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7년이 지났지만, 경민준은 그녀에게 한결같이 차가웠다. 하지만 연미혜는 사랑했기에, 언젠가는 그의 마음도 따뜻해질 거라 믿었기에, 그 냉랭한 태도를 묵묵히 견뎌냈다. 그러나 7년의 기다림 끝에 그녀에게 돌아온 건 그의 사랑이 아니라, 다른 여자에게 한눈에 반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는 그 여자에게 다정하고 사려 깊었고, 연미혜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미혜가 생일을 맞아 남편과 딸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날아갔지만, 그들이 함께 향한 곳은 그녀와의 약속 장소가 아닌 다른 여자의 곁이었다. 그날 밤, 혼자 남겨진 호텔 방에서 연미혜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자신이 정성껏 키운 딸이 다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날이 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이혼 서류를 작성했고, 양육권도 미련 없이 포기한 채 깔끔히 떠났다. 그 순간부터 그들 부녀에게 어떤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오직 이혼 서류가 정리되길 기다릴 뿐이었다. 가정을 잃었지만, 그녀에겐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모두에게 무시당했던 그녀는 단숨에 수천억 자산을 가진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혼 서류는 언제까지고 정리되지 않았고, 집에 발길조차 두지 않던 남편이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벽에 몰린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때 차가웠던 남편이 낮게 속삭였다. “이혼? 절대 안 돼.”
View More토요일 저녁, 연미혜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국악 공연을 보러 갔다.검표대 앞에 다다랐을 때, 멀리서도 눈에 띄던 일행이 그녀들을 보자 미소를 지으며 성큼 다가왔다.“연미혜!”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연미혜는 인파 속에서 곧장 걸어오는 구진원을 발견했다.“어머, 우연이네요. 오늘 공연 보러 오셨어요?”연미혜가 웃으며 묻자, 구진원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이 만남을 계획하고 있었다.그는 회사에서는 늘 ‘미혜 씨’라고 불렀다. 면접 날 처음 만난 이후로는 이날 처음으로 그녀의
목요일, 경다솜은 예정대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갔다.이번에도 연미혜는 바쁘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그러나 경다솜은 토라지기는커녕, 경기와 행사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꼭 같이 놀러 가자며 애교를 부렸다.경다솜의 애교 섞인 말에 연미혜는 웃으며 약속했다.그 뒤로 이틀 동안은 일이 바빠 노현숙의 병원에 가지 못했다. 금요일 아침이 돼서야 다시 병원으로 찾아갔다.병원 1층에 들어서자,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천천히 걷는 임지유가 보였다. 그녀는 전화하고 있었고 멀리서도 목소리가 뚜렷이 들렸다.“이모는 이제 많이 나았
손아림의 말을 듣고서야 연미혜는 어제 경민준이 그렇게 서둘러 자리를 떴던 이유가 임지유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챘다.연미혜는 이미 오래전부터 경민준이 임지유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도, 손아림의 날이 선 반응과 시기와 질투도 이제는 전부 익숙해졌다.연미혜는 아무 표정 없이 손아림과 그 가족들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랐다.손아림과 박영순은 연미혜가 누른 층수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병원에 온 목적을 눈치챘다.노현숙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직접 문병을 올 기회는 없었지만
경민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강 비서, 고객사에게 연락해서 급한 사정이 생겨 내일 도착하게 되었다고 전하며 양해를 구하세요.”강철우는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경민준이 이미 다시 임지유에게 시선을 돌린 걸 보고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서며 전화를 걸었다.그때 경민준이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정 실장한테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서류 몇 건만 우선 챙기라고 해요. 세부 내용은 내가 조금 있다가 직접 연락할 테니까.”“네, 알겠습니다.”강철우는 병실 밖으로 나와
기술총괄 정혁완을 비롯한 이 자리에 있던 몇몇도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이제야 모두가 경민준이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가 결국 연미혜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아니, 경민준 대표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고 들었는데? 두 사람 사이도 꽤 좋아 보이던데. 연미혜 씨에 대한 건 순전히 실력에 대한 인정이겠지? 설마 다른 감정은 아니겠지?’연미혜와 경민준은 꽤 오랜 시간 기술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경민준이 궁금해하던 부분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두 사람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멈췄다.하지만 정시원, 강철우, 그리고 눈치 빠른 기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이런 분위기에서 김태훈과 연미혜도 어색하게나마 경민준과 예의상 악수를 건넸다.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모두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김태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바로 복귀해야 했다.경민준과 정혁완에게 인사를 마친 뒤, 연미혜는 어두워진 김태훈의 표정이 신경 쓰여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무슨 일 있어요? 걱정되는 일이라도 생겼어요?”김태훈은 괜찮다는 듯 연미혜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몸을 조금 기울여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걱정하지 마.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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