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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리는 비단과 천 조각을 나란히 놓고 이겸을 기다렸다.이겸은 들어서자마자 그 앞에 앉았다. 등불을 끌어당겨 각도를 바꿔가며 두 실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손끝으로 비단의 수실을 쓸어보고, 다시 조각 쪽으로 옮겨갔다."닮았군요."
"같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서리가 말했다.
"조각 쪽은 흙을 오래 먹어서, 빛깔이 죽었습니다.
물들인 결도 어긋났고요.""그렇다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고."
"예."
이겸이 손을 떼고 몸을 뒤로 물렸다.
"이런 실을 쓰는 곳이 왕후전뿐일 리는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서리가 답했다.
"귀한 물건일수록, 오히려 쓰는 집이 정해져 있습니다.
어느 상단이 들여와서 어디로 가는지가요.""그 길은 부인이 더 빨리 찾겠군요."
"바느질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늘 오갑니다."
이겸은 잠시 조각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나는 그날의 명부를 다시 보겠습니다.
이 조각과는 별개로, 아직 짚지 못한 것이 있으니." — 바느질방 주인은 도성 안쪽에서 귀족가의 자수품을 오래 다뤄온 여인이었다.서리가 영안궁에서 왔다는 말에 여인의 낯빛이 먼저 굳었다.
그러고는 서리가 내민 조각을 흘긋 보더니, 아예 두 손을 내저었다."저희는 궁에서 나온 물건은 손대지 않습니다.
그런 건 만져본 적도 없고요.""궁의 물건이 아닙니다."
서리가 담담히 답했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몰라 여쭈러 온 것입니다."
여인은 그 말에도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다만 조각을 받아 들고는 눈빛이 달라졌다.여인은 조각을 손바닥에 펼쳐놓고 한참을 만졌다.
엄지로 바탕천을 문질러보고, 뒤집어 안쪽 결도 살폈다. 그러고는 창가로 가져가 빛에 비췄다."이상하네요."
"무엇이 말입니까."
"이 실이야 제가 봐도 귀한 겁니다. 이런 건 아무나 못 써요."
여인이 실 한 오라기를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그런데 이 천이……"
여인이 조각을 다시 뒤집었다.
"천도 싼 건 아닙니다. 여염집에서 흔히 쓰는 것보다야 낫지요.
그런데 이 실을 살 만한 집에서 쓰는 천은 아닙니다. 실에 비하면 격이 못 미칩니다."서리가 조각을 받아 손끝으로 바탕천을 문질러보았다.
손끝에 닿는 결이 실의 결과 확연히 달랐다. 한쪽은 곱고, 한쪽은 그보다 성겼다."이런 걸 함께 쓰기도 합니까."
"아주 없지야 않겠지요. 다만……"
여인이 잠시 말을 골랐다.
"이 실을 살 수 있는 사람이, 굳이 이 천을 골랐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서리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질문 하나가 뒤집혔다.
이 실을 산 사람이 누구인가— 그렇게 물어왔다.
그런데 이 조각의 주인은, 애초에 이 실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다른 쪽이었다.
누가 이 실을 받아 썼는가.
받았을 수도 있고, 어느 집 자수품에서 나온 자투리를 얻었을 수도 있었다.
다른 수품의 실을 풀어 다시 쓴 것일 수도, 장부에 남지 않게 흘러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이 실을 산 집안을 아무리 뒤져봐야, 조각의 주인은 그 안에 없을 수 있었다.
— 감씨가 사흘을 돌아다닌 끝에 들고 온 것은, 장부도 문서도 아닌 사람들의 기억이었다."실은 서쪽 상단 하나가 들여옵니다."
감씨가 말했다.
"일 년에 몇 번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오면 정해진 몇 집으로 곧장 갑니다.
그 집들 이름이야 도성 사람이면 다 알지요.""그 밖으로 흘러간 적은."
"드물지만 있답니다. 수를 놓고 남은 실을 조금씩 나눠주기도 하고, 아랫사람에게 주기도 하고요."
감씨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런데 마님, 다른 바느질방에서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해보아라."
"반년쯤 전에, 어느 집 젊은 딸이 손수건에 수를 놓겠다며 귀한 실을 조금 가져왔답니다.
그 집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귀한 실이라, 아직도 기억한다더군요."서리의 손끝이 멎었다.
"어느 집이냐."
"임가라 했습니다."
감씨가 답했다.
"벼슬은 낮고, 이름 있는 집안도 아닙니다."
— 그 뒤로 이틀을 더 알아본 끝에, 감씨가 다시 서리 앞에 앉았다."임가는 지금 도성에 없습니다."
"이사를 갔더냐."
"그게 좀 이상합니다."
감씨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무렵 어느 날 집이 비었다는데, 이웃들도 언제 나갔는지를 모른답니다.
인사도, 짐 나가는 것도 본 사람이 없대요.""거래하던 곳은."
"셈이 남아 있던 데도 몇 있었는데, 받으러 갔더니 이미 집이 비어 있더랍니다.
그것도 어찌나 말끔하게 치워놨는지, 살던 흔적이 거의 없었다고요."서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관청에는."
"어디로 갔다는 기록도 없고, 그 뒤로 어디서 봤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죽었다는 말도 없었다.
망했다는 말도 없었다. 한 집안이 그저, 어느 날부터 없었다. — 같은 무렵, 이겸과 백우는 그날의 문적을 다시 펼쳐놓고 있었다."이 이름은 명부에만 있습니다."
백우가 짚었다.
차복이라 적힌 자리였다.백우는 그 명부를 옆으로 밀어두고 교대 기록을 펼쳤다. 차복과는 다른 이름이 적힌 줄을 짚었다. 실제로 물을 나르던 하인이었다.
"이자가 자리를 비운 경위는."
"그날 급한 전갈을 받고 나갔습니다. 그 틈에 다른 자가 물을 나르는 하인으로 들어왔고요."
"손영달의 권한으로 가능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인의 배치와 교대를 정하고, 전갈을 보내 자리에서 뗄 수 있었습니다."
"명부도 그자가 고쳤나."
"그 기록은 문적을 맡은 쪽으로 넘어갑니다. 손영달이 직접 통행표를 내주는 것도 아니고요."
이겸은 두 장을 나란히 당겼다. 교대 기록에 있던 하인의 이름과 명부의 차복을 차례로 짚었다.
"하인을 자리에서 빼는 것과, 명부에 없는 이름을 올리는 것은 따로 봐야겠군."
"예. 명부만 보면 정해진 자가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백우가 통행표를 내주고 거둔 기록을 그 아래 놓았다. 몇 칸이 비어 있었고, 몇 칸은 필체가 미세하게 달랐다.
이겸은 차복이 적힌 줄을 따라가다 멈췄다. 이름 뒤의 먹이 다른 줄보다 짙었다.
"이쪽이 나중에 적힌 것인가."
"먹빛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붓을 다시 적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겸은 앞장을 넘겨 같은 칸들을 살폈다. 백우는 통행표 기록에서 해당하는 줄을 찾아 종이 끝을 접어두었다.
"이 표는 나간 기록만 있고 돌아온 칸이 비었습니다."
"그날 비어 있는 것이 이것뿐인가."
"아닙니다. 다른 표도 둘 있습니다. 돌려받지 못한 것인지, 적지 않은 것인지는 더 확인해야 합니다."
이겸은 빈칸 옆에 손가락을 놓았다가 거두었다.
"손영달이 사람을 움직였다고 해도, 이것까지 그자의 손이라고 볼 수는 없겠군."
"예. 명부에 이름을 넣고 통행표 기록까지 맞추려면 두 문서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날 기록을 다룬 자들을 추려라. 명부만 본 자와 통행표만 맡은 자를 나눠서."
백우가 따로 가져온 당직 기록을 폈다.
문을 지키며 표를 거두는 자는 명부를 고칠 수 없었다. 명부를 옮겨 적는 자 중에는 통행표를 내줄 권한이 없는 이도 있었다. 백우는 담당 업무를 확인한 이름 옆에 짧게 표시했다.
이겸이 남은 이름 하나를 짚었다.
"이자는 그날 있었나."
백우가 당직 기록을 앞뒤로 넘겼다.
"앞날까지는 있습니다. 사건 당일에는 다른 자가 대신 섰습니다."
"그럼 대신 선 자가 넘긴 기록을 찾아라. 직책만 보지 말고."
백우는 표시한 종이를 문적 위에 얹었다. 아직 아무 표도 하지 못한 이름이 남아 있었다.
— 이름이 나오기까지는 반나절쯤 더 걸렸다.백우는 앞서 펼쳐두었던 명부 옆에 문서를 넘겨받은 기록을 놓았다. 손가락이 장 끝에 적힌 이름으로 갔다. 통행표를 내준 기록의 끝에도 같은 이름이 있었다.
"허경도입니다."
백우가 고했다.
"영안궁의 문적과 통행표를 맡던 자입니다."
이겸은 두 곳을 번갈아 보았다.
"그날도 이자가 받았나."
"예. 당직 기록에도 있고, 두 문서를 넘겨받았다는 이름도 남아 있습니다. 함께 볼 수 있던 자들 중 그날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이자입니다."
"차복을 적은 것도 이자의 글씨인가."
"평소 쓴 문서와 닮았습니다. 다만 이 몇 글자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겸은 명부를 내려놓았다.
붓을 오래 쥔 손. 포로가 말했던 굳은살이 떠올랐다. 문적을 오래 다뤘다면 그런 손일 수 있었다.
"포로가 말한 손과도 겹칩니다."
백우가 낮게 말했다.
"붓을 쥐는 자가 이자뿐은 아니다. 기록에 손댈 수 있었다는 것부터 확인해야지."
포로는 세 번 모두 접선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람을 앞에 세운다고 가려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 어디 있나."
"없습니다."
백우가 답했다.
"습격이 있고 며칠 뒤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직을 청한 기록도,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기록도 없습니다.""집은."
"이미 비었습니다. 식솔들도 함께요."
백우가 잠시 멈췄다.
"이웃들이 언제 나갔는지를 모릅니다."
이겸의 손이 명부 위에서 멎었다.
— 그날 밤, 서안 위에 두 개의 기록이 나란히 놓였다.한쪽에는 감씨가 들은 것을 서리가 정리한 것이 있었다.
임가,
손수건에 수를 놓았다는 젊은 딸, 형편에 맞지 않던 귀한 실, 어느 날부터 비어 있던 집.다른 한쪽에는 영안궁의 문적이 있었다.
허경도,
명부와 통행표, 비어 있는 칸, 사건 며칠 뒤부터의 공백.이겸이 두 장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둘을 잇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 없습니다."
서리가 종이를 조금 옮겨 나란히 맞췄다.
손끝이 잠깐 이겸의 손등을 스쳤다. 이겸의 시선이 그 자리에 한 박자 머물렀다가, 다시 종이로 돌아갔다."다만,"
서리가 말했다.
"사라진 모양이 같습니다."
"……"
"죽었다는 말도, 도망쳤다는 말도 없습니다.
살던 집이 치워지고, 식솔이 함께 없어지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서리가 종이 위에 손을 얹었다.
"사람만 없어진 게 아니라, 있었다는 것까지 없어졌습니다."
이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영안궁의 문적을 제 앞으로 당겨 놓았다.
"허경도 쪽은 제가 보겠습니다."
서리도 남은 한 장을 제 앞으로 끌어왔다.
"그럼 저는 임가의 행방을 마저 찾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목연이 영안궁에 든 것은 해가 제법 높이 오른 뒤였다. 목연이 탄 말이 영안궁 앞뜰에 멎자, 기다리던 하인이 다가와 고삐를 받아 들었다. 목연은 말에서 내려 옷자락을 한 번 정돈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뒤따라온 시비와 호위들도 차례로 말에서 내렸고, 마당의 시비들이 익숙한 몸짓으로 손님을 맞았다. 서리는 마루 앞에서 목연을 맞이했다. 예를 갖추는 데 부족한 데가 없었으나, 반가움을 지어 보이지도 않았다. 지나온 회랑에도, 이쪽을 향해 자리를 비켜서는 시비들의 몸짓에도 흐트러진 구석이 없어서, 목연은 걸음을 옮기는 동안 이 궁의 살림이 이미 서리의 손에 익어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먼 걸음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내주셔서, 오히려 제가 송구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고 안으로 들었다. — 다과상 위로 김이 옅게 올랐다. "보내주신 향은 잘 받았습니다." 서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런 것을 받고 서찰만 돌려보내기가 마음에 걸려, 이리 청했습니다." "영안공께서 큰 병을 이겨내셨으니, 그 정도야 마땅한 일이지요." 목연은 찻잔을 들며 옅게 웃었다. "다만 침향은 두는 자리를 조금 가립니다. 볕이 드는 데 오래 두면 향이 얕아지니,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향합째로 옷장 안쪽에 넣어두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하겠습니다." "요즘은 향낭에 넣어 차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라, 아예 조각을 잘게 내어 쓰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러기가 아까워서 통으로 두는 편입니다만." "향낭도 그만큼 작아지겠군요." "예. 옷에 걸었을 때 처지지 않을 만한 것을 찾지요. 수가 아무리 고와도 무거우면 손이 잘 가지 않으니까요." 목연은 다과 하나를 집어 작은 접시에 옮겼다. "작은 것을 찾는 건 거울도 비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냐." 이헌의 목소리가 낮았다. 앞에 엎드린 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송구합니다. 친척 되는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물었으나, 그 뒤로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합니다. 연고가 있다는 고을 두 곳도 사람을 보내 살폈습니다만—" "없더냐." "예." 이헌은 서안 위에 놓인 종이를 손끝으로 밀었다. 몇 달째 같은 자리에 같은 내용이 적혀 오는 종이였다. "관청 기록은." "이주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어디로 간다는 신고도, 호적을 옮긴 흔적도 없습니다." "집은." "그대로 비어 있습니다. 다만—" 사내가 잠시 말을 골랐다. "이웃들 말이, 어느 날 보니 사람이 없더랍니다. 짐을 싣는 것도, 나가는 것도 본 사람이 없다고요." 이헌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 "온 집안이 나가는데, 아무도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저희도 그것이 이상하여 몇 번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답만 돌아옵니다." 사내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 집에 셈이 남아 있던 상인이 둘 있었는데, 받으러 갔더니 이미 비어 있었다 합니다. 빚을 떼먹고 야반도주를 했다기엔, 집이 너무 깨끗했다더군요." "깨끗했다." "예. 쓰던 세간까지 정갈하게 치워져 있었다고요." 이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죽었다는 소문도, 도망쳤다는 소문도 없었다. 몰락했다는 말조차 없었다. 그런 일이면 도성 안에 반드시 말이 돌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돌지 않았다. 담장 너머로 웃던 얼굴이 잠깐 스쳤다가 흩어졌다. "내가 태자다." 이헌이 말했다. "태자의 사람들이 반년을 뒤졌는데, 집 한 채가 통째로 어디로 갔는지를 모른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면목이 없습니다." "다시 가라." 이헌이 종이를 밀어냈다.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리는 비단과 천 조각을 나란히 놓고 이겸을 기다렸다.이겸은 들어서자마자 그 앞에 앉았다. 등불을 끌어당겨 각도를 바꿔가며 두 실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손끝으로 비단의 수실을 쓸어보고, 다시 조각 쪽으로 옮겨갔다."닮았군요.""같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서리가 말했다. "조각 쪽은 흙을 오래 먹어서, 빛깔이 죽었습니다. 물들인 결도 어긋났고요.""그렇다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고.""예."이겸이 손을 떼고 몸을 뒤로 물렸다."이런 실을 쓰는 곳이 왕후전뿐일 리는 없겠지요.""그렇습니다." 서리가 답했다. "귀한 물건일수록, 오히려 쓰는 집이 정해져 있습니다. 어느 상단이 들여와서 어디로 가는지가요.""그 길은 부인이 더 빨리 찾겠군요.""바느질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늘 오갑니다."이겸은 잠시 조각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나는 그날의 명부를 다시 보겠습니다. 이 조각과는 별개로, 아직 짚지 못한 것이 있으니." — 바느질방 주인은 도성 안쪽에서 귀족가의 자수품을 오래 다뤄온 여인이었다.서리가 영안궁에서 왔다는 말에 여인의 낯빛이 먼저 굳었다. 그러고는 서리가 내민 조각을 흘긋 보더니, 아예 두 손을 내저었다."저희는 궁에서 나온 물건은 손대지 않습니다. 그런 건 만져본 적도 없고요.""궁의 물건이 아닙니다." 서리가 담담히 답했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몰라 여쭈러 온 것입니다."여인은 그 말에도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다만 조각을 받아 들고는 눈빛이 달라졌다.여인은 조각을 손바닥에 펼쳐놓고 한참을 만졌다. 엄지로 바탕천을 문질러보고, 뒤집어 안쪽 결도 살폈다. 그러고는 창가로 가져가 빛에 비췄다."이상하네요.""무엇이 말입니까.""이 실이야 제가 봐도 귀한 겁니다. 이런 건 아무나 못 써요." 여인이 실 한 오라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궁의 후원에 꽃이 한창이었다.왕후가 마련한 꽃놀이 자리였다. 물가를 따라 자리가 깔렸고, 늘어진 가지 아래로 잔이 오갔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꽃잎이 상 위로 떨어졌다.서리와 이겸이 함께 들어섰을 때,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차례 그쪽으로 쏠렸다.죽어가던 왕족과, 그를 고른 여인. 그 둘이 나란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이 자리의 대부분은 처음 보았다.중심 자리에는 왕과 왕후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아래쪽에 이헌이, 조금 떨어진 자리에 목연이 동행한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영안공." 왕이 먼저 반가운 낯으로 손짓했다. "얼굴이 많이 폈구나.""염려해주신 덕입니다." 이겸이 예를 갖췄다.이헌의 시선이 잠시 그쪽에 머물다가, 뒤늦게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영안공부인." 왕후가 서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혼례 후 줄곧 병상 곁을 지켰다 들었습니다.""제가 한 일은 많지 않습니다.""겸양이 지나치군요." 왕후가 옅게 웃었다. "저리 회복하신 것이 어디 저절로 된 일이겠습니까. 영안궁의 안살림도 잘 잡혔다 들었고요.""과분한 말씀입니다."왕후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 손끝이 상 위에서 잠깐 머물렀다."이왕 이리 잘 풀린 김에, 영안궁에 또 다른 경사가 들리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자리에 있던 몇 사람이 알아듣고 웃음을 지었다.서리의 손이 잔 위에서 아주 잠깐 멎었다. 얼굴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답이 반 박자 늦어졌다. — 전생에 왕태자비였던 시절에도, 봄 꽃놀이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그때 서리는 이헌의 곁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상은 나란히 놓였고, 궁인이 술을 따르면 이헌은 서리의 잔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들었다.그 아래 자리에서 한 부인이 웃었다."두 분이 나란히 계신 걸 뵈니 참 보기 좋습니다."서리는 잔을 내려놓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남문 밖 옛 가마터는, 듣던 것보다 더 오래 버려진 자리였다.무너진 가마 아궁이 위로 마른 덩굴이 뒤엉켰고, 깨진 기왓장이 잡초 사이에 반쯤 묻혀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잔 기와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오간 자국을 찾기에는, 비도 바람도 너무 여러 번 지나간 뒤였다.서리는 포로가 그린 약도를 펼쳤다. 남문에서 갈라진 길을 되짚고, 종이를 돌려 가마터가 있는 쪽과 맞추었다."갈림길은 맞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가마 앞을 지나게 되고요."이겸은 그들이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다. 언덕 아래에서는 가마의 윗부분만 보였다.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자 무너진 담장 너머로 다른 비탈이 드러났다."뒤쪽도 살펴라. 내려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백우가 데려온 자들을 나누어 보냈다. 둘은 담장을 따라 돌고, 나머지는 가마 안쪽과 터 가장자리를 훑었다.포로가 가마터를 알려주며 함께 짚어준 표식 자리는 길목에 있었다. 담장 끝에 박힌 쇠고리는 비어 있었다. 백우가 고리 아래에 엉킨 마른 풀을 걷어냈다."이 자리입니다."고리 아래 벽면에 얕게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리가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무언가 매달려 벽에 닿았던 듯했으나, 남은 끈이나 조각은 없었다."걸려 있던 것은 없군요.""주변에도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이겸은 고리를 살피고 손을 거두었다."언제 거둔 것인지는 모르겠군."서리는 약도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가 종이를 접었다. 길과 표식을 보았다는 자리는 포로의 말과 맞았다.가마 앞은 기왓조각이 촘촘히 박힌 단단한 땅이었다. 백우가 몸을 낮추고 움푹 팬 곳을 살폈다. 그 안에도 잘게 부서진 기와와 흙이 가득 차 있었다."발뒤꿈치 자국 같기는 합니다만, 가장자리가 다 무너졌습니다.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서리는 가마 곁의 평평한 돌을 살폈다. 잠시 앉아 기다리기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감씨는 빗을 들기 전에 서리의 무릎 위에 놓인 문서부터 보았다."그것은 내려놓으세요.""읽고 있지 않아.""제가 들어올 때까지는 읽고 계셨지요."서리가 문서를 접었다. 감씨는 그것을 받아 거울 옆에 놓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등 뒤로 모았다.빗이 머리 끝에서 잠깐 걸렸다. 감씨가 손가락으로 엉킨 곳을 풀었다."어젯밤에는 언제 누우셨어요.""그리 늦지 않았어.""궁에 다녀오셨으면 좀 쉬셔야지요. 옷만 갈아입고 곧장 문서를 찾으셨다면서요.""기다리던 것이 와 있어서.""그 기다리던 것들 때문에 저녁상도 두 번이나 데워 올렸습니다."서리는 거울 속 감씨를 보았다."먹기는 했다.""얼마나 드셨는지도 물어보았어요."빗질이 다시 이어졌다. 서리가 옆에 놓인 문서로 손을 뻗자 감씨는 팔꿈치로 가볍게 막았다."머리 다 빗을 때까지만이라도 가만히 계세요."서리는 손을 무릎 위로 돌려놓았다."아침은 다 먹을게.""그 말씀은 기억하겠습니다."감씨는 빗에 걸린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다시 목덜미부터 천천히 빗어 내렸다."한집에 계셔도 두 분 다 각자 일만 붙들고 계시니, 누가 누구더러 쉬라고 하겠어요. 영안공께서는 탕약이라도 드시지요. 이러다 마님께서 먼저 앓아누우시겠습니다.""걱정도 많네.""앓기 전에 하는 말씀입니다."서리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감씨가 머리를 한데 모으는 동안 거울 옆의 문서 모서리만 손끝으로 눌렀다.감씨가 빗질을 마저 하며 낮게 말을 얹었다."영안공께서 기력을 많이 되찾으셨다 들었어요. 그러면 마님께서도 이제 슬슬, 앞날을 생각하셔야—""그래서 박가 객주에게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냐."서리가 담담히 받았다."가문의 앞날이라면, 이미 생각하고 있어."감씨의 손이 잠시 멈췄다."……제가 말씀드린 앞날은, 그 앞날이 아닙니다.""그럼 무슨 앞날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