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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2화. 엄마는 밥 안 먹어?

Autor: 6jay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8 09:27:14

2027년 1월 5일 아침, 서연은 목폴라의 깃을 끝까지 올렸다.

거울에 목덜미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화장으로 가리기에는 자리가 깊었고, 가린다고 손이 그 자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출근 가방을 메다 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다.

『목 추워. 목도리 해.』

태주의 문자는 늘 그런 식이었다. 하고 난 일을 다시 말하지 않고, 날씨나 밥이나 길을 말했다. 서연은 답을 쓰다 지웠다. 『자국 보여요』라고 치면 그가 달려올 것 같았고, 『괜찮아요』라고 치면 거짓말 같았다.

화면을 끄자 날짜가 눈에 걸렸다. 1월 5일.

그 숫자가 겹치며, 다른 해의 같은 계절이 아닌 다른 달이 떠올랐다.

열 달 전.

2026년 3월, 언니의 장례식장.

“이모, 엄마는 밥 안 먹어?”

봄이가 국그릇 옆에 놓은 숟가락을 하나 더 집었다. 어른용이라 아이의 손바닥 밖으로 자루가 길게 나왔다.

서연은 식은 밥을 뒤적이던 손을 멈췄다. 빈소 안에서는 누군가 코를 풀었다. 주방 쪽에서는 빈 접시들이 부딪쳤다. 그 소리 사이에서 봄이는 여전히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엄마 것도 놔야지.”

아이 앞에는 맵지 않은 국을 따로 받아 놓았다. 한 숟갈도 줄지 않았다. 서연은 물컵을 아이 쪽으로 조금 밀었다.

“봄아. 엄마는 이제 밥을 못 먹어.”

“배 안 고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서연은 입 안쪽을 깨물었다. 오늘만 벌써 몇 사람이 엄마가 좋은 곳에 갔다고 했다. 멀리 갔다는 사람도, 하늘나라에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봄이는 그때마다 천장을 봤다.

서연이 대답하기 전에 아이가 의자에서 내려왔다.

“아빠한테 물어볼래.”

아이의 운동화 뒤축이 접혀 있었다. 서연이 무릎을 굽히자 봄이는 익숙하게 어깨를 짚었다. 지난달 생일에 사 준 신발이었다. 언니는 한 치수만 크게 사라며 신신당부했다.

서연은 뒤축을 펴고도 잠깐 손을 떼지 못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태주는 빈소 입구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조문객의 손이 그의 팔을 두 번 두드렸다. 태주는 고개를 들었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오자 다시 숙였다. 봄이가 바짓단을 잡을 때까지 그 자세였다.

“아빠. 엄마 밥.”

태주의 시선이 아이 손에 들린 숟가락으로 내려갔다.

“봄아.”

“아빠가 불러. 엄마 안 들리나 봐.”

태주의 입술이 벌어졌다. 아이가 기다리는 동안에도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안으려다 말고 상복 소매를 걷었다. 손목에 마른 밥풀이 붙어 있었다. 언제 묻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서연이 손수건을 꺼내 건네자 태주는 받기만 했다.

손가락이 스쳤다. 그 짧은 접촉을 서연은 나중에야 기억했다. 그날은 그냥 천을 건넨 일이었다. 밥풀을 떼는 남자의 손등이 유난히 힘줄이 서 있었던 것만 남았다.

“제가 잠깐 데리고 있을게요. 형부는 인사 마저 하세요.”

“혼자 괜찮겠어?”

“둘인데요, 뭐.”

서연은 말하고 나서 입술을 다물었다. 평소 같으면 언니가 옆에서 그러니까 둘이 싸우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봄이가 먼저 이모가 맨날 진다고 웃었을 것이다.

오늘은 아무도 말을 받지 않았다.

복도 끝 휴게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창문 아래 난방기가 뜨끈했지만 유리 너머 나무는 아직 맨가지였다. 서연은 봄이의 겉옷 지퍼를 올려 주고 옆에 앉았다. 봄이는 숟가락을 무릎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엄마 죽었어?”

서연의 손가락이 지퍼 끝에 걸렸다.

“누가 그랬어?”

“아까 할머니가. 우리 엄마 죽었다고 울었어.”

아이는 난방기 구멍을 보며 말했다. 서연은 대기실에서 엄마를 말리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엄마는 언니의 이름을 부르다가 숨이 차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서연은 물을 가지러 뛰느라 봄이가 어디 있었는지 못 봤다.

“응.”

겨우 나온 대답이 너무 작았다. 서연은 다시 말했다.

“엄마가 사고로 많이 다쳤어. 그래서 죽었어. 우리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대.”

“병원에 가면 되잖아.”

“병원에서도 못 고쳤대.”

봄이가 숟가락을 뒤집었다. 둥근 면에 천장 불빛이 작게 맺혔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그 불빛을 문질렀다.

“이모도 봤어?”

“아니. 이모는 못 봤어.”

“그런데 어떻게 알아?”

서연은 무릎 위 손을 움켜쥐었다. 멀리서 사고가 났다는 전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가득한 종이, 언니를 데려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 그 사이 그녀가 실제로 한 일은 어머니를 부축하고 휴대전화를 충전한 것뿐이었다.

“아빠가 연락을 받았어. 엄마랑 같이 있던 곳에서.”

봄이가 드디어 서연을 봤다.

“이모도 울어?”

“응. 이모도 엄마 보고 싶어서.”

“울면 코 아픈데.”

아이의 인중이 벌겋게 헐어 있었다. 서연은 가방에서 새 휴지를 꺼냈다. 문지르지 않고 콧물만 살짝 눌러 닦았다. 봄이는 고개를 피하지 않았다.

“이건 부드러운 거야.”

“엄마는 물 묻혀 줘.”

“그랬구나. 이모가 조금 묻혀 올게.”

그녀가 일어서자 봄이가 치맛자락을 잡았다. 처음에는 손끝으로, 곧 천을 구겨 쥘 만큼 세게.

“가지 마.”

“저기 정수기까지만.”

“나도 갈래.”

서연은 가방을 그대로 둔 채 아이와 정수기까지 걸었다. 두 걸음 거리였다. 종이컵에 물을 받아 휴지 모서리를 적시는 동안 봄이는 서연의 치마를 놓지 않았다.

휴게실로 돌아왔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사 사장님이었다. 화면에는 연차는 정리해 둘 테니 급하게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가 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서연이 금요일에 고치기로 한 상품 페이지 사진이 작게 보였다.

뚜껑이 잘 닫힌 반찬통 여섯 개.

서연은 화면을 껐다. 봄이가 검은 휴대전화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모 집에 가?”

“오늘 밤은 여기 있을 거야.”

“나 잘 때도?”

“응. 잘 때도.”

“화장실 갈 때는 말하고 가.”

“알았어. 꼭 말할게.”

봄이는 그제야 치맛자락에서 손을 뗐다. 대신 서연의 손가락 두 개를 잡았다. 아이의 손은 더웠고 손톱 밑에는 파란 색연필 가루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울지 말라고 건네준 색칠책을 아까까지 쥐고 있었다.

서연은 그 책을 펼쳤다. 토끼의 귀 한쪽만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

“엄마한테 보여 주려고 했는데.”

서연은 아이 무릎 위에 책을 펼쳐 두고 구겨진 모서리를 눌렀다. 봄이는 토끼 귀를 만지다가 숟가락을 책 위에 얹었다.

“아빠도 밥 안 먹었어.”

“아빠한테 가 볼까?”

봄이가 일어났다. 서연은 아이가 놓고 갈 뻔한 숟가락을 챙겼다. 돌아오는 복도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봄이의 얼굴을 만지려 하자 아이는 서연 뒤로 숨었다. 서연이 대신 짧게 고개를 숙였다.

태주는 빈소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손 사이에 서연이 건넨 손수건이 구겨져 있었다. 봄이가 다가가자 그는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아이 눈높이로 몸을 낮췄다.

“어디 갔다 왔어.”

“물.”

봄이가 한 손으로 아빠의 무릎을 짚었다. 다른 손은 여전히 서연의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태주가 아이를 안아 올리려다 말고 그녀를 봤다.

“조금만 같이 있어 줘.”

“네. 봄이가 놓을 때까지요.”

서연은 아이를 사이에 두고 그 옆에 앉았다. 챙겨 온 어른용 숟가락을 무릎 위에 놓자 봄이가 손끝으로 자루를 만졌다.

가까이 앉은 태주의 어깨가 상복 천 너머로 닿았다. 서연은 그 닿음을 피하지 못했다. 피할 자리가 없었다. 그때는 그 온기를 죄라고 이름 붙일 줄도 몰랐다.

***

봄이는 새벽에 두 번 깼다.

한 번은 물을 달라고 했고, 한 번은 아무 말 없이 서연의 귀를 만졌다. 휴게실에 편 이불 가장자리에서 서연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이 손이 떨어진 뒤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에는 머리끈이 없었다. 가방을 세 번 뒤졌는데 검은 고무줄 하나만 나왔다. 봄이는 서연의 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아파.”

“살살 묶을게.”

“엄마가 쓰는 거 아니야.”

서연은 빗 대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골랐다. 목덜미 쪽에 땀이 말라 붙어 있었다. 빗어 내릴 때마다 봄이의 어깨가 움찔해서, 결국 물수건으로 눌러 정리하고 묶지 않았다.

빈소로 나오자 엄마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박정숙은 딸의 얼굴을 보더니 제 무릎에서 카디건을 들어 건넸다.

“너 추운 데서 잤지.”

“안 추웠어. 봄이가 뜨거워서.”

“밥은?”

“같이 먹자.”

엄마는 카디건을 다시 접었다. 모서리가 맞지 않아 펴고, 또 접었다. 서연은 그 옆에 앉아 카디건 한쪽 끝을 잡아 주었다. 엄마 손가락에 밴드가 붙어 있었다. 언니 사고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짐을 싸다가 손톱이 꺾였다고 했다.

태주가 다가와 정숙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머니. 이제 준비해야 한대요.”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주의 구두 끝만 내려다보았다.

서연은 그 옆모습을 봤다. 허리를 숙인 목덜미가 짧게 드러났다. 나중에, 훨씬 나중에 그 자리에 입을 맞추게 될 줄은 그날의 서연은 몰랐다.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뒤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서연은 봄이의 손을 아버지에게 맡겼다. 엄마를 부축하려고 빈손이 필요했다. 닫힌 관 앞에서 정숙의 무릎이 꺾였다.

“얼굴도 못 보고 보내는 게 어디 있어.”

서연은 엄마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넣었다. 어제도, 그제도 들은 말이었다. 멀리서 온 관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가족이 언니라고 믿고 받아 든 것은 관과 전달받은 서류, 그 위에 놓인 언니의 사진이었다.

“엄마, 나 좀 봐. 여기 앉아.”

“내가 뭘 봐. 우리 딸을 봐야지.”

***

열 달이 지난 새벽, 서연은 원룸 책상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커튼은 치지 않았다. 바깥 가로등 불빛이 방 안을 반만 밝혔다. 태주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소리를 듣고도 서연은 목폴라를 내리지 않았다.

“목 보여.”

태주가 먼저 말했다.

“출근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 보자는 거야.”

서연이 깃을 내리자 그의 시선이 자국에 멈췄다. 손가락이 그 위를 스쳤다. 어제 저녁의 입술이 남긴 자리였다. 태주가 무릎을 꺾었다. 서연은 그의 어깨를 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 손은 밀지 못하고 귀 뒤로 갔다.

책상 모서리가 허벅지 뒤에 배었다. 태주가 레깅스 허리를 내렸다. 서연은 소리가 샐까 봐 자기 입을 막았다. 막은 손 사이로 숨이 새었다.

그의 혀가 먼저 닿았다. 차가운 코끝이 안쪽에 스쳤고, 곧 입술이 열렸다. 서연의 무릎이 그의 귀를 조였다. 태주는 그 조임을 풀라고 하지 않았다.

“형부—— 지금.”

“지금은 이 말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하고 혀는 멈추지 않았다. 깊게 들어와 위쪽을 끌어올리자 서연의 허리가 책상에서 떴다. 펜꽂이가 쓰러졌다. 태주가 한 손으로 펜을 집다 말고 다시 허리를 붙잡았다.

절정이 가까워지자 서연은 그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밀쳐야 하는 손이 잡아당기는 손이 됐다. 안에서 오르자 다리가 떨렸다. 태주는 그 떨림이 끝날 때까지 입을 떼지 않았다.

서연이 숨을 고르고 나서야 그가 일어났다. 입가에 묻은 것을 손등으로 닦지 않고 서연의 허벅지 바깥쪽으로 문질렀다. 지우는 손길이 아니었다. 남겨 두는 손길이었다.

서연은 내려간 목폴라 깃을 다시 올렸다. 올려도 속은 아직 열려 있었다.

“그때 빈소에서 형부가 안 운 이유를, 지금은 알 것 같아요.”

태주의 눈이 멈췄다.

“무슨 소리야.”

“울면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아서 안 운 거죠. 지금 내 앞에서 무릎 꿇는 것도, 그때랑 비슷한 일이에요.”

태주는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서연의 무릎을 한 번 쓸고 일어서며 말했다.

“울지 않은 게 잘한 일은 아니야.”

“알아요. 그래서 더 나쁜 거죠.”

서연은 레깅스를 끌어올렸다. 책상 위에 넘어진 펜을 세웠다. 펜촉에 묻은 잉크가 손가락에 번졌다.

창밖이 밝아지고 있었다. 2027년의 아침이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아직 2026년 3월의 관 앞이었다. 열리지 않은 뚜껑, 그 위의 사진, 그리고 울지 않던 형부의 옆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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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나 어떡하지 형부가...   제135화. 건너지 않는 사람

    서연이 그 집을 떠난 지 5년이 지났다.남색 가방의 손잡이는 그사이 두 번 더 꿰맸다. 이번에 단 실은 원래 것보다 조금 밝았다. 현관에서 실밥을 발견한 서연은 손톱으로 잡아당기지 않고 가위를 가져와 짧게 잘랐다.물건을 챙겨 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 토요일이었다.마트 정육 코너 앞에는 점심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서연은 국거리 한 팩을 고르고 고기에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작은 무와 대파도 담았다. 세제는 늘 쓰던 것이 할인 중이었다.계산을 마치고 봉투에 물건을 넣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민아가 다음 주 금요일에 밥을 먹자고 했다. 이번에는 회사 사람들과도, 가족들과도 상관없는 약속이었다.‘좋아. 내가 식당 찾을게.’‘지난번처럼 줄 서는 데 말고. 배고프면 나 성질나.’‘원래 나잖아.’곧 욕 한 글자가 답으로 왔다. 서연은 계산대 옆으로 비켜서 소리 내 웃었다. 뒷사람이 지나가자 가방을 다시 어깨에 올렸다.일은 바빴고 가끔 지겨웠다. 수진과 의견이 달라 회의가 길어지는 날도 있었고, 어머니 전화를 일부러 저녁까지 미루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을 보내고도 주말이 오면 누군가와 밥을 약속할 수 있었다.태주에게 걸지 않은 전화만으로 5년을 세지는 않았다.마트 옆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샀다. 사장에게 뚜껑을 한 번 더 눌러 달라고 부탁하고, 장바구니에서 삐져나온 대파를 안쪽으로 밀었다. 집에 도착하면 고기부터 냉장고에 넣을 생각이었다.&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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