 그 위로 검버섯이 몇 개 있었다.며칠째 그 손을 폈다 접었다 하는 동안 손끝의 색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한경이 대야의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적셔 짰다.짜는 손이 희고 손톱이 짧았다.소매를 끈으로 묶어 팔이 팔꿈치 위까지 나와 있었다.수건으로 대부인의 손을 감쌌다.감싸서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문질렀다."어머니.""…""뜨거우면 말씀하세요."대부인이 눈으로 아니라고 했다.* * *대부인이 말을 이었다.이번에는 더 느렸다.명주는 이 집에서 십 년을 살고도 이 집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그것을 알고도 두었다는 말, 알고 두었으니 제 몫이라는 말이 뒤에 붙었다."네가 누구든.""…""내 아들 국그릇을 네가 마시게 두지 않았다."굳은 손이 며느리의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두드리는 힘이 약했다.한경이 대야의 물을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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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명첩

황제가 그 일을 안 것은 열흘이 지나서였다.물을 올리러 든 내관이 물러가다 문지방에서 한 박자 늦었고, 그 한 박자를 황제가 봤다.요즘 저 아이가 늘 늦는다는 말에 어의가 무어라 변명하려는 것을 손짓으로 막았다.이리 오라는 말에 내관이 무릎걸음으로 왔다.이마가 바닥에 닿아 있었다."짐이 열흘 전에 무엇을 이르라 하였느냐."대답이 오지 않았다."전하지 않았구나."전하려 하였다는 말이 바닥에 대고 나왔다.회랑에서 명첩을 빼앗겼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고, 나오지 않는 것으로 다 나왔다.황제가 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내려놓는 소리가 작았다."누가."내관이 대답하지 못했다."짐이 이름을 대라 하였느냐, 아니면 대지 말라 하였느냐."이름이 나왔다. 상궁의 이름이었고, 그 상궁이 누구 처소 사람인지는 궁에서 모르는 자가 없었다.황제가 웃었다. 눈매만 움직였다."물러가라. 오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네가 살려면."* * *그 밤에 황제는 침수에 들지 않았다.촛불을 물리라 하지도 않고, 창을 열라 하지도 않았다.자리에 앉아 손을 폈다 접었다 했다.손가락 끝의 떨림이 열흘 전보다 조금 넓어져 있었다.붓을 들었다. 종이에 한 자를 쓰다 획이 어긋나 종이를 밀어 놓았다.새 종이를 펴고 다시 썼다. 그것도 어긋났다.세 번째 종이는 펴지 않았다.내관 하나가 벽 쪽에서 아뢰었다.태의원에서 새 선단이 올라왔다는 말이었다."두어라.""…폐하.""두라 하였다."은쟁반이 소반 위에 놓인 채로 밤이 갔다.붉은 알이 촛불 아래서 윤을 내고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치우지 못했다.* * *황제는 그 밤에 처음으로 제 병을 세어 보았다.손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잠이 짧아진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사람의 말이 두 번씩 들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는지.세어 보다가 그만두었다.세어도 순서가 맞지 않았다.대신 다른 것을 셌다.선단을 진어하기 시작한 해.그해에 어의가 바뀐 것.그 어의를 천거한 사람.거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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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숨

그 밤 육정은 술을 마시지 않고 왔다.문을 닫고 잠깐 서 있다가, 서 있으라는 사람도 없는데 서 있는 것이 우스웠던지 스스로 앉았다.앉은 자리가 여느 밤보다 반 자 가까웠다.한경은 자리에 앉아 머리를 풀고 있었다.은비녀를 뽑아 경대에 놓고, 쪽을 지탱하던 것들을 하나씩 빼내는 참이었다.뒤통수 안쪽의 것이 잘 잡히지 않아 손이 두 번 헛돌았다."…내가 하겠소."한경이 손을 내렸다.그가 뒤로 돌아 앉았다.무릎이 등에 닿을 만큼 가까웠고, 손이 올라와 머리를 더듬었다.비녀를 찾는 손이 서툴러서 목덜미를 두 번 스쳤다.스칠 때마다 잔머리가 살에 눌렸다.마지막 하나가 빠지자 머리가 한꺼번에 흘러내렸다.등을 덮고, 허리께에서 멎었다.그 무게가 어깨에서 빠져나가는 동안 한경이 목을 한 번 뒤로 젖혔다.젖힌 목 아래로 등불이 들었다.뒤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그의 손이 머리에 얹혀 있었다.빼낼 것이 더 없는데도 내려가지 않았다.손가락이 머리 사이로 들어가 두피에 닿았고, 거기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빗질도 아니고 쓰다듬는 것도 아닌, 무엇을 확인하는 손이었다.한경이 고개를 돌렸다.돌리자 얼굴이 가까웠다.코끝이 반 치였고, 그의 숨이 뺨에 닿았다.술 냄새가 없어서 숨이 그냥 숨이었다.그가 움직이지 않았다.손도 머리에서 내려가지 않았고, 눈도 감기지 않았다.눈이 이쪽 입에 가 있었다.빗소리도 없고 바람도 없었다.등불 심지가 타는 소리만 났고, 그 소리 사이로 두 사람의 숨이 어긋났다가 맞았다가 했다.그가 고개를 반 치 기울였다.기울면서 손이 머리에서 내려와 목 뒤에 닿았다.손바닥 전체가 목덜미를 감쌌고, 엄지가 귀 아래 움푹한 자리에 놓였다.거기서 맥이 뛰고 있었으므로 그의 엄지 아래에서 그 맥이 그대로 셌다.숨이 입술 위에 닿았다.닿는 자리가 뜨거웠다가, 그가 조금 물러나면 서늘해졌다가, 다시 뜨거워졌다.목 뒤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다.끌어당기는 힘이었다.한경의 무릎이 방바닥에서 반 치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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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서재

심가에서 기별이 온 것은 이틀 뒤 새벽이었다.대인이 위독하시다는 말이었다.기별을 가져온 자가 성문 열리기를 기다렸다 왔다고 했고, 옷에 밤이슬이 앉아 있었다.가마가 마당에 놓이는 동안 육정이 관복을 입었다.조정에 알리고 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냥 입었다.말고삐를 쥐는 손등에 어젯밤 자국이 남아 있었다.떠나기 전에 대부인 처소에 들렀다.굳은 손이 며느리의 소매를 붙잡았다 놓았다."…서재에는.""예.""…혼자 들어가지 마라."* * *성 밖 길에 안개가 얕게 깔려 있었다.가마 곁에 붙은 말이 오늘은 앞서지 않았다.반나절 내내 한 뼘 옆에서 왔고, 주렴 너머로 그의 소매가 계속 보였다.한 번, 가마가 흔들렸을 때 주렴 밖에서 손이 들어왔다.발을 걷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발 아래 틈으로 들어온 손이었고, 그 손이 이쪽 손을 찾아 잡았다.잡고, 놓지 않은 채로 길이 얼마쯤 갔다.말 위에서 그는 앞만 보고 있었다.잡은 손만 뒤로 와 있었다.* * *심가 대문에 흰 등이 걸려 있지 않았다.아직 걸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종들이 마당에 늘어서 절을 했고, 그 가운데 지난번 그 늙은 종이 있었다.이번에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안방에 들었다. 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있었고, 숨이 얕고 빨랐다.살이 더 빠져 광대뼈 위의 살가죽이 종잇장 같았다.한경이 손목을 짚었다.맥이 가늘고 자주 걸렀다.눈꺼풀을 열어 보고, 손톱을 눌러 보고, 입 안을 봤다.잇몸에 검푸른 선은 없었다. 다른 것이었다."…물을 얼마나 못 드셨어요."닷새라는 대답이 총관에게서 왔다.아버지의 눈이 떠졌다.딸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고, 알아보고 나서 손을 들려다 못 들었다."…왔느냐.""예."말이 나오려는 것을 한경이 막았다.말은 나중에 하시라고, 지금 하면 더 안 나온다고 했다.물을 적신 천을 입술에 대 주고, 미음을 데워 오게 했다.아버지가 눈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서재 쪽이었다.* * *낮이 기울도록 방을 지켰다.미음을 두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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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붉은 줄

서란이 고개를 돌렸다.등잔을 켜지 않고 창으로 드는 달빛만으로 종이를 넘기던 참이라, 얼굴 반이 어두웠다.무릎 위에 명부가 펼쳐져 있었고, 상자에서 꺼낸 장들이 옆에 차곡히 쌓여 있었다.순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꺼낸 손이었다."등을 켤까요."한경이 문을 닫았다.닫고 등잔에 불을 붙였다.심지가 살아나면서 방 안의 것들이 순서대로 나타났다.책장, 상자, 무릎 위의 종이, 그리고 서란의 손.손등에 흉이 있었다.열에 덴 자국이 오래된 것이었다."이 집을 잘 아네.""열두 해 전에 여기서 두 달을 살았습니다."한경이 아버지 자리에 앉지 않고 문 쪽 자리에 앉았다."말해 봐."서란이 무릎 위의 장을 들어 이쪽으로 돌려 놓았다.이름과 나이. 먹인 날. 먹인 것.그 아래 「무탈」 두 자, 더러는 빈칸.빈칸 옆에 붉은 먹으로 그어진 줄.붉은 줄이 그어진 이름 하나에 서란의 손가락이 얹혔다.열두 살, 여아, 이름 한 자."…소인입니다."* * *등잔 심지가 한 번 타면서 소리를 냈다.그해 여름에 팔려 왔다는 말이 나왔다.시약장 평상에 열이레를 앉았고, 열이레 째에 사람이 셋 죽어 나갔으며, 그중 하나로 적혔다는 말이었다."죽은 걸로 적혀야 값이 정리되거든요.산 사람은 도로 데려가야 하는데, 데려갈 데가 없는 아이는 죽은 걸로 적는 편이 서로 편합니다."말투에 원망이 없었다.원망이 없어서 듣기가 더 나빴다.한경이 물었다. 그다음엔 어디로 갔느냐고."이 집으로요. 대인께서 데려다 두 달을 먹이셨습니다.""…우리 아버지가?""예.""그리고?""두 달 뒤에 다른 데로 보내셨고, 그 다른 데가 궁이었습니다."한경이 등잔을 조금 당겼다.불이 서란의 얼굴 쪽으로 갔다.얼굴이 밝아지자 눈 밑에 오래된 그늘이 보였다."그래서 우리 집에 온 거야? 십 년 만에?""…소인은 시키는 대로 왔습니다. 처음에는요.""지금은."서란이 대답하지 않았다.대답 대신 옆에 쌓아 둔 장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들었다.집는 손이 아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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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나가겠다

아버지의 숨이 바뀌어 있었다.들이쉬는 데 시간이 걸리고 내쉬는 것이 짧았다.방에 사람이 여럿 들어와 있었고, 총관이 촛대를 옮기다 촛농을 손등에 떨어뜨리고도 몰랐다.한경이 자리에 앉아 손목을 짚었다.맥이 아까보다 더 자주 걸렀다.아버지의 눈이 떠졌다.이번에는 딸을 바로 알아봤다.말을 하려고 입이 움직였다.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한경이 몸을 숙여 귀를 입 가까이 댔다.머리가 흘러 아버지의 어깨를 덮었다.숨 섞인 소리가 왔다.「…네 얼굴을,」그다음이 나오지 않았다.한경이 손을 잡았다.잡은 손에 힘이 들어왔다가 빠졌다.「…네 얼굴을 본 사람이,」숨이 한 번 길게 들어갔다.들어간 것이 나오지 않았다.* * *총관이 곡을 시작하기 전에 한경이 손을 들었다.아직이라고 했다. 아직 아니라고, 흰 등도 아직이라고 했다.목소리가 낮았고 방 안의 누구도 그 말을 거스르지 않았다.아버지의 손을 가슴 위에 모아 놓고, 눈꺼풀을 내려 주었다.내려 주고 나서 그 위에 손바닥을 잠깐 얹었다.돌아서서 방을 나왔다.회랑에 육정이 서 있었다.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옷에 밤이 앉아 있었다.한경이 지나가는데 그가 팔을 잡았다.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놔요."놓지 않았다.한경이 그 자리에 섰다.서서, 이마를 그의 어깨에 댔다. 대고 있었다.우는 소리는 나지 않았고, 어깨가 움직이지도 않았다.그의 손이 등으로 올라와 한 번 눌렀다.그것이 전부였다.* * *새벽에 흰 등이 걸렸다.총관이 사람을 시켜 대문 양옆에 하나씩 달았다.심가 담이 길어서 등 두 개로는 어림도 없었는데, 더 달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한경이 상복을 받아 입었다.거친 삼베가 살에 닿는 자리마다 서걱거렸고, 소매가 넓어 손을 내리면 손끝이 보이지 않았다.머리를 풀어 흰 끈으로 한 번 묶었다.은비녀도 노리개도 다 벗어 두었다.벗어 둔 것들 옆에 옥패가 놓여 있었다.그것만 소매에 넣었다.마당에 나오니 종들이 곡을 시작하고 있었다.곡소리가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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