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동양풍 #피폐물 #고수위 #삼각관계 #황제공 #조련남 #계략남 #순진녀 #절륜녀 단 사흘. 황제의 발목을 잡으려던 그 짧은 시간은 제국의 역사를 뒤바꿀 지독한 집착의 시작이 된다. “내 씨를 받아내겠다던 그 당돌한 입술로, 이제는 목숨을 구걸해 보거라.” 피를 뿌려서라도 미옥을 제 곁에 묶어두려는 오만한 포식자, 황제 연호. “너를 빚은 것은 나다. 그러니 네 영혼의 마지막 조각까지 내 것이어야지.” 미옥을 황좌에 앉혀 제국을 손에 넣으려는 잔혹한 설계자, 주인 하륜. 두 남자가 감춰두었던 발톱을 드러내며 서로의 목을 겨누는 사이, 미옥의 뱃속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핏줄이 자라나기 시작하는데……. 그 아이의 아비가 밝혀지는 순간, 제국은 가장 잔혹하고도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다.
View More눈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쏟아졌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백색의 지옥이었다.
북방의 잔혹한 겨울바람이 여인의 비단 옷자락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겹겹이 껴입은 비단옷이 종잇장처럼 얇게 느껴질 정도의 혹한이었다. 드러난 살결은 이미 감각이 마비된 지 오래였고, 눈꺼풀 위로 내려앉은 서리는 속눈썹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미옥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금속의 소름 끼치는 서늘함, 그리고 그 칼끝에 매달린 누군가의 지독하게 뜨거운 생명력 때문이었다. 자신의 손을 타고 흐르는 액체는 차가운 대기와 만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그녀의 손목을 적셨다.
"하아, 하…….“
은백색 설원 위에 쓰러진 남자의 입술 사이로 하얀 김과 함께 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졌다. 그의 가슴에 깊숙이 박힌 검을 타고 흐른 피가 눈을 녹이며 검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미옥은 그 핏빛 웅덩이 한가운데, 망연히 서 있었다.
미옥의 손에 쥐어진 검은 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고결한 물건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남자의 심장을 가르는 추악한 흉물에 불과했다. 그녀는 비릿한 혈향이 섞인 차가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켰다. 울렁거리는 속을 다잡으며 쓰러진 남자의 눈을 보았다.
정작 죽어가는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오히려 안도하는 듯한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옥은 그 미소가 진저리치게 싫었다.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고, 권력을 위해 기꺼이 등을 떠밀었던 그 치밀함이, 마지막 순간에는 이토록 숭고한 희생으로 둔갑하는 것이 가증스러웠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 떨림의 이유가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그가 없이 견뎌야 할 고독한 날들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어째서…… 피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쯤은…… 진심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남자는 떨리는 손을 들어 미옥이 쥐고 있는 칼날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날카로운 날에 그의 손바닥이 베여 나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시선은 미옥의 얼굴을 지나, 그녀의 아직 평평한 복부로 향했다. 그 눈빛은 가련할 정도로 애틋했다.
“어서…… 우리 아이를 지켜.”
“어떻게 그리…….”
그녀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으며 물었다.
“확신합니까? 당신을 죽여서라도 살고자 하는 이 독한 계집을, 대체 어찌 끝까지 믿느냐 말입니다.”
그는 대답 대신 칼끝을 제 심장 쪽으로 더 깊숙이 당겼다. 살점이 갈리고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미옥의 고막을 잔인하게 긁었다. 그는 고통을 삼키며 속삭이듯 대답했다.
“너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니까. 끝내 닿을 수 없었던…… 나의 비(妃)여.”
그 고백은 죽음의 문턱에서 부르는 연가치고는 지나치게 오만했고, 지독하게 뜨거웠다. 남자는 마지막 힘을 다해 미옥에게 손짓했다. 더 가까이 오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미옥이 주저하며 몸을 숙이자, 남자는 제 품 안 깊숙한 곳에서 묵직하고 차가운 무언가를 꺼내 그녀의 손에 강제로 쥐여주었다.
손바닥에 닿는 기괴한 서늘함. 그것은 황금빛 용의 형상이 정교하게 조각된, 절대 권력의 상징인 옥쇄였다.
“가져가…… 그리고 살아라. 누구의 발밑도 아닌, 가장 높은 곳에서.”
남자의 눈빛은 마지막 숨 하나까지 태워 그녀를 그리겠다는 듯 형형하게 빛났다. 자신에게는 목숨보다 이 붉은 진심이 먼저였다고, 보라고, 결국 당신의 손을 빌려 내 가슴 속에 이토록 붉은 마음을 피워내지 않았느냐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사랑하겠다는 그 지독한 고집. 그것이 이 남자가 선택한 운명이었다. 그의 눈에는 원망이 없었다. 그 평온함이 미옥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를 증오해야만 이 지옥 같은 궁궐에서 버틸 수 있었는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조차 그녀에게 증오할 권리조차 주지 않았다.
“......”
미옥은 눈을 감으며 손에 마지막 남은 힘을 실었다.
서걱-!
흉곽을 관통하는 불쾌한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사내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였다. 끝내 감기지 못한 그의 눈동자에는 마지막까지 미옥의 일그러진 얼굴이 낙인처럼 담겨 있었다.
미옥은 차마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억눌렀던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그것이 얼어붙기도 전에 거친 손등으로 차갑게 닦아내 버렸다. 슬퍼할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사치였다. 이제 그녀는 이 죽음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더 깊은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멀리, 어둠 속에서도 금빛으로 휘황하게 빛나는 황궁의 지붕이 보였다. 저곳에는 또 다른 괴물이, 자신의 여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주마.“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올린 미옥이 서늘하게 읊조렸다.
미옥은 단 한 번의 돌아봄도 없이, 남겨진 온기를 뒤로한 채 눈보라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에 쥔 옥쇄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눈보라를 뚫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녀를 기다리는 듯한 여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만약…… 우리가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면.’
붉은 옷자락이 눈 위를 쓸며 긴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핏자국 같기도 했고, 이제 막 피어난 도화(桃花)의 꽃길 같기도 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눈발처럼 어지럽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모든 비극의 시작, 비릿한 욕망과 낡은 가구의 냄새가 뒤섞여 나던 그날, 미천한 하녀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왕이라 불리던 사내의 눈에 들었던 그날의 기억 속으로.
상처 입은 다리 위로 쏟아지는 하륜의 경건한 입맞춤에 미옥은 숨이 멎을 듯한 전율을 느꼈다.혐오스러워 피할 줄 알았던 사내가 오히려 그 흉터를 제 목숨처럼 귀히 여기는 모습은, 미옥의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무언가를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하륜은 고개를 들어 눈물에 젖은 미옥의 얼굴을 한 번 더 깊게 응시하더니, 가녀린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려 침상 위로 조심스레 눕혔다.부드러운 요 위로 미옥의 머리칼이 흐드러지게 흩어졌다.하륜은 침상 위로 무릎을 세워 미옥의 다리 사이에 오롯이 자리를 잡았다. 한 손으로 미옥의 머리맡을 짚어 제 커다란 체구를 지탱한 채 그녀를 굽어보던 하륜의 눈동자는, 슬픔과 갈증이 뒤섞여 시리게 빛났다.그는 천천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뻗은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 안쪽 여린 살결을 따라 손끝을 훑어 내렸다.창밖의 푸른 박명이 그녀의 흰 살결 위로 매끄럽게 흘러내렸고, 온전히 제 아래에 갇힌 미옥의 상처를 훑어 내리는 하륜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나 때문이다. 이 곱디고운 살결을 형틀에 매달리게 한 자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다짐했건만, 정작 너를 이리 만든 것은 나였구나.‘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이 맹렬한 소유욕과 만나 그의 안을 시커멓게 태우고 있었다."아, 주인님…….”미옥이 수치심에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려 했으나, 다리 사이에 버티고 선 하륜의 단단한 몸과 허벅지를 쥔 커다란 손길에 가로막혀 속절없이 열리고 말았다.“숨기지 마라. 너의 상처 또한 내 것이니.”하륜은 낮게 읊조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흉터가 남아있는 허벅지 안쪽, 그 가녀린 살결에 입술을 묻었다.뜨겁고 애달픈 혀가 상처의 흔적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듯 핥아 올릴 때마다 미옥은 허리를 활처럼 비틀며 신음을 흘렸다.그 애무는 달래듯 다정하면서도, 동시에 제 여인을 향한 갈증이 배어있었다.입술은 점차 위로, 가장 은밀하고 깊은 곳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갔다.하륜의 시선이 비단 자락 사이에 수줍게 숨겨진
도성을 물들였던 붉은 노을이 산맥 너머로 잦아들고, 골짜기마다 시퍼런 어둠이 안개처럼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이었다.천기곡으로 돌아온 하륜의 발걸음이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우뚝 멈춰 섰다."…….”이상했다.으레 들려야 할 물 소리나 주방의 달그락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하다못해, 방 안에서라도 희미한 숨소리나 인기척이 느껴져야 마땅했건만.노을의 잔광(殘光)이 비끼어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 사이로, 집안은 비정상적일 만큼 고요했다. 하륜의 눈동자에 일순 불길한 이채가 스쳤다."미옥아.”낮게 부른 목소리는 산바람에 흩어질 뿐 대답이 없었다.하륜은 다급하게 댓돌 위로 올라서며 미옥의 방문을 열어젖혔다.끼익, 쾅!문이 벽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냉기만이 감도는 빈 이부자리를 본 순간, 하륜의 심장이 발밑으로 철렁 곤두박질쳤다.“……!”‘어디로 간 것이지. 설마 그새를 못 참고 연호가 사람을 보낸 것인가? 아니면, 제 발로 나를 떠나 어디로 도망이라도 쳤단 말인가.’숨이 턱 막혀왔다.하륜은 몸을 돌려 주방과 뒤뜰까지 샅샅이 훑었으나 그 작고 가녀린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가 목을 조여왔다.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며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내리던 찰나, 그는 제 방문 앞을 지나치려다 멈춰 섰다."……?“굳게 닫혀 있어야 할 자신의 방문 틈새로, 아주 옅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하륜은 멈춰 서서, 숨죽인 채 제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방 안은 창으로 스며든 푸르스름한 박명(薄明)이 내려앉아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아…….“하륜의 입술 사이로 끊어질 듯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그의 침상 곁, 가장 어두운 구석 자리.그곳에 작고 동그란 인영이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제 몸집의 두 배는 족히 되는 하륜의 짙은 도포(道袍)를 이불 삼아 덮어쓴 채였다. 옷자락을 놓치면 사라질 꿈결이라도 되는 양 간절히 거머쥐고 제 옷에 얼굴을 묻고 있는
천 장군을 향한 친국이 반나절 넘게 이어지고, 마침내 북방의 호부가 황제의 손에 들어온 다음 날 밤.도성은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여파로 숨죽인 듯 고요했다.연호는 주인이 바뀐 북방 군단의 명부를 검토하다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편전 내실의 등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어깨의 화상 부위를 감싼 붕대에서 쌉싸름한 약취가 배어 나왔으나, 그는 그 통증조차 즐기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달그락.서안(書案) 위, 옥으로 만든 연적 옆에 놓인 구리 호부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번뜩였다.제국 최대의 병권을 손에 넣었으나, 연호의 눈동자에는 승리의 희열 대신 날카로운 공허함이 서려 있었다."강진.“그때, 일렁이는 촛불의 그림자 속에서 소리 없이 검은 형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강진이었다."예, 폐하.“연호는 턱을 괸 채 나직하게 명을 내렸다."하륜 그 여우 놈이 지금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찾아내라.“명령을 받든 강진은 곧장 물러서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그 자가 의심스럽사옵니다.""의심?""대장군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낼 수 있는 저런 치명적인 증좌를 쥐고서도, 어째서 지금껏 입을 다물고 궐 밖에서 폐하를 관망한 것이옵니까. 충신이라 하기엔 그 속내가 너무도 오만하고 기만적이옵니다.“날카로운 경고였다.강진의 말대로, 하륜은 마음만 먹었다면 진작에 천 장군의 목을 옭아맬 장부를 황제의 발치에 대령할 수 있었다.그러나 연호는 화를 내는 대신, 나직하고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네 말이 옳다. 충심인지 역심인지, 가끔은 나조차 헷갈릴 때가 있지.""…….""하륜 그놈은 완벽한 나의 은인이다. 하지만 너무도 뛰어나기에…… 그놈이 나를 위해 이 황좌를 닦아놓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기가 쥐고 흔들기 편한 꼭두각시를 앉혀둔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어.“연호는 서안에 놓인 호부를 손끝으로 툭툭 치며 눈을 가늘게 떴다."그놈이 지금껏 입을 다문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내가 과연 제 도움 없이도
해가 중천에 뜬 시각, 도성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취홍루(醉紅樓)의 밀실.코를 찌르는 독하고 짙은 분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나으리, 이 아이들은 저희 취홍루에서도 가장…….“기생 어미가 아양을 떨며 기녀들을 하륜의 곁으로 밀어 넣었다.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기녀 하나가 은근한 교태를 부리며 하륜의 무릎 위로 슬며시 손을 올리려던 찰나였다. 스윽—.하륜은 벌레라도 본 것처럼 서늘하게 눈을 내리깔며, 여인의 손끝이 닿기도 전에 무심히 팔을 거두어들였다.기녀의 손이 민망하게 허공을 갈랐고,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분명, 화장을 말끔히 지운 맨얼굴로 데려오라 일렀을 텐데.“ 하륜의 얼음장 같은 음성이 떨어졌다."이리 분을 떡칠해 놓아서야, 본래의 낯바닥에 어떤 관상(觀相)이 숨어 있는지 어찌 알겠느냐."하륜은 역겨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사색이 된 기생 어미가 황급히 수건을 대령해 기녀들의 화장을 지워내기 시작했다.분내가 가시고 맨얼굴이 드러나자, 하륜은 사냥개를 감정하는 투기장의 포주처럼 서늘한 시선으로 여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 내렸다.'눈꼬리가 처지고 턱결이 무른 자. 궐의 비릿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태후의 그림자만 보아도 겁에 질려 하루 만에 자진할 상이군.‘'저 계집은 입술이 얇고 눈동자에 흰자가 지나치게 많이 띠는구나. 뱀처럼 눈치를 보며, 은화 한 닢에 주인의 등짝에 칼을 꽂을 배신자의 상이다.‘하륜의 눈동자에 짙은 경멸이 스쳤다.그가 찾는 것은 황제의 눈을 가리고 태후의 목줄을 끊을 맹독(猛毒)이었다.적당히 예쁘장하기만 하거나, 어설픈 잔머리를 굴리는 계집들은 궐의 지독한 암투 속에서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잡아먹히거나 제 주인을 물 터.하륜이 원하는 관상은 명확했다.황궁의 독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굶주린 짐승의 상.광대뼈가 도드라져 한 번 물면 놓지 않을 아집이 있고, 재물과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탐욕이 노골적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낯바닥.기꺼이 썩은 고깃덩어리를 던져주면, 주인
같은 시각, 도성에서 가장 웅장한 천장군의 저택.내일 있을 입궐 준비로 저택은 대낮처럼 밝았다.수십 명의 하녀가 매끄러운 비단과 눈이 멀 듯한 보석 상자를 나르며 분주히 움직였다. 그 화려함의 중심에, 천유희가 있었다.그녀는 최고급 향유가 풀린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시녀가 정성스레 다듬어주는 손톱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꽃물이 든 그녀의 손톱은 마치 방금 사냥을 마친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선명했다.“……뭐라 하였느냐.”유희의 낮은 목소리에 어깨를 주무르던 시녀의 손길이 덜컥 멈췄다.“그게…… 태후 마마의
미옥은 숨을 들이켜는 것조차 잊은 채 굳어버렸다.“왜, 겁이 나느냐?”연호는 얼어붙은 미옥의 턱을 잡아 올려 자신을 보게 했다.“아니면 네 주인을 떠나는 것이 아쉬운 것이냐.”“……감히 제게, 선택권이 있겠습니까.”미옥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며 눈을 내리깔았다.“다만, 두려울 따름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것이니까요.”연호는 그런 미옥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제 무릎 위로 앉혔다.두꺼운 옷자락 너머로 단단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아까 온천물 속에서 자
아래에서 부터 지독한 수치심이 파고 들었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여인들에게 그는 존재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었다. 감히 누가 그에게 '만족'을 논한단 말인가.연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랫배 부근에서 비릿한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인 충동이라기보다, 제 오만함을 짓밟은 이 비천한 계집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싶다는 잔인한 오기였다.“노비들의 삶은 거칠고 비천합니다. 그만큼 몸의 갈증도 깊지요. 아기씨 같은 분들이야 대인께서 손끝만 대도 좋아라 하시겠지만, 저는 글쎄요. 겉만 번지르르한 종이
“아, 앗……!”유희가 수치심에 고개를 돌리며 신음을 내뱉었지만, 월향의 시선은 집요하리만치 차갑게 유희의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머물렀다. 월향은 매끄러운 손끝으로 유희의 여린 꽃잎 주변을 세심하게 훑어 내렸다.마치 진귀한 보물을 감정하는 장인처럼, 월향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났다.“……과연, 장군가의 여식이로군요.”월향의 낮은 읊조림에 유희의 어깨가 움찔거렸다.“애기씨, 명기(名器)에도 급이 있습니다.”월향의 손가락이 유희의 가장 예민한 틈새를 지긋이 압박했다.“차갑고도 매끄러운 빙기(氷器)로군요. 겉은 서릿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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