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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서지우의 제안

作者: Jino
last update 公開日: 2026-10-18 12:09:07

관리국 지하 4층의 공기는 타버린 회로의 매캐한 냄새와 인간의 비명이 뒤섞여 형언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시스템이 붕괴하며 발생한 정전은 사방을 완전한 어둠으로 몰아넣었지만, 한결은 손목에 박힌 흉터 칩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푸른 잔광에 의지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최진혁이 뱉어내는 처절한 신음이 등 뒤에서 귓가를 울렸으나, 그것은 동정의 대상이 아닌 그저 지나간 과거의 소음일 뿐이었다. 한결은 자신의 신경을 긁어대던 기계적인 환청을 무시하기 위해 이를 악물며 벽을 짚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 벽면조차 그가 겪었던 70년의 지옥보다는 온기가 느껴질 만큼 생경했다. 이제 이 도살장을 벗어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시스템의 심장을 찔러 부쉈다는 사실만이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벽을 타고 미로 같은 통로를 헤매던 한결의 귓가에 낮고 건조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관리국의 보안 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틈을 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한결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며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등 뒤에 닿는 차가운 타일의 질감이 감각을 일깨웠다. 박철웅일까, 아니면 또 다른 보안 요원일까. 한결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날카로운 파편을 꽉 쥐었다. 시스템의 붕괴는 단지 시작일 뿐, 관리국은 결코 순순히 몰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붕괴조차도 데이터 수확의 과정으로 계산하는 괴물들이었으니까. 한결은 숨을 죽인 채, 그림자 속에서 형체를 드러내는 실루엣을 향해 서서히 눈을 좁혔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숨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고 정적이었다.

"너무 늦게 왔군, 강한결."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다. 그것은 관리국 내부 요원의 통신망을 이용할 때 들었던 기계적인 변조음이 아닌, 서지우의 본래 목소리였다. 한결은 그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툭 내뱉었다. "관리국의 사냥개가 제 발로 나타난 건가. 아니면 붕괴한 시스템의 파편을 주우러 온 건가." 한결의 손끝에 쥐어진 파편이 지우의 목을 향해 겨눠졌다. 그러나 지우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자신의 가슴팍에 있던 관리국 배지를 뜯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금속 배지가 차가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텅 빈 지하 공간에 메아리쳤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단말기 빛을 이용해 한결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사냥개는 무슨. 나는 처음부터 이 도살장의 설계를 뜯어고치고 싶었던 내부 고발자에 불과해." 지우의 말투에는 묘한 자조와 함께 긴 세월 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감겨 있던 구속 장치를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너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이 칩, 그리고 시스템의 붕괴가 불러올 데이터 역류 현상을 봐. 관리국은 이미 이 상황조차 시나리오에 넣어두고 있었어. 너는 셧다운을 실행했지만, 중앙 서버는 데이터를 백업 서버인 '섹터 제로'로 모두 전송했다. 이 도살장은 멈춘 게 아니라, 네 고통을 연료로 삼아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 거야." 한결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흉터 칩이 다시금 욱신거리며 통증을 유발하는 것을 느꼈다. 지옥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견고해지고 있었다.

한결은 지우의 말을 묵묵히 곱씹으며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서지우는 관리국 내부에서 가장 영리하고 냉철하게 데이터를 관리하던 인물이었다. 그녀가 왜 지금 이 타이밍에 나타나 자신에게 이런 정보를 흘리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당신도 이 시스템의 일부 아니었나." 한결의 질문에 지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지하 4층의 깊은 곳, 데이터 수확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중앙 서버의 잔해였다. "내 부모님의 기억은 이미 데이터 조각이 되어 저 서버 어딘가에 처박혀 있어. 나는 시스템을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되찾아 지워버리고 싶을 뿐이야. 당신이 겪은 70년의 지옥, 그건 시작에 불과하니까."

지우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한결을 향해 있었다. 그녀는 등 뒤에 숨겨두었던 작은 단말기를 한결의 발치로 밀어 넣었다. 그 안에는 관리국이 숨겨온 진짜 데이터 지도가 들어있었다. "저걸 봐. 관리국의 모든 행복 데이터가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 층수를 올려갈수록 시스템은 더 많은 고통을 요구해. 층을 올라갈수록 인간의 존엄성은 더 완벽하게 거세되지. 당신이 방금 일으킨 폭발은 시스템에 균열을 냈지만, 그것을 복구할 권한도 관리국에겐 있어. 우리는 시스템의 근본을 뜯어내야 해. 중앙 서버를 멈추는 게 아니라, 서버 자체를 물리적으로 소멸시켜야 한다는 뜻이야." 한결은 발치에 놓인 단말기를 내려다보며 심장이 다시금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지우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했던 행동은 그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를 잠시 멈추게 한 것뿐이었다. 관리국은 셧다운조차도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냉각 과정으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결은 손목의 칩을 만지작거렸다. 칩은 뜨겁게 달아올라 이제는 피부를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당신의 목적은 뭐야? 나를 이용해 시스템의 핵으로 접근하려는 건가?" 지우는 대답 대신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또 다른 작은 칩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마스터 키와 호환되는, 보안을 일시적으로 우회할 수 있는 암호화 키였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목적은 부모님의 기억을 되찾고, 그것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한결아, 우리는 어차피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없어.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미 시스템에 동기화된 뇌는 영원히 관리국의 감시 아래 있을 테니까." 지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절망은 한결이 느끼던 것보다 훨씬 깊고 묵직했다. 그녀는 한결에게 다가와 그의 손에 암호화 키를 쥐여주었다. 칩의 차가운 금속 표면이 한결의 손바닥에 닿자, 왠지 모를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것은 단순한 키가 아니었다. 자신과 지우의 영혼을 시스템과 함께 동귀어진시키기 위한 마지막 방아쇠였다. 한결은 지우를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관리국의 또 다른 이중 스파이일 가능성도, 혹은 최진혁의 지시를 받은 꼭두각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아." 한결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지우는 그 말을 듣고도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는 오히려 한결의 경계심을 환영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해. 이 지옥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가장 먼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지. 나 역시 당신을 믿지 않아. 당신이 시스템의 파괴를 위해 내 기억까지 짓밟아버릴 수도 있다는 걸 잘 아니까." 두 사람은 짧은 침묵 속에 잠겼다. 텅 빈 지하 통로,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들의 비명과 경보음은 이제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시스템이 재가동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였다. 관리국은 빠르게 정보를 재정렬하고 있었고,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한결은 지우가 준 암호화 키를 자신의 흉터 칩 단자에 조심스럽게 맞추어 보았다.

칩이 서로 맞물리자 푸른 빛이 더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한결은 자신의 뇌 속으로 밀려들어 오는 시스템의 잔여 신호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70년의 기억이 다시금 고통스럽게 요동쳤지만, 이번에는 그 고통이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닌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기 위한 무기로 변모하고 있었다. 지우는 한결의 변화를 지켜보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중앙 서버는 지하 4층의 가장 깊은 곳, '섹터 제로'의 아래에 있어. 최진혁이 말하지 않았던 그곳이야. 그곳에 진정한 제어 장치가 숨겨져 있지.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가 시스템의 핵심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면, 비로소 모든 동기화가 끊길 거야." 한결은 비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며 지우를 쳐다보았다.

"거기로 가려면 박철웅과 그 부대원들을 뚫고 지나가야 해. 당신은 그들을 막을 수 있나?" 한결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지우는 자신의 재킷을 열어 허리춤에 감춰둔 작은 장치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관리국 요원들의 통신망을 마비시키는 전자기 펄스 발생기였다. 그녀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관리국이라는 거대한 도살장을 부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칼을 갈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결은 다시금 어둠을 응시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스템이 파괴되면 자신 또한 뇌 속의 데이터와 함께 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 끝이 영원한 안식이라면, 지옥을 한 번 더 걷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준비됐나?" 한결이 짧게 묻자, 지우는 단말기를 끄고 어둠 속으로 먼저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뒷모습은 단호했다. 한결은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번에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시스템이 복구되든, 붕괴하든, 그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이라고. 하지만 서지우의 말대로,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남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다시 한번 멈춰 서서 어둠 속의 한결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둠에 반쯤 가려져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만은 서늘할 정도로 명확하게 한결의 귓가에 꽂혔다. "나를 믿지 마. 하지만 시스템은 부숴야 해. 그건 우리 모두의 유일한 구원이니까."

지우의 목소리는 차가운 금속성 잔향을 남기며 지하 4층의 습기 어린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한결은 그녀의 말뜻을 곱씹으며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흉터 칩을 꽉 움켜쥐었다. 칩을 감싼 피부 아래에서 미세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생충처럼 한결의 신경망과 엉겨 붙어 70년이라는 영겁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지우는 고개를 돌려 복도 끝에 위치한 보안 강화 게이트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관리국의 감시 카메라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침입자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전자기 펄스 발생기가 낮게 웅웅거리며 불안정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한결은 자신의 뒤를 쫓아올 박철웅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 박철웅은 시스템의 충직한 사냥개였고, 한결은 그 사냥개에게 쫓기는 가장 고귀한 희생양이었다. 한결은 스스로를 다잡으며 지우의 뒤를 바짝 쫓았다.

지우가 보안 게이트의 통신 단자에 자신의 해킹 툴을 연결하자, 복도의 조명이 기괴한 소음을 내며 깜빡였다. 시스템은 침입자를 감지하고 경보를 울리려 했지만, 그녀의 정교한 데이터 변조 프로그램이 그보다 한 발 앞서 관리국의 눈을 멀게 했다. 한결은 지우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감지했다. 그녀는 내부 고발자로서 매일 밤 관리국의 서버를 해체하며 그들이 인간의 기억을 어떻게 도살하는지 목격해왔을 터였다. 한결이 겪은 70년의 지옥이 데이터화되어 상층부의 연료로 소각되는 동안, 지우는 그 도살장의 설계도를 그리며 탈출을 꿈꿨다. 한결은 그녀가 가진 단단한 결의 속에 숨겨진 깊은 상처를 보았다. 그것은 부모님의 기억을 송두리째 뺏기고 빈 껍데기만 남은 자들의 공허였다. 한결 또한 그 공허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서로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이제 시작이야. 이 게이트가 열리면 돌아갈 곳은 없어. 관리국의 데이터베이스와 우리 뇌가 직접 동기화될 거야." 지우가 낮게 읊조리며 단말기를 조작했다.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게이트 너머에는 관리국의 심장부인 중앙 연산 서버가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인간의 영혼을 데이터로 환산하여 영생이라는 거짓된 신기루를 파는 곳이었다. 한결은 자신의 손목 칩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점차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칩은 관리국의 중앙 서버와 강제로 연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한결은 자신의 의지가 칩의 통제권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미 한 번 죽음의 틈에서 70년을 버텼다. 다시 그곳으로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비극의 연쇄를 끊어내야 했다.

게이트가 묵직한 기계음을 내며 좌우로 갈라졌다. 그 너머에는 기괴한 푸른 빛을 발하는 대규모 서버실이 펼쳐져 있었다. 수천 명의 인간이 캡슐 속에 갇혀 자신의 기억을 실시간으로 수확당하고 있었다. 뇌에서 추출되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데이터의 파편이 되어 중앙 연산 장치로 흘러 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폭포처럼 쏟아지는 영혼의 비명과 같았다. 한결은 그 광경을 목격하며 구역질을 참았다. 저들 중 누군가는 동료였고, 누군가는 이름 모를 희생자들이었다. 관리국은 이 지옥을 운영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한결의 눈에 서린 서슬 퍼런 살기가 서버실의 차가운 냉기를 뚫고 지나갔다. 그는 이제 망설임 없이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기 중앙 제어 콘솔이 보여. 저곳에 네 흉터 칩을 직접 연결해야 해." 지우가 가리킨 곳에는 붉게 맥동하는 메인 단자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보였다. 그 단자에 한결의 칩을 꽂는 순간, 한결의 기억 데이터는 시스템에 역류하여 과부하를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한결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일이었다. 시스템이 붕괴할 때 발생하는 역충격은 한결의 뇌를 완전히 태워버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결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칩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듯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한결은 지우를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깊은 의구심이 서려 있었다. 이 동맹은 단지 목적을 위한 일시적인 결합일 뿐이었다.

"만약 내가 시스템을 파괴하다가 먼저 뇌가 타버리면, 지우, 당신이 마무리해." 한결의 담담한 목소리에 지우는 멈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어둠 속에 잠겨 있어 읽을 수 없었지만, 그 긴장된 분위기만큼은 명확했다. 한결은 결코 동정이나 연민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우는 짧게 숨을 들이켜며 단말기를 고쳐 잡았다. 그녀는 관리국을 무너뜨리는 것만이 부모님의 기억을 되찾는 길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한결은 알고 있었다. 시스템이 파괴된 후에는 데이터 자체가 소멸하며 그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행복한 기억들조차 영원히 사라지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들은 이 파멸을 선택했다. 이것은 구원이자 처절한 복수였다.

복도 저편에서 육중한 장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철웅과 그 부대원들이었다. 그들은 시스템의 동기화 장치에 복종하며 인간성을 거세당한 기계들이었다. 지우는 다급하게 해킹 툴을 중앙 서버 단자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복잡한 코드가 쏟아져 내렸다. 한결은 지우를 엄호하며 콘솔 앞을 가로막고 섰다. 박철웅의 그림자가 복도의 끝에서 길게 늘어졌다. 그는 아무런 감정 없는 눈으로 한결을 노려보며 권총을 들어 올렸다. 한결은 자신의 손목 칩이 박동하는 속도가 빨라짐을 느꼈다. 뇌 속에서 70년의 지옥이 다시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관리국은 한결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금 실시간으로 재생하며 그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한결, 지금이야! 칩을 연결해!" 지우의 다급한 외침이 서버실의 기계음을 뚫고 들려왔다. 한결은 콘솔 위로 손목을 뻗었다. 칩의 금속 단자가 메인 서버와 맞닿는 순간, 강렬한 고주파가 뇌를 강타했다. 온몸의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엄습했다. 70년의 세월 동안 겪었던 그 모든 비극적인 기억이 시스템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한결의 데이터를 수용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과부하를 일으켰다. 관리국 전체가 요동쳤다. 조명은 미친 듯이 점멸했고, 캡슐 속의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한결은 자신의 뇌가 타버리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콘솔을 놓지 않았다. 이것이 끝이었다.

박철웅이 발포하려는 순간, 콘솔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관리국 요원들의 흉터 칩을 강제로 마비시켰다. 박철웅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시스템의 통제가 풀리자, 관리국 지하 4층의 공장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데이터의 폭풍이 서버실을 휩쓸었다. 한결은 자신의 존재가 서서히 데이터의 바다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둘씩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조차 희미해져 가는 것을 감각했다. 지우는 콘솔 앞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이 푸른 데이터 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났다.

한결의 시야가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그곳에는 더 이상 고통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관리국의 도살장은 스스로의 데이터를 집어삼키며 붕괴의 심연 속으로 침몰했다. 시스템은 붕괴조차 자신들의 계산 속 일부로 상정하고 있었지만, 한결이 주입한 70년의 지옥만큼은 데이터의 논리를 완전히 초월해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고통이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파괴의 의지였다. 한결은 서서히 자신의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우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한결을 도구로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한결은, 이 거대한 지옥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불꽃이 된 동지였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우는 한결의 손목을 잡고 붕괴하는 서버실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미 데이터의 회오리는 출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지우는 한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와 희망이 뒤섞인 기묘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시스템이 파괴되면 그들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강제된 동기화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의지로 선택한 완전한 끝이었다. 한결은 마지막 힘을 다해 콘솔을 더 깊이 눌렀다. 흉터 칩이 부서지며 시스템의 핵이 파괴되었다. 관리국의 모든 영생 사업이 데이터의 조각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한결의 뇌 속을 지배하던 70년의 지옥도, 함께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지우는 붕괴하는 서버실의 어둠 속에서 한결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의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난 인간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서늘하고도 명확했다. 그녀는 관리국이라는 거대한 도살장의 파멸을 목격하며 마지막으로 한결에게 속삭였다. 시스템이 붕괴하는 소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졌지만, 그녀의 말은 한결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이제 더 이상 타인의 기억을 훔칠 관리국도, 그들을 조종할 최진혁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서늘한 어둠과 고요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결의 귓가에 마지막 진실을 내뱉었다. "나를 믿지 마. 하지만 시스템은 부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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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흘 뒤 밤, 철웅에게서 전화가 왔다."나와."그 한마디였다. 어디냐고 묻자 성진대 후문 앞이라고 했다. 포장마차. 목소리가 이미 조금 풀려 있었다.밤 열 시 반, 후문 건너편 골목 입구에 주황색 비닐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천막 안에 백열등 두 개, 플라스틱 탁자 세 개. 어묵 냄비에서 김이 올라 비닐 벽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손님은 철웅 하나였다. 그는 구석 탁자에 앉아 지팡이를 탁자 모서리에 기대 놓고, 소주병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어머님은요?""자. 오늘 저녁에 한 번 숨이 이상해서 다들 뛰어왔는데, 돌아왔어. 의사가 오늘은 넘긴대." 그가 잔을 비웠다. "미경이가 옆에 있어. 나가서 바람 좀 쐬라고 쫓아냈어."나는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우뚱했다.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가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술은 안 마신다고 했고,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묵 꼬치 두 개를 국물 옆에 얹었다."지팡이 양반이 매일 여기서 한 병씩 해." 할머니가 철웅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두 병째야. 아가씨가 좀 말려."철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냄비 앞으로 돌아가 어묵을 꼬치에 꿰기 시작했다."이만 명." 철웅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 말이 머리에서 안 나가."나는 국물을 불었다. 나흘 전 가족실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만 명이 서로 옆에 서서, 서로 모르고."아무도 모르잖아. 그 사람들이 거기 있는 거." 그가 소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가족들은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고, 안식은 이만 명 돌파라고 광고하고. 근데 그 사람들은 그 골목에 서 있어. 아무도 모르는 데에. 아무도 안 찾는 데에.""……네.""나 그런 사람들 옮긴 적 있어.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39화. 붐비는 영원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주치의가 상담실 문을 열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제 입은 스웨터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고, 원탁 위에는 식은 커피 두 잔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벽의 뇌 단면 그림 옆에 누군가 모니터 기록을 출력한 긴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초록 선을 검은 잉크로 옮긴 띠가 벽을 가로질러 문 쪽까지 이어져 있었다."밤새 계셨어요?""집에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 그가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두 가지를 말씀드려야 합니다."나는 앉았다. 그는 수첩을 펼쳤다. 어제 적은 시각들이 빽빽했다."첫째, 어제 그 새 파형이요. 밤 열한 시 이십 분쯤 마지막으로 나오고 멈췄습니다. 오늘 새벽엔 없었어요." 그는 수첩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시각을 늘어놓고 보니까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시 오십이 분부터 여덟 시까지, 그러니까 정하윤 씨가 병실에 계시던 동안에 제일 촘촘하게 나왔어요. 가시는 뒤로는 점점 드물어지고요.""제가 있어서요?""모릅니다.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루치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런데 두 번째가 더 큽니다."그는 벽에 붙은 긴 종이 앞으로 갔다."어젯밤에 그 새 파형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확실히 하려고, 1년 치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이 모니터에 분석 기능이 있어요. 파형을 쪼개서 겹쳐 있는 성분을 따로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안 켰어요. 선 모양이 1년 동안 똑같았으니까."그가 종이의 왼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서는 선이 가늘었다."이게 작년 11월, 강한결 씨가 처음 오셨을 때입니다. 선 하나예요. 깨끗한 한 줄." 그는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선이 조금 굵어져 있었다. 눈으로 보면 여전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38화. 새 파형

    다음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은평 시장에서 귤을 샀다.트럭 것 말고 시장 것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과일 가게 확성기는 여전히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바구니를 샀다.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쯤 되는 귤이 검은 봉지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멈췄다. 파란 천막 아래에서 문순자 할머니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목까지 올린 털 조끼, 머리에 두른 수건. 쇠꼬챙이로 얼음 덩어리를 내리칠 때마다 작은 조각이 튀어 할머니의 앞치마에 붙었다. 며느리가 옆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랬잖아요.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할머니가 먼저 나를 보았다. 쇠꼬챙이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귤 거기서 샀어? 잘했네. 거기가 싸.""할머니, 얼음 깨셔도 돼요?""이거 안 깨면 내가 죽어." 할머니가 얼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병원에서 누워 있으니까 자꾸 그 하얀 게 생각나. 여기서 이거 깨고 있으면 안 나. 손이 시리고, 비린내 나고, 저 여편네가 잔소리하고. 그래야 여기가 내 데인 줄 알지."며느리가 한숨을 쉬었고, 할머니는 웃었다. 이 몇 개 빠진 입이었다."오늘은 어디 가?""아빠 보러요. 요양원."할머니가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잘 생각했네. 가서 손 한번 잡아 드려. 늙으면 그게 제일 좋아."솔밭요양원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가 끝 의자 옆에 엄마가 서 있었다.1년 사이에 엄마는 작아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졌고, 등이 조금 굽었다. 회색 누빔 점퍼를 입고, 손에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온병을 창턱에 내려놓고 걸어와,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아프지 않게."살 빠졌네.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37화. 두 번째 소생자

    이송 병원은 성진대학병원이었다.무전에서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사십 분, 서울까지 한 시간 반. 버스 안에서 나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이어폰 속 무전은 이미 다른 출동으로 넘어가 있었다.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고속도로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넷.안식의 남자는 패치가 작동하면 자동으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새벽 두 시에도 머리를 빗고 봉투를 챙겨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패치는 지퍼 백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비공개 동의서에는 서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섬망입니다. 흔한 일입니다.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그가 받았다."왜.""아저씨 지금 병원이에요?""어. 엄마 옆에.""성진대 응급실에 방금 소생자가 들어왔어요. 라스트 미닛. 스물네 살이래요. 오토바이."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병실의 기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그래서.""제가 한 시간 반 뒤에 도착해요. 그 전에 안식 사람들이 먼저 올 거예요. 그 사람 어디로 옮겨지는지만이라도 알아봐 줄 수 있어요?"철웅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전화를 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 귀 뒤에는 그 패치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 하늘이 자기 어머니의 하늘보다 낫다고 말한 사람이었다."구급 7이면 서교 쪽 애들이네." 그가 말했다. "알았어."전화가 끊겼다.아홉 시 반, 나는 성진대학병원 본관 로비에 도착했다. 철웅이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회색 스웨터 위에 검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지팡이가 무릎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구급 7 반장이 내 후배야." 그가 먼저 말했다. "애 이름은 오재민. 배달하다가 합정 사거리에서 혼

  • 영겁의 1분: 정지된 잔상   36화. 행복 공책

    마을버스는 정류장 앞에 섰다가, 아무도 타지 않자 문을 닫았다.기사가 창밖으로 나를 한 번 보았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 손만 들었다. 괜찮다는 뜻인지, 가라는 뜻인지 나도 몰랐다. 버스가 짧게 경적을 울리고 떠났다. 산모퉁이를 돌아 불빛이 사라졌다.이어폰 속에서 무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송 준비. 들것. 잡음. 산속이라 신호가 자꾸 끊겼다. 스물넷. 그 숫자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 들어야 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귀 가까이 들었다. 지지직. 목소리의 반쯤만 들어왔다가 흩어졌다.정류장 기둥의 시간표를 보았다. 다음 버스는 사십 분 뒤였다.해는 이미 산 뒤로 넘어가 있었다. 주황색이던 하늘이 잿빛으로 식어 갔다. 정류장 지붕 밑 형광등이 깜박이다 켜졌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발끝이 시렸다. 벤치 끝에 누가 두고 간 목장갑 한 짝이 얼어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손바닥 쪽 빨간 고무가 반쯤 닳아 있었다. 밭일을 하던 누군가가 버스를 타면서 떨어뜨렸을 것이다. 나는 그걸 한참 보았다. 다른 할 일이 없었다.십 분쯤 지났을 때 산길 위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내려왔다. 흰 승합차였다. 옆구리에 초록 글씨로 솔밭요양원. 차가 정류장 앞에 서더니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분홍 조끼가 보였다."따님! 아직 계셨네. 버스 놓쳤어요?"면회 신청서를 받던 요양보호사였다. 그녀는 비상등을 켜 두고 차에서 내렸다. 한 손에 종이컵 두 개를 포개 들고, 겨드랑이에 무언가를 끼고 있었다."병원 가는 어르신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이라서요. 원장님 차 빌렸어요. 저녁 배식 전에 올라가야 돼서 오래는 못 있어요."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자판기 거예요. 율무차."나는 컵을 받았다. 손바닥이 녹았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아까 어머님한테 전화드렸어요. 따님 오셨다고." 그녀가 자기 컵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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