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새벽 3시, 병원 7층 705호.
문을 열기 전 세아는 도헌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3년 동안 가슴에 묻어 둔 장면 앞에 선 사람의 손이었다.
"같이 들어가요."
“……내가 먼저 들어가야 해.”
"그럼 제가 뒤에서 손 잡고 있을게요."
도헌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밀었다. 침대 위에서 한도식 회장이 상체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야윈 얼굴에 눈빛만은 3년 전 회장실의 그 눈이었다. 곁에는 이은서가 앉아 그의 손을 쥐고 있었다.
도헌은 문턱에서 멈췄다. 세아의 손을 놓고 침대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회장님. 3년 전 그날 저는."
"자네가 안 도망쳤다면."
한 회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낮고 갈라졌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내 딸은 지금 여기 없었을 걸세."
도헌이 고개를 들었다.
"쓰러지는 순간에도 나는 의식이 있었네. 눈은 못 떠도 귀는 열려 있었지. 자네가 38초 만에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강태성의 사람이 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도 들었고."
“…….”
"자네가 서류를 들고 나간 건 도망이 아니었어. 그 서류가 홍기범 손에 넘어가면 세아가 먼저 다쳤을 거야. 자네는 그걸 몸으로 막은 거고, 나는 그걸 알았네."
도헌의 어깨가 무너졌다. 세아는 문가에서 숨을 죽였다. 그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우는 것을 보았다. 한 회장이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얹었다. 3년 전 풀려 버렸던 그 손이 이번에는 단단히 쥐었다.
"제77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자네가 초안을 쓰고, 내가 병상에서 한 줄을 보탰지. 마지막 문장."
"제4항이요?"
"아니. 제2항."
세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만 파기하지 않는다면, 갑은 을에게 평생의 갱신을 청구한다.
"도헌이가 이 조항을 쓴 날 내게 물었지. 이 아이를 평생 묶어 둬도 되겠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네. 묶는 게 아니라 청구하는 거라면 허락하겠다고. 선택은 세아가 하는 거니까."
이은서가 눈가를 훔치며 웃었다.
"이 사람, 입은 거칠어도 딸 일에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한 회장이 세아를 돌아보았다.
"세아야. 이 아이가 청구한 평생, 받아 주겠니."
세아는 대답 대신 병실 문을 닫고 걸어와 도헌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이 사람은 제가 직접 정할게요. 그런데."
"그런데?"
"오늘은 아니에요. 제 방식으로 대답할 날이 따로 있어요."
한 회장이 웃었다. 오랜만에 터진 진짜 웃음이었다.
"그래. 그날은 아버지한테 제일 먼저 알려 다오."
새벽 5시, 병원 근처 호텔 스위트룸.
도헌은 집에 가지 않았다. 세아도 묻지 않았다. 최 이사가 잡아 둔 방이었다. 커튼은 열려 있었고, 동이 트기 직전의 하늘이 푸르게 번지고 있었다. 도시가 아직 잠든 시간이었다.
문이 닫히자 도헌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눈이 붉고 얼굴은 지쳐 있었는데, 시선은 이상하게 뜨거웠다.
"세아."
"네."
"오늘은 이름을 불러 줘."
"도헌이요?"
"아니."
세아의 숨이 아주 조금 멎었다.
“……서준.”
도헌의 눈이 감겼다가 떠졌다. 그 한마디에 온몸의 힘이 풀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한 번 더."
"서준 씨."
"씨는 빼."
"서준."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이마가 맞닿았다. 호흡이 섞였다.
"누가 그렇게 불러 준 적이 없어.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럼 제가 처음이네요."
"마지막도 당신이야."
그가 입을 맞췄다. 짧고 깊게, 이름을 입안에 새기듯이. 세아가 입술을 떼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규칙 하나 만들어도 돼요?"
"해."
"오늘 밤, 제가 서준이라고 부를 때마다 한 겹씩 풀어 줘요. 당신이 가진 걸."
"가진 거?"
"넥타이, 시계, 셔츠. 그리고."
"그리고?"
“3년 동안 입고 있던 갑옷.”
도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위험하고 다정한 웃음이었다.
"그건 한 번에 벗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해 봐요."
"서준이라고 불러 봐."
"서준."
그가 넥타이를 풀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서준."
시계가 손목에서 내려와 협탁 위에서 낮은 소리를 냈다.
"서준, 서준."
그의 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렸다. 세아가 한 번 부를 때마다 그의 손이 한 번 움직였다. 이름이 쌓일수록 그의 눈은 더 어두워지고 숨은 더 깊어졌다. 마지막 단추가 풀려 셔츠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세아의 시선이 그의 가슴 위 얕은 흉터에서 멈췄다.
"이건 제 거라고 했죠."
"응."
"그럼 오늘은 제가 확인할게요."
그녀가 그를 침대 가장자리에 앉히고 그 앞에 섰다. 가운 끈의 한쪽 끝을 손가락에 감았다. 당기지는 않았다.
"이제 제 차례죠."
“……서준이라고 불러 줘.”
"역이에요, 이번엔."
세아가 웃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풀 때마다 당신이 제 이름을 불러요. 한세아든 윤세아든, 어느 쪽이든."
“……둘 다 부를게.”
"그럼 시작해요."
끈이 풀렸다. 가운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동안 도헌의 시선이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푸른 새벽빛이 그녀의 어깨선과 쇄골을 은은하게 감쌌다.
“……한세아.”
"한 번."
"윤세아."
"두 번."
"내 사람."
"그건 이름이 아닌데요."
"이름보다 먼저야."
세아의 뺨이 달아올랐다. 그녀가 그의 무릎 위로 올라앉았다. 두 팔이 목을 감았고 도헌의 손이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손바닥이 척추를 따라 지나갈 때마다 숨이 어긋났다.
"서준."
"응."
"당신 손은 이제 안 차가워요."
"당신이 데웠으니까."
"그럼 계속 데울게요."
입맞춤이 깊어졌다. 그가 그녀를 안아 시트 위로 눕혔다. 입술이 턱선을 지나 목, 쇄골, 가슴 위의 얕은 숨으로 내려갔다. 닿는 곳마다 맥박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맥박을 확인하듯 천천히 머물렀다. 세아의 손이 그의 머리칼 속으로 들어갔다. 허리가 시트에서 떠올랐다.
"서준…… 거기."
"응."
"천천히 말고."
"천천히 하는 거 좋아한다며."
"오늘은 아니에요."
그가 낮게 웃다 숨을 삼켰다. 속도가 달라졌다. 손이 허벅지 안쪽을 지나고,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되찾았다. 몸이 맞물릴 때 세아가 이름을 불렀다. 도헌이 아닌 서준이라는 이름을, 이마를 맞댄 채 계속해서 불렀다. 부를 때마다 그의 눈이 흔들렸고, 숨이 끊겼고, 손이 그녀의 손을 깍지로 눌러 잡았다. 창밖에서 해가 천천히 올라왔다. 빛이 두 사람의 맨살 위로 번지는 동안에도 리듬은 멈추지 않았다. 파도가 한 번, 두 번 밀려와 높이 솟았고, 끝내 두 사람 위로 부서졌다. 방 안에는 서로의 이름과 가쁜 숨, 그리고 오랫동안 놓지 못한 손만 남았다.
오전 7시.
세아는 그의 팔을 베고 누워 있었다. 도헌은 잠들어 있었다. 약 없이, 악몽 없이, 이른 아침 햇살 속에서 가장 깊은 잠을 자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일어나 협탁 위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마지막 장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푸른 글씨가 올라왔다. 제4항 아래, 새로운 줄이 천천히 떠올랐다.
[제77조 제5항. 갑의 본명이 불린 날, 계약의 마지막 보호자가 나타난다.]
세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지막 보호자. 그런데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객실 문 아래로 흰 봉투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겉면에는 낯익은 필체가 적혀 있었다.
[강서준 앞.]
그리고 아래 작은 글씨.
[네 아버지의 형, 강태호가 남긴 마지막 편지다. 23년 만에 배달된다.]
새벽 4시 40분, 강태성의 저택 뒷담."엄마는 여기로 가셨어요."세아가 가리킨 곳은 정원 끝의 낡은 와인 저장고 문이었다. 도헌이 낮게 물었다."어떻게 알아.""어릴 때 엄마가 자주 그린 그림이 있었어요. 계단 아래 문이 하나 있는 집. 그때는 상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민재가 건넨 마스터키가 자물쇠에 들어가자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문 안쪽은 석조 계단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폭이었다. 도헌이 먼저 내려가고 세아가 그의 셔츠 자락을 쥐고 뒤따랐다. 열 계단쯤 내려갔을 때 위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경비였다.도헌이 돌아서서 세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계단 옆 오목한 벽감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몸이 빈틈없이 맞닿았다.“……숨 쉬지 마.”"쉬어야 사는데요.""작게."세아의 등이 서늘한 돌벽에 닿았고, 앞은 그의 체온이 눌렀다. 도헌의 숨이 이마 위로 떨어졌다. 그녀의 손이 갈 곳을 잃고 그의 가슴 위에 얹혔다. 심장이 손바닥 아래서 거칠게 뛰었다. 불빛이 계단 위를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두 사람은 굳은 채 서로의 숨소리만 들었다.“……서준.”"조용히.""심장 소리가 너무 커요.""당신 거야, 내 거야.""모르겠어요. 겹쳐서."경비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런데도 도헌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의 엄지가 그녀의 턱선을 따라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 머물렀다."지금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아?""알아요.""어머님이 저 아래 계신데.""그러니까 더,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요."세아가 먼저 입술을 올렸다. 소리를 죽인 입맞춤이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 뒤에서 위로 올라와 블라우스 아래 맨살 위에 닿았다. 손바닥이 등을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자 세아의 숨이 목에서 끊겼다. 그가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소리 내면 안 돼."“……그럼 막아 줘요.”그가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억눌린 숨이 서로의 입안에서 섞였다. 그녀의
자정 정각, 강태성의 저택 서재.벽난로 불은 꺼져 있었다. 초상화 속 이은서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앞에 앉은 강태성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책상 위에는 위임장 한 장과 만년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세아는 혼자 걸어 들어갔다. 도헌은 정문 밖 차 안에 있었다. 귀에는 작은 수신기가 꽂혀 있었고, 그의 낮은 숨소리가 그 안에서 들렸다."앉아라.""서서 읽겠습니다.""고집은 어미를 닮았구나."세아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한진정밀 지분 포함, 태성그룹 18퍼센트의 의결권 전부를 강태성에게 위임한다는 문서였다. 서명란은 둘이었다. 위임인 한세아, 그리고 그 아래 증인란.증인란에는 이미 서명이 되어 있었다.세아의 눈이 멈췄다. 낯익은 필체였다. 모서리가 살짝 기우는 글씨. 3개월 전 편지에서 본, 아버지의 글씨였다.“……이건.”"네 아버지가 오늘 오후에 서명했다. 병실에서.""거짓말.""전원이 끊긴다고 했지, 협박이라고 한 적은 없다. 한도식은 스스로 서명했어. 딸을 살리려고."세아의 손끝이 서늘해졌다. 귓속 수신기에서 도헌의 숨이 짧게 끊기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한 번 길게 숨을 쉬고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았다."펜을 주시죠.""현명하구나."세아가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한진정밀 로고가 새겨진, 1화의 그 펜이었다. 강태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서명란 앞에서 펜촉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이 서류의 증인 서명, 아버지가 직접 쓰신 건 맞죠.""내가 지켜봤다.""그럼 됐어요."세아가 웃었다. 1화에서 도헌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가면이 아니라 칼날 같은 웃음이었다."아버지는 왼손잡이세요."강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사고 이후 오른손에 힘이 안 들어와서 글씨가 달라지셨다고 하셨죠. 이 서명은 편지와 같은 오른손 필체고, 필압이 너무 정확해요. 쓰러진 3년 동안 근력이 빠진 손으로는 불가능한 선이에요."“…….”"그리고 편지 필체는 3개월 전 것이었어요. 모서리가 기운 글씨, 그건 아
호텔 객실 문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온 봉투는 누렇게 바랜 종이였다. 겉면의 **[강서준 앞]**은 만년필 글씨였고, 획 끝이 도헌의 필체와 닮아 있었다.도헌은 한참 봉투를 쥐고만 있었다. 세아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검은 후드를 눌러쓴 여자가 뒤돌아섰다.“……박 대리?”"박지윤이에요. 이제는 대리 아니고요."지윤이 후드를 벗고 어색하게 웃었다."이건 서린 언니가 아니라 제 판단이었어요. 강태호 회장님 변호사가 23년 전에 이 편지를 맡겼는데, 조건이 있었대요. 아들의 본명이 불리는 날 전해 달라고요. 어제 새벽, 병원에서 누군가 '서준'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는 거예요?”"했다가 맞을까 봐 안 하려고요."세아는 숨이 새는 웃음을 흘렸다. 지윤이 어깨를 으쓱했다."점심 같이 먹던 건 전부 연기가 아니었어요. 그건 알아 두세요."세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객실 안에서 도헌이 침대 끝에 앉아 봉투를 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곁에 앉아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서준에게.이 편지를 읽는다면 너는 이미 이름을 되찾았을 것이다. 아비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네가 태어난 날 나는 강태성이 우리 형제 사이에 선을 긋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준비해 두었다.첫째, 네 지분의 열쇠를 내 오랜 벗 한도식에게 맡겼다.둘째, 도식의 딸이 태어난 날, 태성그룹 지분 18퍼센트를 그 아이 이름으로 돌려 두었다. 아이가 모르는 채로. 강태성이 어느 날 너를 꺾으려 한다면, 그 아이가 쥔 표가 네 편이 될 것이다.서준아. 그 아이를 네 편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너희가 서로를 선택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의 선택이 계산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강태호.]도헌의 손에서 편지가 흔들렸다. 세아는 종이를 받아 들고 마지막 줄을 한 번 더 읽었다.“……18퍼센트.”"당신 이름으로 된 지분이야.""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새벽 3시, 병원 7층 705호.문을 열기 전 세아는 도헌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3년 동안 가슴에 묻어 둔 장면 앞에 선 사람의 손이었다."같이 들어가요."“……내가 먼저 들어가야 해.”"그럼 제가 뒤에서 손 잡고 있을게요."도헌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밀었다. 침대 위에서 한도식 회장이 상체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야윈 얼굴에 눈빛만은 3년 전 회장실의 그 눈이었다. 곁에는 이은서가 앉아 그의 손을 쥐고 있었다.도헌은 문턱에서 멈췄다. 세아의 손을 놓고 침대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3년 전 그날 저는.""자네가 안 도망쳤다면."한 회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낮고 갈라졌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내 딸은 지금 여기 없었을 걸세."도헌이 고개를 들었다."쓰러지는 순간에도 나는 의식이 있었네. 눈은 못 떠도 귀는 열려 있었지. 자네가 38초 만에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강태성의 사람이 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도 들었고."“…….”"자네가 서류를 들고 나간 건 도망이 아니었어. 그 서류가 홍기범 손에 넘어가면 세아가 먼저 다쳤을 거야. 자네는 그걸 몸으로 막은 거고, 나는 그걸 알았네."도헌의 어깨가 무너졌다. 세아는 문가에서 숨을 죽였다. 그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우는 것을 보았다. 한 회장이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얹었다. 3년 전 풀려 버렸던 그 손이 이번에는 단단히 쥐었다."제77조는 어떻게 된 겁니까.""자네가 초안을 쓰고, 내가 병상에서 한 줄을 보탰지. 마지막 문장.""제4항이요?""아니. 제2항."세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다만 파기하지 않는다면, 갑은 을에게 평생의 갱신을 청구한다."도헌이가 이 조항을 쓴 날 내게 물었지. 이 아이를 평생 묶어 둬도 되겠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네. 묶는 게 아니라 청구하는 거라면 허락하겠다고. 선택은 세아가 하는 거니까."이은서가 눈가를 훔치며 웃었다."이 사람, 입은 거칠어도 딸 일에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제3항, 읽어 봤어?"새벽 1시 20분. 도헌은 눈을 뜬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세아의 손에는 푸른 글씨가 아직 남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당신이 종이를 집었을 때부터.""그럼 문자도 봤겠네요.""봤어."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시트가 허리께로 흘러내렸다. 달빛이 어깨와 가슴의 선을 따라 얕게 흘렀다. 세아의 시선이 잠깐 거기 머물렀다가, 이내 단단하게 그의 눈으로 돌아왔다.“3년 전 병실에 처음 들어간 사람. 그게 당신이죠.”"맞아."“8화에서 말했잖아요. 그날 병원에 있던 사람이 당신이었다고. 거기서 말을 끊었고요.”"끊은 게 아니라 못 했어."도헌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목소리가 낮고 갈라졌다."아버지가 쓰러진 날 밤, 나는 한진정밀 회장실에 있었어. 인수 서류를 들고. 당신 아버지가 서명하기 직전에 나를 불러서 말씀하셨어. 오래 해 온 일을 넘기는 게 무섭다고. 그리고 내 손을 잡으셨지. 그 손에서 힘이 빠지는 걸, 내가 가장 먼저 느꼈어."세아의 숨이 얕아졌다."구급차는요.""내가 불렀어. 11분이 아니라 38초 만에. 그런데 기록에는 11분 뒤로 남아 있어. 홍기범이 내 호출 기록을 지웠거든. 그리고 나는."그가 말을 삼켰다.“……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어. 아버지가 시킨 대로 서류를 들고 먼저 나왔어. 쓰러진 사람을 두고. 3년 동안 잠을 못 잔 이유야. 눈을 감으면 그 손이 풀리는 감각이 돌아와서.”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를 내려놓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침대 위로 무릎을 올리고 그의 앞에 앉았다. 손을 뻗어 그의 왼쪽 가슴 위에 올렸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그 얘기를 77일째에 하려고 했어요?""아니. 평생 안 하려고 했어."“…….”"그런데 당신이 계약서를 열었으니까.""당신, 진짜."세아가 이를 악물다가 숨이 새는 웃음을 흘렸다. 눈가가 젖었다.“3년 동안 그걸 혼자 안고, 저한
오후 2시 40분, 태성타워 52층.이사회 20분 전이었다. 도헌의 집무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블라인드는 반쯤 내려와 있었다. 세아는 그의 넥타이를 매 주다 말고 손을 멈췄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 뒤에서 아주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대표님. 여긴 사내입니다.""알아.""제7조 기억하시죠. 절대 들키지 않는다.""기억하니까 문을 잠갔지."도헌이 그녀를 책상 모서리로 몰았다. 세아의 허벅지 뒤가 차가운 상판에 닿았다.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 옆 서류 더미를 짚었다. 1화에서 서류장 앞에 그녀를 가뒀던 바로 그 자세였다. 그때와 달랐던 건 두 사람 다 이제 서로의 체온을 안다는 점이었다."그날 당신이 내 앞에서 '업무에 적절하지 않다'고 했지.""지금도 적절하지 않아요.""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닌가."“……정말, 못 말려.”세아가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매듭이 반쯤 풀렸고, 두 사람의 입술이 부딪쳤다. 숨을 죽여야 하는 곳이라 입맞춤은 더 깊고 더 조용했다. 그의 손이 정장 재킷 아래로 들어가 블라우스 위로 허리선을 따라 느리게 올라갔다. 천 한 겹 너머로 전해지는 손바닥의 열이 목덜미까지 번졌다. 세아가 입술 사이로 낮은 숨을 흘리자, 그가 그 소리를 삼키며 속삭였다."소리 내면 밖에 들려.""당신이 그렇게 만지니까.""그럼 참아."“……못 참으면요.”"그럼 내가 막아야지."그가 그녀의 입술을 다시 덮었다. 세아의 손가락이 그의 셔츠 깃 안으로 파고들어 쇄골 위를 눌렀다. 책상 위 펜꽂이가 흔들려 달그락 소리를 냈고, 두 사람이 동시에 굳었다. 문밖에서 비서실 직원이 지나가는 구두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멀어지기까지 둘은 이마를 맞댄 채 숨만 쉬었다. 심장 소리가 서로의 가슴에서 겹쳐 울렸다.“……이게 제일 위험해요.”"뭐가.""이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는 거요."도헌이 낮게 웃으며 그녀의 입술 가장자리를 엄지로 닦았다. 번진 립스틱 자국이 그의 손끝에 남았다. 그는 그것을 자기 입술에 한 번 가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