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놔!”고은서는 팔꿈치로 곽승재의 가슴팍을 찌르면서 소리쳤다.“스읍.”곽승재는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서운에 있을 때 곽승재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걸 떠올린 고은서는 순간 흠칫했다.곽승재는 이 틈을 타 그녀를 더 세게 껴안으면서 말했다.“은서야, 날 밀어내지 말아줘. 나에게 한 번만 기회를 더 줘...”술기운이 느껴지는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 와닿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죽이고 있었다.‘설마 방금전에 내가 레스토랑에서 한 말 때문에 자극이라도 받은 건가? 대체 왜 이러는 거야?’그녀의 주변은 온통 곽승재 몸에서 나는 설송향으로 물들었다.불편함을 느낀 고은서가 그를 밀어내면서 말했다.“이거 좀 놔.”“싫어. 놓으면 또 날 버리고 갈 거잖아. 그러면 더는 널 볼 수 없게 되잖아.”곽승재는 얼굴을 그녀의 품에 기댄 채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앙탈을 부렸다.“은서야, 보고 싶었어.”그는 고은서 없이 보내는 일분일초가 너무 괴롭게 느껴졌다.비록 며칠 동안 함께 서운에서 지내고 또 몇 시간 전에 금방 만나고 지금 함께 뒷좌석에 앉아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곽승재는 그녀의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술을 마신 원인 때문인지 고은서는 온몸이 뜨거워 나는 것 같았다.“곽승재, 술 마셨다고 함부로 행동하지마. 안 취한 거 다 알고 있으니까.”고은서가 발버둥 치면서 곽승재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는 고집을 부리면서 아예 그녀를 들어 올리면서 자신의 다리에 앉혔다.덕분에 두 사람은 부득이하게 마주 보게 되었고 또 곽승재가 고은서를 손으로 잡고 있는 바람에 두 사람은 거의 맞붙어 앉아 있게 되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체온이 점점 높아지면서 그의 말 못 할 부위가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겠어.’고은서는 곽승재의 상처를 관심할
“저리 비켜...”고은서는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지는 듯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허세를 부리는 아기 고양이처럼 느껴졌다.욕망을 애써 억누르고 있던 곽승재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아래로 잡아당기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은서야, 너무 보고 싶었어.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보고 싶었어...”단단한 무언가에 손이 닿은 고은서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곽승재의 손을 뿌리치면서 화를 냈다.“변태 새끼!”“은서야, 너도 하고 싶잖아. 참지 말고 날 한 번 믿어봐.”곽승재의 뜨거운 숨결이 고은서의 목에 와닿았다.그의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그녀는 술을 마신 자신이 너무 미웠다.‘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어. 그럼 곽승재의 유혹에 이렇게 쉽게 넘어갈 리도 없었을 텐데.’자신의 몸을 더듬는 곽승재의 손길에 고은서는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의 저항은 이젠 무용지물이 되었고 심지어 곽승재에겐 크나큰 유혹으로 느껴졌다.곽승재가 그녀를 깨물 때 고은서는 수치스러움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곽승재, 그만해...”그녀의 울먹이는 소리에 고개를 든 곽승재와 눈이 마주친 고은서는 순간 흠칫했다. 그의 눈빛은 온통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목소리도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게 느껴졌다.“은서야, 아파? 내가 더 부드럽게 해줄게.”고은서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싫어.”곽승재는 단번에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몸에 힘이 풀리면서 거의 그의 품에 기대어 있었는데 두 볼은 빨간 홍조를 띠고 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울망울망한 두 눈엔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마치 자신을 가지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러나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거절하고 있었다.곽승재는 고은서가 진심으로 거절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취하지 않은 자신이 너무 미웠다.사실 계속 이어간다고 해도 고은서는 그를 밀어내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그렇게 되면 고은서를
고은서는 곽승재의 장난스러운 말투와 눈빛으로부터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얼마나 낭패한 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그녀는 오늘 셔츠와 정장 치마를 입었는데 곽승재 때문에 단추가 풀리면서 속옷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가슴 쪽에 아주 선명한 이빨 자국까지 생겼다.고은서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너무도 창피했다.그녀는 생각을 포기하고 얼굴을 곽승재 가슴팍에 묻은 채 그의 외투를 잡아당기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곽승재는 고은서의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그는 그녀를 안은 채 엘리베이터 올라 아주 자연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반응하고 조심스레 고은서에게 물었다.“몇 층이야?”고은서의 대답을 들은 곽승재는 버튼을 누르는 시늉만 하고 또다시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받쳐 올렸다.곽승재의 욕망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고 심지어 다시 들끓어 오를 기세를 보였다. 이를 가까이 감지한 고은서는 그를 쏘아보며 화냈다.“이상한 생각 그만 좀 해!”그러나 곽승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내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사람이 지금 내 품에 안겨 있는데 나도 어쩔 수 없어.”코끝은 온통 곽승재의 특유한 설송향으로 가득했고 귓가에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얼굴이 또다시 화끈 달아올랐다.‘곧 집이니까 조금만 더 참으면 돼.’두 사람은 고은서 집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친밀한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지문을 누르고 집 문을 열리자마자 고은서는 곽승재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그러나 곽승재가 핑계를 둘러대면서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나 목말라.”고은서는 어쩔 수 없이 곽승재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집에 들어선 고은서는 황급히 곽승재를 밀어내고 자신의 가슴 부위를 손으로 막았다.“물 저기 있... 우웁!”곽승재는 고은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장롱 쪽으로 밀어붙이며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방금전의 키스와 달리 그의 다급함과 미련이 깊이 느껴지는 키
그리고 고은서의 차에 타기 위해 미리 기사를 다른 곳으로 보냈던 것이다.중도에 먼저 튄 것도 곽승재와 고은서에게 단둘만의 시간을 마련해주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그래도 다행히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네.”육현석이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박지연도 따라 감탄했다.“정말 의리 있는 친구네.”“당연하지.”육현석이 자랑스러워하며 답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갈 떠올렸는지 화제를 바꾸었다.“지연아, 혹시 형수님이 말한 결혼 선물이 뭔지 알아? 승재 형한테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아서 그러는데 넌 알고 있어?”박지연은 주문 제작 팔찌에 관한 일을 육현석에게 알려줬다.“내 생각인데 은서가 곽승재한테 마음이 흔들린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거절했을 거야.”“정말이야? 형수님과의 더 빠른 재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형한테 더 노력하라고 전해야겠네.”두 사람은 수다를 한창 떨었는데 극락에 달한 박지연은 얘기하면 할수록 소주랑 삼겹살이 땡겼다.전화를 끊은 후 박지연은 샤워하고 있는 고은서를 재촉하러 가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그녀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시어머니라는 네 글자를 보자마자 박지연은 순간 기분이 잡쳤다. 그녀는 고민 끝에 폰을 무음모드로 설정했다.고은서는 샤워를 하고 냉수 두 잔을 들이켜고서야 방금 욕망 때문에 들끓어 오른 체온이 점차 내려가는 것 같았다.‘술을 처음 마신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네. 아까 지연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진짜 곽승재한테 덮쳐들었을 거야. 그런데 외롭다고 남자를 갈망할 나이도 되지 않았는데... 설마 몸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고은서는 박지연에게 비웃음 받을 준비를 하면서 그녀를 찾으러 방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박지연은 덤덤한 표정을 하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지연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고은서가 걱정하며 물었다.“별일 아니야. 온승준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받지 않았거든. 그랬더니 문자로 날 비난하더라고.”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박지연의 폰을
박지연은 고은서의 격려하는 눈빛을 받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지연아, 엄마가 너한테 전화했었어?”온승준이 물었다.하지만 박지연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내일 언제 시간이 돼? 우리 얘기 좀 하자.”온승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내일은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은 시간이 있어. 너 어디 사는 거야? 내가 갈까?”박지연은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은 9시,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아닌 시간이었다.온승준은 언제 바빠질지 모르니, 얘기할 거면 지금 하는 게 맞았다.“좋아.”박지연은 온승준과 라이트 문 아파트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출발하기 전 박지연은 대충 얼굴을 닦고 외투를 걸쳤다. 옆에서 고은서는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걱정하지 마.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난 전적으로 지지할 거야.”내심 박지연이 전생의 비극에서 벗어나길 바랐지만, 만약 이게 박지연의 선택이라면 고은서는 그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녀는 카페에 도착했다.커피를 주문할 때 박지연은 습관처럼 온승준이 좋아하는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려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결국 삼켰다.그녀는 도우미도 엄마도 아니기에 다시는 그를 돌보고 희생하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좋아하는 블랙커피와 작은 케이크를 주문한 후 박지연은 멀리서 온승준의 모습을 발견했다.그는 편안한 얇은 니트 외투에 검은색 캐주얼 바지를 입고 날씬한 몸매를 뽐냈다. 코끝에 걸쳐진 은색 테가 달린 안경은 금욕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박지연과 온승준은 소개팅에서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지연이 소개팅에서 실수로 커피숍에 앉아 있던 온승준을 소개팅 상대라고 착각한 거였다.그 전에 박지연은 온승준에 대해 조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심장외과 의사였고, 잡지 인터뷰에도 나왔던 사람이었다.박지연은 자신의 운이 믿기지 않아 급히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며 말했다.“저는 건강하고 성격 밝고 활발한 사람이에요. 결혼할 준비가 다 됐어요.”어떤 말에 설득됐는
“전화 안 받았어. 어머님이 뭐라고 했는지는 직접 보면 알 거야.”박지연은 휴대폰 메시지를 열어 온승준 앞에 휙 던졌다.온승준은 메시지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첫 문자만 봐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이런 잡다한 일들을 싫어해서 결혼하고도 이런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박지연은 유능하고 성격도 좋았기에 모든 일을 철저하게 챙겨서 그가 신경 쓸 것 없이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부모님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박지연에게서 딱히 흠을 잡을 수 없었다.온승준은 처음에 모든 것이 이렇게 순조롭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지연이 이혼하자고 했다.온승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말씀이 너무 거칠었네. 내가 엄마한테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할게.”박지연은 온승준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았기에 조용히 웃었다.“됐어, 더 이상 당신 힘들게 하지 않을게. 어차피 부모님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더 이상 잘 보일 필요도 없잖아. 시간 내서 우리 이혼 절차 진행하자.”온승준은 손끝으로 안경을 정리하며 말했다.“지연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거야?”“엄마는 전에 우리에게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하라고도 하셨고. 아마 그동안 네가 집에 안 들어오고 전화를 받지 않아서 화가 나셨을 거야.”온승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지연아, 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학술 보고서도 마무리해야 하고. 투정 그만 부려. 예전 일은 내가 미안해. 사과할게.”박지연은 온승준한테 이렇게 투정을 부린 적이 없었다. 늘 자기 혼자 억지로 풀어내고 끝냈지만, 이번엔 달랐다.온승준이 미안하다는 말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이 사태가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번거로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는 자세를 낮추는 걸 선택했다.박지연은 그날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결혼 증명서를 받았을 때의 행복감을 떠올리며 이혼하려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박지연이 뒤를 돌아보자 예상치 못하게 육현석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그는 손에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꼬치와 맥주 몇 병을 들고 있었다.전에 그들이 수다 떨 때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수다는 꼬치와 맥주가 더 잘 어울려.”‘설마 그 말을 기억하고 특별히 나를 위해 사 온 건가?’“지연아, 여기서 뭐 해?”육현석이 그들 앞에 다가와서 그녀 옆에 있는 온승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분은?”“온 닥터, 내 남편이야.”그리고 박지연은 반대로 온승준에게도 소개했다.“내 친구 육현석이야.”“아, 온 선생님 반갑습니다!”육현석은 한 손을 비우고 온승준에게 악수를 청했다.온승준은 육현석의 재벌 도련님 인상이 물씬 풍기는 외모와 손에 들려 있는 꼬치와 맥주를 보고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럼에도 그는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며 형식적으로 악수했다.“반갑습니다.”“온 선생님, 오늘 지연이랑 우리 형수님 고은서랑 술 한 잔 하려 했는데, 함께 하실래요?”육현석이 너그럽게 초대했다.온승준은 워낙 낯선 사람과 과도한 사교를 좋아하지 않았고, 쓸데없는 대화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그는 정중히 거절하고 박지연에게 말했다.“난 학술 발표 준비가 남아서 먼저 가볼게.”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온승준이 떠난 뒤 박지연은 육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육현석, 네 마음은 고맙지만 나 방금 막 식사를 마쳤고 은서도 술을 꽤 마셔서 더는 못 마셔.”육현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네가 술 마시고 싶을 때 다시 약속 잡자.”“고마워.”박지연은 진지하게 말했다.육현석이 여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여자를 유혹하는 데도 능숙한 사람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을 기억하고 실천한 것에 감동받았다.육현석은 고맙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기에 웃으며 말했다.“친구 사이에 거리감 느끼게 왜 그래. 그럼 난 가볼게. 내일 병원 운동장에서 보자!”“
“곽 대표님, 서인수는 정말 개자식이에요. 저를 압박해 대표님에게 부탁을 하게 만들기 위해 해외에 있는 아들까지 동원했어요. 서인수를 무시할 수는 있지만, 아들에게 걱정 끼치는 건 정말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실례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대표님을 부른 거예요.”곽승재는 병실을 잠시 훑어보았다. 그 안에서는 서인수가 깨어나 있었고, 의사가 검사하고 있었다.“곽 대표님, 곽 대표님... 컥!”서인수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보자마자 급격히 감정이 격해졌다.하지만 몸이 너무 약해서 병상에서 자칫하면 떨어질 뻔했다.의사들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서인수는 이를 무시하고 비틀거리며 곽승재 앞으로 다가가 애원했다.“곽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고의로 사모님에게 손을 대려던 게 아닙니다. 다 백유미가 시킨 겁니다!”경찰과 의사들이 서인수를 다시 병상으로 밀어 넣으며 그를 제지했다.곽승재가 미간을 찌푸리자, 도아름은 백유미가 서인수를 부추겼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은서도 알고 있었나요?”곽승재는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도아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제가 며칠 전에 서인수를 만났어요.”“곽 대표님, 서인수는 그동안 외부에서 칭찬을 받으며 자만해졌어요. 그런 사람은 누군가에게 쉽게 이용당할 수 있는 법이죠.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서인수는 이 일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곽승재는 그 말을 듣고 깊은 눈동자에 냉기가 서렸다.“알겠어요. 제가 처리할게요.”“도 대표님이 저를 부르신 건, 서인수에 일에 대해 부탁이 있어서인가요?”“아니요.”도아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그저 서인수가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예요. 은서 씨가 위험에 처할 뻔했으니, 서인수는 받아야 할 처벌을 전부 받아야 해요.”곽승재는 도아름을 감탄하는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도 대표님, 정말 대범하고 큰 그릇을 가지셨네요. 탄복스럽습니다.”도아름이 답하려던 순간, 그녀의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렸다.휴대폰을 확인하자, 박지연이 연속 메시지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여시은은 여전히 여재훈의 다리를 붙잡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럼, 아빠가 생각하시는 해결 방법은 뭐예요?”여재훈은 여시은에게 홍보팀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개인적으로 고은서에게 직접 진심으로 사과한 뒤 집에서 2주 동안 자숙하라고 말했다.“제 회사는 아직 개업식도 제대로 안 했는데 공개 사과를 하라뇨?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저를 웃음거리로 볼 거 아니에요!”여시은은 눈이 퉁퉁 부은 채 애원했다.“아빠, 저 은서한테 개인적으로 사과만 하면 안 돼요? 저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이끌기 힘든데,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앞으로 누가 저를 믿고 따르겠어요?”“안 된다.” 여재훈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이미 파장이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시은아, 잘못을 저지른 건 무서운 일이 아니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실하게 사과하면 은서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줄 거다.”여재훈은 계속해서 말했다.“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잘못했는데 내가 덮어주면 그건 너를 망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일은 이렇게 결정된 거다!”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고은서를 그저 연못에 좀 빠지게 했을 뿐인데 이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단 말인가?’‘공개 사과라니, 이제 예전처럼 모두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던 모습은 끝이라는 거잖아.비록 인터넷의 영상은 지워지더라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나쁜 인상은 지워지지 않을 거란 말이야!’오늘 밤 그렇게 많은 부유층과 정재계 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최악의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해성에서 쌓아온 그녀의 완벽한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진 셈이다.예전엔 그녀가 울기만 하면 여재훈은 안쓰러워하며 뭐든지 다 용서해 줬었다.‘지금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아빠는 고은서 때문에 자신의 딸을 벌하려 한다니, 정말 나를 딸로 생각하긴 하는 걸까?’
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시뻘게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빠,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고은서가 일부러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예요. 왜 저를 믿지 않으세요!”“시은아!”여재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차가운 눈빛으로 딸에게 화를 냈다.“너는 어쩌다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됐니!”“내가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봤어. 연회장 CCTV 꺼놓은 거, 그거 네가 시킨 거더라.”여재훈은 딸을 억울하게 만들까 걱정돼 CCTV 관련 내용을 직접 조사했다.그런데 정말로 여시은이 꺼놓았던 것이었다.“네가 정말 은서 씨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왜 CCTV를 미리 꺼놓은 거냐?”여재훈은 냉정한 태도로 물었다.여시은은 자신이 고은서의 계략에 걸려든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은서는 일부러 도발적인 눈빛으로 여시은을 자극했고 곧바로 테라스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모두 여시은한테 엿 먹이려는 행동이었다!여시은은 고은서가 쿠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동적으로 행동해 자신을 밀칠 거라 확신했었다.왜냐하면 고은서는 지난번엔 쿠아를 다치게 한 일로도 크게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엔 반전이 생겼다.고은서는 오히려 침착하게 반격했고 지난번 농장에서의 ‘물에 빠진 사건’ 증거까지 들고나왔다.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이상 여시은은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여재훈을 향해 소리쳤다.“맞아요! 저 고은서가 너무 꼴 보기 싫었어요! 왜 아빠는 맨날 걔만 칭찬하세요? 이러니깐 제가 질투 나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고은서한테 꼽 주고 싶었어요!”“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후회도 안 해요!”“너!”여재훈은 손을 번쩍 들어 여시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는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시은아, 아빠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가르쳤니? 사람은 자기 양심에 떳떳해야 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근데 너는 어떻게 질투심에 눈이
이미숙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여시은이 고은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연못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그 영상은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린 것 같았고 화질이 너무 좋은 건 아니지만 전반 상황을 알아보는 데에는 충분했다.영상의 끝에는 고은서와 여시은의 얼굴을 비춘 장면도 담겨 있었다.다소 초라해진 고은서는 곽승재의 부축을 받으며 옆에 서 있었다. 여시은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그 와중에 영상의 제목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재벌가 아가씨, 두 얼굴의 진실!]“사모님, 저 여자는 어쩜 저리 독하대요. 이렇게 심하게 괴롭히다니. 누가 폭로해 줘서 다행이지! 이제 세상 사람들 다 그 여자 피해서 다니겠어요!”이미숙은 화가 난 듯 말했다.고은서는 이번 일이 오래 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시은 뒤에는 여재훈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 일로 여시은이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고, 여재훈 역시 자신의 딸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니, 이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은서는 이미숙의 휴대전화 영상에 대뜸 ‘좋아요'를 눌렀다.한편, 여씨 가문에서.여시은 역시 유튜브 영상을 확인했다. 분노에 찬 그녀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밖에 서 있는 박미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시은 아가씨, 회장님께서 지금 바로 서재로 오시래요. 할 말씀이 있으시답니다.”이번이 박미화가 세 번째로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여시은은 곧바로 얼굴에 드리워진 분노와 짜증을 숨기고는 일부러 슬프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박미화는 방안에서 반응이 없자 방문을 열려고 하였다. 때마침 여시은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여시은은 박미화의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분노로 인해 물어뜯은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의 살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여시은은 울먹이는 말투로 물었다.“미화 언니, 아빠가 나한테 화 많이 나신 거야? 나 어떻게 해야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