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
삼월 열이튿날, 아직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새벽이었다.
궁에 약재를 올리는 벼슬아치 육정의 집 뒷광에서 사내 넷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하나는 숫돌에 칼을 갈다가, 하나는 화로에 막 불을 붙이려다가 그 자리에 고꾸라진 것이었다.
넷은 모두 숨을 멀쩡히 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서로를 부르려고 입을 벌려 보아도 벌린 입에서는 그저 숨만 새어 나왔다.
그 숨소리는 겨먼지 자욱한 광 안에서 짐승의 것처럼 가늘게 떨렸다.
조금 전까지 바로 그 입으로 한 여자에게 검은 물을 억지로 먹이며 웃던 자들이, 지금은 제 숨소리에 스스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들 사이에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육정의 정실, 심명주였다.
도성에서 제일 곱다는 얼굴에는 겨먼지가 묻어 있었으며, 등 뒤로 꺾였던 왼팔은 꺾인 모양 그대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입술은 사내들이 먹인 검은 물에 아직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멀쩡했다.
검은 물은 분명 그녀의 목이 아니라 사내들의 목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이 집의 누구도 알지 못했으며, 사내들 자신조차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만 겨 위에 엎드려 제 목을 쥐고, 이미 넘어가 버린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할 뿐이었다.
명주는 성한 오른손으로 늘어진 왼팔의 팔꿈치를 받쳐 천천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았는데,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아픈 데를 하나씩 세어 보는 사람의 침착함이었다.
이윽고 다 세고 난 뒤에 그녀는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혼자 일어섰다.
광 안의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
광문이 열리자 아침 볕이 겨먼지를 일으키며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당에는 이미 사람이 많았다.
부엌 사람들은 행주를 쥔 채 서 있었으며, 하방 사람들은 처마 밑에 붙어 섰으며, 내원의 어른들은 회랑 기둥 뒤에서 얼굴을 반만 내밀고 있었다.
다들 숨을 죽인 채 광에서 연기가 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광에서 아침에 연기가 나면 그날 저녁 탁자에는 탕이 한 그릇 덜 놓인다는 것을 이 집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집의 법이었다.
그런데 연기 대신 정실이 맨발로 걸어 나왔다.
벗겨진 신 두 짝을 성한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는 광 문턱에 앉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을 신었다.
한쪽을 꿰고 구겨진 뒤축을 손가락으로 정성스레 편 뒤에 다른 쪽을 꿰었다.
오늘 새벽 사내들이 방문을 두드렸을 때에도 그녀는 이렇게 문턱에 앉아 신을 신었다.
그때는 신을 신고 끌려갔고 지금은 신을 신고 걸어 나왔지만, 신을 신는 손만은 똑같이 느렸다.
신을 신는 동안 그녀의 눈은 마당을 한 바퀴 느릿하게 돌았다.
누가 놀라는지, 누가 눈을 피하는지, 누가 한 걸음 물러서고 누가 기둥을 쥔 손에 힘을 주는지를 그녀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았다.
그렇게 한 번 본 것을 그녀는 결코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마당의 누구도 아직 그것을 알지 못했다.
---
광 모퉁이, 아직 볕이 들지 않은 처마 그늘에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무명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무명에는 무명옷을 입고 살아 본 사람의 구김이 없었다.
신 밑창은 흙길을 걸어 다닌 적이 없는 사람의 것처럼 희었다.
그는 사경부터 거기 서 있었다.
허리의 칼자루에 얹은 오른손이 밤이슬에 젖은 채 잘게, 쉬지 않고 떨렸다.
이 나라의 황제였다.
황제가 미복을 입고 신하의 집 뒷마당에 밤을 새워 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사내 넷이 뒷문으로 들어올 때 그 자리에서 베어 버릴 수도 있었고, 광문을 부수고 그녀를 끌어낼 수도 있었다.
이 나라의 칼은 전부 그의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밤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삼월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녀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가 이 여자에게서 받은 유일한 부탁이었다.
그는 그 부탁의 의중을 끝내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말한 것이라면 이유를 묻지 않고 지키기로 이미 오래전에 마음을 정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칼자루 위에서 손이 떨리도록 밤을 새운 것이었다.
천하를 쥔 사내가 여자 하나의 말에 묶여 밤새 서 있는 꼴은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처절하기도 했다.
마침내 신을 다 신은 여자가 일어섰다.
마당의 얼굴을 다 돌아본 눈이 마지막으로 처마 그늘에 닿았다.
그 눈은 환자의 낯빛을 살피듯 이슬에 눅은 어깨와 떨리는 손과 젖은 신 앞코를 차례로 훑고 올라왔다.
그녀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왔어요?
황제는 그 입 모양을 똑똑히 읽었고, 그의 입술도 똑같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서 있기만 했소.
---
아홉 달 전, 첫 번째 삼월에도 이 광에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지금의 그녀와 똑같았다.
그 여자는 물도 제 손으로 마시지 못했으며, 옷끈 하나 제 손으로 매어 본 적이 없었으며, 남편이 밤마다 손목에 넣어 주는 것을 향인 줄로만 알았다.
저를 언니라 부르던 아이가 독 가장자리를 짚고 내려다보며 웃을 때, 그녀는 그 웃음의 뜻을 끝내 알지 못한 채 따라서 웃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명주, 밝은 구슬이었다.
첫 번째 삼월에 그 구슬은 술독 안에서 빛을 잃었다.
지금 이 몸 안에서 신을 신고 일어선 사람은 그 여자가 아니었다.
다른 세상에서 열일곱 해 동안 독만 들여다보다가 병실에서 눈을 감고, 이 여자의 몸에서 눈을 뜬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 아홉 달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같은 아홉 달을 두 번 사는 이야기다.
첫 번째 아홉 달은 명주의 것이었다.
그 아홉 달은 이렇게 시작했다.
등록방에 불을 하나 켜 놓고 늙은 심약이 화로 앞에 앉아 있었다.화로 재가 식어서 손을 대도 안 뜨거웠다.한경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닫고 나서 화로 건너편에 앉았다."영감님. 스무 해면 등록 첩이 두 권이잖아요.한 권에 열 해씩이니까.""두 권입니다.""한 권은 여기 있고요.""…한 권은 없습니다.없습니다, 여기에는.""태후 마마 처소 바깥방에 등초가 스무 권 넘게 있어요.옮겨 적은 것만 있고 원본은 하나도 없고요.여기서 없어진 한 권이 거기 옮겨 적혀 있으면 저는 그걸 바깥방에서 볼 수 있어요.""…등초에도 없을 겁니다.""보셨어요?""안 봤습니다. 그런데 없을 겁니다.있으면 이 방 사람이 벌써 찾아냈습니다."늙은 심약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고쳐 앉으면서 무릎에 손을 얹었다가 도로 내렸다.* * *"소인이 이 담 안에 든 것이 스물두 해입니다.""…""든 해에 서쪽 방에 사람이 있었습니다.여자였고 의녀였습니다.소인보다 먼저 들었고 나이도 위였습니다.""…""말이 없었습니다.소인이 아침에 들어가면 늘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어요.문이 열려도 안 돌아봤습니다."한경이 화로 재를 한 번 봤다."그 사람이 여기 등록방에도 왔어요?""왔습니다. 소인이 갓 들어서 첩 적는 걸 못 했는데 그 사람이 옆에서 봐 줬습니다.넉 줄을 어떻게 채우는지, 난 날을 언제 적는지를 그 사람한테 배웠습니다.""…""소인이 그때 왜 이런 걸 다 적느냐 하였더니, 등록은 세는 게 아니라 남기는 거라고 그 사람이 그랬습니다.""…""소인이 그때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스물두 해 걸렸습니다."늙은 심약이 화로 재를 뒤적였다.뒤적이다가 부젓가락을 놓쳤고, 놓친 것이 재 위로 떨어져 재가 조금 일었다."…손이 곱아서요.""아유. 괜찮아요, 그거 저도 오늘 두 번 놓쳤어요."늙은 심약이 픽 웃었다.웃으면서 어깨가 한 번 흔들렸다.* * *"어느 날 아침에 그 방이 비었습니다.""…""그 뒤로 그 방에 사람을 안
태후 처소 바깥방에 화로가 둘 있었다.하나는 문 옆에 있고 하나는 안쪽 방 문지방 앞에 있었는데, 문지방 앞의 것에는 숯이 안 들어 있었다.바깥마당을 건너오는 동안 눈이 신 안으로 들어왔다.섬돌 위에서 버선을 두 번 털었는데 젖은 데는 안 털렸다.류 상궁이 문 안쪽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의녀. 오래 서 계셨습니까.""아침부터 저 아래 섰다가요.""…소인이 나와 보았어야 했는데.""아니에요. 나오시면 상궁고고도 같이 서 계셔야 하잖아요.""등록이 났습니다.""…""바깥방까지입니다.""안쪽 방은요.""바깥방까지입니다."류 상궁이 같은 말을 두 번 했다.두 번째에는 눈을 피했다.한경이 무릎을 굽혔다가 펴고 문지방을 넘었다.넘는 데까지 아무도 안 막았다.* * *바깥방은 넓고 비어 있었다.시렁이 벽 하나를 다 차지했고 그 위에 첩이 여럿 얹혀 있었다.한경이 시렁 앞으로 갔다.첩 겉장마다 등초라고 적혀 있었다.등초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다.한경이 첩 하나를 내려 폈다.옮겨 적은 것이라 줄이 곧고 사이가 고르고 고친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이거 한 권 옮겨 적는 데 며칠 걸려요.""…한 권에 이레쯤 걸립니다.""어. 여기 스무 권이 넘는데요.그럼 넉 달이에요.넉 달 동안 사람 하나가 이것만 했다는 거고요.""…둘이 했습니다.""여기 있는 건 다 옮겨 적은 거네요.""예.""의녀.""예.""바깥방에서 보실 것은 저 시렁이 전부입니다.등초는 누가 보든 적지 않습니다.""…적는 건 사람만이네요.""…""원본은 안쪽 방에 있고요.""…소인이 답할 자리가 아닙니다.""상궁고고.""예.""제가 여쭌 게 아니라 셈을 한 거예요.옮겨 적은 게 밖에 있으면 옮겨 적힌 데가 안에 있는 거니까요."류 상궁이 발을 한쪽으로 옮겨 디뎠다가 도로 옮겼다.* * *안쪽 방 문이 닫혀 있었다.문지방 나무가 가운데만 닳아서 얕게 파였고, 파인 자리가 검게 윤이 났다.한경이 그 앞까지 갔다.갔다가 반
한경이 등을 들고 서쪽 방 문설주 안쪽에 댔다.자국이 스물셋이었다.스물둘까지는 깊이가 다 같고 마지막 하나만 나무 결이 갈라져 있었다.갈라진 안쪽이 아직 흰빛이었다.한경이 그 마지막 자리에 손끝을 댔다.손끝이 그 안에 걸렸다."스물셋."소하가 뒤에서 등을 받쳐 들고 있었다.받쳐 든 팔이 떨려서 그림자가 문설주 위에서 흔들렸다."의녀님. 그거 날짜예요?""몰라.""날짜면 스물세 밤이잖아요.스물세 밤이면 한 달이 안 되는데. 아, 아니다.하루에 두 번 그었으면 열이틀이고요.""…""근데 왜 마지막 것만 깊어요?""…""의녀님. 저 무서워요.""의녀님. 그럼 이거 그은 사람이 저 방에서 스물세 밤 잔 거예요?""…""아유. 아유, 저는 여기 온 지 스물세 밤 넘었는데.""등 낮춰. 그림자 흔들려."방 안쪽 벽에 시렁이 하나 있고 그 아래 마루가 자리 넓이만큼 닳아 있었다.닳은 데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하나는 창 쪽이고 하나는 문 쪽이었다.한경의 손끝이 식었다.* * *등록방에 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젊은 서리가 화로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이 시각에는 안 됩니다.""서쪽 방 쓰던 사람만 보면 돼요.오래 안 걸려요.""…서쪽 방은 지난달까지 서리들이 썼습니다.""그 전에요."서리가 첩을 꺼내 넘겼다.넘기다가 한 군데서 멈추고 두 장을 도로 넘겼다.도로 넘긴 데를 손끝으로 두 번 짚었다."…없습니다.""이 첩에는 뭘 적어요.""방 이름하고 든 사람하고 든 날하고 난 날입니다. 넉 줄입니다.넉 줄이 다 차야 한 줄입니다.""넉 줄이 안 차면요.""안 찬 줄은 없습니다.있으면 소인이 맞습니다.""열 해 치를 다 보신 거예요?""열 해 치가 이 한 권입니다!방마다 든 사람 이름이 다 있는데 서쪽 방만 없어요.없는 걸 어떻게 있다고 합니까!"서리가 첩을 상에 내려놓았다.내려놓는 소리가 컸다.놓고 나서 화로 쪽으로 돌아섰다."…""…죄송합니다.""아니에요.""소인이 이 방
서쪽 방에 자리가 셋 비었다.저녁에 셋이 다 제 짐을 들고 나갔고 나가면서 아무도 인사를 안 했다.한경이 남은 자리에 앉았다.방에 불이 하나뿐이라 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를 등 쪽으로 기울여야 했다.문 밖에서 소하가 눈을 쓸다 말고 안을 들여다봤다."의녀님. 저 사람들 왜 갔어요?""돌아갈 데가 있어서 갔어.""…저는 돌아갈 데 없는데요.""응. 그러니까 여기서 자. 문 닫고. 눈 들어와.""예!""…""아 맞다. 저 사람들 자리 제가 치웠는데요, 하나가 이불을 두고 갔어요.이불은 어떡해요?""펴 놓고 네가 써.""…남의 건데요.""두고 간 건 남의 게 아니야."* * *늙은 심약이 첩 하나를 들고 왔다.겹옷 앞자락에 눈이 얹힌 채로 들어와서 방 안에서 그것이 녹기 시작했다."곳간에서 이걸 내주라 하였습니다.""약재는 이제 못 적어 내는데요.""적어 내는 것 말고 적어 낸 것입니다.""…""적어 낸 것을 도로 보는 건 칙첩하고 상관이 없습니다.태의원에 든 사람은 제 손으로 적은 것을 도로 봅니다.스무 해 넘게 그리 해 왔고, 그건 마마께서 주신 게 아니라서 마마께서 못 걷습니다.""어. 그게 여태 있었어요?""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찾아서 곳간 시렁 위에 있었습니다.먼지를 소인이 털었습니다."이게 남은 하나였네.한경이 마른침을 삼켰다.* * *한경이 첩을 폈다.열 달 치가 날짜대로 있었고 적어 낸 줄 옆에 나온 날이 적혀 있었다.나온 날이 없는 줄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빈 자리가 셋이었다.세 가지가 열 달 내내 한 번도 안 나왔다."영감님. 열 달 치를 세면 적어 낸 게 백열네 줄이에요.나온 게 아흔한 줄이고요.안 나온 스물세 줄 가운데 스무 줄은 늦게라도 왔어요.""…""안 온 게 세 줄인데, 그 세 줄이 열 달 내내 같은 세 가지고요."늙은 심약이 한경 옆으로 와서 첩을 들여다봤다.등에 가까이 대느라 허리를 두 번에 굽혔다."영감님. 이 셋은 어디 있어요.""태의원 곳간
태후 새 처소는 창이 넷인데 오늘은 둘만 열려 있었다.열린 창 밖으로 눈 덮인 마당이 보였고, 마당 가운데를 아침에 쓸고 지나간 자리만 검었다.문 앞에서 한경이 버선에 묻은 눈을 두 번 털고 들어갔다.털어도 발자국이 나서 상궁이 뒤에서 그 자리를 닦았다.발 밖에 상이 놓이고 그 위에 첩이 하나 펴져 있었다.태후의 두 손이 금 호갑에 덮인 채 상 위에 있었다."앉거라.""예.""어공서에서 달마다 물목을 올린다.올려 온 것을 내가 본다.스무 해 하던 일이야. 스무 해.""…""이 줄을 네가 적었느냐.""예.""읽어 보아라.""…달걀 스물이요.""의녀가 달걀을 적어 냈다.""의서에 있어요.""의서에 있는 것을 적었으면 약이지.너는 밥을 적었다."* * *"달걀 스물이면 열흘 가요.열흘에 스물씩 열두 달이면 일곱 접이 조금 넘고, 쌀로 치면 두 섬이 안 돼요.어주에서 한 달에 깨져서 버리는 게 그보다 많고요.그런데 그 스물을 안 넣으면 열흘 뒤에 손이 더 떨려요."태후의 엄지가 호갑 안에서 한 번 멎었다."마마께서 그건 보셨을 텐데요.""보았다.""…""보는 데까지가 네 일이라 하였다.""…예.""열 달을 네가 적어 낸 대로 내주었어.뿌리도 내주고 껍질도 내주고 벌레 먹은 것까지 내주었다.아무도 안 물었지.어의도 안 물었고 곳간도 안 물었어.""…""이달에 네가 적은 줄이 태의원 문 밖으로 나갔다.어공서 종이에 붙었어.관청 종이에 오른 것은 지워도 자리가 남는다."* * *"네 이름이 그 종이에 오르는 것은 내가 못 막는다.그건 내 손 밖이야.""…""내가 준 것을 도로 걷는 것은 할 수 있고."바깥에서 눈 쓸리는 소리가 났다가 그쳤다.태후가 호갑 낀 손을 상 위에서 반 뼘 옮겨 놓았다."셋을 주었지. 둘을 걷는다.""…""약재를 걷는다. 오늘부터 네가 적어 내는 종이는 태의원 문 안에서 끝난다. 사람도 걷어.셋 다 오늘 저녁에 제 자리로 돌아간다.""아. 그럼 곳간에는 오늘까
태의원 진찰방에 등을 둘 켜 놓았다.창 하나가 덜 닫혀서 문틀 아래로 눈가루가 들어와 자리 끝에 얇게 앉았다.소하가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엎드려서도 말을 했다."의녀님. 저 내일은 일찍 일어날게요.눈 오면 뒤뜰부터 쓸어야 되잖아요.어제는 늦게 일어나서 늙은 심약 나리가 먼저 쓰셨거든요.나리 손 다 텄던데.""…""근데 의녀님. 아까 그 자루요.제가 눈에 떨어뜨렸는데 눈이 안 묻었어요.얼어서 그런가 봐요.눈이 얼면 안 묻어요?""묻지. 녹아야 묻는데 안 녹아서 그래.""아.""…""어유. 의녀님, 눈 오는 날은 왜 덜 추워요?""구름이 덮여서 그래.갠 날 새벽이 제일 춥고.내일 아침에 개면 뒤뜰 쓸기 전에 손부터 녹이고 나가.""…""아 맞다. 완의국 아이는 지난달에 맞았대요. 물을 엎질러서요.여기 애들은 다 한 번씩 맞는대요.저만 안 맞은 거였어요."한경이 대야에 물을 받아 왔다.뜨거운 물이 아니었다.손등으로 한 번 대 보고 나서 무명을 적셨다."으.""참아. 뜨거운 거 대면 지금만 시원하고 내일 더 부어.""…예."궁 애들 다 이러고 크는 건가.* * *한경이 젖은 무명을 짜서 종아리에 얹었다.얹고 나서 그 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소하가 숨을 삼켰다."이거 이레 가. 사흘째가 제일 아프고 닷새째부터 색이 도는데, 노랗게 되면 낫는 거니까 놀라지 말고.걷는 건 오늘내일만 조심하면 돼.밤에 자다가 당기면 무릎을 세우고 자.펴고 자면 아침에 못 일어나.버선은 두 켤레 신고 자되 안쪽 거는 마른 걸로 갈아 신어.젖은 거 신고 자면 아침에 발부터 곱아.""…예.""그리고 뜨거운 데 앉지 마.화로 앞이 제일 안 좋아.지금 뜨거운 데 앉으면 밤에 당겨서 잠을 못 자.""화로 앞에 앉는 건 제 일인데요.숯 넣는 것도 제가 하고요.""…""의녀님 손도 차요.대야 물이 벌써 얼겠는데요.""데운 물은 지금 좋고 내일 나빠.이건 지금 나쁘고 내일 좋고.""그건 이레 뒤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