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평범한 갈색머리에 에메랄드 눈빛을 한 앙증맞은 입으로.
‘견고한 장벽에 불순물이 섞였다.’라고 중얼거리던 이상한 시종.
처음엔 몰랐지만 이상했다. 자꾸 눈길이 갔다. 특히 눈이.
그 눈이 지나치게 맑았다. 무엇보다 가까이 갔을때 아주 희미하게 익숙하게 달콤한 우유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 그래서 넘겼다.
그런데 한달 뒤 황궁 북쪽 정원에서 갈색 머리가 백금빛으로 변했다.
에메랄드 눈동자가 청색으로 돌아왔다. 빛이 밤을 뒤덮으며
*“엄마.”둘만의 낭만은 정확히 삼 분 뒤 끝났다.나는 고개를 돌리자 테라스 문에는 작은 실루엣 하나가 생겼다.바로 루시아였다.한 손에는 카루 인형을 들고 다른 손에는 이불 끝을 들고 있었다.“왜 안 자?”“잠 안 와.”“유모는?”“잔다.”“네가 먼저 재웠어?”“응.”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우는 건지. 루시아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엄마랑 잘래.”“그래.”내가 말하는 순간 카엘루스가 말했다.“안 돼.”루시아가 아빠를 봤다.“왜.”“네 침실이 있잖아.”“싫어.”“루시아.”“엄마랑 잘 거야.”“
황궁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엄마아!”루시아가 내게 달려왔다. 나는 아이를 번쩍 안으며 물었다.“잘 놀았어?”“응!”“뭐 했어?”“고양이 샀고! 사탕 먹었고! 공연 봤고!”루시아가 엄청 신나게 말했다.“그리고?”루시아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아빠가 길에서 나 잃어버렸어!”나는 천천히 카엘루스를 바라보자 그가 눈을 감았다.“……그건.”“카엘루스.”“잠깐이었다.”“애를 잃어버렸어요?”“루시아가 먼저 손을 놓은 거다.”“아빠 나한테 소리도 질렀어.”그러자 빠르게 카엘루스가 말을 막았다.“사과했다.”루시아가
그 뒤로 부녀는 사탕도 먹고 거리 공연도 봤다. 길 가다 만난 작은 분수에서 동전도 던지고 기도해보았다. 그리고 루시아는 끊임없이 말했다.“아빠.”“왜.”“저 사람은 왜 저래?”“아빠.”“왜.”“하늘은 왜 파래?”“아빠.”“왜.”“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카엘루스가 멈췄다. 이 질문은 뭔가 대답해 줘야만 할 것 같았다.“왜 궁금하지.”“그냥.”“…….”“엄마가 아빠 미쳤다고 맨날 말하잖아.”“…….”집에 가서 이야기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그래도 좋아하니까 결혼한 거겠지.”루시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아빠 좋아.”카엘루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그래.”“엄마가 더
다음 날 아침.황실 교육 일정이 전부 뒤집혔다.“뭐라고요?”황실 교육원장이 놀란 얼굴로 카엘루스를 바라봤다.“황녀 전하의 일정을 절반으로 줄여라.”“하, 하지만 폐하.”“오전 두 시간.”“그 정도로는 정규 황족 교육 과정을 소화하기 어렵습니다.”“그럼 정규 과정을 바꿔.”“예?”“네 살짜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교육이라면.”카엘루스는 태연했다.“교육이 잘못된 거겠지.”교육원장의 입이 닫혔다. 나는 옆에서 차를 마시며 웃음을 참았다. 카엘루스의 시선이 날 향했다.“왜 웃지.”“아무것도.”“어제는 나보고 틀렸다더니.”“그래서 고쳤잖아요.”“…….”“잘했어요.”카엘루스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칭찬받는 기
“공부하기 싫어.”정확히 사흘 뒤 루시아는 다시 사고를 쳤다.이번에는 보물고가 아니라 바로 황녀궁 교육실이었다.나는 교육실 문을 열자마자 당황했다.“……이게 뭐야.”책이 날아다녔다. 정말로 공중에 떠 다니고 있었다.제국사 책과 예법서. 고대어 교본에 종이 수십 장이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중이었다. 교육 담당 궁정 마법사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황후 전하…….”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저는 분명 아무런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알아요.”범인은 따로 있다.바로 루시아. 내 딸이었다.두 손을 허리에 얹고 서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바로 뀨. 녀석이 푸른 눈에서 마력이 반짝였다.“…&helli
황궁에는 절대로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첫 번째. 제국의 국새와 역대 황실 보물이 보관된 황실 보물고.두 번째. 전쟁과 외교에 관련된 기밀문서가 쌓여 있는 황제의 비밀 집무실.세 번째. 황궁 지하 깊숙한 곳에 봉인된 침묵의 기록관.그리고 오늘 아침. 여기에 새로운 장소 하나가 추가되었다.바로. 제국의 하나뿐인 황녀, 루시아 아르카디온의 침실.이유는 간단했다.“황녀 전하가…….”시녀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사라지셨습니다.”“…….”나는 찻잔을 든 채 굳었다. 맞은편에서 아침 신문을 읽던 카엘루스의 손도 그대로 멈췄다.아주 짧은 고요였다.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시 한번 말해볼래?”“화, 황녀 전하께서 침실에 계시지 않습니다.”“언제부터?”&ldqu
[수도 외곽 지하, 잊혀진 신전]“……가져오지 못했다?”거대한 여신상 아래 핏빛 휘장 너머에서 흘러나온 고요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지독한 공포였다.바닥에 이마를 처박고 있던 소년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변명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했다.“죄, 죄송합니다… 상점가에서 누군가와 강하게 부딪혔는데, 아무래도 그때 흘린 모양입니다. 당장 돌아가서 찾아오겠습니다!”스윽—.붉은 휘장이 걷히며, 짙은 어둠 속에서 감히 봐서는 안 될 ‘그분’이 친히 모습을 드러냈다.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와 메마른 잿빛 머리카락 그리고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창문으로 뛰어내릴까?’머릿속에서 빨간 비상벨이 미친 듯이 울려 댔다.주머니 속 은색 원통이 족쇄처럼 느껴졌다.그 순간, 나는 황궁 도서관에서 몰래 탐독했던 수많은 로판 속 생존 법칙 하나를 필사적으로 끄집어냈다.[법칙 1. 최선의 방어는 압도적인 뻔뻔함이다!]쾅—!“오라버니이!!!”집무실 문이 부서져라 열리고 씩씩대며 내가 튀어나오자,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조금 전까지 부하를 압박하며 반란군 수괴의 포스를 풍기던 둘째 오빠 카시안은 내 화려한 등장에 눈알이
문을 열려던 찰나, 아주 미세하게 열린 문틈 사이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네 실수가 불러올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너는 정녕 모르는 모양이군.”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내가 아는 목소리가 아니었다.언제나 능글맞게 실실거리던 카시안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살벌한 억양이었다.숨을 죽이고 문틈으로 시선을 밀어 넣었다.거대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서 있는 카시안의 입매는 칼날처럼 서늘하게 굳어 있었다.그 앞에는 검은 로브를 쓴 길드원 하나가 덜덜 떨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가씨, 그 물건은 뭔가요? 모양이 참 독특하네요. 혹시 타국에서 온 귀한 향수병일까요?"푸딩 생각에 잔뜩 신이 난 릴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어… 글쎄. 그런가 봐. 주인을 찾아주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으니 일단 내가 가지고 있을게."나는 애써 태연한 척 대답하며 은 원통을 만지작거렸다.기분 탓일까?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 표면에서 기분 나쁜 진동이 멈추지 않았다.무의식 중에 내 안의 이능력이 원통 표면에 살짝 스친 순간이었다.찰칵—!아주 작은 파열음과 함께 매끄럽던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