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반죽하는 사람: 할머니는 식빵을 반 근씩 잘라 팔았어요. 혼자 사는 사람은 한 근 다 못 먹는다고. 반 근이면 이틀이래요. 저는 그 칼질을 아직 못 따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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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월요일 밤 열 시. 반달FM 4층 회의실.
다온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마커 뚜껑을 열었다. 한도윤 PD와 금정란이 탁자에 앉아 있었다. 금정란 앞엔 보온병, 한도윤 앞엔 서류철.
“코너 하나 만들고 싶어요.”
다온이 화이트보드에 썼다. 큰 글씨로.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우리 방송 듣는 사람들, 게시판 보면 다 새벽에 일하는 사람이에요. 간호사, 택시 기사, 경비원, 편의점, 물류 센터, 청소하시는 분. 그분들 사연을 하루에 하나씩 길게 읽어 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손이 뭘 만지고 있는지.”
한도윤이 서류철을 덮었다.
“그걸로 청취율이 올라?”
“모르겠어요. 근데 지금 듣는 사람들이 친구한테 말할 거예요. 「야, 어제 라디오에 우리 같은 사람 나왔어.」 그럼 그 친구도 새벽에 일하는 사람이니까.”
금정란이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보리차 냄새.
“첫 사연은 누구로 할 건데?”
다온은 대답하기 전에 가방에서 파일을 꺼냈다. 「반죽하는 사람」 파일. 마흔다섯 장. 금요일 새벽에 온 사연이 맨 위에 있었다. 「없어지지 마세요.」 다온이 형광펜으로 다섯 줄을 그은.
그리고 그 밑에, 어젯밤 늦게 온 새 사연. 식빵 반 근.
“이분이요. 반죽하는 사람.”
금정란이 파일을 받아 들었다. 안경을 고쳐 쓰고 읽었다. 한참. 그리고 웃었다.
“반 근 식빵. 옛날엔 동네 빵집이 다 그렇게 팔았어. 혼자 사는 사람한테는 반 근.”
“선생님도 사 보셨어요?”
“나도 혼자 살잖아. 30년 전부터.”
금정란이 파일을 돌려줬다.
“해 봐. 내일부터.”
한도윤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서류철을 다시 열어 뭔가 적었다. 「신규 코너 — 화요일부터」.
≈
10월 21일 화요일 새벽 두 시 사십 분. 반달빵집.
태오는 식빵 반죽을 틀에 넣고 있었다. 한 근짜리 틀 열두 개. 반죽을 둥글게 말아 세 덩이씩 나란히 넣었다. 발효가 끝나면 세 봉우리가 솟는다. 할머니 식빵 모양이었다.
라디오에서 금정란 목소리가 흘렀다.
“오늘부터 새 코너를 시작해요. 이름은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지금 이 시간에 일하고 계신 분들 이야기를 하나씩, 천천히 읽어 드리려고 해요. 우리 다온 작가가 만든 코너예요.”
태오는 반죽을 쥔 채 멈췄다.
“첫 번째 분은… 반죽하는 사람이에요.”
태오 손에서 반죽이 미끄러졌다. 틀 가장자리에 걸렸다. 태오는 그걸 밀어 넣지 않고 라디오를 봤다.
“이분은 새벽 두 시에 반죽을 시작하신대요. 지금 이 시간에도 반죽하고 계시겠죠. 오늘 보내 주신 사연 읽어 드릴게요.”
금정란이 읽었다. 할머니 식빵. 반 근. 혼자 사는 사람은 한 근 다 못 먹는다고. 반 근이면 이틀. 그 칼질을 아직 못 따라 한다고.
그런데 금정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분 사연을 1년째 받고 있는데요. 우리 다온 작가가 이분 사연을 따로 파일에 모아 둔대요. 마흔다섯 통. 저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작가님이 파일 표지에 이분 이름을 써 놨더라고요. 반죽하는 사람.”
태오는 작업대를 짚었다. 밀가루가 손바닥에 묻었다.
‘파일.’
마흔다섯 통. 태오가 보낸 숫자였다. 태오는 세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세고 있었다.
“반죽하는 사람님. 지금 듣고 계시면, 오늘은 반 근 한번 잘라 보세요. 할머니만큼 안 돼도요. 반 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금정란이 웃었다. 그리고 노래가 나왔다.
태오는 한참 서 있었다. 반죽 한 덩이가 틀 가장자리에 걸린 채로.
≈
새벽 네 시. 생방송이 끝났다.
다온은 작가석 의자에 등을 기댔다. 휴대폰을 봤다. 청취자 게시판. 새 글 열둘.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좋아요」 「반죽하는 사람 오늘 반 근 잘랐을까」 「저도 반 근 사고 싶어요 어디 빵집이에요」 「간호사인데 저도 사연 보내도 돼요?」 「물류 센터 야간입니다. 우리 얘기도 해 주세요」.
열둘. 지난주 이 시간엔 셋이었다.
다온은 휴대폰을 가슴에 대고 숨을 내쉬었다.
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나왔다. 서류철 대신 종이컵 두 개를 들고. 하나를 다온 책상에 놓았다. 우유였다. 따뜻한.
“게시판 봤어?”
“네.”
“열둘이야.”
“네.”
“…청취율은 아직 몰라.”
“알아요. 그래도 해 볼 거예요.”
한도윤이 자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다온 책상 위 「반죽하는 사람」 파일을 봤다.
“그 사람한테 고맙다고 메일 하나 보내.”
“제가요?”
“작가가. 코너 첫 손님이잖아.”
≈
다섯 시 사 분. 반달빵집.
다온은 문을 밀었다. 딸랑. 따뜻한 공기와 빵 냄새가 얼굴에 닿았다.
진열대 앞에 섰다. 소금빵 스물네 개. 단팥빵. 크루아상. 그리고 식빵 칸에 한 근짜리 식빵 열두 개. 세 봉우리가 솟은. 비닐에 싸여.
다온은 식빵을 봤다. 오늘 방송에서 읽은 사연이 생각났다. 반 근.
혼자 사는 사람은 한 근 다 못 먹는다. 다온도 그랬다. 식빵을 한 근 사면 늘 반은 곰팡이가 피어 버렸다. 그래서 3년 동안 식빵을 사지 않았다. 소금빵만.
“식빵 반 근도 파세요?”
다온이 물었다. 계산대 쪽으로.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안 팔아요. 한 근만.”
“아.”
다온은 식빵을 봤다. 그리고 웃었다. 혼잣말로.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반 근 파는 빵집도 있대요. 할머니가 반 근씩 잘라 주셨대요. 혼자 사는 사람은 한 근 못 먹는다고.”
태오가 계산대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소금빵 주세요」 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태오가 움직였다. 진열대로 와서 식빵 한 근을 집었다. 비닐을 벗겼다. 계산대 옆 도마 위에 올렸다. 서랍에서 빵칼을 꺼냈다. 길고 톱니가 있는.
태오가 식빵 가운데에 칼을 댔다. 세 봉우리 중 가운데 봉우리 한복판. 칼날을 앞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톱니가 빵을 썰었다. 사각사각.
다온은 그걸 봤다. 큰 손이 칼을 쥐고 있었다. 왼손은 식빵을 가볍게 눌렀다. 손등에 흉터 두 줄이 보였다. 하얗게.
칼질이 조금 비뚤어졌다. 가운데 봉우리가 반으로 갈리면서 한쪽이 조금 컸다.
태오가 칼을 내려놓았다. 두 덩이를 봤다. 큰 쪽과 작은 쪽.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할머니처럼은 안 되네요.”
작게 말했다. 혼잣말이었다.
다온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큰 쪽을 가리켰다.
“이거 주세요. 큰 거.”
태오가 큰 쪽을 비닐에 넣었다. 봉투에 넣었다. 계산대에 올렸다.
“이천팔백 원이요.”
“어? 반 근 파시네요?”
다온이 웃으며 말했다. 태오가 다온을 봤다. 처음으로 똑바로.
“오늘부터요.”
≈
다온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태오는 도마 위에 남은 작은 쪽 식빵을 봤다. 반 근보다 조금 작은. 칼 자국이 비뚤었다.
‘오늘부터요.’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몰랐다. 반 근을 팔 생각은 없었다. 한 근 틀에 구운 식빵을 반으로 자르면 남은 반을 팔아야 했다. 누가 반쪽짜리를 사 갈까.
그런데 그녀가 웃었다. 「반 근 파시네요?」 하고.
태오는 남은 반쪽을 비닐에 넣었다. 매직으로 비닐 위에 썼다. 「반 근 2,800원」. 진열대 식빵 칸 맨 앞에 놓았다.
다섯 시 십오 분. 딸랑.
“총각, 단팥빵 둘!”
오 기사님이 들어오다가 진열대 앞에서 멈췄다. 식빵 칸. 「반 근」 비닐.
“어? 반 근? 이거 순례 누님 하던 거잖아. 총각 이제 이거 해?”
“…오늘부터요.”
“이야, 라디오 듣고 했구나! 오늘 반죽하는 사람 사연에 반 근 나왔잖아.”
오 기사님이 반 근 식빵을 집었다.
“이거도 줘. 우리 집사람이 혼자 아침에 먹게. 나 새벽에 나오니까.”
태오는 반 근을 봉투에 넣었다. 단팥빵 둘과 함께. 오 기사님이 계산하며 말했다.
“총각, 근데 이거 칼질이 좀 삐뚤다.”
“…알아요.”
“순례 누님은 자 대고 자른 듯 반듯했는데.”
“알아요. 연습할게요.”
오 기사님이 웃으며 나갔다. 태오는 빵칼을 집어 들었다. 칼날을 봤다. 할머니 칼이었다. 손잡이가 할머니 손 모양으로 닳아 있었다. 태오 손에는 조금 작았다.
≈
302호. 다온은 책상에 식빵 반 근을 올려놓았다.
비닐 너머로 자른 면이 보였다. 비뚤었다. 한쪽이 위로 조금 솟고, 한쪽이 내려가 있었다. 할머니만큼은 안 된다는 그 칼질.
다온은 식빵을 한 장 뜯어 먹었다. 손으로. 결대로 길게 찢어졌다. 부드럽고 고소했다. 우유 맛이 났다.
먹으면서 노트북을 열었다. 메일. 「두 시의 편지 사연함」 계정. 작가가 관리하는.
받은 메일함 맨 위에 「반죽하는 사람」. 어젯밤 온 식빵 사연. 다온은 그걸 열고 답장 버튼을 눌렀다.
1년 동안 한 번도 답장한 적이 없었다. 사연자에게 답장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방송으로 답하니까. 그런데 한도윤이 말했다. 「코너 첫 손님이잖아.」
다온은 썼다.
「반죽하는 사람님께. 「두 시의 편지」 작가 서다온입니다. 오늘 새 코너 첫 사연으로 소개해 드렸어요. 게시판에 반 근 식빵 이야기가 제일 많이 올라왔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저도 오늘 반 근 샀어요. 아래층 빵집에서. 사장님이 칼질이 좀 비뚤었는데, 할머니만큼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연 속 할머니 생각이 나서 웃었어요. 반죽하는 사람님도 오늘 반 근 잘라 보셨어요?」
다온은 다 쓰고 읽었다. 너무 개인적이었다. 아래층 빵집 얘기는 지울까 했다. 지우지 않았다.
보냈다.
≈
새벽 한 시 이십오 분. 10월 22일 수요일.
태오는 빵집 셔터를 반만 올리고 들어왔다. 불을 켰다. 오븐 예열. 앞치마. 손 씻기. 라디오.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메일 앱. 새 메일 하나.
「두 시의 편지」.
태오는 그 메일을 열었다. 읽었다.
「저도 오늘 반 근 샀어요. 아래층 빵집에서. 사장님이 칼질이 좀 비뚤었는데, 할머니만큼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태오는 작업대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밀가루가 얼굴에 묻었다.
‘아래층 빵집.’
‘칼질이 좀 비뚤었는데.’
태오는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웃음이 나왔다. 소리 없이.
「반죽하는 사람님도 오늘 반 근 잘라 보셨어요?」
답장을 써야 했다. 반죽하는 사람으로. 아래층 빵집 사장이 아니라.
태오는 엄지로 화면을 눌렀다. 한 글자씩.
「작가님, 답장 고맙습니다. 반 근, 잘라 봤어요. 저도 비뚤었어요. 작가님 아래층 빵집 사장님이랑 저랑 칼질이 비슷한가 봐요.」
보냈다.
그리고 빵칼을 꺼냈다. 할머니 칼. 오늘 구울 식빵 열두 개 중 여섯 개는 반 근으로 자를 생각이었다. 연습해야 했다. 반듯해질 때까지.
(3화 끝)
『반죽하는 사람: 내일도 반죽할게요. 내일도 라디오 켤게요. 내일 그 자리에 다른 게 나와도 다이얼은 안 돌릴게요. 테이프 붙어 있으니까.』≈12월 31일 수요일 새벽 한 시 오십 분. 반달FM 4층.다온은 스튜디오 문 앞에 서 있었다. 원고 뭉치를 안고. 마지막 원고였다. 「두 시의 편지」 30년 마지막 방송. 사흘 밤을 새워 쓴. 30년 동안 사연을 보낸 사람들 이름을 다 넣고 싶었는데 다 넣을 수가 없었다. 게시판에 남은 이름만 이천 개가 넘었다.복도가 이상하게 붐볐다. 평소 새벽 두 시면 다온과 한도윤과 금정란, 셋이 전부였다. 오늘은 보도국 야간 기자, 교통 캐스터 나보람, 엔지니어 둘, 그리고 낮 프로 PD 몇이 복도에 서 있었다. 다들 종이컵을 들고. 30년 마지막 방송을 보러.보람이 다온에게 다가와 우유 종이컵을 내밀었다.“작가님, 괜찮아?”“몰라. 진짜 모르겠어.”“울지 마. 방송 중에 울면 사고야.”“선생님이 지난번에 팔 초 울었어.”“그러니까 둘이 울면 십육 초야.”다온이 웃었다. 보람도 웃었다. 그리고 보람이 다온 팔을 꽉 잡았다.스튜디오 안에서 금정란이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빨간 머플러. 크리스마스이브 때 했던. 「마지막 날엔 이거 해야지.」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 서류철. 그런데 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올려 둔 채로.≈같은 시각. 반달빵집.태오는 반죽기를 돌리지 않았다. 작업대 앞에 서서 라디오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라디오. 다이얼 위 테이프.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내일부터 새벽 두 시 이 주파수에선 재방송이 나온다고 했다. 낮 프로
『반죽하는 사람: 크리스마스이브엔 밤을 새워요. 슈톨렌에 슈가파우더를 뿌리면 눈 온 것 같아요. 올해는 누가 옆에서 리본을 묶어 주면 좋겠어요. 혼자 묶으면 자꾸 풀려요.』≈12월 23일 화요일 밤 열한 시. 반달FM 4층 작가석.다온은 달력을 봤다. 책상 옆 벽에 붙은 탁상 달력. 12월 장. 31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한도윤 PD가 그어 놓은. 그 옆에 작게 「마지막 방송」.여드레.일요일 빼고 일곱 번의 방송.다온은 동그라미에서 눈을 떼고 원고를 봤다. 크리스마스이브 특집.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는 당신에게」. 사연 열둘. 응급실, 소방서, 편의점, 택시, 경비실, 물류 센터. 그리고 반죽하는 사람.반죽하는 사람 사연은 맨 마지막에 놓았다.『올해는 누가 옆에서 리본을 묶어 주면 좋겠어요. 혼자 묶으면 자꾸 풀려요.』다온은 그 문장에 형광펜을 그었다. 두 줄. 그리고 생각했다. 리본. 슈톨렌. 반달빵집도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신 슈톨렌을 팔았다. 할머니 때부터. 진열대 앞에 「슈톨렌 예약 받습니다」 종이가 일주일째 붙어 있었다. 미소 글씨로.다온은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마스에 슈톨렌 파는 빵집은 많다.≈12월 24일 수요일 새벽 한 시. 반달빵집.태오는 셔터를 반만 올리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반 시간 일찍. 오늘은 밤을 새워야 했다.작업대 위에 슈톨렌 반죽이 줄지어 있었다. 어젯밤 열 시까지 빚어 둔 것. 서른 개. 예약이 스물여섯, 매장용 넷. 할머니 때는 마흔 개였다. 태오는 서른 개가 한계였다.오븐 두 대를 예열했다. 첫 판 열 개를 넣었다. 타이머를 맞췄다. 사십 분.라디오를 켰다. 할머니 라디오. 테이프 붙은 다이얼. 「두 시의 편지」까지 한 시간.
『택시 오 기사: 비 오는 새벽에 작가 아가씨를 태워다 줬어요. 빵집 앞에 내려 줬는데 빵집 총각이 유리문 안에서 나를 째려보더라고요. 30년 택시 몰면서 그런 눈은 처음 봤어요. 총각, 나 기사야.』≈12월 5일 금요일 오후 네 시. 반달FM 4층 회의실.한도윤 PD가 공문 한 장을 탁자에 놓았다. 이번엔 마케팅팀 중간 집계가 아니었다. 방송국 공식 청취율 조사 결과. 11월분.「두 시의 편지 — 0.6%」.다온은 그 숫자를 오래 봤다. 0.3에서 0.6. 두 배였다. 두 배인데 1%의 절반을 겨우 넘었다.“국장님이 이거 보시고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한도윤이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두 배네. 근데 0.6이네.」 끝.”금정란이 보온병 뚜껑을 열며 웃었다.“국장님 말 잘하시네.”“선생님, 웃을 일이 아니에요.”“웃어야지. 0.3이 0.6 됐는데. 30년 동안 이렇게 오른 적 없어.”금정란이 다온을 봤다. 안경 너머로.“다온 작가가 한 거야.”다온은 고개를 저었다.“청취자분들이 한 거예요. 사연 보내 주신 분들이. 게시판에 쓰신 분들이. 오 기사님이 택시 손님들한테 다 틀어 준대요.”“그 오 기사님 사연은 언제 읽어?”“…다음 주요. 월요일에.”다온은 대답하면서 서류철 안 오 기사님 사연을 생각했다. 「택시 오 기사」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두 통씩 오는. 손님 얘기, 새벽 도로 얘기, 반달빵집 단팥빵 얘기. 오 기사님은 사연마다 단팥빵이 나왔다.≈12월 6일 토요일 새벽 네 시 십 분. 반달FM 건물 1층 현관.비가 왔다. 겨울비. 차가운. 다온은 현관 유리문 안쪽에 서서 밖을 봤다. 빗줄기가 가로등 불빛에 하얗게 보였다. 큰길이 젖어 번들거렸다.우산이 없었다. 가방 안에 접이식 우산이 있었는데 지난주에 살이 부러져 버렸다. 새로 사야지 하면서 일주일이 지났다.25분. 걸으면 다 젖을 것이다. 첫차는 다섯 시 십 분. 한 시간을 현관에서 기다릴 수도 없었다.다온이 목도리를 머리에 뒤집어쓰려는데 큰길에서 경적이
『반죽하는 사람: 누가 저한테 사연을 써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써요. 원래 쓰고 있었다는 말은 못 했어요. 반죽이 다 부풀면 말할게요.』≈11월 29일 토요일 오전 열한 시. 반달FM 4층 회의실.한도윤 PD가 종이 한 장을 탁자 위에 놓았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었다.“마케팅팀 중간 집계야. 공식 아니고. 0.5%.”다온은 그 숫자를 봤다. 0.5. 두 달 전 0.3이었다.“올랐어요.”“올랐지. 0.2. 두 달 만에.”“국장님은요? 뭐라세요?”“국장님은 1%가 아니면 다 똑같대.”한도윤이 종이를 접었다. 그런데 버리지 않고 서류철에 넣었다. 다온은 그걸 봤다.“그래도 게시판은 하루 오십 개 넘어.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코너 사연이 매일 열 통씩 와. 물류 센터, 응급실, 경비실, 편의점. 지난주엔 소방서에서도 왔어.”한도윤이 서류철을 덮었다.“다온 작가. 0.5로는 안 돼. 근데 0.5까지 온 건 네가 한 거야. 그건 알아 둬.”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였다. 목이 조금 메었다.≈열두 시. 반달빵집.다온은 밤샘 회의를 마치고 바로 빵집으로 왔다. 잠을 못 자 눈이 따가웠다. 창가 탁자에 앉아 메뉴판을 봤다. 낮 메뉴. 샌드위치 세 가지. 햄치즈, 에그마요, 감자.“감자 샌드위치랑 우유요.”계산대에서 미소가 「네!」 했다. 주방에서 태오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두 장, 으깬 감자, 오이, 햄 한 장. 반으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칼질이 반듯했다. 한 달 동안 반 근 식빵을 자른 손.태오가 접시를 들고 직접 왔다. 미소 대신.“드세요.”“감사합니다, 사장님.”다온은 샌드위치를 집었다. 감자가 부드러웠다. 오이가 아삭했다. 후추가 조금.태오가 접시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다 멈췄다. 다온 얼굴을 봤다.“…안 주무셨어요?”“밤샘 회의요. 청취율 중간 집계 나왔어요.”“…어떻게 나왔어요?”태오 목소리가 조금 빨랐다. 평소보다.“0.5%요. 0.3에서 올랐어요. 근데 1% 돼야 안 없어진대요.”태오가
『택시 오 기사: 30년 전에 빵집 누님이 그러더라고요. 비밀은 반죽 같은 거라고. 너무 치대면 질겨진대요. 그래서 저는 안 치대요. 근데 입이 근질근질해요.』≈11월 22일 토요일 새벽 다섯 시 십이 분. 반달빵집.다온은 소금빵 봉투를 받아 들고도 나가지 않았다. 계산대 옆 벽. 할머니 사진 앞에 섰다. 일주일째였다. 7일 동안 매일 아침 다온은 그 사진 앞에서 1분씩 서 있었다.태오는 계산대 뒤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일주일째.“사장님.”“…네.”“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태오가 영수증을 쥔 채로 멈췄다.“…왜요?”“그냥요. 3년 전에 이사 왔을 때 소금빵 공짜로 주셨거든요.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잖아요. 이름도 모르고.”다온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태오를 보지 않고. 목소리가 담담했다. 너무 담담했다.태오는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할머니 이름을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 절반이 알았다. 그런데 다온이 그걸 묻는 이유를 태오는 알았다. 일주일 전 금정란 선생님 방송. 반죽하는 할머니.이름을 말하면 다온은 어떻게 할까. 금정란 선생님한테 전할까. 할머니가 30년 동안 숨긴 이름을.태오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문이 열렸다. 딸랑.“총각! 단팥빵 둘!”≈오 기사님은 모자를 벗어 털며 들어왔다. 찬바람이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계산대 옆 벽 앞에 선 다온을 봤다.“어, 작가 아가씨. 순례 누님 사진 보고 있어?”다온이 돌아봤다.“순례 누님이요?”“그래, 순례 누님. 여기 할머니. 반달빵집 순례 누님이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 없어.”오 기사님이 단팥빵 칸으로 가며 말을 이었다.“30년 전에 내가 택시 처음 몰 때부터 여기서 단팥빵 사 먹었어. 새벽 네 시 반에 오면 누님이 문 열기 전인데도 뒷문으로 줬어. 「기사 양반 배고프지」 하고.”태오가 계산대 뒤에서 오 기사님을 봤다. 오 기사님은 그 눈빛을 못 봤다. 아니, 봤는데 무시했다.“누님이 라디오를 그렇게 좋아했어.
『반죽하는 사람: 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11월 15일 토요일 새벽 두 시 이십팔 분. 반달FM 4층 스튜디오.다온은 작가석에서 유리창 너머를 보고 있었다. 금정란이 마이크 앞에 앉아 원고를 넘겼다.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코너 차례. 오늘 사연은 반죽하는 사람. 다온이 맨 앞에 놓았다.코너를 시작한 지 4주. 게시판 글이 하루 서른 개를 넘었다. 청취율은 아직 몰랐다. 다음 달 첫 주에 나온다고 했다. 한도윤 PD는 매일 새벽 게시판 숫자를 세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금정란이 원고를 들었다. 큐 사인. 다온이 부조정실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도윤이 노래 볼륨을 내렸다.“두 시 반이에요.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 오늘은 다시 반죽하는 사람님이에요. 이분 사연 기다리시는 분들 많죠. 게시판에 「반죽하는 사람 언제 나와요」가 제일 많대요.”금정란이 웃었다. 그리고 읽었다.“할머니는 반죽을 치대면서 혼잣말을 했어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고 물으면 라디오한테 한다고 했어요. 라디오가 대답은 안 해도 다 듣는다고.”금정란이 거기서 멈췄다.다온은 원고를 따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음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저도 반죽하면서 라디오한테 말해요. 할머니처럼.」 금정란은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유리창 너머 금정란이 원고를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이크가 켜져 있었다. 숨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부조정실에서 한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손이 콘솔 위 페이더로 갔다. 노래를 올릴까 말까.삼 초. 사 초. 라디오에서 삼 초 침묵은 사고였다. 오 초는 큰 사고.금정란이 고개를 들었다.“…죄송해요, 여러분.”목소리가 젖어 있었다.“이 사연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요. 30년 전부터 우리 방송에 사연 보내 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이분도 반죽하는 분이셨어요. 반죽하는 할머니. 그분도 라디오한테 혼잣말한다고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