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밤 곡을 마친 세자 강진이 빈전 뜰의 여막으로 돌아왔다. 삼베를 걷고 들어가 자리에 앉자, 밖에서 기다리던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세자에게 글을 가르치던 한겸이었다.
“사간원 상소입니다. 즉위 뒤 첫 조회에 올릴 글을 미리 받아 왔습니다.”
세자는 무릎 위에 문서를 펼쳤다.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라는 글 아래 정언의 이름이 있었다.
“정언이 혼자 쓴 것은 아닙니다. 뒤에 좌상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어찌하실지.”
세자는 문서를 접어 한겸에게 돌려주었다.
“조회에서 듣겠다.”
한겸이 물러난 뒤에도 삼베는 한동안 들려 있었다. 내관 도홍이 물그릇을 받쳐 들고 들어와 세자 곁에 내려놓았다.
“한 모금 드십시오. 밤새 목을 쓰셔야 합니다.”
“됐다.”
“닷새째 죽 한 그릇씩입니다.”
“국상이다.”
“아이고, 국상이라도 좌상 대감은 세 그릇 드십니다.”
세자가 고개를 들자 도홍은 그릇을 조금 더 가까이 밀었다. 세자는 물을 마셨다. 마른 목에 닿는 물이 따가웠다.
뜰에서는 종친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신발 끄는 소리와 낮은 말소리가 잦아들 무렵 도홍이 입을 열었다.
“영수전 곁방은—”
“말하지 마라.”
도홍은 그릇을 거두려던 손을 멈췄다.
“그 방 얘기는 내가 먼저 꺼낼 때까지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너도.”
도홍이 머리를 숙이고 나갔다. 삼베가 내려앉으며 뜰이 가려졌다.
열여덟, 영수전으로 이어지는 회랑에서 세자는 먼저 돌아섰다. 걸음은 등 뒤까지 다가와 그대로 지나갔다. 제 앞에서는 늘 멈추던 여울이 아버지의 침전으로 갔다.
그 뒤로 세자는 영수전에 가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그 안의 일을 묻지도 않았다. 가까운 길을 두고 담을 돌아갔고, 누가 여울을 입에 올리면 말을 끊었다.
잠들면 피하던 회랑에 서곤 했다. 간밤에도 여울이 등 뒤를 지나갔다. 세자는 돌아서서 그 소매를 움켜쥐었다. 돌아오는 얼굴을 기다리는 동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여울이 저를 마주하기 전에 잠이 깼다. 움켜쥔 이불을 내던지고도 한참이나 이를 풀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한겸이 펼쳐 주는 서책을 읽었다. 밤에는 열 살 때부터 검을 가르친 암위장 현을 상대했다. 현이 물러나면 혼자 검을 쥐었다. 팔을 들 힘이 빠지고 나서야 수련장을 나왔다.
여덟 해가 지나 아버지가 죽었다.
세자는 삼베 밖을 향해 턱을 들었다. 너머 빈전에는 아버지의 관이 있었다. 상소를 읽을 때까지도 그자를 없애겠다는 말을 아버지 앞에서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막을 사람이 없었다. 제 앞에 무릎을 꿇리고, 이 궁에서 가장 먼 곳으로 내치면 그만이었다. 제가 부르지 않으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세자는 식은 물을 마저 마셨다.
—
“저하. 새벽 곡 시각입니다.”
도홍의 부름에 세자가 일어섰다. 삼베 자락이 어깨에 걸려 손등으로 걷어 냈다.
“물그릇 치워라.”
“예.”
뜰에 종친과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 세자가 빈전 계단 아래에 서자 뒤쪽의 발소리도 그쳤다. 관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낮게 곡을 시작했다.
도홍은 계단 옆에서 세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울음소리를 내는 동안에도 뺨에는 눈물이 없었다. 도홍은 물그릇을 내려놓고 계단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여울은 이불에 이마를 댄 채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었다.발소리는 이부자리 바로 앞에서 멎었다. 눈앞에 드리운 자락은 검고 무늬가 없었다. 곤룡포도 옥대도 없이, 검은 비단 도포 하나에 검은 띠. 등잔불이 넓은 어깨에서 꺾여 벽에 긴 그림자를 세웠다."일어나라."여울은 마루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눈앞에 검은 띠가 보였다. 고개를 젖혀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으나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앉았다.강진이 그 앞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도포 자락이 여울의 무릎에 닿았다. 여울은 뒤로 물러나려던 손을 금침에 짚은 채 멈췄다.검은 망건 아래 이마가 드러나 있었다. 낮의 익선관은 없었고, 상투에서 빠져나온 갈색 머리칼이 관자놀이에 흘렀다. 강진은 가까이 앉아서도 아무 표정 없이 여울을 마주했다."선왕의 것이었으니."아버지라 하지 않았다. 여울이 입술을 달싹이자 강진의 입가가 비뚤어졌다. 여울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잊고 그 얼굴을 마주했다."이제 내 것이다."강진은 말을 마친 뒤에도 자리를 좁혔다. 여울의 무릎 옆으로 검은 옷자락이 더 깊이 접혔다."선왕을 모시던 그 몸으로, 이제 내게도 총애를 빌어 보아라."여울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봉수는 나가고 없었다. 문살 사이로 마루의 어둠이 비쳤다."……전하."강진은 여울이 돌린 고개를 따라 눈길을 주었다가 입가의 웃음을 거뒀다. 문밖을 향해 벌어졌던 여울의 입이 닫혔다.옷깃 아래로 손이 스쳤을 때 여울은 숨을 멈췄다. 반년 전 안감에 꿰맨 봉서가 거기 있었다. 저고리가 금침 옆으로 밀려날 때까지, 여울은 종이가 드러날까 봐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강진의 시선은 여울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안감은 펼쳐지지 않았다.여울은 저고리 쪽으로 뻗으려던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낮에 확인한 실밥은 그대로였다. 지금 옷을 끌어당겼다가 안감에 강진의 눈길이 가는 것이 더 두려웠다.강진이 몸을 기울여 이불을 짚었다. 손바닥 아래 마루가 작게 울렸다. 여울이 움츠린 무릎 옆으로 이불이 당겨졌다
한겸이 받아 적다가 붓을 멈췄다."서별당은 병든 후궁을 두던 곳입니다. 오래 비어 있어 지붕부터 손을 봐야 합니다.""고쳐라. 거처를 마련해 옮긴 뒤 안채와 곁방을 함께 봉해라. 산릉을 마칠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고."이송할 곳을 적은 아래 처분에 관한 말은 없었다. 한겸은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대신들이 처분을 언제까지 미루실 것이냐 물을 것입니다.""처분은 내가 정한다. 재촉하는 자가 있으면 이름을 적어 와라.""좌상이 거듭 물을 것입니다.""좌상도 적어라."강진이 손을 내밀자 한겸은 적던 문서를 올렸다. 강진은 내용을 읽고 돌려주었다. 한겸이 물러난 뒤에도 영수전으로 다시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다.저녁상은 몇 숟가락 들지 않고 물렸다. 도홍이 이부자리를 펴고 물그릇을 놓는 동안 강진은 들창 아래 앉아 있었다.낮에 마주한 얼굴이 떠올랐다. 고개를 들자 드러나던 검은 눈과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칼. 유서 이야기에 귀까지 붉히던 모습은 물을 마시려고 잔을 들어도 지워지지 않았다.열여덟의 얼굴을 기억하고 갔다. 그 얼굴로 여전히 저를 볼 줄 알았다. 그런데 여울은 가까워진 강진을 피해 고개를 내렸고, 강진은 돌아온 뒤에도 그 표정을 거듭 떠올렸다. 무슨 향인지조차 묻지 못한 것이 뒤늦게 성가셨다.그 방에서 아버지에게는 어떤 얼굴을 했을까.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크게 났다. 이부자리를 고르던 도홍이 고개를 들었다."물러가 자라."도홍은 구겨진 이불 끝을 펴 놓고 나갔다. 강진은 누울 때가 지나도록 앉아 있다가 검은 도포를 걸쳤다.—해시 순찰이 서쪽 담을 지나간 뒤, 강진은 선정당 뒷문을 나섰다. 낮에 걸었던 회랑은 어두웠다. 안채 앞을 지나 곁방 마루에 이르러서야 발에 힘을 주어 기척을 냈다.벽에 기대 졸던 봉수가 눈을 떴다. 급히 일어나려다 무릎이 꺾여 마루에 엎드렸다."전하.""안에 누가 있느냐.""단이가 남아 있사옵니다. 아이가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하여, 방 안에 따로 이불을…….""데리고 나가라. 오늘은 내시부에 재울
"일어서라."여울은 마루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저린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하자 강진의 손이 팔꿈치 쪽으로 움직였다. 닿지는 않았다. 여울이 먼저 발을 고쳐 디뎠고, 강진도 손을 내렸다.서고 보니 더 가까웠다. 고개를 낮추면 눈앞에 곤룡포가 있었다. 여울은 소매 속에 손을 모으고 강진의 말을 기다렸다."사간원도 좌상도 네 처분을 정하지 못한다. 대비전에서도 마찬가지다."여울이 고개를 들었다."내가 명할 때까지 네 목숨은 내 것이다. 함부로 버리지 마라.""제 목숨을…… 버릴 생각은 없었습니다.""유서는 왜 썼느냐."여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처분이 내리면 그때는 못 쓸까 하여.""곽명이 가져간 글을 좌상이 읽었다. 도승지가 그 글을 받아 내게 가져왔고."서책도 아니고 누구 보라고 내놓은 글도 아니었다. 마지막 장에는 이름 하나 쓰고 말았다. 고쳐 쓸 대목도 그대로인데 강진이 읽었다니, 여울은 귀까지 화끈거렸다.강진은 붉어진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고향 이야기는 길게도 썼더군.""……예.""물목마을이며 낙수며. 여기서 지낸 일은 한 줄도 없고."여울은 소매 안에서 손가락을 오므렸다. 이 궁에서 쓰고 싶은 일을 떠올리면 자꾸 아주 어릴 때로 돌아갔다. 지금 앞에 선 사람을 글에 적어 남길 수는 없었다."여기는 쓸 것이 없었습니다."강진의 입가가 굳었다. 여울은 고개를 숙였다. 유서에 쓴 말보다 방금 하지 않은 말이 더 드러난 기분이었다."다시 쓰지 마라. 처분이 내리기도 전에 죽을 채비부터 하지 말라는 말이다."여울은 작게 대답했다. 살아 있으라는 명을 들었으나 내보내겠다는 것인지, 이 방에 계속 두겠다는 것인지는 묻지 못했다.문밖에서 숟가락이 굴렀다.봉수가 소반을 마루에 놓고 엎드리려다 그 위의 숟가락을 건드린 것이었다. 내민 손이 강진을 보고 도로 접혔다. 숟가락은 마루 끝에 걸려 멈췄다."네가 봉수냐.""예, 전하.""이 사람 식사를 네가 맡는다지.""그러하옵니다."여울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봉수는
강진은 여울에게서 눈을 거두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여울도 고개를 숙였다. 무릎 아래가 저렸으나 자세를 고치지는 못했다.갠 이불이 벽에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화로와 물을 끓이는 솥, 엎어 말리는 그릇이 놓였다. 강진은 이불 앞에 멈춰 섰다. 접힌 단면으로 솜이 얇게 들어간 것이 보였다. 국상이라 물건을 거둔 것인지, 전부터 이대로였는지 알 수 없었다."계속 이 방에서 지냈느냐.""예, 전하."여울은 강진의 발을 따라 고개를 조금 돌렸다. 강진은 화로를 지나 안채 쪽 벽으로 갔다. 손바닥을 대자 덥히지 않은 벽이 차가웠다. 아버지는 빈전에 누워 있었고 이 너머 방은 비어 있었다."부왕께서 기침하시면 여기까지 들렸느냐.""예. 밤에는 더 잘 들렸습니다.""잠을 못 잘 만큼이었나.""제가 못 잘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번 시작하시면 오래 하셔서……."여울이 화로 쪽을 흘끗했다."축시가 되면 물을 올렸습니다. 기침이 잦아들 때 바로 드릴 수 있도록."강진은 벽에서 손을 뗐다. 지붕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오늘도 기침을 안 하신다던 목소리였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여울은 그 시각에 깨어 있었다.아버지의 오랜 기침은 강진도 알았다. 허운이 약을 바꿔도 낫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여울이 밤마다 물을 끓여 기다렸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들은 적 없었다."누가 그렇게 하라 시켰느냐.""시키신 분은 없습니다."여울은 무릎 위에 손을 포개었다."기침을 오래 하신 날에는 물도 잘 못 넘기셨습니다. 조금 식혀서 드리면 나았습니다."대답을 마치자 방이 조용해졌다. 강진은 여울을 향해 돌아섰으나 가까이 오지 않았다. 벽을 짚었던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여울은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여겼다. 강진에게 아버지가 이 방에 남겨 놓은 사람은 달가울 리 없었다. 선왕을 돌본 일을 제 입으로 길게 늘어놓을 까닭도 없었다."송구합니다."강진의 미간이 좁아졌다."무엇이."여울은 입을 다물었다. 강진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싫어하신다고 제
왕은 문턱 앞에서 신을 벗었다. 도홍이 받으려 손을 내밀었으나 이미 마루에 내려놓은 뒤였다. 곤룡포 자락을 걷어 안으로 들어가자 창에서 비스듬히 들던 빛이 가려졌다.여울은 문 안쪽에 엎드려 있었다. 흰 옷깃 위로 가는 목덜미가 드러났고, 풀린 검은 머리칼이 뺨을 가리고 마루에 닿아 있었다.왕의 발이 그 앞에서 멎었다."고개를 들어라."여울이 손바닥으로 마루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붉은 옷자락 아래 흰 버선발이 보였다. 옥대를 지나 금실로 용을 놓은 가슴까지 눈을 들었으나 얼굴은 그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목을 젖히자 갈색 눈이 마주 닿았다.여울은 입술을 벌렸다. 인사를 올릴 참이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익선관 아래 짙은 눈썹도, 미간을 좁히는 버릇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다만 어깨가 훨씬 넓어졌고 턱선은 낯설 만큼 굵었다. 왕이 이를 악물자 턱 옆에 힘줄이 불거졌다.잘못한 것도 없는데 꾸중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손을 모으게 됐다. 그러면서도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눈 아래 그늘이 깊었다. 여울은 잠을 못 주무셨느냐고 물을 뻔하다가 입을 다물었다.왕이 바로 앞에서 허리를 굽혔다.눈을 피할 새도 없이 거리가 가까워졌다. 여울의 뺨이 달아올랐다. 왕의 눈길이 제 입가에 머물자 황급히 고개를 낮췄다. 안부 한마디 여쭙지 못한 채, 옥대에 박힌 옥만 내려다보았다.—살이 빠져 있었다.왕은 여울의 헐거운 옷깃과 소매 아래 드러난 손을 살폈다. 여울이 눈을 들자 나무라려던 말이 멎었다. 얼굴이 다시 숙여진 뒤에도 왕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헤어질 때의 앳된 기색이 남은 얼굴이었다. 검은 눈은 맑고 입술은 붉었다. 다만 기억 속 모습보다 눈매가 길어졌고, 여윈 뺨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은 부드러웠다. 가까이서 살피는 동안 여울이 귀까지 붉혔다.왕은 그 귀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치워 주고 싶어 손을 들었다가 옷자락을 쥐었다. 옅은 향이 났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더 가까이 몸을 숙이게 됐다.여울의 어깨가 굳는 것을 보고서야 허리를 폈다."살이
"그래."도홍은 더 묻지 않고 따라붙었다.뜰에서 물을 나르던 궁녀가 길을 비켰다. 마루를 닦던 내관도 걸레를 내려놓고 엎드렸다. 왕이 서쪽 회랑으로 들어서자, 고개를 들던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회랑 바닥에는 창살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었다. 왕은 그 위를 빠르게 지나다가 안채가 보이는 모퉁이에서 걸음을 늦췄다. 바싹 따르던 도홍도 멈춰 섰다.선왕이 쓰던 안채는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옆 곁방에서는 낮은 말소리가 났다.—단이가 젖은 수건을 개다 말고 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누가 오나 봐요."여울도 들었다. 봉수라면 회랑을 돌기 전에 헛기침부터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기척이 없었다. 앞선 발소리가 느려지자 뒤따르던 걸음도 멎었다."전하. 봉수 내관을 부르오리까."도홍의 목소리였다.여울의 손에서 수건이 떨어졌다. 단이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동안 그는 무릎을 꿇었다. 삐걱대던 마루가 잠잠했다. 도총부에서 고쳐 준 판자 위에 손을 짚고 앉았는데도 몸이 자꾸 기우는 듯했다."단이야, 수건을 치워라."아이는 서둘러 수건을 거두고 이부자리를 살폈다. 이불은 이미 개어 놓았고 화로의 재도 비워 두었다. 여울은 소매를 내려 손등을 덮었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왕이 왜 왔는지 알 수 없었다.어젯밤까지는 문이 열려 누군가 처분을 전할까 두려웠다. 막상 왕의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얼굴을 보고 싶었다. 엎드린 채로 맞으면 신발만 보게 될 텐데, 그렇다고 문 앞에 서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너는 밖에 나가 있거라.""정말 혼자 계셔도 돼요?"여울은 대답 대신 문 쪽으로 턱을 조금 움직였다. 단이가 나가 문을 닫고 나서야 마루에 이마를 댔다. 안채 쪽에서 다시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이번에는 곁방 앞에서 멎었다.—왕은 마루에 올라섰다. 문 옆의 어린 궁녀가 치마를 모으며 엎드렸고, 도홍은 그보다 뒤에 섰다.이 회랑 끝에서 여울을 놓아 보냈을 때 둘은 열여덟이었다. 왕은 등을 돌린 뒤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