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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엮인 인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5 18: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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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안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박시온이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박시온의 진심이 장난으로 들렸나 보다. 

⁠

"저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요?"

"어차피 실직자가 할 거라고는 숨 쉬는 거밖에 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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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키지는 않았다. 이곳에 더 있어봤자 저런 실없는 소리만 들을 것이 뻔했다. 저 얼굴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괴롭다. 이시안이 자리를 피하려고 일어섰지만 발걸음은 움직이지 못했다.

⁠

"족제비부대의 병기."

"………."

"그러니까 다른 일은 못 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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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발언이었다. 

⁠

"이주 예전에 삼촌 서재에서 보고서를 읽었거든요."

"한지훈도 다 죽었네. 어린애에게 서재도 털리고."

"평화는 사람을 무르게 하니까요."

⁠

일리 있다. 

한지훈이 거짓을 말하지 않은 이상, 전쟁은 완전히 끝났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세상은 평화를 찾아,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

"저랑 가죠? 세상 구경하러. 궁금하지 않아요? 병기가 필요 없어진 세상."

⁠

박시온이 거들먹거리며 말하고 있지만, 눈은 초조해하고 있다. 그것이 보였다. 박시온에게는 보이는 이 흔들림이 왜 박도윤에게는 보이지 않았는지. 이시안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을 아끼자, 박시온은 입술을 꽉 물며 이시안의 입술을 노려봤다. ⁠

제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뱉기를 바라며.

⁠

"박도윤도 너처럼 솔직하면 좋았을 텐데."

⁠

이건 박시온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

"그럼 엄마 닮았나 보죠."

"여자 취향 독특하네."

"그럴지도."

"왜,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봐?"

⁠

달갑지 않은지 비꼬며 말하는 이시안의 말에 박시온이 제 옷 속에서 꺼내자 달칵하고 열린 오래된 펜던트에는 이시안의 눈에 익숙하고 앳된 박도윤의 사진이 있었다. 

⁠

"이렇게 금욕적이게 생긴 남자가 여자 취향이 유별나다고 했거든요."

⁠

박시온의 말에 이시안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금 이게 어린 애 입에서 나올 말인가? 

⁠

"그런 웃긴 소릴 애 앞에서 하다니. 정안용 같은 녀석인가?"

"맞아요. 그 사람."

⁠

이번에 가늘게 뜬 눈으로 박시온을 쳐다봤다.

⁠

"언제?"

"… 아마, 10년 전."

⁠

김이 빠졌다. 

혀를 강하게 차며 이시안이 표정을 구겼다. 

10년 전이라면 이 아이가 5살이나 6살쯤이다.

보통의 어린애가 그때 일을 제대로 기억할 리가 없다. 

⁠

"저 기억력 굉장히 좋거든요? 삼촌도 가끔 말하고는 했는데. 아빠도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아서 곤란했던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

박시온이 여유로운 척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괜히 긴장됐다.

이시안은 한지훈과는 다른 느낌의 사람이었다. 

⁠

"삼촌도 나름 쉬쉬하며 나를 키워줬지만, 나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 바보도 아니고."

"그러냐."

⁠

안타깝게도 이시안은 흥미가 없어 보였다.

"옛 전우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

그래서 박시온은 다급했다. 

⁠

"당신이 동행해 준다면…! 삼촌도 못 말릴 거예요!"

⁠

도대체 이 박시온은 이시안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

⁠

⁠

***

⁠

⁠

⁠

"그렇게 됐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뭐가 말이 안 되는데?"

"너, 너, 너희 둘이서… 무슨 여행을 한 다는 건데!?"

⁠

한지훈이 경악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

"그렇게 불안해?"

"당연한 거 아니냐! 10년도 더 전부터 기억이 없는 이시안과! 아직 밖의 생활을 모르는 미성년자인 박시온이!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같이 여행을 한다니! 그것도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옛 동료를 만나러 간다고!?"

"그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

담담한 말에 한지훈이 답답한 듯이 가슴을 쳤다. 

⁠

"그 뜻이 아니잖아!"

"그러면 네가 서재 관리를 잘했어야지."

"………!"

"그리고 걱정 마. 죽이지 않아."

⁠

그 말에 정곡이 찔린 건지, 한지훈이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홱 돌리며 시끄러운 입이 닫혔다. 

⁠

"너무 유별난 거 아냐? 전쟁도 끝났다며? 왜 애를 가둬서 키워?"

"아, 아니 그게…!"

"좀 풀어주고 그래. 넌 여기저기 다니고 싶은 곳도 많아했으면서."

"아오! 박시온이가 세상 구경하고 싶다고 너를 꼬셨지!? 그거 거짓말이야!"

⁠

그 말에 이시안의 고개가 갸웃했다. 

⁠

"지 아빠, 만나러 가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윤이를? 만나면 되잖아."

"… 뭐야, 도윤이가 선택한 여자니까 잘 지내볼 생각이 있는 거야?"

"아니?"

"뭐!?"

"아들만 던져주고 나는 내 길을 갈 건데?"

⁠

15년 만에 다시 살아난 주제에 뭐가 이렇게 당당하지? 

한지훈이 오히려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시안을 보며 말을 아꼈다. 

⁠

"시안아."

"왜."

⁠

한지훈이 진지하게 이시안을 불렀다. 그리고 쉬이 말을 잇지 못하고 발끝을 이리저리 흔들며 고개를 까딱였다. 어린 시절부터 할 말이 있을 때 나오던 버릇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 나오던 말은 항상 자신에게 좋지 않던 말이기에 썩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

"… 도윤이 말인데."

"뭐."

"실종 상태야."

"뭐?"

"시온이, 자기 아빠 찾으려고 너 이용하는 거라고."

"그런데?"

⁠

한지훈이 눈을 질끈 감았다.

⁠

"이용당하는 게, 내 일 아니었나?"

⁠

픽 웃으며 묻는 말에 한지훈이 한숨을 잘게 흘렸다.

⁠

"여긴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야."

"알아."

"너에게는 17년의 공백이 있고."

"그래,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

"그런 게 아니라고!"

⁠

한지훈이 결국 소리치며 이시안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어느새 그 두 눈은 또 붉게 물들어 눈물이 그렁그렁 달렸다. 

⁠

"……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이미 짐을 챙기고 온 박시온이 무슨 촌극을 하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유난스러운 사람이 유난의 끝을 보여주면 이렇게 되는 건가? 

⁠

"걱정 마. 전화기 들고 갈게. 삼촌 카드도 들고 갈게."

⁠

자연스럽게 이시안의 옆에선 박시온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한지훈의 걱정을 더욱 자극했다. ⁠

⁠

"둘이… 싸우면 안된다?"

"너, 나이 들면서 겁이 너무 많아졌어."

"잔소리도 더 심해졌어요."

"야, 니들…."

⁠

그래, 이런 부분 말이다. 

주소를 받아 든 박시온은 마침내 나온 '허가'에 올라간 입꼬리를 숨길 생각도 없었다. 

⁠

"주기적으로 연락해."

"알았어요."

"가자, 꼬맹아."

"아니, 내 이름 박시온이라고요."

⁠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한지훈의 울컥함은 두통으로 변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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