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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남문 밖 옛 가마터는, 듣던 것보다 더 오래 버려진 자리였다.무너진 가마 아궁이 위로 마른 덩굴이 뒤엉켰고, 깨진 기왓장이 잡초 사이에 반쯤 묻혀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잔 기와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오간 자국을 찾기에는, 비도 바람도 너무 여러 번 지나간 뒤였다.
서리는 포로가 그린 약도를 펼쳤다. 남문에서 갈라진 길을 되짚고, 종이를 돌려 가마터가 있는 쪽과 맞추었다.
"갈림길은 맞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가마 앞을 지나게 되고요."
이겸은 그들이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다. 언덕 아래에서는 가마의 윗부분만 보였다.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자 무너진 담장 너머로 다른 비탈이 드러났다.
"뒤쪽도 살펴라. 내려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백우가 데려온 자들을 나누어 보냈다. 둘은 담장을 따라 돌고, 나머지는 가마 안쪽과 터 가장자리를 훑었다.
포로가 가마터를 알려주며 함께 짚어준 표식 자리는 길목에 있었다. 담장 끝에 박힌 쇠고리는 비어 있었다. 백우가 고리 아래에 엉킨 마른 풀을 걷어냈다.
"이 자리입니다."
고리 아래 벽면에 얕게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리가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무언가 매달려 벽에 닿았던 듯했으나, 남은 끈이나 조각은 없었다.
"걸려 있던 것은 없군요."
"주변에도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
이겸은 고리를 살피고 손을 거두었다.
"언제 거둔 것인지는 모르겠군."
서리는 약도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가 종이를 접었다. 길과 표식을 보았다는 자리는 포로의 말과 맞았다.
가마 앞은 기왓조각이 촘촘히 박힌 단단한 땅이었다. 백우가 몸을 낮추고 움푹 팬 곳을 살폈다. 그 안에도 잘게 부서진 기와와 흙이 가득 차 있었다.
"발뒤꿈치 자국 같기는 합니다만, 가장자리가 다 무너졌습니다.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서리는 가마 곁의 평평한 돌을 살폈다. 잠시 앉아 기다리기에는 알맞은 높이였다. 돌 아래를 들여다보았으나 눌어붙은 낙엽뿐이었다.
담장 뒤를 돌고 온 자가 백우에게 낮게 고했다. 백우는 그가 가리킨 비탈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사람이 내려갈 만한 곳은 둘입니다. 어느 쪽에도 발자국은 없습니다. 아래쪽 흙은 빗물에 쓸려 나갔고요."
"수레가 오갈 만한 길은."
"저희가 올라온 길뿐입니다. 다만 바퀴 자국으로 볼 만한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겸은 비탈 쪽을 한 번 더 보고 아궁이 앞에 몸을 낮췄다. 안쪽에 검은 재가 얇게 깔려 있었다. 작은 기왓조각으로 표면을 건드리자 재와 흙이 덩어리째 떨어졌다.
"재는 남아 있습니다."
백우가 말했다.
"가마를 쓰던 때 것일 수도 있다."
이겸이 기왓조각을 내려놓았다. 새로 탄 나뭇가지나 숯 부스러기는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불을 피웠는지는 알 수 없겠군."
"밤에 만났다면 등불 하나면 됐겠지요."
서리가 말했다.
"그마저도 들고 왔다가 들고 갔을 테고요."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가며 마른 풀을 눕혔다. 서리는 가마 뒤를 살피고 돌아오는 자들을 보았다. 백우가 눈으로 묻자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서리는 터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가마터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아래, 낮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기와를 쟁여두던 곳인 듯했다.
"저건 살펴보았습니까."
— 문은 안쪽으로 열리는 구조였다. 다만 걸쇠가 바깥에 달려 있었다.백우가 걸쇠를 젖히자, 오래 닫혀 있던 공기가 먼저 밀려 나왔다. 눅눅하고, 어딘가 시큼한 냄새였다. 문틀에 손을 얹자 나무가 축축하게 물러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안은 좁았다. 어른 서넛이 겨우 앉을 만한 자리에, 창이라고는 손바닥만 한 것 하나가 높이 뚫려 있었다. 그 창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에 좁고 긴 자국을 냈고, 그 빛줄기 안에서 먼지가 천천히 떠다녔다.
이겸이 벽 쪽으로 다가가 몸을 낮췄다. 벽면을 훑자, 얕게 파인 자국들이 손끝에 걸렸다. 가늘고 짧은 선들이 여러 겹으로 엉켜 있었다.
"자국이 벽 아래쪽에만 몰려 있군요."
서리가 말했다.
이겸은 대답 없이 그 자국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선의 끝은 닳아 있었다. 무엇으로 긁었는지 가려낼 만한 모양은 남아 있지 않았다.
구석에는 이 빠진 사발 하나와 물그릇이 엎어져 있었다. 사발 안쪽에는 말라붙은 음식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리가 손끝으로 건드려보자, 부스러기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백우가 바닥을 살피다 고개를 들었다.
"주군. 바닥이 이상합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흙바닥이었다. 다만 그 흙바닥의 한쪽이, 이 방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말갛게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는 곰팡이가 슬고 사발에는 음식이 눌어붙은 채로 남아 있는데, 그 부분만 결이 달랐다.
서리가 쪼그려 앉아 흙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손끝에 닿는 흙알갱이가 굵고 성겼다. 위에 앉은 고운 먼지가 걷혀 나간 자리였다.
"쓸린 방향이 한쪽입니다."
서리가 말했다.
"문 쪽으로만."
"저 사발은 그대로 두고."
이겸이 말했다.
서리는 대답 대신 그 자리를 한 번 더 눈으로 훑고 몸을 일으켰다.
백우가 문턱 밖까지 살폈다. 쓸린 결은 문 안쪽에서 끊겼고, 밖에는 빗물에 패인 흙이 굳어 있었다.
"밖으로 이어지는 흔적은 없습니다."
방 안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바깥에서 마른 풀이 스치는 소리만 얕게 들려왔다.
이겸이 문 안쪽 면을 손으로 훑었다. 나무가 거칠게 갈라져 있었고, 아래쪽에는 못 하나가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 그 못 끝에, 무언가 걸려 있었다.
"여기."
이겸이 그것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엄지손톱 두 개만 한, 찢긴 천 조각이었다. 흙먼지가 앉아 색이 죽어 있었지만, 털어내자 아래에서 옅은 빛깔이 드러났다.
서리가 그것을 받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수가 놓여 있었다. 조각이 워낙 작아 무늬 전체는 알 수 없었지만, 남은 부분만으로도 바느질의 결이 눈에 들어왔다. 땀 하나하나가 촘촘하고 고르게 앉아 있었다.
"손수건인 것 같습니다."
서리가 말했다.
"가장자리 감침질이 남아 있어요."
"이런 걸 가지고 다닐 자가,"
백우가 미간을 좁혔다.
"이런 곳에 갇혀 있었을까요."
"여기서 발견했다는 것밖에는 아직 모른다."
이겸이 말했다.
서리는 조각을 창 아래 빛에 비춰 보았다. 실에 아주 옅은 윤기가 돌았다. 서가에서도 귀한 옷감은 여러 번 만져보았지만, 이런 결은 흔치 않았다.
"이건 제가 맡겠습니다."
서리가 조각을 조심스레 접어 넣었다.
"누구의 물건인지는 몰라도,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는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 자수 장인은 도성 안쪽, 오래된 골목 끝에서 삼십 년 넘게 바늘을 잡아온 노파였다. 감씨가 신원을 보증한 사람이었다.방 안에는 물들인 실타래가 벽마다 걸려 있었고, 마른 쪽빛 냄새가 옅게 배어 있었다.
노파는 조각을 받아 들자마자 창가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천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빛이 드는 각도를 바꿔가며 살폈다.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노파가 물었다.
"주웠습니다."
서리가 답했다.
노파는 그 대답의 빈틈을 굳이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조각의 실 끝을 손톱으로 살살 풀어, 한 오라기를 뽑아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천천히 비벼보았다.
"이건 여기 실이 아닙니다."
"어디 것입니까."
"그건 저도 딱 잘라 말씀은 못 드립니다."
노파가 실오라기를 빛에 비췄다.
"다만 여기서 나는 실은 이런 빛이 안 나요. 물을 들여도 이 정도로 곱게 앉지 않고요. 바다 건너온 것이거나, 아주 북쪽에서 온 것이거나."
"흔한 물건입니까."
"흔한 물건은 아닙니다. 제 손을 거쳐 간 것도 평생 두어 번뿐이지요."
노파가 실을 내려놓았다.
"값도 값이거니와, 애초에 들여오는 데가 몇 없어요."
"어느 집에서 사 갔는지도 아십니까."
"그것까지는 저 같은 사람이 알 도리가 없지요."
노파가 조각을 돌려주었다.
"물건이 제 손에 올 때는, 이미 몇 번은 손을 바꾼 뒤니까요."
— 영안궁으로 돌아온 서리는, 감씨를 조용히 불렀다."자수를 놓는 여인들 사이에, 실을 어디서 구했는지 오가는 말이 있을 것이다."
"있고말고요."
감씨가 대뜸 답했다.
"그런 이야기야 아침저녁으로 오갑니다. 누가 어디서 뭘 얼마에 샀는지, 그건 안살림 도는 사람들이 제일 빠르지요."
서리가 조각을 감씨 앞에 내려놓았다.
"이 실이 어디서 들어와, 어느 집으로 갔는지 알아봐다오. 물건을 알아보되, 내가 찾는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감씨가 조각을 들여다보다가, 짧게 숨을 삼켰다.
"……이거, 보통 물건이 아닌데요."
"그래서 부탁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마님."
감씨가 조각을 조심스레 싸 들며 답했다.
"장 보러 나가는 김에 몇 군데 들러보지요. 제가 실 구경을 다니는 거야, 아무도 이상하게 안 봅니다."
— 사흘 뒤 저녁, 이겸이 서리의 처소에 들렀다."오늘 아침에 전갈이 왔습니다."
이겸이 말했다.
"그자의 식구를 찾았다더군요. 도성에서 이틀 거리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서리가 문서에서 눈을 들었다.
"무사합니까."
"무사합니다. 백우가 사람을 붙여두었습니다. 저쪽이 아직 손을 뻗지 않은 듯합니다."
"그자에게는 알렸습니까."
"알렸습니다."
이겸이 짧게 답했다.
"내 이름으로 약속한 것이니, 미룰 이유가 없지요."
서리는 잠시 이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문서로 시선을 내렸다.
"잘하셨습니다."
이겸은 그 말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자리를 뜨지 않고, 서안 맞은편에 앉았다.
서리는 접어두었던 천 조각을 다시 꺼내 등불 아래 펼쳤다. 짙은 밤빛 속에서, 실의 윤기가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장인의 말이 맞다면,"
서리가 말했다.
"이 실을 들여온 곳은, 도성에 많지 않을 겁니다."
"그 몇 곳부터 짚어보면 되겠군요."
"백종길에게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연락이 닿은 거래처들 가운데, 이런 실을 들여오는 곳과 연이 있는지요."
"박가 객주 쪽도 말입니까."
"예. 직접 다루지 않더라도 어느 상인에게 물어야 할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감씨는 실을 사다 쓰는 쪽을 알아보고 있으니, 양쪽에서 닿는 곳이 있는지 보려 합니다."
서리가 조각을 다시 접었다.
"물건이 오간 길부터 짚어보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목연이 영안궁에 든 것은 해가 제법 높이 오른 뒤였다. 목연이 탄 말이 영안궁 앞뜰에 멎자, 기다리던 하인이 다가와 고삐를 받아 들었다. 목연은 말에서 내려 옷자락을 한 번 정돈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뒤따라온 시비와 호위들도 차례로 말에서 내렸고, 마당의 시비들이 익숙한 몸짓으로 손님을 맞았다. 서리는 마루 앞에서 목연을 맞이했다. 예를 갖추는 데 부족한 데가 없었으나, 반가움을 지어 보이지도 않았다. 지나온 회랑에도, 이쪽을 향해 자리를 비켜서는 시비들의 몸짓에도 흐트러진 구석이 없어서, 목연은 걸음을 옮기는 동안 이 궁의 살림이 이미 서리의 손에 익어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먼 걸음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내주셔서, 오히려 제가 송구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고 안으로 들었다. — 다과상 위로 김이 옅게 올랐다. "보내주신 향은 잘 받았습니다." 서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런 것을 받고 서찰만 돌려보내기가 마음에 걸려, 이리 청했습니다." "영안공께서 큰 병을 이겨내셨으니, 그 정도야 마땅한 일이지요." 목연은 찻잔을 들며 옅게 웃었다. "다만 침향은 두는 자리를 조금 가립니다. 볕이 드는 데 오래 두면 향이 얕아지니,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향합째로 옷장 안쪽에 넣어두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하겠습니다." "요즘은 향낭에 넣어 차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라, 아예 조각을 잘게 내어 쓰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러기가 아까워서 통으로 두는 편입니다만." "향낭도 그만큼 작아지겠군요." "예. 옷에 걸었을 때 처지지 않을 만한 것을 찾지요. 수가 아무리 고와도 무거우면 손이 잘 가지 않으니까요." 목연은 다과 하나를 집어 작은 접시에 옮겼다. "작은 것을 찾는 건 거울도 비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냐." 이헌의 목소리가 낮았다. 앞에 엎드린 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송구합니다. 친척 되는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물었으나, 그 뒤로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합니다. 연고가 있다는 고을 두 곳도 사람을 보내 살폈습니다만—" "없더냐." "예." 이헌은 서안 위에 놓인 종이를 손끝으로 밀었다. 몇 달째 같은 자리에 같은 내용이 적혀 오는 종이였다. "관청 기록은." "이주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어디로 간다는 신고도, 호적을 옮긴 흔적도 없습니다." "집은." "그대로 비어 있습니다. 다만—" 사내가 잠시 말을 골랐다. "이웃들 말이, 어느 날 보니 사람이 없더랍니다. 짐을 싣는 것도, 나가는 것도 본 사람이 없다고요." 이헌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 "온 집안이 나가는데, 아무도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저희도 그것이 이상하여 몇 번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답만 돌아옵니다." 사내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 집에 셈이 남아 있던 상인이 둘 있었는데, 받으러 갔더니 이미 비어 있었다 합니다. 빚을 떼먹고 야반도주를 했다기엔, 집이 너무 깨끗했다더군요." "깨끗했다." "예. 쓰던 세간까지 정갈하게 치워져 있었다고요." 이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죽었다는 소문도, 도망쳤다는 소문도 없었다. 몰락했다는 말조차 없었다. 그런 일이면 도성 안에 반드시 말이 돌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돌지 않았다. 담장 너머로 웃던 얼굴이 잠깐 스쳤다가 흩어졌다. "내가 태자다." 이헌이 말했다. "태자의 사람들이 반년을 뒤졌는데, 집 한 채가 통째로 어디로 갔는지를 모른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면목이 없습니다." "다시 가라." 이헌이 종이를 밀어냈다.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리는 비단과 천 조각을 나란히 놓고 이겸을 기다렸다.이겸은 들어서자마자 그 앞에 앉았다. 등불을 끌어당겨 각도를 바꿔가며 두 실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손끝으로 비단의 수실을 쓸어보고, 다시 조각 쪽으로 옮겨갔다."닮았군요.""같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서리가 말했다. "조각 쪽은 흙을 오래 먹어서, 빛깔이 죽었습니다. 물들인 결도 어긋났고요.""그렇다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고.""예."이겸이 손을 떼고 몸을 뒤로 물렸다."이런 실을 쓰는 곳이 왕후전뿐일 리는 없겠지요.""그렇습니다." 서리가 답했다. "귀한 물건일수록, 오히려 쓰는 집이 정해져 있습니다. 어느 상단이 들여와서 어디로 가는지가요.""그 길은 부인이 더 빨리 찾겠군요.""바느질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늘 오갑니다."이겸은 잠시 조각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나는 그날의 명부를 다시 보겠습니다. 이 조각과는 별개로, 아직 짚지 못한 것이 있으니." — 바느질방 주인은 도성 안쪽에서 귀족가의 자수품을 오래 다뤄온 여인이었다.서리가 영안궁에서 왔다는 말에 여인의 낯빛이 먼저 굳었다. 그러고는 서리가 내민 조각을 흘긋 보더니, 아예 두 손을 내저었다."저희는 궁에서 나온 물건은 손대지 않습니다. 그런 건 만져본 적도 없고요.""궁의 물건이 아닙니다." 서리가 담담히 답했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몰라 여쭈러 온 것입니다."여인은 그 말에도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다만 조각을 받아 들고는 눈빛이 달라졌다.여인은 조각을 손바닥에 펼쳐놓고 한참을 만졌다. 엄지로 바탕천을 문질러보고, 뒤집어 안쪽 결도 살폈다. 그러고는 창가로 가져가 빛에 비췄다."이상하네요.""무엇이 말입니까.""이 실이야 제가 봐도 귀한 겁니다. 이런 건 아무나 못 써요." 여인이 실 한 오라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궁의 후원에 꽃이 한창이었다.왕후가 마련한 꽃놀이 자리였다. 물가를 따라 자리가 깔렸고, 늘어진 가지 아래로 잔이 오갔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꽃잎이 상 위로 떨어졌다.서리와 이겸이 함께 들어섰을 때,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차례 그쪽으로 쏠렸다.죽어가던 왕족과, 그를 고른 여인. 그 둘이 나란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이 자리의 대부분은 처음 보았다.중심 자리에는 왕과 왕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아래쪽에 이헌이, 조금 떨어진 자리에 목연이 동행한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영안공." 왕이 먼저 반가운 낯으로 손짓했다. "얼굴이 많이 폈구나.""염려해주신 덕입니다." 이겸이 예를 갖췄다.이헌의 시선이 잠시 그쪽에 머물다가, 뒤늦게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영안공부인." 왕후가 서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혼례 후 줄곧 병상 곁을 지켰다 들었습니다.""제가 한 일은 많지 않습니다.""겸양이 지나치군요." 왕후가 옅게 웃었다. "저리 회복하신 것이 어디 저절로 된 일이겠습니까. 영안궁의 안살림도 잘 잡혔다 들었고요.""과분한 말씀입니다."왕후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 손끝이 상 위에서 잠깐 머물렀다."이왕 이리 잘 풀린 김에, 영안궁에 또 다른 경사가 들리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자리에 있던 몇 사람이 알아듣고 웃음을 지었다.서리의 손이 잔 위에서 아주 잠깐 멎었다. 얼굴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답이 반 박자 늦어졌다. — 전생에 왕태자비였던 시절에도, 봄 꽃놀이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그때 서리는 이헌의 곁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상은 나란히 놓였고, 궁인이 술을 따르면 이헌은 서리의 잔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들었다.그 아래 자리에서 한 부인이 웃었다."두 분이 나란히 계신 걸 뵈니 참 보기 좋습니다."서리는 잔을 내려놓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남문 밖 옛 가마터는, 듣던 것보다 더 오래 버려진 자리였다.무너진 가마 아궁이 위로 마른 덩굴이 뒤엉켰고, 깨진 기왓장이 잡초 사이에 반쯤 묻혀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잔 기와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오간 자국을 찾기에는, 비도 바람도 너무 여러 번 지나간 뒤였다.서리는 포로가 그린 약도를 펼쳤다. 남문에서 갈라진 길을 되짚고, 종이를 돌려 가마터가 있는 쪽과 맞추었다."갈림길은 맞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가마 앞을 지나게 되고요."이겸은 그들이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다. 언덕 아래에서는 가마의 윗부분만 보였다.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자 무너진 담장 너머로 다른 비탈이 드러났다."뒤쪽도 살펴라. 내려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백우가 데려온 자들을 나누어 보냈다. 둘은 담장을 따라 돌고, 나머지는 가마 안쪽과 터 가장자리를 훑었다.포로가 가마터를 알려주며 함께 짚어준 표식 자리는 길목에 있었다. 담장 끝에 박힌 쇠고리는 비어 있었다. 백우가 고리 아래에 엉킨 마른 풀을 걷어냈다."이 자리입니다."고리 아래 벽면에 얕게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리가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무언가 매달려 벽에 닿았던 듯했으나, 남은 끈이나 조각은 없었다."걸려 있던 것은 없군요.""주변에도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이겸은 고리를 살피고 손을 거두었다."언제 거둔 것인지는 모르겠군."서리는 약도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가 종이를 접었다. 길과 표식을 보았다는 자리는 포로의 말과 맞았다.가마 앞은 기왓조각이 촘촘히 박힌 단단한 땅이었다. 백우가 몸을 낮추고 움푹 팬 곳을 살폈다. 그 안에도 잘게 부서진 기와와 흙이 가득 차 있었다."발뒤꿈치 자국 같기는 합니다만, 가장자리가 다 무너졌습니다.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서리는 가마 곁의 평평한 돌을 살폈다. 잠시 앉아 기다리기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감씨는 빗을 들기 전에 서리의 무릎 위에 놓인 문서부터 보았다."그것은 내려놓으세요.""읽고 있지 않아.""제가 들어올 때까지는 읽고 계셨지요."서리가 문서를 접었다. 감씨는 그것을 받아 거울 옆에 놓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등 뒤로 모았다.빗이 머리 끝에서 잠깐 걸렸다. 감씨가 손가락으로 엉킨 곳을 풀었다."어젯밤에는 언제 누우셨어요.""그리 늦지 않았어.""궁에 다녀오셨으면 좀 쉬셔야지요. 옷만 갈아입고 곧장 문서를 찾으셨다면서요.""기다리던 것이 와 있어서.""그 기다리던 것들 때문에 저녁상도 두 번이나 데워 올렸습니다."서리는 거울 속 감씨를 보았다."먹기는 했다.""얼마나 드셨는지도 물어보았어요."빗질이 다시 이어졌다. 서리가 옆에 놓인 문서로 손을 뻗자 감씨는 팔꿈치로 가볍게 막았다."머리 다 빗을 때까지만이라도 가만히 계세요."서리는 손을 무릎 위로 돌려놓았다."아침은 다 먹을게.""그 말씀은 기억하겠습니다."감씨는 빗에 걸린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다시 목덜미부터 천천히 빗어 내렸다."한집에 계셔도 두 분 다 각자 일만 붙들고 계시니, 누가 누구더러 쉬라고 하겠어요. 영안공께서는 탕약이라도 드시지요. 이러다 마님께서 먼저 앓아누우시겠습니다.""걱정도 많네.""앓기 전에 하는 말씀입니다."서리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감씨가 머리를 한데 모으는 동안 거울 옆의 문서 모서리만 손끝으로 눌렀다.감씨가 빗질을 마저 하며 낮게 말을 얹었다."영안공께서 기력을 많이 되찾으셨다 들었어요. 그러면 마님께서도 이제 슬슬, 앞날을 생각하셔야—""그래서 박가 객주에게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냐."서리가 담담히 받았다."가문의 앞날이라면, 이미 생각하고 있어."감씨의 손이 잠시 멈췄다."……제가 말씀드린 앞날은, 그 앞날이 아닙니다.""그럼 무슨 앞날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