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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오늘의 수업: 설탕과 밀가루 구별하는 법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21:14:17

“선생님, 왜 혼내지 않아요?”

루디가 책상 가장자리에 턱을 걸쳤다. 양철 나팔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아델은 어젯밤 문 밑으로 들어온 종이를 책 옆에 내려놓았다. 종이 끝의 작은 글씨가 아침빛에 비쳤다.

「(안 나가도 돼요)」

그 옆에는 뚜껑을 연 설탕통이 있었다. 아델이 꺼낸 흰 가루는 석판 위에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왜냐하면—이게 설탕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누가 바꿨는지는 아직 못 들었거든.”

“내가 했어요.”

루디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언제?”

“아침에요.”

“어디서 가져왔어?”

“부엌이요. 조금만 가져왔어요. 아주 조금.”

아델은 통 안을 내려다봤다. 아주 조금이라는 말과는 맞지 않게 가루가 가득했다.

루디도 함께 들여다보더니 덧붙였다.

“통보다 조금이요.”

“그건 통 안에 들어가는 만큼이라는 말이지?”

“네!”

루디는 대답을 잘했다는 얼굴로 등을 폈다.

아델은 웃음을 삼키고 설탕통을 책상 가운데로 옮겼다. 오늘 첫 수업에 쓸 분필통도 열었다.

안에 든 분필은 모두 짧아져 있었다.

어젯밤 골라 둔 짧은 것까지 반으로 꺾여 있었다. 가루가 통 바닥에 쌓였고, 가장 작은 조각은 손톱만 했다.

루디의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아델이 분필 조각 하나를 집었다.

“이것도 네가 했어?”

“길면 잡기 어려울까 봐요.”

“내 손은 네 손보다 큰데.”

루디가 아델의 손을 봤다. 자기 손을 펼쳐 옆에 대더니 얼른 거뒀다.

“두 손으로 잡으면 돼요.”

“분필을?”

“네.”

아델은 손톱만 한 조각을 두 손으로 잡아 봤다. 엄지손가락끼리 부딪쳤다.

루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 옆 의자에 앉은 로테는 웃지 않았다. 발을 모으고 아델의 손만 보고 있었다.

“쓰기는 어렵겠네.”

아델이 분필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다른 것으로 수업하자.”

루디가 의자에서 내려왔다.

“끝이에요?”

“시작도 안 했는데?”

“분필 없잖아요.”

“밀가루가 있네.”

아델이 통을 가리켰다. 루디는 웃던 입을 조금 벌렸다.

◇◆◇

공부방 책상은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도 자리가 남았다. 창 가까운 쪽에 책을 옮기고, 아델은 깨끗한 나무 쟁반을 가져다 놓았다.

루디가 쟁반 아래를 살폈다.

“빵 없어요?”

“지금은 없어.”

“그럼 왜 가져왔어요?”

“왜냐하면—가루를 책상에 쏟으면 틈에 들어가니까. 쟁반 위에서 셀 거야.”

“밀가루를요?”

“응.”

루디가 손가락 끝을 통에 넣었다가 멈췄다.

“이거 다 세면 밤 돼요.”

“가루 하나씩 말고, 한 줌씩.”

아델은 통을 기울이지 않고 손으로 조금 떠냈다. 쟁반 한쪽에 가루를 놓자 낮은 언덕이 생겼다.

“한 줌.”

루디가 바로 옆에 한 줌을 놓았다.

“두 줌!”

“맞아. 한 줌에 한 줌을 더하면 두 줌이지.”

루디는 자기 손바닥을 폈다. 손금 사이에 흰 가루가 끼어 있었다.

“선생님 것이 더 커요.”

아델은 두 무더기를 나란히 봤다. 루디의 것이 눈에 띄게 작았다.

“그렇네. 손이 다르니까 한 줌의 크기도 다르구나.”

“그러면 틀린 거예요?”

“아니. 두 번 떠 놓았으니까 두 줌은 맞아. 같은 크기로 놓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루디가 통을 제 쪽으로 당겼다.

“내가 다 해요.”

“좋아. 이번에는 네 손으로만 해 보자.”

루디는 쟁반의 가루를 한쪽에 모았다. 손바닥으로 꾹 누르다가 가루가 가장자리로 밀려나자 아델을 올려다봤다.

아델이 쟁반을 조금 더 안쪽으로 당겼다.

“가장자리에서는 천천히.”

루디는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조금씩 모았다. 한 줌을 놓고, 옆에 또 한 줌을 놓았다.

“둘.”

그 옆에 하나를 더 놓았다.

“셋.”

“셋에서 한 줌을 가져가면?”

루디는 가루 한 무더기를 두 손으로 감쌌다. 옆에 놓인 것까지 딸려오자 손을 멈췄다.

“이것도 오는데요.”

“그럼 가운데 길을 먼저 내자.”

아델이 손가락으로 무더기 사이에 좁은 틈을 만들었다.

루디가 한 무더기를 쟁반 반대편으로 옮겼다.

“둘!”

“맞아.”

루디는 옮긴 가루를 다시 가져왔다.

“셋!”

“그것도 맞아.”

루디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가루를 옮길 때마다 아델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델은 셈이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두 무더기가 붙으면 손끝으로 갈라 줬다.

로테는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델이 로테 쪽으로 빈 쟁반 자리를 가리켰다.

“너도 한 줌 놓아 볼래?”

“싫어요.”

“그럼 보고 있어도 돼.”

로테의 발끝이 의자 아래로 조금 들어갔다.

루디가 세 번째 무더기를 옮기며 말했다.

“로테는 손 더러워지는 거 싫어해요.”

로테가 루디를 봤다.

“오늘은.”

“어제도.”

“오늘은.”

아델은 두 아이 사이에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오늘 수업에서는 오늘 대답을 듣자.”

루디가 입을 다물었다가 곧 물었다.

“내일은요?”

“내일 물어보면 되지.”

루디는 만족한 듯 다시 가루를 옮겼다.

아델은 책상 끝의 분필통을 봤다. 멀쩡한 분필 하나가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쟁반 위의 가루 세 무더기를 세느라 바쁜 아이에게 당장 새 분필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수업 준비를 너무 열심히 해 줬네.’

◇◆◇

아그네스가 문을 두드렸을 때 루디는 밀가루 길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더기 사이를 나누던 길이었다. 이제는 쟁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굽어 있었다.

“선생님,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그네스의 시선이 쟁반과 설탕통, 아델의 손가락을 차례로 지나갔다. 마지막에는 루디에게 멈췄다.

루디가 쟁반을 두 팔로 가렸다.

가린다고 가려질 크기가 아니었다.

“밀가루였군요.”

아그네스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부엌에서 작은 통을 찾고 있었어요.”

아델이 설탕통을 들어 보였다.

“이 통인가요?”

“네. 공부방에서 쓰시라고 설탕을 담아 뒀는데…….”

“설탕은 어디 갔어, 루디?”

루디가 고개를 숙였다.

“부엌의 밀가루 통에 넣었어요.”

아그네스가 앞치마에 손을 문질렀다.

“빵 반죽하기 전에 찾아서 다행이에요.”

아델은 루디와 눈높이를 맞췄다.

“설탕을 밀가루라고 생각하고 쓰면, 빵을 만드는 사람이 곤란해져.”

“달아져요?”

“단맛도 달라지고, 반죽할 가루가 모자라지. 누가 바꿨는지 모르면 이유를 찾기도 어렵고.”

루디가 쟁반을 가린 팔을 내렸다.

“그럼 말하면 돼요?”

“응. 어디에 넣었는지 네가 가장 잘 알잖아.”

루디는 아그네스를 향해 돌아섰다.

“큰 통이요. 뚜껑 옆에 하얀 자국 있는 거.”

“알겠어요. 함께 내려가서 보여 주겠어요?”

루디가 아델을 봤다.

아델은 쟁반을 책상 안쪽으로 밀었다.

“다녀와. 네가 가져온 통도 돌려주고.”

루디가 설탕통을 들었다. 일어서자 무릎 위의 나팔이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아델이 끝을 받쳐 주자 루디는 나팔을 의자에 놓고 통을 두 손으로 잡았다.

아그네스가 문을 열어 줬다.

“천천히 가요. 가루가 쏟아져요.”

“안 쏟아요.”

루디는 문턱을 넘자마자 걸음을 늦췄다. 통을 내려다보느라 복도 벽에 어깨를 살짝 부딪쳤다.

아델은 문 앞에서 두 사람이 계단 쪽으로 가는 것을 지켜봤다.

돌아서니 로테가 책 옆의 종이를 보고 있었다.

아델은 종이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

로테가 먼저 말했다.

“겨울엔 밖에 못 나가요.”

아델은 창밖을 봤다. 안뜰 가장자리에는 어제보다 눈이 조금 더 쌓여 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

로테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도요.”

아델은 로테 옆 의자를 당겨 앉았다.

“겨울 내내?”

로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의자 가장자리를 꼭 잡았다.

“왜 못 나가는지는 알고 있어?”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아델은 질문을 더 보태지 않았다. 창을 등지고 앉으니 로테의 얼굴이 조금 더 잘 보였다. 삐뚤한 앞머리 아래로 눈이 아델을 살폈다.

“알려 줘서 고마워. 어른들에게도 물어볼게.”

“갈 거예요?”

“지금 나갈 준비는 안 하고 있어.”

로테의 시선이 문으로 움직였다가 돌아왔다.

“어제 그 쪽지 봤어요?”

아델의 손이 책 옆에서 멈췄다.

문 밑으로 밀어 넣은 종이는 여기 있었다. 서랍에서 찾은 경고는 방에 두고 왔다.

“문 밑에 넣은 것?”

로테는 입을 다물었다.

아델은 잠시 기다렸다. 로테는 어느 쪽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봤어. 무서웠어.”

로테의 눈이 잠깐 커졌다.

“선생님도?”

“응.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내가 모르는 말이 적혀 있으니 무섭기도 했어.”

“그런데 왜 안 갔어요?”

“왜냐하면—쪽지만 보고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너희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로테가 종이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작게 적힌 줄이 손끝 아래에 반쯤 가려졌다.

“누가 썼는지 안 물어요?”

“말해 주고 싶어?”

로테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은 안 물을게.”

로테는 종이에서 손을 뗐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는 않았지만, 가장자리를 잡고 있던 손도 무릎으로 내려왔다.

복도에서 루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어요! 설탕 찾았어요!”

로테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델은 쟁반 옆에 빈 자리를 남겨 두었다.

◇◆◇

점심을 알리러 온 아그네스는 빵을 두 개 들고 있었다.

아델이 손을 씻고 돌아오자 책상 끝에 작은 접시가 놓였다. 공부방에서 점심을 먹으라는 뜻인 줄 알고 아델은 책을 치우려 했다.

“식당으로 내려갈게요.”

“네, 식사는 아래에 준비돼 있어요. 이건 선생님 몫으로 따로 챙긴 거예요.”

“두 개나요?”

아그네스가 루디를 한 번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일곱 명 다 첫날 점심을 못 먹었어요.”

아델은 빵을 내려다봤다. 어제 현관에서도 따뜻한 빵 두 개를 받았다.

“수업이 길었나요?”

“길게 하신 분도 있고, 방에서 안 나오신 분도 있고요. 오늘은 꼭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아델은 접시를 양손으로 받았다.

“잘 먹겠습니다. 점심도 먹을 거예요.”

아그네스가 그제야 앞치마에서 손을 뗐다.

루디가 책상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것만 둘이에요?”

“내 몫으로 받았어.”

“나는요?”

“네 점심은 식당에 있대.”

“그럼 선생님은 점심도 먹고 빵도 먹어요?”

“응.”

루디는 빵 둘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쟁반 위의 무더기를 셀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배가 둘이에요?”

“배는 하나야.”

“그런데 어떻게 다 먹어요?”

“왜냐하면—배고플 때 하나를 먹고, 나중에 또 배고프면 하나를 먹을 수 있으니까.”

루디가 자기 배를 만졌다.

아그네스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가렸다.

아델이 접시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동안 루디는 쟁반 앞에 섰다. 깨끗이 씻고 온 손가락이 다시 가루 위로 내려갔다.

“루디, 점심 먹으러 갈 거야. 손은 이제 그만—”

아델이 돌아서는 순간, 루디의 두 손이 치마에 닿았다.

짙은 치마 위에 작은 손자국 두 개가 남았다.

루디가 자기 손과 치마를 번갈아 봤다. 곧 문으로 달렸다.

“씻으러 가요!”

아델은 치맛자락을 잡았다.

“걸어서!”

복도에서 빠른 발소리가 뚝 끊겼다. 잠시 뒤 느린 발소리가 이어졌다.

아그네스가 마른 천을 가져오려 했지만 아델이 손을 저었다.

“제가 털게요. 젖은 천을 대면 더 달라붙겠네요.”

로테가 의자에서 내려왔다. 아델의 치마에 남은 손자국을 바라보더니 문 쪽을 봤다.

“루디가 했어요.”

“봤어.”

“혼내요?”

“손 씻고 나면 치마 터는 걸 도와달라고 할 거야.”

로테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아델은 마른 천을 집어 들었다.

“자기가 묻혔으니까 함께 치워야지.”

식당으로 내려가기 전, 루디는 아델의 치마를 털었다. 처음에는 세게 두드려 가루를 더 날렸다. 아델이 천으로 아래쪽을 쓸어 보이자 그다음부터는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로테는 복도 벽에 기대 기다렸다.

루디가 마지막 손자국을 지우다 말했다.

“선생님 손이면 더 컸겠죠?”

“내가 네 치마에 찍을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치마 없어요.”

“그럼 바지.”

루디가 제 바지를 뒤로 숨겼다.

아델은 천을 접어 들었다.

“안 찍는다니까.”

◇◆◇

저녁 무렵, 공부방에는 부러진 분필만 남았다.

밀가루는 아그네스에게 돌려줬고, 쟁반은 루디와 함께 닦았다. 로테는 끝까지 가루를 만지지 않았지만 나가기 전에 책상 아래를 살펴보았다.

가루가 남아 있는지 보는 듯해서 아델도 같이 들여다봤다. 의자 다리 옆에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것까지 닦고 나니 창밖의 눈이 푸르스름해졌다.

아델은 분필 조각을 길이대로 놓았다. 가장 긴 것을 잡아 석판에 선을 그었다. 손끝에 힘을 주자 또 부러졌다.

“아.”

작은 소리에 문 앞의 발걸음이 멎었다.

아델이 고개를 들었다.

세드릭이 열어 둔 문 밖에 서 있었다. 검은 외투를 입은 채였고, 오른손은 등 뒤에 두고 있었다.

“다치셨습니까?”

“아니요. 분필이 부러졌습니다.”

세드릭의 시선이 책상 위로 내려왔다.

“새것을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쓰는 것은 아이들과 보관할 곳부터 정하려고 해요.”

“루디 군이 했습니까?”

“네. 밀가루도 가져왔고요.”

세드릭은 책상과 깨끗해진 쟁반 자리를 봤다. 문턱을 넘지는 않았다.

“불편을 겪으면 말씀하시라고 했습니다.”

“말씀드릴 건 있습니다.”

아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세드릭의 손이 등 뒤에서 내려왔다.

“말씀하십시오.”

“아이들이 겨울에는 밖에 못 나간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렇다고요.”

“그렇습니다.”

“언제부터인가요?”

“문닫는달 5일에 성문을 닫습니다. 겨울 동안은 나가지 못합니다.”

아델은 창밖을 봤다. 어제 들어온 흰까마귀 문은 여기서 보이지 않았다.

“그 전에 알아둬야 할 것은 제게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에게 듣고 짐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 뒤로 복도에서 식기 옮기는 소리가 났다. 아델은 석판에 남은 선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세드릭이 책상 끝의 작은 종이를 봤다. 아델은 그 시선을 따라갔다가 종이를 책 사이에 넣었다. 두 아이에게 답을 받지 않은 글이었다.

세드릭은 묻지 않았다.

잠시 뒤, 아델 쪽으로 시선이 돌아왔다.

“……오늘도 남을 겁니까.”

아델은 분필통 뚜껑을 닫았다.

“네. 내일은 약속판을 만들 거예요.”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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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편지는 겨울에 못 가요?”루디가 아델 앞에 놓인 종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종이 귀퉁이가 책상 밖으로 밀려 나와 있었다.아델은 잉크병을 안쪽으로 옮긴 뒤 종이를 바로 놓았다.“왜냐하면—사람이 가져가야 하는데, 성문이 닫혀 있으니까. 보내는 방법이 있는지는 물어봐야겠어.”“종이는 작잖아요.”루디가 엄지와 검지 사이를 좁혔다.“이만큼 접으면 문 밑으로 가요.”“문 밑으로 나가도 우리 어머니 집까지 혼자 걸어가지는 못하지.”“내가 던지면요?”“네가 던질 수 있는 곳보다 훨씬 멀어.”루디는 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봤다. 눈이 치워진 안뜰 너머로 흰까마귀 문이 보였다.“아주 세게.”“그럼 편지를 주우러 안뜰에 내려가야 할걸.”루디가 제 팔을 한번 흔들어 보다가 돌아왔다.문닫는달 25일이었다. 창가에 놓아둔 물그릇이 차가워서 아델은 책상 가운데로 옮겼다. 로테는 맞은편에 앉아 깃펜 끝을 살피고 있었다.“이걸로 써요?”“응. 처음에는 내가 손을 잡아 줄게. 너무 힘주면 끝이 벌어지거든.”루디가 의자를 당겼다.“분필은요?”“분필은 종이에 쓰고 접으면 다른 쪽에 묻어. 편지 받은 사람이 읽기 어려워져.”“안 접으면 돼요.”“그럼 가져가는 사람이 다 읽을 수도 있지.”루디가 종이를 양손으로 가렸다.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은 종이였다.“읽으면 안 돼요.”“그럼 다 쓴 뒤에는 접자.”아델은 작은 종이 두 장을 아이들 앞에 놓았다. 제 앞의 종이는 조금 더 컸다. 남부에 있는 어머니께 쓸 편지였다.로테가 아델의 종이를 보고 물었다.“누구한테요?”“우리 어머니.”“선생님 엄마.”“맞아.”루디가 고개를 기울였다.“선생님도 엄마한테 수업해요?”“어릴 때는 어머니가 나한테 가르쳐 주셨지.”“편지도요?”“응. 글씨를 너무 작게 쓰면 읽기 힘들다고 하셨어.”루디가 제 종이를 당겼다.“나는 크게 써요.”“그러다 한 글자로 종이를 다 쓰면?”루디가 잠깐 생각하더니 손을 내밀었다.“큰 종이 주세요.”◇◆◇아델은 루

  • 악당 공작가 쌍둥이의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8화. 오늘의 수업: 뜨거운 우유 식히는 법

    “선생님, 공작님은 왜 우유 안 마셔요?”로테가 쟁반 끝에 놓인 빈 잔을 가리켰다. 부엌 문 옆에 선 아델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 잔을 봤다.“왜냐하면—그건 나도 아직 모르겠어. 공작님이 우유 안 드시는 걸 봤니?”“잔은 놓아요.”“마시지는 않고?”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부엌 창에는 하얗게 김이 서려 있었다. 문닫는달 20일, 해가 진 뒤부터 공부방 돌바닥까지 차가워졌다. 양말을 신은 루디가 발을 번갈아 들기에 아델은 따뜻한 것을 마시고 자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루디가 발뒤꿈치를 들고 쟁반을 들여다봤다.“내 잔이에요?”“아직 아무 잔도 정하지 않았어.”“그럼 큰 거.”“두 손으로 잡기 편한 걸 고르자.”루디는 가장 큰 잔에 손을 뻗었다가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을 잡았다. 양손으로 감싸니 손가락 끝이 맞닿았다.“이건 안 떨어져요.”“뜨거울 때는 잡지 말고. 내가 식힌 다음에 줄게.”아델은 아이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화덕 위에 냄비를 올렸다. 빵집 할머니가 불을 줄여 주고 긴 나무 주걱을 건넸다.“바닥에 붙지 않게 저어요.”“이렇게요?”“그렇지. 아이들 입 데지 않게만 하고.”루디가 냄비 쪽으로 코를 내밀었다.“벌써 먹으면 안 돼요?”아델은 주걱을 움직이며 고개를 저었다.“찬 우유를 따뜻하게 만드는 중이야.”“따뜻하면 바로요?”“너희가 마실 수 있을 만큼 식으면.”루디가 입술을 내밀었다.“따뜻하게 했다가 식혀요?”“펄펄 뜨거운 것과 따뜻한 건 다르거든.”로테는 냄비 위로 올라오는 김을 보고 있었다. 앞머리 아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공작님도.”아델이 주걱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같이 마시자고 부를까?”“네.”“안 드실 수도 있어.”로테가 아델을 올려다봤다.“왜요?”“왜냐하면—싫어하는 음식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거든. 불러 보고 여쭤보자.”루디가 제 잔을 내려놓았다.“내가 불러요!”“계단에서 뛰지 않기.”“걸어서 빨리!”“그건 뛰는 거랑 어떻게 다를까

  • 악당 공작가 쌍둥이의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7화. 오늘의 수업: 성 안 지도 그리는 법

    “선생님, 왜 묘지는 지도에 안 그려요?”루디가 종이 위 빈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손끝에는 아침에 만진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다.아델은 종이가 밀리지 않게 모서리를 눌렀다.“왜냐하면—아직 거기까지 안 가 봤거든.”“성 안인데요.”“성 안이라고 내가 전부 아는 건 아니야.”“집사님은 알아요.”“그럼 모르는 곳은 집사님께 물어보고 그리자.”루디가 의자에서 몸을 길게 뺐다. 책상 위에는 본성과 부엌, 겨울집이 서툰 네모로 그려져 있었다. 뒤 언덕은 비어 있었다.공부방 창턱에서는 종이새 두 마리가 천천히 돌았다. 작은 날개를 안으로 접은 새가 긴 꼬리의 새와 닿았다가 떨어졌다.로테가 자리에서 일어나 꼬리 끝을 바로잡았다.“여기는 있어요.”로테는 새 아래에 놓인 종이를 가리켰다.「이 자리는 아이들이 잘 볼 수 있습니까.」그 밑에는 로테가 며칠 전 꾹꾹 눌러 쓴 대답이 있었다.「네.」루디는 창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지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공부방도 그려요. 내 새 있는 데.”아델은 본성 네모 안에 작은 칸을 만들었다.“여기가 공부방.”“너무 작아요.”“종이를 실제 방만큼 크게 만들 수는 없잖아.”루디가 팔을 벌려 종이 길이를 쟀다.“방보다 작은 건 맞네.”로테가 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아델이 놓아 둔 분필을 들고 작은 칸 안에 짧은 선을 그었다.“창.”“좋아. 창이 어디 있는지 알면 방도 찾기 쉽겠다.”아델은 문닫는달 16일이라고 적은 석판을 옆으로 밀었다. 오늘 걸어 볼 곳을 적으려던 참이었다.루디가 빈 언덕에 다시 손을 댔다.“여기는 걸어서 그려요?”“응. 눈을 치워 둔 길로만.”로테의 분필이 멈췄다.아델은 두 아이를 번갈아 봤다.“가기 싫은 곳이 있으면 말해 줘. 지도에 빈 곳이 있어도 괜찮아.”로테는 분필을 내려놓았다.“길만.”“우선 길만 가 보자.”루디가 곧장 의자에서 내려왔다.“내가 셀래요!”◇◆◇외투를 입히는 동안 루디의 발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하나, 둘, 셋.”아델이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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