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티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세이런?”
대답이 없었다. 한참 만에야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세이런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문 앞을 서성이며 언제 나오느냐고 재촉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아티니스가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혹시 어딘가 이상한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요한 오두막 안에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아티니스의 시선이 닫힌 문에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세이런에게로 돌아왔다.그 순간 그녀는 조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세이런이 웃고 있었다.아침부터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춰 두었던 듯한, 아주 능글맞은 미소였다.“……왜 그렇게 웃어요?”“그냥.”세이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오늘은 아직 아티가 기운이 남아 보여서.”“……네?”아티니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세이런은 그런 제 아내를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낮게 웃었다.
아티니스의 시선이 저절로 주변을 훑었다.눈앞에는 넓은 호수가 있었고, 그 너머로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숲이 이어져 있었다. 그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으니 근처에 마을이나 여관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이 호수 앞에서요?”아티니스의 눈에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그제야 세이런의 입가에 조금 더 짙은 미소가 번졌다.하지만 여전히 설명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그는 대답 대신 아티니스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자, 따라와.”아티니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세이런과 내밀어진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결국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세이런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대체 어디 가는 건데요?”
얼마나 달렸을까. 앞서가던 세이런이 천천히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아티.”“네?”“저기 봐.”세이런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아티니스가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눈이 크게 뜨였다.“우와…….”나무 사이로 푸른빛이 보였다.숲을 조금 더 빠져나가자, 조금 전까지 빽빽하던 시야가 한순간에 환하게 열리며 넓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우와아……!”아티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호수는 주변을 둘러싼 숲의 푸르름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맑은 수면 위에 바람이
별장으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부터 아티니스의 고개가 꾸벅꾸벅 떨어지기 시작했으니까.한 번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화들짝 놀라 눈을 뜨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왼쪽으로 기울었다.세이런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결국 자신의 쪽으로 쓰러지는 머리를 어깨로 받아주었다.아티니스가 눈을 아주 조금 떴다.“세이런…….”“응.”“도착하면 깨워줘요…….”“알았어.”그 대답을 듣자마자 아티니스는 안심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잠시 후에는 세이런의 팔까지 끌어안고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세이런은 제 팔에 매달려 잠든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문제는 밤이었다.“아…… 이제 더는 못 움직이겠어요.”하루 종일 시장과 골목을 돌아다니고, 해가 질 때까지 바닷가를 누빈 아티니스는 별장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세이런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그러니까 적당히 돌아다니자고 했잖아.”“그래도 볼 게 이렇게나 많은걸요….”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은 아티니스가 웅얼거리듯 대답했다.벌써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었다.“내일도 있는데. 그리고 또 오면 되고.”“내일은 내일 갈 데가 있는 거고, 또 오면은 그때도 또 갈 데가……”아티니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마지막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눈부신 햇살이 바다 위로 쏟아져 수면을 수천 개의 보석처럼 반짝이게 만들고 있었다. 물결이 한 번 일렁일 때마다 부서진 빛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그 빛이 고스란히 아티니스에게로 번져 왔다.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주홍빛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금빛 햇살이 스며들었다.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까지 빛을 머금은 듯 반짝였고, 새하얀 피부 위로는 물결에 반사된 햇빛이 아른아른 흔들렸다.그 한가운데에서 아티니스가 웃고 있었다.눈꼬리를 부드럽게 휘고, 세이런을 바라보며.마치 바다 위에 쏟아진 모든 햇빛이 그녀 하나를 비추기 위해 반짝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정말 눈이 부셨다.세이런은 순간 정말로 눈앞의 풍경이 현실인지 의심할 만큼 넋을 잃었다.행복해서 웃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좋아서.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세이런의 가슴이 이상하리만큼 크게 뛰었다.수없이 보아온 얼굴이었다.
“안 되겠어요. 사람을 부를게요. 집사든 누구든….”아티니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도움을 청하러 가려 하자, 세이런이 힘겹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아니야… 소용없어… 그들이 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조금만... 쉬면 괜... 찮아.”그 말에 아티니스는 잠시 멈칫했다.‘그럼, 정말… 혼자서 이렇게 견디는 거야?’아티니스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세이런의 차가운 손끝에 닿았다.그리고 아티니스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이 마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발 이 사람의 고통을… 병을
“대공자님은 그 전설을 어떻게 아는데요?”아티니스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세이런에게 물었다.“아버지에게 들었어. 아버지가 황실에 갈 때마다 그 전설에 대해 조사하시거든.”그제야 아티니스는 왜 대공이 자리를 비웠는지 이해했다.“그럼 황족도 이 전설에 대해 아나요? 마법에 대해서?”“맞아. 이 정보는 황제가 아주 꽁꽁 숨기고 있는 기밀이거든.”“네? 그럼 대공님은 어떻게 그런 기밀을 아시는 거예요?”“예전에 황제가 귀족들에게 정보를 흘려 마법사를 찾으려 했었대,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초차하지 않아. 그래서 아버지는 몰래
“…아가씨, 그럼 약혼만 하는 건 어때요? 약혼은 결혼보다 깨기도 쉽고, 꼭 같이 지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형식적인 관계로만 유지할 수도 있고요.”리리의 말을 듣는 순간, 아티니스의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그녀는 밝게 웃으며 리리를 와락 끌어안았다.“리리, 넌 정말 천재야! 좋아, 그럼 따로 지내는 약혼을 전제로 제안해 볼게.”아티니스는 일이 생각보다 잘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 가지 못했다.저녁 식사 자리.아티니스는 수프를 뜨던 숟가락을 든 채 그대로 굳어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과 달리, 아티니스 세레스니타의 표정은 흐린 하늘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말없이 긴 숨을 내쉬며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나러 가는 아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아티… 정말 혼자 가야겠니? 엄마가 같이 가 준다니까….”아티니스 뒤를 따라 나온 릴리스 백작부인의 애타는 목소리에 이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던 글라디 백작도 걱정 어린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도무지 딸을 혼자밖에 내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3년전부터 외출은 허락해 주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