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ueil / 로맨스 / 대타 신부 / 11화. 객실 하나 남음

Partager

11화. 객실 하나 남음

Auteur: Jino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18 12:02:28

[채이]

목요일 아침 일곱 시 비행기는 반쯤 비어 있었다. 나는 창가, 그는 통로. 그는 이륙 십 분 만에 태블릿을 켰다. 보고서. 하늘 위에서도 결재는 된다.

"비행기 자주 타요?"

"한 달에 두세 번."

"제주는요?"

"리조트 부지 보러 한 번. 당일로."

"그럼 바다는 못 봤겠네요."

그가 태블릿에서 눈을 뗐다. 잠깐 생각했다.

"……창문으로는 봤습니다. 회의실 창문."

창가 쪽으로 몸을 비켜 앉았다. 구름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세요. 회의실 창문보다는 크죠."

그가 몸을 기울였다. 어깨가 내 어깨에 닿았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떼지 않았다. 바다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나도 안 뗐다. 비켜 앉을 자리가 없었다고 해 두자. 사실은 있었다.

애월 목공방은 해안도로에서 한참 들어간 돌담집이었다. 마당에 나무 판자가 비스듬히 쌓여 있었다. 톱밥 냄새가 바람에 섞였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대패질을 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손이 컸다. 우리를 보고 대패를 내려놓았다. 놀라지 않았다. 올 줄 알았다는 얼굴.

"서진우 씨죠."

그가 먼저 말했다.

"네."

"강재헌입니다."

"압니다. 신문에서 봤어요."

말이 느렸다. 한 마디 하고 한 박자 쉬었다. 대패질하는 박자 같았다. 진우 씨가 나를 봤다.

"채이 씨죠. 세라가 매일 얘기해요. 안전핀 일곱 개."

"……언니 어디 있어요."

진우 씨가 뒤쪽 창고를 봤다. 문이 한 뼘 열려 있었다. 틈으로 눈 하나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하세라. 나 비행기 타고 왔어. 아침 일곱 시 거. 다섯 시에 일어났어. 나와."

창고 문이 열렸다. 언니가 나왔다. 회색 티셔츠, 헐렁한 바지, 대충 묶은 머리. 결혼식 날 속눈썹을 붙이던 사람과 같은 사람 같지 않았다. 얼굴이 편해 보였다. 살이 붙어 있었다.

"채이야. ……미안해."

걸어갔다. 앞에 섰다. 손을 들었다. 언니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안았다. 꽉.

"밥은 먹고 다닌다며. 살쪘네."

언니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서 울었다. 진우 씨가 대패를 다시 집었다가, 내려놓았다가, 결국 등을 돌렸다.

[재헌]

돌담 옆에서 봤다. 한참.

그리고 서진우 쪽으로 걸어갔다.

"작업실, 구경해도 됩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마당에 두고 들어갔다. 자리를 비켜 주는 법은 호텔에서 배웠다. 손님이 울면 복도 끝으로 가서 기다린다.

공방 안은 나무 냄새였다. 벽에 끌과 대패가 크기 순서대로 걸려 있었다. 날이 다 서 있었다.

작업대 위에 손바닥만 한 나무 상자. 뚜껑에 작은 꽃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걸 사포로 문질렀다.

"반지 상자입니까."

손이 멈췄다.

"……어떻게 아셨어요."

"크기가 딱 그 크기라서요. 얼마 전에 봤습니다. 반지 상자."

"아직 못 줬어요. 줄 자격이 있나 싶어서. 남의 신부를 데려왔잖아요. 식 날."

끌을 봤다. 오래 쓴 연장들.

"그 신부는 원래 제 신부가 아니었습니다. 세 번 만났고 세 번 다 창밖만 봤습니다."

"……"

"그리고 덕분에 저는 결혼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랑."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끌을 보고 있었다. 눈이 웃고 있었다는 건 나중에 그가 말해 줘서 알았다.

"그러니까 줘도 됩니다. 그 상자."

사포질이 조금 빨라졌다.

[채이]

마당 끝 나무 벤치. 진우 씨가 만든 거라고 했다. 등받이가 둥글게 휘었다. 바다가 멀리 한 줄로 보였다.

"작년 봄에 스튜디오 선반이 무너졌어. 수리 기사로 온 사람이 진우 씨였어. 선반 고치는데 세 시간 걸렸어. 원래 한 시간이면 되는 거래. 나랑 얘기하느라고."

"……언니답다."

"엄마는 몰랐어. 알았어도 반대했겠지. 제주에서 나무 깎는 사람. 그러다 도원 쪽 얘기가 나왔어. 회장님이 하씨 집 손녀를 보고 싶어 하신다고. 엄마는 그날부터 날아다녔어. 아빠 회사도 어렵고."

"그래서 선 봤어?"

"세 번. 세 번 다 이십 분. 좋은 사람이었어. 근데 날 안 봤어. 나도 안 봤고. 둘이 창밖만 보다가 헤어졌어."

공방 창 너머로 그와 진우 씨가 보였다. 진우 씨가 뭔가 설명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말이 없는 사람이라 대화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성영화 같았다.

"그런 사람이 너한텐 저렇게 봐?"

"……어떻게."

"아까 마당 들어올 때. 네가 나한테 걸어갈 때. 저 사람 너만 봤어. 나는 안 보고."

대답하지 못했다. 언니가 울다 웃었다.

"언니. 그날 누가 등을 떠밀었다고 했잖아. 누구야."

웃음이 사라졌다.

"말해 줘. 나 그것 때문에 왔어. 그 사람이 그 뒤로 나한테도 뭘 했어. 기사, 사진. 봄빛 예약 일곱 건이 날아갔어."

언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벤치 모서리를 쥔 손가락이 하얘졌다.

"지금은 못 해. 여기 공방 땅 주인이 도원 쪽 계열사야. 그 사람이 그랬어. 입 다물면 계약 연장해 준다고."

"그게 협박이지."

"알아. 근데 진우 씨가 오 년 걸려서 만든 데야. 나 때문에 잃게 할 순 없어. 조금만 시간 줘. 생각해 볼게."

[재헌]

오후엔 판자를 옮겼다. 서진우가 창고 지붕을 고친다고 해서.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다. 셔츠 소매를 걷었다. 흰 매듭이 달린 왼쪽 소매까지.

판자는 무거웠다. 옷감 두루마리 여섯 개보다 무거웠다. 서진우는 한 번에 네 장씩 들었다. 나는 두 장씩.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판자를 건넬 때만 "여기요", 받을 때만 "네".

열 장째에서 그가 말했다.

"손이 곱네요."

"……호텔에서 자라서요."

"그래도 잘 드시네요."

스무 장째에서 또 말했다.

"세라가 채이 씨 얘기를 할 때요. 늘 먼저 웃어요. 그다음에 울고."

판자를 내려놓았다.

"저도 그렇게 됐습니다."

"네?"

"그 사람 얘기를 들으면 먼저 웃습니다. 우는 건 아직입니다."

서진우가 판자 끝을 잡은 채 나를 봤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말이 느린 사람은 들은 걸 오래 씹는다. 나는 그게 편했다.

스물여덟 장째. 창고 앞에 판자가 다 쌓였다. 셔츠가 등에 달라붙었다. 마당 쪽에서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벤치에서 일어나서. 손으로 눈 위를 가리고. 햇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채이]

판자 스물여덟 장을 옮긴 사람의 셔츠는 등이 다 젖어 있었다. 흰 셔츠라 속이 비칠 뻔했다. 언니가 옆에서 팔꿈치로 나를 찔렀다.

"야. 부사장님 판자 나르신다."

"알아. 보고 있어."

"계속 보고 있더라, 너. 한 시간째."

"햇빛 때문에 눈 가린 거야."

"햇빛이 공방 쪽에서만 비추니?"

대답 대신 물병을 들고 일어났다. 창고 앞까지 걸어가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받아 반쯤 마셨다. 목젖이 움직였다. 괜히 봤다.

"손 좀 봐요."

그가 손바닥을 폈다. 나무 가시가 두 개 박혀 있었다. 파우치에서 족집게를 꺼냈다. 예식장 파우치엔 족집게도 있다. 신부 속눈썹이 떨어지면 쓴다.

"가만있어요."

가시를 뽑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손을 빼지 않았다. 대신 내 정수리 쪽을 계속 보고 있었다. 정수리에 시선이 느껴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따끔했다. 가시보다.

저녁은 공방 마루에서 먹었다. 진우 씨가 고기국수를 끓였다. 큰 냄비 하나에 면을 한꺼번에 삶고 돼지고기를 손바닥만 하게 썰었다. 그릇은 전부 진우 씨가 깎은 나무 그릇.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제일 큰 거 부사장님 드려. 판자 옮겨 주셨잖아. 서른 장."

"스물여덟 장입니다."

진우 씨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느린 웃음이었다. 언니가 따라 웃었다. 대기실 거울 앞에서 한 번도 웃지 않던 사람이 입가에 국물을 묻히고 웃고 있었다.

"언니. 큰아버지가 그러셨어. 밥은 먹고 다니는지만 알려 달라고."

젓가락이 멈췄다.

"……아빠가?"

국물 위로 뭔가 떨어졌다. 진우 씨가 말없이 휴지를 한 장 뽑아 언니 무릎에 놓았다.

그가 휴대폰을 꺼냈다. 국수 그릇을 한 장 찍었다. 그릇 옆으로 언니 손이 조금 나와 있었다. 얼굴은 없었다.

"보내세요. 큰아버님께."

보냈다. 한 줄을 붙였다. 언니 밥 잘 먹어요. 국수 두 그릇째예요.

오 분 뒤 읽음 표시. 그리고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사라졌다 다시 떴다. 결국 아무것도 안 왔다. 우리 집 남자들은 문자로도 말을 아낀다. 입력 중, 이 큰아버지의 문장이었다.

[재헌]

문제는 밤에 생겼다.

백 실장이 잡은 해안가 펜션. 주인이 난처한 얼굴로 나왔다.

"예약하신 방 두 개 중 하나가, 오늘 오후에 윗집 배관이 터져서요. 천장에서 물이 줄줄."

"다른 방은요."

"이번 주가 수국 축제라 근처는 다 찼어요. 시내까지 한 시간 반."

그녀를 봤다. 그녀가 나를 봤다. 둘 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그녀는 한 시간을 울었고 나는 판자를 스물여덟 장 옮겼다.

"……남은 방, 소파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있어요! 큰 거! 아니, 좀 작나. 보통 크기."

보통 크기는 나한테 작았다.

불을 끄고 삼십 분. 다리가 팔걸이 밖으로 한 뼘 나와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르게 뒤척였다.

"안 불편해요?"

"괜찮습니다."

"다리 나와 있어요."

"……압니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 참는 소리도 소리다.

"오늘 고마웠어요. 판자 옮긴 거. 언니가 봤대요."

"할 일이 없어서."

"거짓말."

숨을 짧게 내쉬었다. 웃음 비슷한 것.

"서진우 씨가 반지 상자를 만들고 있더군요. 뚜껑에 꽃을 새겼습니다."

"언니가 수국 좋아해요."

"그럼 수국이었나 봅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파도 소리가 창을 넘어왔다.

"하채이 씨. 세라 씨가 말 안 했죠. 누군지."

"……네."

"괜찮습니다. 짐작은 합니다."

그녀가 몸을 돌리는 소리가 났다.

"짐작이 맞으면요?"

"그러면."

끝맺지 못했다. 그러면 뭘 할지 몰랐다. 형을 미워하는 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현관을 누가 두드렸다. 조용히, 두 번. 밤 열두 시 십 분.

일어나 문을 열었다. 세라 씨였다. 잠옷 위에 작업복 재킷. 뒤에 서진우가 트럭 옆에 서 있었다.

세라 씨는 나를 보지 않고 방 안의 그녀를 봤다. 숨이 가빴다.

"채이야. 생각해 봤어. 진우 씨가 그러래. 공방은 다시 지으면 된대."

숨을 한 번 골랐다.

"그날 내 비행기표. 강민혁 전무가 끊어 줬어."

Continuez à lire ce livre gratuitement
Scanner le code pour télécharger l'application

Dernier chapitre

  • 대타 신부   40화. 성혼 선언, 두 번째

    [채이]문이 열렸다.길은 길었다. 열두 걸음씩 두 번. 열두 달 전과 같은 길이. 그런데 이번엔 다 보였다. 면사포가 한 겹이라서. 보고 싶어서.앞줄에 할머니. 지팡이를 무릎에 눕히고. 그 옆에 부회장님과 작은어머님. 그 옆에 아버님과 관장님. 나란히. 같은 쪽을 보며. 좌석 배치는 내가 짜지 않았다. 은비가 짰다. 오 년 동안 옆에서 보더니 똑같이 짰다.두 번째 줄에 전무님. 빨간 크레파스를 준 사람. 방 과장님이 옆에 있었다. 이어폰 없이. 휴대폰도 없이.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반장님과 하우스키핑 여섯 명. 연분홍, 하늘색, 연두색 한복. 유니폼 아닌 날. 지호가 벨보이 모자를 쓰고 왔다. 벗으라고 했는데 안 벗었다고 은비가 전했다.윤 여사님. 엄 셰프. 탁 실장님과 폐백 이모님. 언니와 진우 씨.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채훈. 소율. 백 실장님은 맨 끝자리에 수첩을 펴고.그리고 뒤쪽 벽 가까이. 휠체어 한 대. 촛불 예식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옆에 처음 보는 할아버지. 잠옷 대신 양복. 조끼는 그대로. 강원도 농장 주인이었다. 새벽에 은방울꽃을 직접 들고 왔다고 했다. 제철 꽃. 오월 은방울꽃.내 손에 그 꽃이 있었다. 부케. 흰 리본. 매듭 한쪽 고리가 더 컸다. 오늘 아침 그가 묶었다. 세 번 풀었다 묶었다고 했다. 다시 묶지 않았다.아빠가 팔에 힘을 줬다. 작게 속삭였다."천천히. 우리 딸 넘어지면.""가게 옷 다 뜯는다며.""……오늘은 안 뜯는다. 오늘 입은 옷이 다 우리 집 옷이야."웃음이 터질 뻔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앞치마 끈이 아빠 양복 밑에서 흔들렸다.[재헌]길 끝에 섰다. 기다렸다. 신랑은 기다린다. 이번엔 제대로.그녀가 걸어왔다. 앞치마 끈이 흔들리는 장인어른 팔을 잡고. 면사포 한 겹 너머로 그녀 얼굴이 보였다. 웃음을 참는 얼굴. 입술을 깨문.장인어른이 내 앞에 섰다. 고개를 숙였다. 나도 숙였다. 열두 달 전엔 내가 먼저 숙였다. 오늘은 동시였다.장인어른이 그녀 손을 내 손 위에 올렸다.떨렸

  • 대타 신부   39화. 신부대기실 사용 중

    [채이]일곱 달은 생각보다 짧았다. 예식장 사람한테 일곱 달은 식 백 건이다. 백 건을 치르고 나니 오월이었다.십일월, 은비가 봄빛에서 결혼했다. 도경 씨가 찍은 신부 삼백 명 중 백이십 명이 왔다. 부케는 약속대로 정조준이었다.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무전기를 옆구리에 끼고 두 손으로 받았다. 은비가 버진로드 위에서 만세를 불렀다.십이월 스무날, 봄빛 부부의 날. 사진 벽이 이백십 장으로 늘었다. 백 쌍 넘게 왔다. 촛불 예식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왔다. 할머니는 그날도 사진 속 신부를 가리키며 나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손을 잡았다. 처음이라고 했다. 요양원에 들어간 뒤로.그날 원장님이 등기부 한 장을 로비 사진 벽 한가운데 꽂았다. 할머니 결혼사진 바로 밑에. 건물주 변정숙. 삼십 년 할부. 첫 회는 복주머니로 갚았다. 민혁이 받아 갔다. 엄마가 자투리 비단으로 지은 복주머니 하나. 영수증에 바느질삯이라고 적어서.일월, 신혼여행. 제주. 진우 씨 공방이 있던 마을. 백 실장님이 방을 두 개 잡았다. 제주 펜션 사건 이후 백 실장님의 신조가 됐다고 했다. 부부 출장에도 방은 두 개. 우리는 하나만 썼다. 나머지 하나는 사흘 내내 비어 있었다. 백 실장님은 청구서를 보고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고 했다. 안 보여 줬다.삼월, 버팀이에 봉오리가 올라왔다. 이번엔 제철이었다. 두 사람이 물을 주는데도 헷갈리지 않았다. 봄인 줄 제대로 알았다.그리고 오월. 셋째 토요일.[채이]오전 열 시. 봄빛 신부대기실.문고리를 잡으려다 멈췄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은비였다."신부님. 들어오세요. 매니저가 문 열어 드릴게요."문이 안에서 열렸다. 은비가 서 있었다. 검정 정장. 허리에 무전기. 가슴에 명찰. 봄빛웨딩홀 매니저 고은비. 그리고 허리에, 남색 파우치.내 파우치였다."그거 내 거야.""오늘은 내 거야. 너 신부야. 신부는 파우치 안 차.""은비야, 지퍼 반쯤 고장 났어. 손으로 벌려야 돼.""알아. 오 년 동안 봤어."

  • 대타 신부   38화. 청첩장 재인쇄

    [채이]토요일 밤 열한 시. 볼룸. 갈라가 끝났다.샹들리에는 일곱 시에 켜졌다. 전무님 말대로 해가 지고 나서. 흰 테이블보가 검은색으로 바뀌었고, 들꽃 옆에 장미가 섰다. 외국 연주단, 샴페인 타워. 투자자와 외신. 민혁이 무대에서 영어로 인사했다. 마지막 한 문장만 한국어였다. 이 호텔은 복주머니 삼백 개로 시작했습니다.외신 기자가 그 문장을 통역해 달라고 했다. 방 과장이 했다. 복주머니를 뭐라고 번역했는지는 모른다.나는 볼룸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구두를 벗고. 발이 퉁퉁 부었다. 하루에 잔치 두 번. 예식장 매니저 오 년에도 이런 날은 없었다.그가 옆에 앉았다. 넥타이를 풀고.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댔다. 이제 묻지 않고 댄다."할머니가 정하셨어요. 결혼식 다시.""네.""할머니가 정하시면 끝이잖아요. 찻잔 내려놓으셨으니까."그가 한참 말이 없었다. 단추를 한 바퀴 돌렸다."……식장은 할머니가 정하십니다. 늘 그러셨죠.""네.""청혼은 제가 정합니다."머리를 들었다. 그를 봤다. 그는 볼룸 천장의 샹들리에를 보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는 옆얼굴. 귀 끝이 빨갰다.목요일부터 숨기던 그것. 일요일까지만이라던 그것.내일이 일요일이었다.[채이]일요일. 봄빛. 은비가 이상했다."채이야, 연회 뒷정리 우리 홀도 해야 돼. 호텔에서 빌려 온 우산꽂이 세 개 닦아야 되고, 사진 벽 액자 틀 다시 가져와야 되고, 장부 정리도.""은비야. 장부 정리는 원장님이 하시잖아.""오늘은 네가 도와드려야 돼. 원장님이 허리 아프시대."원장님은 원장실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계셨다. 장부를 펼친 채. 볼펜을 쥔 채. 내가 들어가자 장부를 덮었다. 또.준수는 안 보였다. 음향실 문이 잠겨 있었다. 탁 실장님은 주방에서 뭔가를 굽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났다. 누룽지 굽는 냄새. 엄마 누룽지. 봄빛 주방에서 누룽지를 굽는 건 처음이었다.폐백 이모님이 폐백실 문을 반만 열고 나를 봤다. 그리고 닫았다.여섯 시. 일곱 시. 은비가

  • 대타 신부   37화. 사십 주년 기념 연회

    [채이]"네, 할머니. 뭐든요."할머니가 지팡이 끝으로 볼룸 앞쪽을 가리켰다. 무대 옆. 식순상 민혁의 사 분이 있는 자리."오늘 민혁이가 말할 때. 내 옆에 서 있어라.""……네?""늙은이가 울면 누가 휴지를 줘야지. 소율이는 같이 울 거고, 재헌이는 단추만 돌릴 거다."할머니가 내 허리를 봤다. 남색 파우치. 반쯤 열린 지퍼."네 파우치에 있지? 휴지.""네. 있어요. 안전핀도 있어요.""안전핀은 네 거 해라. 휴지만 빌리자."옆에서 그가 헛기침을 했다. 단추를 돌리다 멈춘 손. 할머니 말이 정확했다.[채이]오전 열 시. 바람이 세졌다. 로비 회전문이 덜컹거렸다.방 과장이 한 시간마다 문자를 보냈다. 한 줄씩.[열 시. 풍속 초속 십이. 회전문 막습니다. 옆문 개방.][열한 시. 비 강해짐. 우산 백 개 옆문 비치. 지호 씨 배치.]지호가 옆문 앞에서 우산을 받아 꽂았다. 봄빛 우산꽂이 세 개를 준수가 트럭으로 가져왔다. 우천 시 실내 진행. 봄빛 매뉴얼이 호텔에서 일을 했다.열한 시 반부터 손님이 들어왔다. 하우스키핑 이순옥 님 가족. 손주 셋. 지호 어머니. 돌잡이 때 마이크 잡은 아들을 보고 웃었다. 봄빛 부부 스무 쌍. 흑백 사진을 들고. 휠체어 한 대. 요양원에서 모셔 온 할머니. 촛불 예식. 정전 이십 분. 신부가 제일 예뻤던 날.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사진 벽 앞으로 갔다. 자기 결혼사진 앞. 촛불 속 신부.휠체어의 할머니가 사진을 봤다. 오래. 할아버지를 못 알아본다던 할머니. 그러다 손가락을 들어 사진 속 신부를 가리켰다."……나다."할아버지가 무릎을 꿇었다. 휠체어 옆에서. 울었다. 소리 없이. 이 나라 할아버지들은 다 소리 없이 운다.엄마 아빠가 옆문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한복. 아빠는 양복. 삼 센티 늘린. 비닐 뜯은 지 사흘 된. 실밥은 없었다. 엄마가 옆문 앞에서 한 번 더 떼 줬다. 아빠가 옆문 앞에서 서성였다. 호텔 볼룸에 들어가도 되나 하는 얼굴.그가 옆문으로 걸어갔다. 아빠 앞에

  • 대타 신부   36화. 실내 연회 전환

    [재헌]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식탁. 그녀가 안전핀을 한 번 여닫은 뒤로 오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치도만 봤다.나는 백 실장 흉내를 냈다. 수첩 대신 냅킨. 볼펜으로 적었다."뭐가 남아 있는지부터."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실내 공간. 그랜드볼룸. 밤 갈라 세팅이 금요일부터 들어갑니다. 형 쪽. 로즈룸, 백 명. 스카이라운지, 팔십 명. 로비, 서서 이백 명.""낮 잔치 하객이 몇이에요.""삼백 이십.""그럼 볼룸밖에 없어요.""볼룸은 형 겁니다. 밤 갈라. 샹들리에, 샴페인 타워, 외국 연주단. 금요일 오후부터 세팅."그녀가 배치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시간표였다. 열두 시부터 세 시, 낮 잔치. 세 시부터 여섯 시, 전환. 일곱 시, 갈라."같은 방을 두 번 써요. 봄빛은 토요일마다 그랜드홀 하나로 식을 세 번 해요. 식 끝나면 사십 분 만에 꽃이랑 의자 다 바꿔요. 호텔은 세 시간이면 돼요.""형이 허락할까요.""물어봐야죠."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건물주, 라고 저장된 번호. 밤 열한 시 십 분.[채이]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매니저님.""전무님. 태풍이요.""봤어요. 지금 볼룸 배치도 보고 있었어요."이 사람도 안 자고 있었다. 형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낮 잔치를 볼룸으로 옮기고 싶어요.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전환하고, 일곱 시에 갈라. 갈라 세팅이 세 시간 늦어져요."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삼 초."……그래요.""그래요요?""샹들리에는 원래 늦게 켜는 거예요. 해 지고 나서. 낮에 켜면 촌스러워요."웃음이 났다. 그도 웃었다. 전화 너머로."갈라 세팅팀 금요일 출근 취소할게요. 토요일 세 시에 들어가라고 하고. 그리고 매니저님.""네.""전환 세 시간. 우리 팀 인력 다 쓰세요. 내 갈라 인력이지만 낮에도 쓰세요. 복주머니 나르게."전화를 끊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냅킨을 든 채."……형이 뭐라

  • 대타 신부   35화. 예비일 지정

    [채이]"조건이요?"민혁이 원장님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이 사람은 오늘 모든 걸 두 손으로 했다."토요일 연회. 식순에 제 순서 하나 넣어 주세요.""……무슨 순서요.""삼 분이요. 할머니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 기자 없이, 이사 없이. 매니저님이 식순 짜시잖아요."매니저님. 제수씨가 아니었다.수첩을 폈다. 연회 식순. 낮 열두 시 개회, 할머니 인사말, 개관 연회 메뉴 소개, 봄빛 사진전, 직원 가족 소개, 복주머니 나눔. 빈칸이 없었다."식순은요, 원래 양가 합의가 필요해요. 신랑 측, 신부 측.""……농담이죠.""반은요. 반은 진짜예요. 할머니 인사말 앞에 넣을게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에. 할머니가 대답하실 수 있게."민혁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원장님을 봤다.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순은 매니저 권한이다. 원장님이 오 년 전에 그렇게 정했다."삼 분이면 되겠어요?""……모르겠어요. 삼십 년 치 말이라.""그럼 사 분 드릴게요. 예비로 일 분."예식장에서는 늘 예비를 둔다. 예비일, 예비 부케, 예비 안전핀. 사람 말에도 예비 일 분이 필요하다.[재헌]수요일 오후 세 시. 할머니 전화. 이번엔 본론이 늦게 나왔다."재헌아.""네."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결혼식 날 이후 두 번째."네 작은아비가 왔다 갔다. 아침 일곱 시에. 혼자 운전해서.""……네. 형한테 들었습니다.""쉰다섯 해 만에 물었다. 어머니, 제 돌잔치를 하셨습니까."할머니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째로 듣는 흔들림."그래서 말해 줬다. 했다고. 영감 몰래 봄빛 작은 방에서. 내 혼례 치마를 뜯어 입혔다고. 한복집 새댁이 돌복 삯을 안 받았다고.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줬다. 쉰다섯 해 만에 주인한테 갔다.""……작은아버지는요.""울더구나. 쉰여섯 살짜리가. 내 앞에서. 그리고 버선을 한 켤레 얻어 신고 갔다. 네 처가 두고 간 무명 버선. 발에 꼭 맞는다더라."전화 너머에서 찻잔 소리가

Plus de chapitres
Découvrez et lisez de bons romans gratuitement
Accédez gratuitement à un grand nombre de bons romans sur GoodNovel. Téléchargez les livres que vous aimez et lisez où et quand vous voulez.
Lisez des livres gratuitement sur l'APP
Scanner le code pour lire sur l'applicatio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