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동생과 약혼녀가 죽은 지 6년째 되던 해, 나도 내 무덤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묘를 찾으러 가기 전, 엄마가 불쑥 입을 열었다. "민재야, 올해는 가지 않아도 돼. 사실 두 사람은 죽지 않았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생 방에서 걸어 나왔다. 송지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옆에 선 윤지아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내기에서 이겼지? 형은 영원히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이제 누가 위야? 응? 지아야?" 말이 끝나자, 내가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울던 여자가 이제는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휴, 그냥 민재가 너무 멍청했던 거야. 우리가 바로 옆집에 살았는데도 몰랐잖아." 엄마가 동생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건 두 사람을 떠올리면 슬플까 봐서가 아니었다. 그 방이 옆집과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죽기 한 달 전까지도 두 사람의 묘를 찾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View More하루하루가 흐를수록 송지훈의 씀씀이는 커져만 갔다.그는 향락에 빠져 돈을 물 쓰듯 썼다.송태석과 김선영의 저축은 금세 바닥났다.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한 송지훈은 입지가 좋은 집을 보며 못된 생각을 품었다.그는 부모의 신분증과 부동산 등기 서류를 몰래 챙겨 아무도 모르게 집을 담보로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거액을 빌렸다.그 돈도 모두 흥청망청 써 버렸다. 고급 업소를 드나들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은행의 독촉장이 집에 도착하고서야 송태석과 김선영은 그 사실을 알았다. 두 사람은 그대로 무너졌다.송지훈을 향한 분노와 원망이 들끓었다."송지훈, 너 미쳤어? 어떻게 집을 담보로 잡힐 수 있어?" 송태석이 분노로 온몸을 떨며 손을 들어 때리려 했지만, 송지훈이 거칠게 밀쳐 냈다.송지훈은 더 이상 예전처럼 착한 척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짜증만 가득했다."집 한 채 가지고 뭘 그렇게 난리야? 내가 돈 좀 쓴 게 어때서? 이제 이 집 자식은 나 하나뿐인데, 그 돈도 원래 다 내 거잖아.""그 집은 우리한테 하나뿐인 집이야! 평생 모은 재산이라고! 집을 담보로 잡히면 우리는 앞으로 어디서 살라고?"김선영은 울면서 따져 물었다. 가슴에는 후회가 가득했다.지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이런 배은망덕한 자식을 위해 민재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도 한스러웠다."어디서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송지훈이 코웃음을 쳤다. "난 몰라. 난 돈을 써야겠어. 돈이 없으면 알아서 마련해. 귀찮게 하지 말고."그는 이미 사치스러운 생활에 눈이 멀어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부모가 처한 상황도, 이 집안의 앞날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대출 상환일이 다가왔지만 송지훈에게는 갚을 돈이 전혀 없었다.은행은 곧바로 법적 절차에 들어가 집을 회수한 뒤 경매에 넘겼다.경매 날, 송태석과 김선영은 평생 살아온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무너졌다.노부부는 길가에 주저앉아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윤지아는 모든 증거를 들고 민재네 집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송지훈을 떠볼 생각이었다.윤지아를 본 송지훈이 곧장 다가와 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매몰차게 그를 밀쳐 냈다."건드리지 마."윤지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에는 온기 한 점 없었다. 송지훈의 얼굴이 겁에 질려 하얗게 변했다.그 모습을 본 김선영이 서둘러 다가왔다. "지아야, 왜 이러니? 지훈이도 많이 괴로워하고 있어. 너무 몰아붙이지 마.""괴로워한다고요?"윤지아는 비웃음을 흘리며 손에 든 증거를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이 사람이 괴로워할 자격이 어디 있어요? 이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이 바로 송지훈이에요!"그녀는 당시의 진실을 한마디씩 털어놓으며 모든 증거를 송태석과 김선영 앞에 펼쳐 놓았다.두 사람은 눈앞의 증거를 보고 완전히 넋을 잃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송지훈을 바라봤다."지훈아, 이... 이게 정말 사실이니?"김선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토록 아껴 온 작은아들이 이렇게 음흉한 속내를 품고 있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송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더는 태연한 척할 수 없어 연신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다들 오해한 거야. 송민재가 날 함정에 빠뜨린 거라고. 형이..."그때 윤지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송지훈, 아픈 척하고 사람을 밀었던 건 너였어. 넌 줄곧 민재를 모함했어.""이 지경이 됐는데도 변명할 셈이야?"송지훈은 끝내 본색을 드러내며 순순히 인정했다."그래, 다 내가 꾸민 일이야. 네가 너무 멍청했던 탓이지.""너도 뭐 그리 깨끗한 줄 알아? 내가 약을 썼던 그날, 분명 내 얼굴을 보고도 나랑 잤잖아. 이제 형이 죽으니 무슨 순정인 척이야.""윤지아, 네가 아니었다면 나도 형한테 이러지 않았어. 나와 결혼하고도 형을 잊지 못했잖아. 네가 죽도록 미웠어.""토한 것도 연기였고, 송민재가 떨어진 것도 내가 민 거야... 하하하..."정말 모든 일을 송지훈이 저질렀다.윤지아는 송민재의 절망 어린 눈을 떠올
윤지아는 먼저 청솔추모공원으로 가 송민재의 묘비에 놓인 영정사진을 보았다.사진 속 송민재를 바라보며, 그녀는 그가 이제 다시는 자신에게 웃어 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그녀는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처럼 울며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빌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추모공원 직원은 송민재가 남긴 물건을 그녀에게 건넸다. 화집 한 권과 일기장 한 권이었다.화집에는 그가 지난 세월 동안 그린 그림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의 집도, 소녀였던 그녀도 담겨 있었다.그림 속에는 외로운 사람만 있었다. 어두운 색조에서는 옅은 슬픔이 배어 나왔다.마지막 그림은 그가 전시회에 보낸 작품이었다.황량한 묘원에 소년 하나가 홀로 서 있었다.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림의 제목은 "귀로"(歸途)였다.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추모공원을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로 여겼던 것이다.일기장에는 6년 전 약혼식 날부터 죽기 전날까지 그의 모든 속마음이 적혀 있었다.글자마다 절망과 고통이 배어 있었다.6년 전, 윤지아와 송지훈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날.그의 세상은 무너졌고, 끝없는 죄책감과 자책 속으로 빠져들었다.날마다 눈물로 지새우며 자신이 두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다.이 6년 동안 명절이나 기일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추모공원을 찾았다.묘비 앞에서 그리움을 털어놓고 몇 번이고 사과했다. 수없이 많은 밤을 무너져 울면서도 억지로 버티며 살아갔다....일기장의 마지막 장에는 죽기 전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알고 보니 나는 처음부터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모두 내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랐으니, 이제 그 바람대로 해 주려 한다.""누나, 이제 미워하지 않아. 다만 다음 생에는 다시 만나지 말자.""엄마, 아빠. 길러 주신 은혜는 모두 갚았어요. 이제 서로 빚진 건 없어요.""지훈아, 네가 이겼어. 영원히 행복해."짧은 몇 줄을 읽는 내내 윤지아의 가슴은 칼로 베는 듯 아팠고 온몸이 떨렸다.그녀는 일기장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송민재의
어젯밤 지훈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뒤에도 민재를 찾지 못했던 건, 그가 제 발로 떠났기 때문이 아니었다.추모공원 직원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갔기 때문이었다.김선영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정말 죽을 수가... 민재야, 내 아들..."민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어도, 그가 죽는 것만은 바라지 않았다.그녀가 아는 송민재는 강인한 아이였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말없이 견뎌 냈다.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법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지훈을 더 챙겼다.송태석도 그 자리에 굳어 섰다.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그는 늘 송민재가 철이 없다고 생각했다.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작은아들 편을 들었다.그러나 차갑게 식은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서야송민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진심으로 무언가를 다투어 가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오히려 자신이 민재에게 준 관심이 너무나도 부족했다.맛있는 음식도, 재미있는 장난감도, 새 옷도 언제나 지훈이 먼저 골랐고 남은 것만 민재의 몫이었다.민재가 늘 전교 1등을 하고 상장을 받아 와도 자신은 그저 "계속 열심히 해라"라는 무심한 말만 건넸다.반면 지훈은 겨우 낙제점을 면해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칭찬했다.민재가 어릴 적 열이 39도까지 올랐는데도 혼자 버티며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던 일까지 떠올랐다.부모가 자신을 귀찮아할까 봐, 지훈의 학원 수업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자신은 아버지로서 책임을 진지하게 다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그가 막 후회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은 이미 죽고 없었다.민재야, 아빠가 미안하다.두 사람은 순식간에 십수 년은 늙어 보였다.윤지아는 그 자리에 선 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휴대전화 속 사진을 바라보자 송민재와 함께한 순간들이 눈앞을 끊임없이 스쳐 갔다.어릴 적 그는 말없이 그녀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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