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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같은 선 위에

作者: moominkiller
last update 公開日: 2026-07-10 19:37:09
정전에는 소리가 많았다.

비단 소매가 스치는 소리,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 붉은 비단이 덮인 탁자 위에서 두루마리 끝이 아주 조금 굴러가는 소리.

그 모든 소리 가운데, 조계의 목소리가 가장 얇았다.

"시, 심가의 글은…"

첫 음절이 또 걸렸다. 조계는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바닥에 짚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잔상처가 있었고, 왼손 검지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월령은 그 자국을 보았다. 은매가 말했던 아이. 물건을 나르다 손을 데었고, 약을 발라 주었다던 어린 내시. 그 아이가 지금 정전 한가운데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심가의 글은, 심서윤 아가씨가 쓴 것이 아닙니다."

정전 안이 한순간 낮아졌다. 사람들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그 짧은 소리들이 붉은 기둥 사이에 걸렸다.

서윤의 손끝이 월령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아주 약한 힘이었다. 그래도 월령은 그것을 느꼈다.

"조계."

문상궁의 목소리가 먼저 떨어졌다. 높지 않았다. 꾸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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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32. 묶지 않는다

    "묶지 않는다."월령이 말했다.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확신하느냐. 저 아이가 아니라고.""확신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초야가 왜 하필, 설련의 이름을 댔을까요. 사흘을 버티던 사람이, 끝에 내놓은 이름이에요. 아무 이름이나 내놓지 않았어요."죽어 가면서도, 초야는 왕부에 의심 하나를 심고 갔다. 그 의심이 자라면, 왕부는 제 손으로 제 사람을 벤다.전생의 궁이 그러했다. 아무도 칼을 안 들었는데, 사람이 사람을 베었다. 의심 하나가, 백 자루의 칼보다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설련은, 자녕궁의 그늘을 안에서 본 아이예요. 향이 어디서 오는지, 명부가 어떻게 도는지. 그 그늘의 안쪽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그런 아이를 우리가 제 손으로 묶어 가두면—""…적은, 손 하나 안 대고 그 아이를 잃게 만드는 거지."위지헌의 눈이 서늘해졌다."초야는, 설련을 없애려고 그 이름을 댄 거예요. 우리가 의심으로, 우리 편을 잘라 내게.""…교활한 수로군."위지헌이 낮게 말했다."칼을 안 들고, 우리 손에 칼을 쥐여 주는.""그 칼을, 안 쥐어요."월령이 낮게 답했다."쥐는 대신, 그 칼을 준 손을 따라가요."*전생에도, 궁은 그렇게 무너졌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제 손으로 제 편을 치게 하고. 월령은 그 그림을, 안에서 겪은 사람이었다."이번 생엔, 그 손에 안 놀아나요."월령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러나 단단했다.전생에 그녀는, 그 손이 짠 그림 안에서 홀로 죽었다. 이번 생에는 그 그림을 밖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림을 밖에서 보는 사람은, 다음 획이 어디로 갈지 안다.적은 이번에도, 같은 획을 그으려 했다. 월령은 그 획이 닿기 전에, 붓을 쥔 손을 보려 했다.*"그럼, 어쩌려고.""설련을 그대로 둬요. 곁에, 전처럼."월령이 낮게 말했다."대신, 소문은 그대로 흐르게 둬요. '설련이 의심받고 있다'고. 그 소문이 왕부 밖으로 나가려면, 누군가 그걸 물어 나르는 입이 있어야 해요. 설련이 미끼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31. 왕부 안의 이름

    "…누구지."월령이 다시 물었다.강무진은, 그 이름을 쉬이 입에 올리지 못했다."…설련이었습니다."방 안이, 조용해졌다.*위지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월령은, 잠깐 말을 잃었다.설련. 자녕궁의 숙비 곁에서 자라, 그 그늘의 안쪽을 본 아이. 그 그늘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산실에서 초야의 손목을 붙든 아이."…초야가, 설련을 댔다고.""예. 다음 명부를 받을 이름이, 설련이라 했습니다."강무진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그 자신도, 그 이름을 믿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초야가, 왜 그 이름을 댔을까요."월령이 낮게 물었다.위지헌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사흘을 버티던 자가 끝에 내놓은 이름이라면, 거기에 뜻이 없을 리 없었다."…그 뜻을, 알아내야겠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그 말은, 하루도 안 되어 왕부 안에 옅게 번졌다.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설련이 지나가면 눈이 한 번씩 따라갔다. 더운 물을 나르던 손이, 설련이 들어오면 잠깐 멎었다. 산실에서 안주인을 지킨 아이가, 하루아침에 곁눈질을 받는 아이가 되었다.방어멈이, 그 곁눈질을 먼저 나무랐다."눈들 똑바로 둬라. 그 아이가 안주인 손목 잡고 향을 막을 때, 너희는 어디 있었어."그러나 나무람만으로, 한번 든 의심이 가시지는 않았다.청아만은, 그 의심에 끼지 않았다."설련 언니가 아니에요."청아가 부엌에서 낮게 말했다."그 밤에, 언니가 마마님 손목 잡는 걸 제가 봤어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마마님을 해쳐요."그러나 청아의 말은, 겁먹은 다른 이들의 침묵에 묻혔다. 의심은, 목격보다 빨리 번지는 것이었다.왕부의 공기가, 하루 만에 달라졌다. 서로를 믿던 집이, 서로를 곁눈질하는 집이 되었다. 초야는 죽어서도, 그 하나를 이뤄 놓고 갔다.월령은 그 달라진 공기를 하루 만에 알아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적이 원한 것임을 곧 알았다.*설련이, 제 발로 월령을 찾아왔다."마마님."설련이 낮게 말했다. 얼굴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30. 채우다

    삼칠일을 굶은 밤은, 하룻밤으로 다 갚아지지 않았다. 먼동이 틀 무렵까지, 두 사람은 잠들지 못했다.*먼동이 틀 무렵, 두 사람은 아직 마주 누워 있었다.위지헌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넘겨 주었다."…령아.""…음.""두 생을 살면서."그가 낮게 말했다."이런 아침은, 처음이오."월령이 그 말에, 그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서로를 다 열고 맞는 아침이었다. 전생에는, 두 사람에게 이런 아침이 없었다. 늦게 만나 다 잃은 사람들에게, 아침이라는 것은 늘 무언가를 뺏기고 맞는 것이었다.이번 생의 이 아침은, 뺏기는 아침이 아니었다. 곁에 사람이 있고, 옆방에 아이가 자고, 창으로 봄빛이 드는 아침이었다."…부군.""음.""아이 이름, 오늘은 정식으로 지어요.""…어제 그렇게 미뤄 놓고.""어제는, 부군이 딴 데 정신이 팔려서요."위지헌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이, 그녀의 머리칼에 닿았다.두 생을 건너 처음으로, 두 사람은 쫓기지 않는 아침을 나누고 있었다."…딴 데가 아니라."그가 낮게 말했다."오래 굶은 데였소.""…부군, 그런 말을 어디서 배웠어요.""…두 생을 살면, 저절로 알게 되오."월령이 그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 밀면서도, 그 가슴에서 멀어지지는 않았다."아침부터, 못 하는 말이 없네요.""삼칠일을 굶었으니.""또, 그 소리."월령의 얼굴이, 새벽빛 아래 붉어졌다.*그 아침, 강무진이 왕부에 들었다.두 사람이 옷을 여미고 나서야, 그를 들였다.조금 전까지의 온기가, 그 목소리 한마디에 걷혔다."왕야. 초야를, 신문했습니다."초야는 사흘을 버텼다. 그동안 제 이름 하나 대지 않던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끝내 이름 하나를 넘겼으니, 강무진의 얼굴도 편치 않았다.왕부의 문턱을 넘으며, 그의 걸음이 무거웠다.위지헌이 몸을 일으켰다."…불었나.""이름 하나를, 불었습니다. 다음 명부를 받을 이름을요.""…한 사람이냐.""예. 다만."강무진이 잠깐 멈추었다."그 이름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29. 삼칠일

    삼칠일이 지났다. 월령의 몸이, 다시 제 것으로 돌아왔다.*아이가 유모의 품에서 잠든 밤이었다.삼칠일 동안, 위지헌은 그 방에 들지 않았다. 몸을 푼 아내 곁에서, 손끝 하나 함부로 대지 않았다. 그 참음이, 오늘 밤 방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방문이 닫혔다. 안에는, 두 사람과 등불 하나뿐이었다.*그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그 손이 어깨에서 오래 머물렀다. 머무는데도, 손끝에서 열이 났다. 그 열이 옷을 넘어, 월령의 살갗까지 닿았다."…삼칠일."그가 낮게 말했다."하루하루, 세었소.""…뭘요.""당신 곁에 누워, 못 만지고 참은 밤을."월령이 돌아보려 하자, 그가 어깨를 잡아 돌리지 못하게 했다. 대신,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삼칠일을 참은 숨이, 거기서 한꺼번에 뜨거워졌다.*숨이, 목을 타고 내렸다.귓불에서 목으로, 목에서 옷깃이 벌어진 어깨로. 그가 입술로 지나간 자리마다, 월령의 살갗이 좁게 떨렸다. 떨림이 등을 타고 내려가, 허리께에서 잦아들었다."…부군.""음.""불을, 끌까요.""끄지 마시오."그가 낮게, 그러나 물러섬 없이 말했다."오늘은. 하나도 안 놓치고, 다 보고 싶소."말과 함께, 그의 손이 그녀의 옷고름을 풀었다. 한 겹이 풀리고, 또 한 겹이 풀렸다. 급하지 않은데도, 그 느림이 도리어 숨을 가쁘게 했다. 서두르지 않는 손일수록, 오래 참아 온 것이 그 안에 있었다.*이번에는, 월령이 돌아섰다.돌아서서, 그의 옷깃을 두 손으로 마주 쥐었다. 참은 것이, 그녀에게도 있었다."…저도."말이 부끄러워 기어들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했다."저도, 하루하루 세었어요."그 말에, 위지헌의 눈빛이 무너졌다.참던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눈이었다. 그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등불 아래로, 두 사람이 함께 기울었다.*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오래 참은 입맞춤이라, 처음부터 삼키듯 깊었다. 숨이 섞이고, 이가 부딪칠 만큼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28. 이름을 얻다

    경화제는, 그 일을 오래 끌지 않았다.*"섭정왕이 법도를 어긴 것은, 사실이다."경화제가 어전에서 말했다."하여 벌한다. 섭정왕은 한 달간, 봉록을 거둔다."위지헌이 고개를 숙였다."그 거둔 봉록은—"경화제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그 밤, 산실에서 산모와 아이를 지킨 이들에게 내린다."어전이, 한순간 조용해졌다.*벌을 청한 자리에서, 상이 내렸다.문을 넘은 값을 물리면서, 그 값을 아이를 지킨 손들에게 돌린 명이었다. 황후에게, 설련에게, 청아에게. 섭정왕을 흔들려던 칼이, 도리어 그 밤의 공을 온 조정에 알렸다.노예원이 빌려 준 대간의 칼이, 노예원의 손으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그 밤 산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제 온 조정이 알았다.대간은, 더 상소하지 못했다.*그 밤, 왕부에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위지헌이 붓을 들었다. 그러나 오래, 첫 획을 긋지 못했다."…무엇이든이라 하셨잖아요."월령이 곁에서 옅게 웃었다."아들이든 딸이든.""…그랬지.""그런데 왜 못 쓰세요.""…무엇이든 좋다 했더니, 무엇이든 아까워서.""…이름 하나에, 그렇게 오래요.""이름은, 평생 부를 것이니."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내가 이 아이를 부를 때마다, 이 아이는 제 이름을 들을 것이오. 그러니 아무 이름이나 줄 수가 없소."두 생을 통틀어, 처음 얻은 이름 하나였다.*"…봄에 왔으니."월령이 낮게 말했다."봄을, 넣어요."위지헌이 그 말에, 붓을 내렸다.아이의 아명(兒名)을, 그렇게 지었다. 기다림 끝에 온 봄이라 하여, '봄'이라 불렀다. 정식 이름은, 아이가 조금 더 자라거든 짓기로 했다."봄아, 하고 부르니."월령이 낮게 말했다."이 아이한테, 봄을 하나 쥐여 준 것 같아요.""전생엔, 우리한테 봄이 없었지.""이번 생엔, 이 아이가 봄이에요."위지헌이 그 말에, 붓끝으로 아이의 이름자를 허공에 한 번 그어 보았다. 아직 종이에 옮기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에는, 이미 그 이름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27. 법도라는 칼

    이튿날, 어전이 술렁였다.한 대간이, 섭정왕을 겨누어 상소를 올렸다.섭정왕의 힘이 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들이, 조정에 있었다. 그 달갑지 않음이 찾은 첫 틈이, 이 상소였다.*"섭정왕께서, 내명부의 산실 문을 넘으셨다 하옵니다."대간의 목소리가 어전에 울렸다."내명부는 사내의 걸음이 닿지 않는 자리이옵니다. 하물며 섭정왕이 그 법도를 어겼으니, 이는 종실의 기강을—""그 자리에, 짐이 있었다."경화제가 그 말을 끊었다.어전이, 한순간 조용해졌다.*"…폐, 폐하.""짐의 조카가 태어나던 밤이었다."경화제가 낮게 말했다."적이 그 산실 안에서, 산모와 아이를 해하려 했다. 섭정왕은 그 적을 잡으러 문을 넘었다. 경은, 그것을 기강이라 부르는가."대간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았다."…적이 있었다 하나, 법도는 법도이옵니다. 한번 열린 문은, 다음에도 열리기 마련이라—"몇몇 대신이, 그 말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간 하나의 상소가, 여럿의 침묵을 등에 업기 시작했다.*그 상소의 뒤에, 노가가 있었다.섭정왕이 아이를 얻어 대를 세운 것이, 노예원에게는 눈엣가시였다. 힘으로 못 미는 자리를, 이번에는 법도로 흔들려 했다.그러나 노가는, 위지헌이 그 벌을 어떻게 받을지는 셈하지 못했다."…적을 잡은 것이, 어찌 죄가 됩니까."한 무장 출신 대신이, 대간을 향해 낮게 물었다."법도를 지키다 아이를 잃었으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졌겠소."대간이 그 말에, 잠깐 답을 못 했다. 아이를 잃었을 때의 책임까지는, 상소에 적히지 않았다.어전이, 두 갈래로 갈렸다.한쪽은 법도를 세우자 했고, 한쪽은 아이를 지킨 공을 보자 했다. 갈린 소리가, 어전을 오래 메웠다.위지헌은 그 갈린 소리 한복판에, 홀로 곧게 서 있었다.위지헌이, 어전에서 낮게 입을 열었다."법도를 어긴 값은, 내가 치른다."그가 대간을 보았다."벌을 내리시면 받겠소. 다만."*"내 아이가 죽을 자리에서, 다시 그 문 앞이 온대도."위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1. 종이

    조서는 얇았다.얇은 종이가 사람을 가장 깊게 베는 날이 있다.심가 대문에 걸린 등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내관이 돌아간 뒤에도 하인들은 감히 소리를 높이지 못했고, 부엌의 솥뚜껑은 평소보다 조용히 닫혔다. 종이 한 장이 집 안의 숨을 바꾸었다. 누가 지나가도 발끝이 먼저 조심스러워졌고, 아이들은 웃다가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월령은 조서를 다시 펼쳤다.궁중 내지 유출.호부 군량 장부 조작.심가 여식.그 말은 일부러 넓었다.월령일 수도 있고, 서윤일 수도 있었다.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넓은 말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0. 등불

    자녕궁에 가는 날, 경성의 거리에는 낮부터 등틀이 세워지고 있었다.상원절은 이미 지났지만, 대연의 봄에는 작은 등놀이가 자주 열렸다. 남쪽 수해지에서 올라온 장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종이등을 만들었고, 궁은 그것을 사들여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양을 갖췄다. 거리의 아이들은 등불을 좋아했고, 어른들은 쌀값을 생각하며 그 빛을 보았다.빛은 늘 아름다웠다.그러나 빛을 밝히는 기름값은 누군가의 장부에 적혔다.마차 안에서 서윤은 말이 없었다.오늘의 서윤은 옅은 연두빛 치마를 입었다. 한씨가 골라 준 옷이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 향

    살구꽃 향이 났다.빗물에 젖은 진흙 냄새도, 목 안쪽을 태우던 비린 독향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희미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 틈으로 먼 봄이 숨을 죽이고 들어오는 듯했다.심월령은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곧바로 기침을 토했다."아가씨!"누군가 비명을 질렀다.월령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부터 속을 태우던 열기가 아직 목 안쪽에 남은 것 같았다. 피와 비가 뒤섞이던 형장의 냄새가 혀끝에 되살아났다.아니.칼이 아니었다.그녀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던 것은 칼날보다 조용한 것이었다. 탕약의 밑바닥에 가라앉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 흰

    비가 내렸다.그러나 비는 피 냄새를 씻어 내리지 못했다.젖은 흙은 피를 먹은 뒤 오래된 쇠처럼 비렸다. 낮은 돌계단 틈마다 붉은 물이 고였고, 빗방울은 그 위에 닿을 때마다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형장 둘레에 몰린 백성들은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했다. 누군가의 젖은 소매에서 눅눅한 마 냄새가 났고, 멀리 황궁 쪽 붉은 담은 비안개에 잠겨 마치 아직 마르지 않은 상처처럼 서 있었다.심월령은 그 붉은 담을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무릎이 진흙 속에 반쯤 잠겨 있었다.한때 대연에서 가장 고운 비단만 몸에 두르던 황후의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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