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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17.07.2026 02:28:15

새벽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어둑한 조명 아래, 소라는 깊은 숨을 내쉬며 눈동자를 굴렸다.

낯선 천장, 낯선 분위기였지만 곁에 있는 온기만은 익숙했다.

고개를 돌려 눈을 감은 찬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피곤한 듯 한쪽 팔을 이마 위로 올린 채 누워 있었다.

'좋았어... 분명 좋았는데...'

한번도 예상 하지 못했던 길을 선택한 자신. 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묻지 않았다. 자신도 답하지 않았다. 서로를 원했고, 그래서 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냥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이불을 조금 더 끌어올리던 찰나, 찬희가 잠이 덜 깬 목소리를 내뱉었다.

“최소라.”

“응?”

“이리와.”

그의 팔이 또 다시 소라를 감싸 안았다.

소라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며 조심스레 그의 품속으로 몸을 기울였다.

“잘했어.”

피곤한 기운이 싹 걷힌듯 이불을 훽 걷어내고 다리 사이에 들어앉아 자세를 잡는 찬희.

"쉬었으니까 한판 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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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19화

    이현의 움직임은 한없이 느리고 섬세했다. 마치 은하가 내리는 속도에 정확히 맞추기라도 하듯 단 하나의 동작에도 질문이 담겨 있었고, 은하가 허락할 때에만 다음으로 나아갔다.“지금 괜찮아?”"으응..."“강은하… 조금만 더…”“천천히 해줘… 천천히…”서로의 체온이 완전히 포개지고, 마침내 두 사람의 숨이 하나의 숨으로 이어졌다.그 밤, 그들은 사랑을 몸으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건 가장 조용하지만 온전한 교감이었다.***다음날 아침, 햇빛이 커튼 틈 사이로 살짝 스며들었다. 은하는 새하안 이불 속, 포근한 온기에 둘러싸인 채 눈을 떴다.눈부신 빛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따스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옆에서 평온한 얼굴로 잠이 들어 있는 이현의 얼굴.은하는 자는 모습도 참 사랑스럽다, 그리 생각하며 아무 말도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어났어?”이현의 입술이 움직이더니, 잠에 덜 깬 목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왔다.은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현은 웃었다. “아침 먹자.”“응.”주방엔 갓 구운 토스트 냄새와 따뜻한 커피 향이 조용히 퍼지고 있었고, 식탁 위엔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흔적들이 놓여 있었다. 잼 묻은 나이프, 반쯤 비운 머그잔,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지금이 가장 좋다는 그 똑같은 표정까지."너는 왜 자다 일어나도 예뻐?""하지 마, 나 느끼한 거 별로야.""거짓말. 귀는 또 빨개졌는데.""씨이."식사를 끝낸 은하가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릇들을 정리하려 하자, 어느새 다가온 이현이 은하를 번쩍 안아 식탁 위로 올려 앉혔다.은하가 당황한 듯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톡톡 때렸다.“야, 백이현! 지금 아침이야!”“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그럼 뭐가 중요한데?”그의 손바닥이 등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너 왜 내 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냐? 나 또 설레잖아.”“음… 남자들은 이런 게 로망이라던데?”“뭐냐? 완벽하게 노린거였네?”은하의 볼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셔츠 소매는 손등까지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18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하는 이현이 가져온 찻잔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오늘은 술 안마셔?”“어차피 너, 잘 먹지도 못 하잖아.”“나 술 잘마시거든?”안다. 생각보다 주량이 쎄다는 사실은. 문제는 취한 다음이라고. 이 바보야.“사실 너 술 마시면, 애교가 많아져서 좀 힘들어."내, 내가 언제!?""그리고, 그 박찬희네 집에 들어갔을 때 보였던 술병들도 떠올라서 짜증 나고.”“백이현….”이현은 덤덤하게 말했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엔 그날의 떨림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요즘은 정말인지, 초록색의 소주병만 봐도 분노가 치밀어 시선을 돌려버린다.“몰라, 네 앞에서 술 마시는 게 싫어졌어.”“바보, 트라우마는 씩씩하게 이겨내는 거란다. 나처럼.”“멍청아. 사람을 몇 번이나 놀래키는 거야 진짜.”“그래도, 여행까지 왔는데 진짜 안마셔?”이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응.”은하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끝을 늘어뜨렸다.“난 너랑 마시고 싶은데….”“안돼.”“딱 한 잔만 하자! 응? 으응? 응?”아씨, 이제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애교를 막 부리네. 확 잡아먹을까.“그럼 딱 와인 반 잔만.”“응응응! 우리 여기까지 온 것도, 충분히 건배할 이유잖아!”이유도 꽤나 그럴싸했다.이현의 손에는 결국 와인 병이 들렸다.찬란하게 붉은 빛이 잔 안에서 돌았고, 서로의 잔이 부딪히는 소리에는 동시에 웃었다.“1년 전에는 몰래 홀짝 홀짝 마시고 취하더니.”이현이 먼저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자, 은하가 웃음을 꾹 참으며 잔을 바라봤다.“진짜 궁금했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하도 흐느적거려서, 내가 2층까지 데리고 간 거 알아? 몰라?”“…설마.”“진짜거든. 핵 멍청아.”또 한 번, 명쾌한 ‘짠’ 소리가 맑게 울렸다.그리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은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 맞다, 잠깐만!”“어디 가?”“잠깐, 뭐 좀 가지러.”은하는 미소만 남긴 채 방으로 향했고, 뒷모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17화

    두 사람은 따뜻한 티와 함께 한참을 투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이현의 손이 입가에 묻는 쿠키 부스러기를 털어줄 땐 얼굴이 달아 올랐고, 핸드폰 화면을 함께 내려다보며 낄낄 웃을땐 영락없는 청춘이었다.그리고 카페를 나서기 전, 은하가 노부부를 향해 조심스레 그림 하나를 건넸다.“이거… 감사한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이에요.”은하의 손끝엔 전날 밤부터 정성껏 그린 라벤더 한 다발이 스케치북을 한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진한 보라, 연보라, 그리고 부드러운 초록빛 줄기. 그 위엔 조심스럽게 묶인 리본과, 그 안에 작게 적힌 손글씨 한 줄이 담겨 있었다.[당신들이 지켜주신 향기를 잊지 않겠습니다.]노부인이 그림을 받아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이거… 직접 그린 거니?”“네. 라벤더는 저에게도 아주 소중한 추억이거든요.”노부부는 한동안 말없이 그림을 바라보더니, 아주 여러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참 예쁘구나. 그림도, 마음도.”은하의 그림은 바로 카페 벽 한가운데에 걸렸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쪽,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말이다.소중한 마음을 건네 받고 카페를 나서는 길. 은하가 이현에게 팔짱을 끼었다.“있잖아, 받는 마음보다 주는 마음이 더 행복하다는 건 진짜인가 봐.”"응?""그냥, 그렇다고. 바보야."“어이구. 진짜 다 컸네. 내 새끼.”바닷가엔 찬 바람이 잔잔히 불었고, 카페에서 몸이 밴 라벤더 향이 흐드러지게 스며들었다.***저녁에 되자 이현과 은하는 간단히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자쿠지로 향했다.따뜻한 물이 한 가득 채워진 자쿠지. 수면 위로는 새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주변은 조용했고, 오직 파도 소리만이 멀리서 들려왔다.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민망한 분위기가 느껴졌는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웃기다. 작년에는 여기 넷이서 앉아 있었잖아.”이현이 웃으며 대답했다.“그거 알아? 그날 이 자쿠지에서, 나 한국대 입학하기로 결심했잖아.”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대화들이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16화

    골목 어귀, 아늑한 카페 옆 벤치.따뜻한 햇살 아래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너네는 실감나냐? 우리가 곧 대학생이래.”“그러니까 입학 전에 후다다닥 놀자고!”“좋아.”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세 사람은 한강 공원으로 향해 신나게 킥보드를 탔다. 하지만 얼마 가지도 못해 중심을 잃고 꽈당 넘어진 태하.이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경찰대 낙오자 발생, 실화냐?”“아… 요즘 운동을 너무 해서 힘이 없어서 그래. 힘이.”“네, 지금 막 경찰의 입에서 변명이 흘러나옵니다. 기록 요망입니다.”“그만해라. 백이현.”두 사람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던 은하가 태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태하야, 괜찮아?”깜짝 놀란듯 눈을 키웠던 태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은하의 손을 붙잡았다.“응. 괜찮아. 너 웃으니까 좋다.”“나도 좋아. 너랑 백이현이 있어서.”은하가 힘든 시간을 빠르게 이겨낸 건, 묵묵히 곁을 지켜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 모두에겐 마치 선물처럼 합격이라는 소식이 찾아왔다. 그날 한강의 윤슬은, 마치 그들을 축복하듯 오래도록 잔잔하게 반짝였다.***이현과 은하는 단 둘이 여행길에 올랐다.우주도 이번 만큼은 두 사람의 여행을 허락했다.걱정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두 사람 다 성인이고, 입학 전 둘만의 추억을 쌓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고속도로 위, 창밖엔 초록빛 들판이 펼쳐졌고 은하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조금씩 까딱거리고 있었다. "귀여워, 그렇게 좋아?""당연히 좋지.""좀 자둬, 한참 걸리니까.""하나도 안 졸려."푸우, 푸우우─그건 완벽하게 골아 떨어진 은하의 입에서 새어 나온 소리였다.몇 시간 후, 이현의 차가 익숙한 장소에 멈춰 섰다. 작년 겨울 방학.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놀러왔던 풀빌라를 다시 찾은 것.은하가 풀빌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그때, 진짜 진짜 좋았는데.”“너 정태하랑 정민희 없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15화

    거실은 조용했다.낮게 켜진 스탠드 조명 아래, 네 사람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웠다.식탁 위에는 따뜻한 물, 약 봉지, 그리고 차가운 손을 녹이려다 식어버린 유자차가 놓여 있었다.누구도 말이 없던 중, 이현이 무거운 정적을 깨듯 은하를 바라보며 힘겹게 웃어 보였다.“강은하. 언제 이렇게 단단해진 거야?”태하 역시 마찬가지였다.“진짜. 그 무서운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어.”그리고 우주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은하가 그 떨리는 어깨를 바라보며 눈을 껌뻑거렸다.“오빠… 또 우는 거야?”“오빠 정말… 얼마나 무서웠는줄 알아?”은하는 그런 우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나도 무서웠어. 케이블 타이에 손목이 묶이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근데, 누군가 반드시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믿었는데 진짜로 문이 열렸어.”은하의 시선이 이현과 태하를 향했다.“고마워. 백이현. 그리고 정태하.”“더 빨리 못 가서… 미안해.”이현은 여전히 미안한 마음에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태하의 대답은 달랐다.“아니거든? 더 늦었으면 진짜로 큰일날 뻔 했던 거지.”이현이 고개를 돌려 태하를 바라봤다.태하의 말이 이어졌다.“딱 맞게 간 거야. 타이밍 좋게, 아주 기가 막히게.”은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정말로 완벽한 타이밍이었어.”그제야 이현의 눈빛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잠시 후, 소식을 들은 민희 역시 은하의 집을 찾았다.민희는 은하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며 품안에 와락 감싸 안았다.“은하야… 미안해… 내가…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민희야. 나 진짜 괜찮아.”민희는 이 모든 일이 자신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자책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어깨를 들썩였다. 모두의 얼굴엔 말 못할 죄책감과 안도, 그리고 아직은 남아 있는 충격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얼마 뒤, 한국대학교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14화

    친구들과 소라는 우왕좌왕 하면서도 각자가 맡은 역할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누군가는 카메라를 조정했고 누군가는 조명을 세팅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케이블 타이를 집어 들었고, 소라는 멱살이 붙잡힌 은하의 옆으로 다가와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너무 겁먹진 마. 나도 처음엔 무서웠는데, 자꾸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코트가 바닥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이제야 소라가 내뱉은 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카메라의 용도를 알아챈 순간, 은하는 더 이상 공포를 숨기지 못했다. “최소라… 제발 그만 해…”“지랄하네, 이제 좀 무서운 가봐?”한 친구가 소라를 향해 케이블 타이를 건네주었다.소라는 주저 없이 은하의 손목을 케이블 타이로 묶어버렸다.“하지 마...!”찬희는 그런 은하를 침대쪽으로 밀친 뒤, 허벅지 위에 올라타 체중으로 짓눌렀다."백이현이랑 벌써 했냐? 아니면 아직 아다냐?"거친 손이 티셔츠 안으로 막 파고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쾅-!방 안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경찰입니다! 모두 움직이지 마세요!”무장한 경찰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그들 사이로 숨을 몰아쉬는 한 남자가 뛰어들었다. 백이현. 그의 시야가 은하에게 꽂혔다.침대에 누워 가쁜 몰아쉬고 있는 은하, 그리고 손목에 묶인 케이블 타이, 그 위에 올라탄 개새끼 한 마리. 찬희는 잠시 움찔할 뿐 손을 놓지 않았다.이현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한 걸음에 다가가 찬희의 손목을 거칠게 비틀었다.“놔, 더러운 새끼야.”“악!”찬희의 비명이 터졌고, 그제야 은하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백이현.”“됐어. 이제 괜찮아.”경찰들은 찬희 일당을 하나 둘 제압하기 시작했다.바닥에 흩어진 케이블 타이와 카메라는 증거물로 확보되었고, 소라는 멍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모든 소란 속에서, 이현의 눈에는 은하밖에 보이지 않았다.“나 봐봐, 괜찮아? 숨 쉴 수 있어?”태하 역시 황급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은하야 괜찮아? 다친 데 없어?”은하가 고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4화

    태하는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동시에 확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현과 은하 사이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시선은 은하를 먼저 스쳤다. 짧고도 묘한 무게감이 담긴 눈빛은 곧장 이현을 향해 차갑게 바뀌어갔다.“그만 좀 해.”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현은 태하를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한쪽 입술을 비틀며 지어 올리는 미소,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 학생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이현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3화

    시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강우주.조용한 진료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업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 하다 가도, 다시금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은하는 괜찮겠지….”정신과 의사인 우주. 사실 그가 정신 의학과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동생, 은하 때문이었다.은하가 9살이던 그날 이후. 그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했던 사건이 지나간 후, 은하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활기라곤 온데간데 사라졌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으며, 때때로 보이는 불안한 모습과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들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화

    이번에도 말없이 선생님을 따라 걸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몇몇 학생들의 흘깃거리는 눈초리가 느껴졌다.아무리 고개를 숙이고 걸어도, 모든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첫 날이라 그래, 이것도 내일이면 괜찮아 질거야.'2학년 3반 교실 앞에 다다르고 나서야 작은 목소리를 냈다.“저기… 선생님.”“응?”“전학생 소개는 선생님께서 이름 정도만 해주시고요… 저는 바로 자리에 앉고 싶은데요.”선생님은 은하의 표정을 살피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알겠어. 부담 느끼지 말고 편하게 있으면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화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는 어느 가을날, 희뿌연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은하는 옷장에 걸린 새 교복을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걸려 있는 교복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속삭이는 듯했지만, 은하에게는 그저 낯설고 무거운 천 조각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벌써 세 번째 전학. 이제는 익숙해야 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이 순간은 낯설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고등학교 생활은 아직도 1년도 넘게 남아있었다.학교를 옮길 때마다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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