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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등불이 꺼져 가는 등불해파리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1 19:40:00

도경은 서랍을 열어 낡은 수첩을 꺼냈다.

표지 모서리가 말려 있었다. 첫 장을 펼치자 종이를 누르고 있던 손가락 옆으로 할아버지의 글씨가 드러났다.

조금 전 보호자에게 한 말은 이 가운데 앞부분만이었다.

도경은 수첩 옆에 모래게의 기록지를 놓았다. 입 뒤쪽이라고 짐작한 자리와 실제로 조각이 걸려 있던 자리를 번갈아 봤다. 집게를 넣는 방향은 그림에 없었다. 접힌 플라스틱의 끝도 불빛을 대고 나서야 보였다.

처치실에서 보라가 씻은 기구를 내려놓았다. 금속이 받침에 닿는 소리가 났다.

“원장님, 긴 집게는 여기 둘게요.”

“네. 끝이 휘었는지만 봐 주세요.”

도경은 수첩을 덮었다. 기록지는 덮지 않고 마저 적었다.

■

4월 17일(금), 오후 진료가 잠깐 비었을 때 유리문 위의 종이 울렸다.

도경은 손을 닦으며 대기실로 나왔다. 문 안에 들어선 여자는 커다란 운반 바구니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뒤따라온 남자가 문을 잡은 채 바구니 위의 천을 살폈다.

“전화드린 등불해파리 보호자입니다.”

여자가 천 끝을 조금 들었다.

바구니 뚜껑은 망으로 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서 머리 크기의 둥근 몸이 천천히 움직였다. 몸 아래로 내려온 가는 촉수는 바닥에 닿지 않았다.

도경은 가까이 몸을 숙였다.

옅은 빛이 있었다. 낮의 대기실에서는 빛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흐렸다. 둥근 몸 가운데가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오는 동안 더 처지지는 않았나요?”

“계속 이 정도였어요. 어제는 집 천장 가까이 떠 있었는데, 오늘은 바구니 바닥 쪽으로 내려오더라고요.”

남자가 바구니 손잡이에서 여자의 손을 받아 들었다. 손잡이에 눌린 여자의 손바닥이 붉었다.

“밥도 거의 안 먹었습니다. 원래는 저녁에 먹는데요.”

“안쪽에서 볼게요. 천은 지금처럼 덮어 주세요.”

보라가 진료실 문을 열었다. 바구니가 문턱을 넘을 때 해파리의 몸이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었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몸이 가운데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도경은 진료대 위에 미끄럼 방지 깔개를 폈다.

바구니 뚜껑을 열자 등불해파리가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몸이 뚜껑을 지나더니 진료대에서 조금 떨어진 높이에 머물렀다. 가는 촉수 끝에 붙은 등록 고리가 작게 흔들렸다.

보라가 접은 수건을 아래에 받쳤다.

해파리는 수건에 닿기 전에 옆으로 밀려났다.

도경이 진찰등을 당기자 이번에는 불빛을 피해 뒤로 움직였다. 진료대에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

“누워 있는 걸 싫어하나요?”

“집에서도 바닥에 닿으면 올라가요. 아파도 그러네요.”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가 거두었다.

도경은 진찰등을 껐다. 문도 닫았다. 해파리의 움직임이 조금 줄었지만, 손을 대려면 몸을 붙잡아야 했다.

“꽉 잡지는 않는 게 좋겠어요. 아래에서 넓게 받칠 것을 찾아볼게요.”

보라가 처치실 쪽을 돌아봤다.

“세탁망 있어요. 담요 빠는 큰 거요.”

도경은 해파리 아래로 늘어진 촉수를 살폈다.

“구멍이 가는 걸로요. 걸릴 곳이 없는지 먼저 보고요.”

■

보라는 뒤 창고에서 세탁망과 옷걸이를 가져왔다.

도경은 세탁망 안팎을 뒤집어 손끝으로 훑었다. 지퍼 끝을 덮은 천이 들떠 있었다. 보라가 그 부분을 바깥쪽으로 접어 고정했다.

옷걸이는 망 안에 넣지 않았다. 양쪽 가장자리를 받치는 틀로 쓰고, 단단한 부분이 몸에 닿지 않도록 접은 수건을 덧댔다.

남자가 두 사람의 손을 보다가 물었다.

“제가 잡고 있을까요?”

“네. 이쪽 끝을 받쳐 주세요. 몸이 내려와도 망을 당기지 마시고요.”

남자는 옷걸이의 양 끝을 받았다. 여자는 해파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바구니를 옆에 댔다.

보라가 망 아래를 넓게 폈다. 도경은 둥근 몸 아래로 손바닥을 가까이 가져가 해파리가 스스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촉수가 먼저 망에 닿았다.

보라가 손을 멈췄다. 망이 조금 처진 뒤 둥근 몸의 아래쪽도 부드럽게 얹혔다. 해파리는 위로 올라가려는 듯 한 번 움직였지만, 곧 그 자리에 머물렀다.

도경은 망을 진료대 양옆에 받쳐 놓았다. 가운데를 팽팽하게 당기지 않고 몸 아래에 여유를 남겼다.

“이대로 볼게요.”

보라가 손을 떼기 전에 도경은 촉수 끝을 확인했다. 망 사이로 빠져나가거나 접힌 것은 없었다.

그물 침대 가운데에서 작은 불빛이 희미하게 켜졌다.

도경은 먼저 겉을 살폈다. 둥근 몸의 한쪽 가장자리가 조금 오그라들어 있었다. 찢어진 곳은 보이지 않았고, 촉수에도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다른 아이와 부딪히거나 떨어진 적은요?”

“없어요. 저희가 이번 주에는 굴에도 안 들어갔습니다.”

여자가 바구니 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먹은 때와 빛이 흐려진 때가 적혀 있었다.

“둘 다 C급이고 밤에 채집해요. 이 애가 앞에서 비춰 주고요. 그런데 집에서도 불이 약해져서 쉬게 했어요.”

도경은 종이를 진료대 옆에 놓았다.

빛이 약해진 것은 사흘 전부터였다. 먹이를 남긴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얇은 장갑을 끼고, 망에 얹힌 몸의 옆면에 손끝을 댔다.

표면이 손끝에 달라붙었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그림이 떴다.

몸 한가운데의 밝은 자리를 둘러 얇게 짙은 부분이 있었다. 바깥쪽 가장자리에도 그 어두움이 이어졌다. 어디 하나 크게 다친 모습은 아니었다.

‘겉이 마른 건가.’

도경은 손을 떼고 눈앞의 몸을 다시 봤다. 오그라든 가장자리가 그림의 짙은 부분과 겹쳤다.

하지만 빛을 내는 자리 주위까지 어두운 까닭은 알 수 없었다.

■

도경은 확대경 아래로 망의 가장자리를 조금 옮겼다.

희고 부드러워 보이던 표면에 작은 주름이 있었다. 젖은 거즈를 가까이 대자 해파리가 몸을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 촉수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최근에 주변이 많이 건조했나요? 바람을 직접 맞았다든지요.”

남자가 여자를 봤다. 여자는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환기는 해요. 밖에 나가기 전에도 창문을 열고요.”

“물기는 평소에 어떻게 보충해 주세요?”

여자가 작은 분무기를 꺼냈다. 도경은 분무기와 안에 든 물을 확인하고, 평소 돌보는 방법을 들었다. 이전에는 그 방법으로 지냈다고 했다.

“겉이 조금 오그라들어 있어요. 우선 마른 부분을 적셔 보고 반응을 보겠습니다. 빛이 약해진 원인이 그것뿐인지는 더 봐야 해요.”

도경은 몸을 물에 담그지 않았다. 촉수가 닿는 망을 조금 적시고, 표면에는 고운 물기를 얹었다. 보라는 둥근 몸을 건드리지 않도록 분무 방향을 옆에서 맞췄다.

물방울이 망 아래로 떨어졌다.

도경은 시계를 보고 기록지에 처치한 때를 적었다. 확대경으로 가장자리를 다시 살폈다. 오그라든 부분이 조금 펴졌다.

그런데 몸 가운데의 빛은 밝아지지 않았다.

여자는 진료대 앞에서 손을 모았다.

“조금 기다리면 켜질까요?”

“변화를 더 볼게요.”

도경은 추가로 물을 뿌리지 않았다. 손끝을 다시 댔을 때 겉의 짙은 부분은 옅어졌지만, 가운데를 둘러싼 어두움은 남아 있었다.

잠시 뒤 빛이 더 줄었다.

여자가 몸을 숙였다. 남자의 손이 바구니 손잡이를 꽉 잡았다.

“아까보다 꺼진 것 같은데요.”

도경은 진찰등을 완전히 돌려 놓았다. 대기실에서 들어오는 빛도 보라가 가려 줬다.

그래도 해파리 가운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경은 젖은 거즈를 내려놓았다.

“맞아요. 수분을 보충했는데도 빛이 더 약해졌습니다. 겉이 마른 건 맞지만, 그게 주된 원인은 아닌 것 같아요.”

도경은 기록지의 첫 짐작 옆에 짧게 선을 그었다. 지우지는 않았다.

“집에서 지내는 자리부터 다시 여쭐게요. 창가인가요?”

“창가 반대편이요. 햇빛은 안 들어요.”

“그 자리는 시원한 편인가요?”

여자가 남자를 돌아봤다. 남자는 바구니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집이 너무 더워요.”

도경의 펜이 멈췄다.

“밤에도요?”

“네. 작은 방인데 배관이 지나가는 쪽이에요. 저희가 밤에 일하고 낮에 자니까 문도 닫아 두고요. 창문을 열면 잠깐 괜찮은데 닫으면 다시 더워집니다.”

여자가 분무기를 내려다봤다.

“그래서 말랐나 싶어서 물을 더 뿌렸어요.”

도경은 해파리의 가운데를 다시 봤다.

“평소 채집하는 곳은 어떤가요?”

“물이 고인 낮은 데요. 서늘합니다. 들어가면 겉옷을 입어요.”

“집에서 빛이 약해져도 그곳에 가면 괜찮았나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집에서만 흐린가 했는데, 밖에 데리고 나가면 켜져서요.”

도경은 펜을 내려놓고 손을 씻었다.

“보라 씨, 안쪽 입원 칸 비워 주세요. 바람이 몸에 바로 닿지 않게 하고요.”

■

보라는 입원실의 빈 칸에 깔려 있던 담요를 걷었다.

도경은 문 가까운 곳이 아니라 안쪽 자리를 골랐다. 그물 침대를 넣을 수 있도록 양옆에 받침을 세우고, 아래에는 촉수가 닿아도 걸리지 않는 천을 폈다.

남자가 침대 한쪽을 들었다. 도경이 반대쪽을 받쳐 천천히 옮겼다.

해파리의 몸이 망 안에서 조금 흔들렸다. 도경은 걸음을 멈춘 뒤 다시 움직였다.

입원 칸 안에 내려놓고 촉수부터 확인했다. 보라는 작은 온도계를 옆에 놓았다. 도경은 냉방 바람의 방향을 위로 돌리고, 방이 천천히 서늘해지도록 조절했다.

“차갑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더운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겁니다. 반응을 보면서 낮출게요.”

여자가 의자를 당겼다.

“옆에 있어도 되죠?”

“네. 다만 손으로 계속 만지지는 말아 주세요.”

여자는 무릎에 손을 얹고 앉았다. 남자는 바구니를 의자 밑으로 밀어 넣었다.

도경은 처음보다 낮아진 방의 온도를 기록했다. 몸의 가장자리와 촉수 움직임도 함께 적었다.

바로 빛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보라는 대기실로 나가 다른 환자의 접수를 받았다. 도경도 진료실과 입원실 사이를 오갔다. 돌아올 때마다 먼저 온도계를 보고, 망이 젖거나 처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다시 들어왔을 때 여자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지금 한 번 켜졌어요.”

도경은 입원 칸 앞에 앉았다.

몸 가운데에서 옅은 빛이 번졌다. 아까는 곧 사라졌던 빛이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남았다. 촉수 하나가 천에서 떨어져 천천히 움직였다.

도경은 손끝을 몸 옆에 댔다.

가운데를 둘러싸고 있던 짙은 부분이 옅어져 있었다. 겉의 주름도 더 펴졌다.

도경은 손을 떼고 보호자를 봤다.

“더위 때문에 몸이 처진 쪽으로 봐야겠습니다. 겉이 마른 것만 보고 먼저 물기를 보충했어요.”

남자는 입원 칸 안을 들여다봤다.

“물만 더 뿌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겉의 물기와 주변 온도를 같이 봐야겠어요. 오늘은 여기서 조금 더 지켜보죠.”

여자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무릎 위에 모았던 손을 펴서 남자의 손등에 잠깐 얹었다.

■

저녁 진료를 마칠 무렵, 보라가 입원실 불을 낮췄다.

도경은 칸 앞에서 기록지를 들고 있었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등불해파리의 둥근 몸 안에 켜진 빛이 또렷해졌다.

완전히 평소 같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낮처럼 깜박이다 꺼지지는 않았다.

“저 정도면 길은 볼 수 있어요.”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길 안 봐도 돼.”

도경은 두 사람에게 먹이를 조금만 내밀게 했다. 해파리의 촉수가 느리게 뻗었다. 먹이를 받아 몸 아래로 당긴 뒤, 둥근 몸이 망에서 살짝 떠올랐다가 내려왔다.

도경은 그 움직임을 기록했다.

뒤에서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보라가 돌두꺼비 셋을 낮은 사육 상자로 옮기는 중이었다. 젖은 바닥을 갈아 주려고 둔 상자 안에서 돌두꺼비들이 한쪽으로 모였다.

도경이 돌아보자 셋이 나란히 서 있었다.

모두 등불해파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앞에 선 하나가 몸을 올렸다가, 뒤의 두 마리도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보라는 마른 깔개를 든 채 멈췄다.

“자리 잡았네.”

도경은 상자가 입원 칸에 너무 가깝지 않은지 살폈다.

“저기서 보기만 하게 해 주세요.”

보라는 상자를 조금 뒤로 밀었다. 돌두꺼비 셋은 다시 앞쪽으로 걸어와 한 줄로 섰다.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경은 대기실로 나갔다. 표말순 할머니가 복동이의 줄을 잡고 창밖에 서 있었다. 다른 손에는 접은 세탁물 봉지가 들려 있었다.

문을 열자 복동이가 코부터 안으로 들이밀었다.

“우리 복동이가 이 앞에서 안 가네.”

할머니가 입원실 쪽을 보며 말했다.

“병원에 등불 켰네.”

“오늘 온 환자예요. 불을 낮춰 놓으니 잘 보이네요.”

할머니는 문턱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고개만 조금 내밀었다. 도경은 복동이의 줄이 문에 끼지 않도록 문을 더 잡아 줬다.

“그럼 쉬게 둬야지.”

복동이는 안쪽 냄새를 맡다가 할머니의 발 옆으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봉지를 들어 보인 뒤 천천히 길을 건넜다.

도경은 문을 닫고 입원실로 돌아왔다.

돌두꺼비 셋은 아직 그쪽을 보고 있었다.

■

보호자 부부는 집의 자리를 바꾸겠다고 했다.

남자가 휴대전화를 들고 서늘한 방으로 옮길 물건을 적었다. 여자는 도경이 짚어 준 내용을 종이 아래에 덧붙였다.

도경은 바구니를 가져와 안쪽의 공기와 바닥 상태를 확인했다. 이동하는 동안 바람이 곧바로 몸에 닿지 않도록 천을 덮되, 바구니 전체를 막지는 않게 했다.

등불해파리는 그물 침대에서 스스로 떠올랐다.

남자가 바구니를 아래에 받쳤다. 몸이 안으로 내려오는 동안 여자는 뚜껑을 옆에서 들고 기다렸다.

망 위에 몸이 부딪히지 않도록 천천히 닫았다.

“밤에 다시 빛이 줄거나 아래로 처지면 연락 주세요. 먹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져도요.”

“네. 내일 상태도 말씀드릴게요.”

여자가 바구니를 들었다. 이번에는 남자가 아래를 함께 받쳤다.

문 앞에서 도경은 바구니 안을 마지막으로 봤다. 천 사이로 옅은 빛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이 돌아간 뒤 보라는 그물 침대를 풀었다. 세탁망을 뒤집어 촉수에 묻었던 먹이 부스러기를 씻어 냈다. 옷걸이와 받침은 따로 닦아 말렸다.

“다음에도 쓰겠는데요.”

“네. 어떻게 받쳤는지 사진 남겨 둘게요.”

도경은 망의 가장자리와 지퍼를 접은 곳을 찍었다. 치료에 쓴 도구 칸에 세탁망이라고 적었다가 옷걸이 받침도 덧붙였다.

기록지의 진단 칸으로 펜을 옮겼다.

맨 위에는 피부가 말라 빛이 약해졌다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수분을 보충한 뒤 겉의 주름은 줄었으나 빛은 더 약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도경은 펜 끝을 종이 위에 댄 채 멈췄다.

‘이번 주에만 두 번 틀렸다.’

입 뒤에 걸린 것의 위치를 바로잡은 일과, 오늘 겉이 마른 것을 원인으로 여긴 일이 떠올랐다.

‘그림은 어디까지 맞나.’

도경은 처음 적은 줄을 지우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짐작이었다고 옆에 적고, 서늘한 입원 칸으로 옮긴 뒤의 변화를 그 아래에 이어 썼다.

『환자: 등불해파리(머리 크기 · 주의)』

『진단: 더운 환경으로 인한 활력 저하와 발광 감소, 겉면 마름 동반』

『처치: 겉면 수분 보충 후 반응 확인, 서늘한 입원 칸에서 온도 조절과 관찰, 사육 환경 변경 안내』

(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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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경은 서류를 끝까지 넘긴 뒤 먹이 항목이 있는 쪽을 다시 펼쳤다. 빈칸은 그대로였다.“관리원에 먹이 자료도 부탁해 볼게요. 지금은 수액부터 마저 보고요.”보라는 간식 서랍 위에 올려 둔 봉지를 치웠다. 대신 작은 메모지를 붙이고 이끼곰 먹이라고 적었다.입원 칸에서 담요를 긁는 소리가 났다. 새끼 이끼곰이 앞발을 당겨 턱 밑에 놓고 있었다. 도경은 그 앞에 앉아 수액 줄이 눌리지 않았는지 살폈다.“조금 움직이네요.”“네. 먹을 수 있을 만큼 기운이 돌아오는지 봐야죠.”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다음 관찰 시간을 적었다.■4월 10일(금), 보라가 작은 접시를 들고 입원실에서 나왔다.접시 한쪽에는 얇게 자른 사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쪽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에 물기 묻은 자국이 남았다.“사과 먹어요.”도경은 접시를 내려다봤다.“스스로요?”“처음엔 냄새만 맡더니 앞발로 가져갔어요. 조금만 줬어요.”관리원에서 보내 준 사육 자료에는 사과를 포함한 몇 가지 과일이 적혀 있었다. 앞서 내민 먹이는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았다.이끼곰은 담요 위에 배를 대고 있었다. 턱 아래에 사과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도경이 거즈를 가까이 가져가자 코가 먼저 움직였다.“이건 먹는 거 아니야.”입가를 닦은 뒤 배를 가볍게 살폈다. 호흡은 고르게 이어졌고, 손이 닿자 앞발을 조금 옮겼다. 창고에서처럼 턱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보라가 남은 사과를 담은 그릇을 들어 보였다.“더 주면 먹을 것 같은데요.”“조금 기다려 보죠. 먹고 나서 불편해하지 않는지도 봐야 해요.”보라는 그릇을 이끼곰의 눈에 띄지 않는 선반으로 옮겼다.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도경은 손을 씻고 진료실로 나왔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작은 이동 상자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옆에는 책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붙어 서 있었다.상자는 투명한 덮개에 공기구멍이 나 있었다. 안쪽 천 위로 얇은 날개 하나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유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9화. 털이 빠지는 새끼 이끼곰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8화. 꼬리가 잘린 물결뱀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7화. 철창에 갇혀 온 돌두꺼비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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