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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라고 해서 가까워질 생각은 없습니다

ผู้เขียน: 유월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08-28 19:55:24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세레나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검은색이었다.

검은 제복.

그 위에 희미하게 내려앉은 새벽빛.

그리고 자신을 안고 있는 단단한 팔.

‘……아직도 안 내려놨네.’

세레나는 고개를 들었다.

카시엘 에르하르트.

원작에서 자신을 죽이는 남자.

피하려고 했던 남자.

그리고 오늘 새벽.

자신을 살린 남자.

그의 붉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

“…….”

어색하다.

굉장히.

세레나는 먼저 시선을 피했다.

“대공.”

“말씀하십시오.”

“이제 정말 내려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안 됩니다.”

“왜요?”

“의원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제가 걷는 건데요.”

“독성 연기를 마셨습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단호하다.

세레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원작에서 이런 성격이었나?’

말수가 적고.

냉정하고.

황실의 검이라 불릴 만큼 원칙적인 사람.

그 정도는 기억한다.

하지만 처음 만난 여자를 이렇게 안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방금 죽을 뻔했으니 구조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이제 연기도 거의 빠졌다.

정신도 돌아왔다.

그럼 내려놓을 법하지 않나?

딩.

불길하게도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SSR 인연 카드 「당신의 반려」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

‘뭐.’

[운명 지정 대상과 접촉 중입니다.]

‘알아.’

[접촉 지속 시간 03:17]

세레나의 눈이 커졌다.

‘그건 왜 세는데?’

[동기화 분석을 위해 기록합니다.]

‘세지 마.’

[기록은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세레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카시엘이 물었다.

“어디가 아픕니까?”

“네?”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대공 때문입니다.”

카시엘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제가?”

“아니.”

세레나가 입을 다물었다.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딩.

[운명 지정 대상의 감정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의문 +1

‘그걸 왜 알려줘?’

[플레이어의 원활한 관계 형성을 지원합니다.]

‘지원하지 마.’

[SSR 인연 카드의 기본 기능입니다.]

세레나는 머리가 아파졌다.

이 게임은 아무래도 자신과 카시엘을 어떻게든 엮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은 반대로 하면 된다.

동기화율을 올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좋아.

살려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세레나는 카시엘을 바라봤다.

“대공.”

“말씀하십시오.”

“오늘 저를 구해주신 건 정말 감사해요.”

“…….”

“하지만.”

카시엘의 시선이 내려왔다.

“그것 때문에 저와 특별한 관계가 되실 필요는 없어요.”

“특별한 관계?”

“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모르겠지.

반려 카드가 자신에게만 보인다면.

“그냥 앞으로 저와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으셔도 된다는 뜻이에요.”

카시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대화를 나눈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렇죠.”

“그런데 벌써 저와 거리를 두겠다는 겁니까?”

“…….”

말하고 보니 이상하다.

세레나는 헛기침했다.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죠?”

“그게 서로 편하니까요.”

“저는 불편하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제가 불편해요.”

정적.

뒤쪽에 서 있던 기사 한 명이 아주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카시엘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제가 불편합니까?”

“조금요.”

“이유는?”

당신이 90일 뒤에 내 목을 자르니까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세레나는 고민하다 말했다.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그 순간.

문밖에 서 있던 마리엔이 기침했다.

“크흠.”

세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마리엔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 표정 뭔데.

마리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쓰여 있었다.

아가씨께서요?

세레나는 모른 척했다.

“아무튼.”

다시 카시엘을 바라봤다.

“저를 구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 이상은—”

“세레나.”

말이 끊겼다.

세레나의 눈이 커졌다.

카시엘도 멈췄다.

둘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가 방금.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영애도 아니고.

벨로아도 아니고.

세레나.

카시엘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본인도 자신이 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딩.

세레나의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운명 동기화가 발생했습니다.]

5% → 6%

“…….”

세레나의 입이 벌어졌다.

‘왜?’

[지정 대상이 플레이어의 이름을 호명했습니다.]

‘이름 부른 것만으로?’

[특수 조건이 적용되었습니다.]

‘무슨 특수 조건?’

[현재 공개할 수 없습니다.]

“하.”

세레나가 헛웃음을 흘렸다.

카시엘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전부터 자꾸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군요.”

“진짜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

[의심 +1]

‘이것도 그만 보여줘.’

시스템은 당연히 무시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의원입니다!”

드디어.

세레나는 이보다 반가울 수 없었다.

“대공, 의원이 왔어요.”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려주세요.”

카시엘은 잠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세레나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딩.

[접촉이 종료되었습니다.]

총 접촉 시간: 05:42

[접촉 기록이 저장되었습니다.]

세레나는 눈을 감았다.

‘저장하지 마.’

[이미 저장되었습니다.]

‘삭제.’

[불가능합니다.]

정말 마음에 안 든다.

⸻

의원의 진찰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다행히 치명적인 양을 흡입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세레나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괜찮은 건가요?”

“며칠 정도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독제를 드시고 충분히 쉬셔야 합니다.”

“마리엔은요?”

세레나가 바로 물었다.

옆방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마리엔.

의원이 대답했다.

“시녀분도 괜찮습니다. 영애님보다 연기를 적게 마셨습니다.”

“다행이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런데.”

의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방 안에 들어온 연기는 일반적인 독이 아닙니다.”

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에요?”

“수면향과 독초를 섞었습니다.”

“수면향?”

“예.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한 채 깊이 잠들게 한 뒤 호흡을 약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세레나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화살.

마차.

그리고 독 연기.

전부 달랐다.

하지만 목적은 하나.

자신을 죽이는 것.

“계획적이네요.”

세레나가 중얼거렸다.

의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그렇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카시엘이었다.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직 안 갔네.’

세레나는 당연히 진찰이 시작되면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카시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였다.

“대공께서는 왜 아직 여기 계세요?”

세레나가 물었다.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뭘요?”

카시엘은 의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독 연기가 외부에서 들어왔다고 했지.”

“예, 대공 전하.”

“창문은?”

“강제로 열린 흔적이 있습니다.”

“경비병은.”

방 밖의 벨로아 기사단장이 대답했다.

“모두 조사하고 있습니다.”

“창문 아래는?”

“발자국이 발견됐습니다. 다만 정원 중간에서 끊겼습니다.”

카시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내부에 협력자가 있을 가능성은.”

방 안이 조용해졌다.

세레나가 카시엘을 바라봤다.

‘내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후작저는 어젯밤부터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외부인이 아무런 도움 없이 세레나의 방까지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카시엘이 말했다.

“가능성이 높겠군.”

기사단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택 내부까지 조사하겠습니다.”

“출입 기록도.”

“예.”

세레나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벨로아 후작가의 일인데.”

세레나는 카시엘을 바라봤다.

“왜 대공께서 지시하세요?”

“…….”

“아버지가 하실 일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카시엘은 북부 대공이다.

황실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다.

벨로아 후작가의 사건을 지휘할 권한은 없다.

카시엘이 대답했다.

“습관입니다.”

“네?”

“사건을 보면 해결하는 것이.”

“…….”

그런 습관도 있나.

세레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카시엘 역시 자신이 조금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가 덧붙였다.

“불쾌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의외였다.

원작의 카시엘은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세서가 아니다.

애초에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불쾌한 건 아니에요.”

세레나가 말했다.

“그냥 이상해서요.”

“무엇이.”

“왜 저한테 이렇게 신경 쓰시는지.”

카시엘이 멈췄다.

그 순간.

세레나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중요 질문이 발생했습니다.]

‘뭐?’

[운명 지정 대상의 답변을 분석합니다.]

‘그런 것도 해?’

시스템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레나는 카시엘을 바라봤다.

카시엘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그리고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세레나가 눈을 깜빡였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모르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수도까지 이틀 만에 오셨어요?”

“…….”

“원래 나흘 걸리는 길을?”

카시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아.

세레나의 입이 닫혔다.

망했다.

시스템이 알려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소문.”

“제가 수도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

“제 부관과 기사들 외에는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세레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변명.

빨리.

“대공의 영지에서 수도까지 보통 나흘 정도 걸리잖아요.”

“제가 언제 출발했는지는.”

“…….”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끝났다.

세레나는 눈을 굴렸다.

카시엘의 시선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딩.

[위기 상황이 감지되었습니다.]

선택하십시오.

① 거짓말한다.

「소문으로 들었어요.」

② 침묵한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세레나가 선택지를 바라봤다.

둘 다 마음에 안 든다.

1번은 금방 들통날 가능성이 높다.

2번은 더 수상하다.

‘또 둘뿐이야?’

[그렇습니다.]

세레나는 카시엘을 바라봤다.

그리고.

“대공.”

“말씀하십시오.”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

정적.

카시엘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주변 사람들도 굳었다.

시스템창까지.

[…….]

세레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됐다.

“아니면 제가 언제 대공의 출발 소식을 알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하세요?”

“그건—”

“저를 조사하시는 것처럼 질문하시잖아요.”

카시엘이 처음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제가 목숨을 구해주신 분께 취조까지 받아야 하나 싶어서요.”

“취조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럼 넘어가요.”

세레나는 활짝 웃었다.

딩!

[등록되지 않은 선택이 감지되었습니다.]

새로운 선택을 분석합니다.

잠시 후.

③ 질문으로 질문을 덮는다.

[선택지가 생성되었습니다.]

세레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시스템이 주는 선택지만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새로운 알림이 이어졌다.

[운명 지정 대상의 감정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당황 +3

세레나는 웃음을 참았다.

카시엘 에르하르트.

원작에서 황제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남자에게.

당황 +3.

조금 재미있었다.

바로 그 생각을 한 순간.

딩.

[플레이어의 감정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세레나의 웃음이 사라졌다.

‘……뭐?’

흥미 +1

“지워.”

“뭘 말입니까?”

카시엘이 물었다.

“아니요.”

세레나는 황급히 시스템창을 손으로 가렸다.

당연히 손은 그대로 통과했다.

‘지우라고.’

[감정 기록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나는 플레이어잖아!’

[그렇습니다.]

‘내 감정인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워!’

[불가능합니다.]

세레나는 이를 악물었다.

카시엘이 이상하게 바라봤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대공이 가시면 아주 괜찮아질 것 같아요.”

“…….”

카시엘의 서운함 +1

‘서운해하지 마!’

세레나는 머리를 감싸고 싶었다.

⸻

카시엘은 결국 떠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벨로아 후작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세레나!”

문이 열렸다.

중년의 남자가 거의 뛰어들어왔다.

벨로아 후작.

세레나의 아버지.

원작에서 몇 번 등장했던 인물.

딸을 지나치게 사랑해 그녀의 잘못까지 감싸다가 함께 몰락했던 사람.

그가 세레나에게 달려왔다.

“괜찮으냐?”

“아버지.”

자연스럽게 나온 호칭에 세레나 스스로 조금 놀랐다.

후작은 그녀의 얼굴과 손을 확인했다.

“다친 곳은?”

“없어요.”

“정말이냐?”

“네.”

“의원!”

“후작님, 영애께서는—”

“한 번 더 진찰하게.”

“아버지.”

세레나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후작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응?”

그 한마디가 너무 다정해서.

세레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원작 속 악녀의 아버지.

그게 아니라.

정말 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저 괜찮아요.”

후작의 표정이 조금 무너졌다.

“……다행이구나.”

그가 세레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순간.

이상한 감각이 가슴을 스쳤다.

따뜻하다.

그리고.

아프다.

왜?

세레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때 후작이 카시엘을 발견했다.

“에르하르트 대공?”

“후작.”

“대공께서 왜 여기에…….”

상황 설명이 이어졌다.

카시엘이 세레나를 구했다는 사실을 들은 후작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딸아이의 목숨을 구해주셨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은혜는 벨로아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카시엘의 시선이 세레나에게 향했다.

“은혜를 받으려 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다만.”

카시엘이 말을 이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영애의 경호를 강화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후작의 얼굴이 굳었다.

“물론입니다.”

“가능하다면 황실 기사단에도 협조를 요청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레나는 둘의 대화를 듣다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카시엘이 왜 저렇게까지—

딩.

[새로운 사건 발생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또?’

게임판이 나타났다.

현재 위치.

12번.

하지만 13번 칸의 재앙은 끝났다.

그 대신.

20번 칸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첫 번째 CHECK POINT가 활성화됩니다.]

20번 칸까지 남은 거리: 8

그리고.

새로운 문장.

[CHECK POINT 진입 조건을 안내합니다.]

「운명 지정 대상과 함께 20번 칸에 도착하십시오.」

세레나가 굳었다.

‘뭐?’

다시 읽었다.

운명 지정 대상과 함께.

“싫어.”

방 안이 조용해졌다.

후작이 돌아봤다.

“세레나?”

“아.”

세레나가 황급히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카시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아무것도 아닙니까?”

“네.”

“…….”

의심 +1

‘그만 좀 올라.’

세레나는 시스템을 노려봤다.

‘함께라는 게 무슨 뜻인데?’

[20번 CHECK POINT 진입 시 지정 대상이 플레이어의 반경 내에 존재해야 합니다.]

‘반경?’

[10m.]

세레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하면?’

[CHECK POINT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럼 20번에서 멈춰?’

[그렇습니다.]

‘게임은?’

[진행할 수 없습니다.]

‘90일 지나면?’

[사망합니다.]

“…….”

이 사기 게임.

선택은 자유라더니.

자유가 어디 있어.

세레나는 카시엘을 바라봤다.

그는 후작과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사람.

그런데 20번 칸을 통과하려면.

저 남자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

‘8칸.’

주사위가 잘 나오면 며칠이면 도착한다.

그 전에 카시엘이 북부로 돌아가면?

끝이다.

‘그러면.’

붙잡아야 한다.

세레나의 얼굴이 천천히 굳었다.

아까 자신이 뭐라고 했더라.

앞으로 저와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불편해요.

대공이 가시면 아주 괜찮아질 것 같아요.

세레나는 눈을 감았다.

완벽하게 망했다.

그때 카시엘이 후작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세레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잠깐!”

카시엘이 돌아봤다.

“왜 그러십니까?”

“가세요?”

“그럴 생각입니다.”

안 돼.

세레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수도에 도착하신 거죠?”

“그렇습니다.”

“일정 많으세요?”

카시엘의 눈썹이 움직였다.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조금 전에는 저와 거리를 두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확하다.

이 남자 기억력 왜 이렇게 좋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세레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 조금씩 바뀌기도 하잖아요.”

카시엘이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몇 분 만에?”

황태자도 했던 질문이었다.

세레나는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아무튼.”

세레나는 머리를 굴렸다.

붙잡을 명분.

뭐가 있지?

은혜.

그래.

목숨을 구해줬다.

“대공께 제대로 감사인사도 못 했잖아요.”

“필요 없습니다.”

“저는 필요한데요.”

“…….”

“식사.”

“예?”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

카시엘의 시선이 묘해졌다.

“저와?”

“네.”

“제가 불편하다면서.”

“그건 아까고.”

“불과 십 분 전입니다.”

“……시간 빠르네요.”

후작이 딸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세레나는 모른 척했다.

“내일.”

카시엘에게 말했다.

“저녁 어떠세요?”

“…….”

대답이 없다.

설마 거절하려나.

세레나는 초조해졌다.

‘받아.’

[시스템은 지정 대상의 선택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도움이 안 돼.’

그런데.

카시엘의 입술이 열렸다.

“좋습니다.”

세레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요?”

카시엘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왜 그렇게 기뻐하는 겁니까?”

“……밥을 잘 드신다니까요.”

“제가 잘 먹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같이 먹는다고요.”

“그런데 왜—”

“대공.”

“말씀하십시오.”

“질문이 많으시네요.”

“영애가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

반박할 수 없다.

딩.

[CHECK POINT 동행 가능성이 생성되었습니다.]

카시엘 에르하르트와의 약속이 등록됩니다.

내일 저녁 식사.

세레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딱 20번까지만.’

CHECK POINT를 통과한다.

그다음에는 다시 멀어지면 된다.

절대로 동기화율도 올리지 않는다.

카드가 반려라고 해도.

운명이 어쩌고 해도.

자신의 선택은 자신이 한다.

세레나는 확신했다.

아직까지는.

⸻

그날 밤.

카시엘은 수도의 에르하르트 저택에 돌아왔다.

집무실 문이 닫혔다.

혼자였다.

그제야 그는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세레나를 안았던 손.

이상했다.

아직도 감각이 남아 있었다.

체온.

가벼운 무게.

자신의 제복을 움켜쥐던 작은 손.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보던 보랏빛 눈.

카시엘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또다시.

기억에 없는 장면이 스쳤다.

피가 가득한 바닥.

무너지는 빛.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

붉은 머리카락.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목소리.

카시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쿵.

카시엘이 눈을 떴다.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오늘 처음 만난 세레나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딩.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운명 동기화율 6%.]

카시엘은 창을 바라봤다.

“너는 누구지.”

대답 없음.

“세레나와 무슨 관계냐.”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카시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와는.”

그 순간.

창이 흔들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질문에 답하는 듯한 문장이 나타났다.

[플레이어와 지정 대상은—]

글자가 깨졌다.

[ERROR]

다시.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카시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누구의 권한이지.”

정적.

그리고.

창 위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DEALER.]

처음 보는 단어.

“딜러?”

그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윽.”

카시엘이 책상을 짚었다.

그리고.

기억이 쏟아졌다.

아니.

기억이라기엔 너무 짧았다.

검은 게임판.

수없이 흩어진 카드.

자신 앞에 서 있는 여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울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마지막 선택입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카시엘.

그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장면이 산산이 깨졌다.

카시엘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뭐였지.”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눈앞.

시스템창 아래.

아주 작은 문장이 나타났다.

[기억 복구율 1%.]

카시엘의 붉은 눈이 굳었다.

“기억?”

그런데.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창의 가장 아래.

다른 문장이 잠깐 나타났다.

[경고.]

[지정 대상의 기억 복구가 예상보다 빠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공간.

어딘가에서.

카드 한 장이 뒤집혔다.

검은 카드.

그 위에 단 하나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DEALER

잠시 후.

문장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한참 동안.

다음 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치 누군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것처럼.

글자가 한 글자씩 새겨졌다.

[왜 항상 그 사람입니까?]

그리고 같은 시각.

벨로아 후작저.

잠든 세레나의 게임판 위에서.

20번 CHECK POINT가.

천천히.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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