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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해 볼까 해
너를 사랑해 볼까 해
Author: 운몽

너를 사랑해 볼까 해 - 안녕, 나의 수원아

Author: 운몽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2 23:46:21

안녕, 수원아

오늘은 날씨가 꽤 춥다. 잘 지내고 있어? 아 참, 나야 도윤이. 권도윤.

벌써 나 잊은 건 아니지? 우리 그래도 꽤 친했는데.

편지로 적으려니까 나 너무 글씨를 못 써서 부끄러워.

그건 그렇고...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수원아, 지금 보러 가려고.

널 보자마자 이 편지를 전해 줄 예정이야.

너는 언제나 그랬듯이 날 보고 환히 웃어 주겠지?

보고싶다. 얼른 보러 갈게

사랑해, 수원아 

곧 보자.

삐뚤빼뚤한 서툰 글씨체로 편지를 적어내려가던 남자가 "탁" 소리가 나게 펜을 책상 위에 내려두었다.

역시나, 서툴게 편지를 접어버리곤 품 속에 소중히 간직했다.

서둘러 집을 나선 그의 얼굴엔 어딘가 모르게 행복이 서려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행복은 어딘가 어색해보였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속절없이 맑은 하늘에 그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날씨 좋다!"

어디론가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꽤나 가볍다.

맑았다. 

그날처럼.

남자의 이름은 권도윤.

"쾅!" "와장창!" "쨍그랑!"

파열음만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도윤의 삶은 까만 색종이 같았다.

그 어떠한 빛도, 그 어떠한 색도 없는.

구겨지고 찢겨도, 그에게는 버릴 사람조차 없었다.

"으흥흥, 들어와, 오늘 이 집에 우리 단 둘이야 자기."

추하게 교태를 부리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어린 도윤은 도어락 조차 없는 낡은 집에서 오매불망 누군가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의 끝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못했다.

한글도 미처 다 배우지 못한 어린 도윤은 눈치보는 법 먼저 배워야 했으니까.

도윤은 낮은 식탁 밑으로 부랴부랴 몸을 숨겨야 했다.

"정말이야? 그 전에 당신, 이런데서 사는 거였어?"

여자의 목소리 뒤로 낮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꽤 고풍스럽게 굴기에, 얼마나 콧대높은 여잔지 했는데 말야"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자신에게 엉겨붙는 여자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왜, 그래서 실망이야? 내가 좋아서 여기까지 따라 들어온 것 아니었어?"

남자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탐욕에 젖어 혀가 질척이게 엮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은근 저돌적인 면이 있단 말이야. 여긴 아직 주방이란 말이야, 여기서 하려고?"

이윽고, 역겨운 소리가 멎어들었고 적막을 먼저 깬 건 여자였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 너와 내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려고 가게에서도 나왔잖아. 당신이랑 단 둘이 있고 싶어서."

"당신도 참 못됐다. 가정도 있는 사람이"

"난 어디까지나 거래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일이라니까"

이윽고 두 사람의 몸이 천천히 바닥 위에 눕혀지기 시작했고, 남자의 눈엔 작은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둠 속이었지만, 남자는 그 무언가를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신, 애가 있었어? 아깐 없다 그랬잖아?"

아이의 존재를 눈치 챈 남자는 몸을 일으켜 넥타이를 다시 고쳤다.

"뭐?"

남자의 눈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린 여자는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하...이번에도 또 기어이 니가 내 발목을 잡는구나. 그냥 조카야. 신경 쓰지 말자 우리 응?"

도윤을 조카로 치부해버리는 이 여자는, 안타깝게도 도윤의 친모였다.

"이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애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거야 정말."

남자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는 내려두었던 외투를 다시 챙겨들곤 도윤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저씨가 미안해, 아가야. 이름이 뭐야?"

도윤의 심장은 입밖으로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너무 커서 남자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들어와서 너무 무서웠지? 자, 아저씨한테 이름 알려줄 수 있겠어?"

"도윤...!권도윤...!"

처음으로 도윤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순간이었다.

"도윤이? 고놈 참 잘 생겼네, 나이는 한 3살쯤 됐으려나? 아저씨도 딸내미가 있어, 아직 태어나진 않았지만."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도윤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윽고 외투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저씨 이름은 유광원이란다. 기억할 필요는 없어."

무언가 아픈 가시가 도윤의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 아니여서, 너에게 나쁜 기억을 준 것만 같아 미안하구나, 이걸로 과자 사먹어."

자신의 명함과 5만원권 지폐를 꺼내 도윤의 손에 쥐여주었다.

광원은 몸을 다시 일으켜 여자를 쳐다봤다.

방금 전 도윤에게 지었던 따뜻한 눈빛은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었다.

"사람을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쳐다 봐? 나랑 당신이 얼마나 다를 것 같아?"

"다를 게 없지. 그게 난 참 부끄럽다. 갈게."

"어딜 가!!! 당신 진짜 이러기야? 당신은 그렇게 떳떳해? 대답해!"

도윤을 보고 정신을 차린듯한 광원은 결국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또 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광원은 아니었다.

"이 여편네가 미쳤나! 당신 제 정신이야? 지금 해보자는거야? 애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감히 내 집에 남자를 데려와?? 술집에서 일하더니 왜, 호구 하나 물어서 인생 좀 펴보려고?"

집안으로 우악스럽게 들이닥친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었다.

"아니, 여보 그게 아니라...내 말좀 들어봐요 응?"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방금 나간 남자는 뭔데!"

이윽고 꽤 큰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남자가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다.

무서운 분위기에, 어린 아이가 안쓰럽게 떨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용서해주세요...엄마 때리지 마세요...네...?"

이 작은 아이마저도 매서운 손길을 피할 순 없었다.

"너가 내 인생에 나타난 뒤로 잘 되는 꼴을 못 봐! 어디서 이런 악마 새끼가 태어난건지!"

작은 몸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멀리 날아간 충격으로 기절해버렸다.

"너희는 살려두는게 아니었는데,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해버렸어!"

"꺄아아악!"

이윽고 이 소란은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오고서야 비로소 조용해졌다.

경찰은 늘 있는 일에 익숙한 듯, 어쩔 수 없는 출동을 마치며 가벼운 주의만 남긴 채 돌아가버렸다.

남자는 다시 뛰쳐나가버렸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는 조금 훌쩍이는가 싶더니 이윽고 다시 옷을 추스린 뒤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여자마저 집을 떠나버리고 이 집에 남은 건 작은 아이 하나였다.

이 작은 아이에게 세상이라곤 식탁 아래가 전부였다.

작은 창문 틈으로 들어온 달빛만이 아이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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