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은 새까만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한마디 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우 아쉬운 듯한 모습이었다.원경능은 이곳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이 태상황의 임종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의 태상황은 목숨이 간들간들하여 금방이라도 떠날 것만 같았다.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생명을 다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호흡도 한결 힘찬 듯했다. 하지만 아마 태의들이 전에 사용한 약효가 든 것일지도 모른다. 태상황은 심장병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전에 중풍이 온 적도 있었다.‘지금 이 모습은 심부전인 것 같은데?’심부전, 호흡곤란…그녀의 약상자에는 도파민이 있었다.원경능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우문호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사건을 맞닥뜨렸다. 단, 원경능이 아무리 아둔하다 할지라도 지금 그 누구도 자신을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태상황의 병을 치료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그러니 결국 태상황이 숨을 거두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이는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매우 부자연스럽고 딱딱한 자세로 십 오분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상처와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비된 몸을 앉은 채로 움직였다. 그녀는 곁눈으로 우문호를 보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그는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슬픔에 젖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황실 가문이 무정하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명원제와 어의원의 원판(院判)이 걸어 나가더니,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경능은 희미하게 몇 마디 들을 수 있었다. 명원제는 태상황의 상황이 호전되자 원판에게 약을 더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러나 원판은 죽을 무렵에 잠깐 정신이 맑아지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아마 한 시진 내에 곧 수명을 다하실 것이라고.명원제는 다시 들어와서 금색 휘장을 내리도록 명하였다
원명제의 네 번째 자식인 우문안부부가 들어갔다. 그 다음이 우문호와 원경능이 들어갈 차례였다. 원경능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풀어갔다. 그녀는 몸이 불편하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지라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이때 상공공(常公公)이 말했다.“초왕, 초왕비, 들어가십시오.”원경능은 우문호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우문호는 앞서서 휘장을 걷어 올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우문호가 침상 옆에 꿇어앉자 원경능은 그의 뒤에 꿇어 앉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약상자를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약상자가 바닥에 닿자 순식간에 커졌다. 그녀는 약상자가 왜 커졌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마취제를 꺼내 주사기에 주입하였다. 슬픔에 빠진 우문호는 그녀의 거동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태상황을 불렀다.“황조부….”원경능이 그의 손을 잡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혐오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원경능은 그 사이 마취제를 그의 팔 안쪽에 주사하였다.우문호는 깜짝 놀라더니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원경능을 쳐다보았다. 원경능은 손을 빼고 그를 보았다. 그러나 입으로는 “황조부, 손자며느리가 인사를 올립니다.” 하고 말했다.원경능은 속으로 초를 셌다.‘일초, 이초, 삼초….’우문호는 쓰러졌으나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었다.원경능은 속으로 놀랐다. ketamine은 사람을 재빨리 마취상태에 이르게 한다. 의식이 없어야 할 우문호는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억지로 의식을 잡고 있었다.태상황도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흐릿했던 눈이 천천히 초점을 맞추며 원경능을 보았다.원경능은 입으로 계속 인사를 올리겠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직접 제작한 주사기를 꺼냈다. 포도당과 도파민을 희석하고 태상황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정맥을 찾아낸 후 몸을 숙여 태상황의 귓가에 말했다.“어르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을 구하러 왔습니다.”강아지 복보는 원경능이 침으로 태상황을 찌르려 하자
마취제의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문호는 측전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난 뒤 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원경능은 그의 곁에 앉았다. 그녀는 시중을 드는 사람들도 모두 물렸다. 측전 안은 매우 적막했다. 억센 남자의 손가락이 그녀의 목을 조였다. 원경능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우문호는 마치 화난 맹수처럼 눈에서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를 갈면서 물었다.“네가 감히 황조부를 독살해?”원경능의 머리는 그의 힘에 따라 움직여졌고 얼굴은 순식간에 충혈되었다. 그녀는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힘겹게 말했다.“왕야께서 고개를 숙여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우문호는 순간 바늘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난생 처음보는 특이한 모양의 바늘이 그의 허벅지 살을 뚫었다. 그 바늘에는 물이 담긴 작은 관이 달려져 있었다.“당신이 제 목을 졸라 죽일 수는 있어요. 그러나 제가 죽기 전에 당신이 먼저 죽을 거예요. 그러니 저의 말을 먼저 듣는 것이 어떤가요?”원경능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배짱 있는 눈빛을 하고. 우문호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러나 눈에 비춰지는 분노는 더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준수한 얼굴은 분노로 하여 일그러졌다. 그는 억지로 분노를 삼켰다.“말해, 무슨 독을 탄 것이냐?”그는 원경능이 독을 사용한다는 것을 몰랐다. 이 여인을 얕잡아 본 것이었다. 원경능은 주사기를 뽑고는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황궁에서 태상황을 독살하다니, 제가 미쳤다고 그렇게 하겠어요?”“말해!”우문호는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원경능은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독이 아니라 약이에요. 태상황의 상황은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저는 그를 구하고 있는 거고요.”우문호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의 눈에는 살의가 번뜩였다.“본왕이 명의를 부인으로 맞이한 걸 몰랐구나.”그는 몸을 일으키고 그녀의 손을 비틀었다.“가자, 본왕과 함께 부황에게로 가서 죗값을 치르거라.”우문호가 세차게 끌자 원경능은 바닥에 넘어졌다. 그의 억
원경능은 겨우 몸을 이끌고 우문호가 누웠던 침상에 쓰러졌다. 정신을 되찾고 보니 온몸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요 며칠동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만 발생했다.대뇌개발의 성공은커녕 일이 요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과학과 신학의 끝은 같다고 말했었다. 만약 대뇌가 어느정도 개발된다면 의식만으로도 물건을 옮길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도 있었다. 대뇌는 자동으로 각종 정보들을 읽을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모시는 신처럼 말이다.원경능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소매 속으로 뻗었다. 약상자라도 만져야 조금이나마 든든해질 것 같았다. 소매가 흘러내리면서 새하얀 손목이 드러났다. 그러자 뜻밖에도 처음보는 빨간 상처자국이 있었다. 그녀는 조금 의아했다. ‘언제 부상을 입은 것이지? 아까 우문호와 싸울 때?’아니었다. 상처 끝부분의 혈액은 이미 응고되었고 소매에도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최소 반 시진전에 생긴 상처일 것이다.‘반 시진 전이라?’원경능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전 밖에서 기다릴 때 우문호가 자신의 손을 뿌리쳤었다. 그때 저명취가 자신을 부축했던 것이 떠올랐다.‘설마 그냥 부축한 게 아닌 건가?’그는 저명취가 제왕 곁으로 돌아갈 때 조금 의아한 눈빛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원경능은 그제야 확실히 깨닫았다.저명취는 일부러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다. 다만 그녀가 자금탕을 복용하고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것을 몰랐다. 만약 예전의 원경능이였더라면 분명 면전에서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이렇게 엄숙한 장소에서 그렇게 했다면 죽을 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옥에 갇힌 뒤 이혼을 당했을 것이다. 원경능은 온몸이 다 서늘해졌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악독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원경능은 다들 멸시의 눈빛으로 자신을 볼 때 유독 다가와 안부를 물었던 저명취를 좋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부드러운 얼굴 뒤에 이렇게 악독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니.원경능은 그녀가 저명취 자신과 초왕의 관계를 망가뜨려 어쩔 수 없이 제왕에게 시집을
모든 태의들이 멍해졌다.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태상황이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심장 쇠약 현상이 아주 심해서 물도 한 모금 삼키지 못할 것 같았는데.원판은 재빨리 들어가서 태상황을 진맥하였다. 그러더니 울면서 말했다.“하늘이 북당을 도왔습니다. 하늘이 태상황을 도왔습니다!”병세가 호전되고 있었다. 금색 휘장이 들려지고 청색 휘장이 열렸다. 태상황은 나른한 표정으로 내전 안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전부 꿇어앉아서 무엇들 하느냐? 일어나거라!”그 목소리는 비록 모기 소리처럼 가늘고 힘이 없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레와도 같았다. 다들 뛸 듯이 기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가 일어났다. 태상황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입술에 어렸던 적홍색이 서서히 옅어졌다. 그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소리를 늘어뜨리면서 물었다.“다섯째는?”상공공은 재빨리 대답했다.“초왕께서는 상심이 크셔서 혼절하셨습니다. 지금 측전에서 휴식하고 계십니다.”"다섯째를 부르거라."태상황은 복보의 머리를 토닥이고서는 담담한 미소를 머금었다.“가보거라, 착한 아가야. 과인이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구나.”복보는 침상에서 뛰어내리더니 꼬리를 흔들며 떠났다.“빨리 초왕을 부르거라!”상공공이 분부했다.“그리고 그의 부인도….”태상황은 마치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력을 다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바짝 바른 입술로 몇 글자를 더 뱉아냈다.“함께 부르거라.”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모두 의아해했다. 특히 저명취는 더 멍해보였다. ‘태상황이 원경능을 만나려 하시다니?’태상황이 호전되자 명원제는 친왕들을 모두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은 모두 내전 밖으로 나가 기다렸다. 내전에는 명원제와 예친왕 그리고 태상황 곁을 지키는 상공공만 남겨졌다. 당연히 어의원 원판도 함께 남겨졌다.****우문호의 마취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태상황의 부름이 도달하기도 전에 진작 깨어났다. 원경능은 그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활활
원경능은 몰래 태상황의 안색을 살폈다. 입술은 적홍색에 호흡은 순조로운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단 목숨은 살려낸 것이었다.우문호는 자신을 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태상황의 등 뒤에 재빨리 담요를 넣어 지탱했다.“다섯째야, 너의 부인은 과인이 처음 보는 것 같구나.”태상황의 목소리는 방금 전 보다 기력이 있어 보였지만 정상적인 사람에 비하면 아직 많이 허약했다. 우문호는 착잡했다. 태상황이 깨어난 후 먼저 이 여인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었다.태상황은 최근 일 년의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냈다. 태상황이 편찮았던 지라 우문호는 혼인한 후 원경능을 데리고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지는 않았다.원경능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태상황이 엄청난 통찰력으로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태상황의 위엄은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이 시대에서 삼십 팔 년간 재위하면서 다져진 것이었다. “황조부, 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지 않았었습니다. 혹여나 황조부께 병이라도 옮길까 두려웠습니다.”우문호는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과인은 곧 죽을 노인인데 무슨 병을 두려워하겠느냐?”태상황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는데, 그 말투가 매우 부드러웠다. 원경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태상황의 예리한 눈빛과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황조부,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괜찮아지실 겁니다.”우문호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명원제와 예친왕도 옆에서 말했다.“하늘이 부황을 도우실 겁니다.”환관이 좁쌀죽을 올리자 상공공이 시중을 들었다. 태상황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왜, 과인은 젊은 사람의 시중 받을 가치도 없단 말이냐? 이 영감탱이야, 네 눈 밑이 얼마나 검은지 보았느냐? 과인이 너의 몰골에 놀라 죽겠구나. 나가거라, 돌아가서 자. 이곳은 초왕비가 시중을 들면 되느니라.”상공공은 오랫동안 태상황의 시중을 들어와서 태상황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태
초왕부에 돌아온 우문호는 생각에 잠겼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그는 원경능이 바늘로 황조부를 찌르는 걸 보았다.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 독인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비록 황조부는 조금 호전되었지만, 그 독약은 황조부의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 약은 황조부에게 다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황조부의 정신을 좌우지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가 알던 원경능은 이런 것들에 지식이 없었다. ‘혹시 누가 배후에서 그녀에게 가르쳐준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아버지 경후 원팔융(元八隆)이?’경후에게는 그러한 배짱이 없었다. 원팔융은 그저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며 빌붙는 소인일 뿐이었다. 우문호는 후에 따를 수 있는 좋지 않은 결과를 생각해봤다. 원경능은 그의 왕비였다. 그녀가 태상황에게 한 짓들이 발각된다면, 자신은 분명 배후에서 지시한 사람으로 찍힐 것이다. 누구도 그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그는 생각할수록 불안해졌다. 결국 탕양에게 녹아와 기씨 어멈을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녹아와 기씨 어멈은 늘 원경능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었다. 이상 행동이 있었다면 기씨 어멈을 속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녹아는 이번에 함께 입궁했었다. 황궁에서 나올 때 원경능이 건곤전에 남아 시중을 든다는 소식을 들고는 돌아와 기씨 어멈에게 말하자, 기씨 어멈도 깜짝 놀랐다.부름을 받은 두 사람은 다급히 왕야에게 갔다.“왕야!”서재에 들어온 두 사람은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우문호는 기씨 어멈을 흘끔 보았다. 문득 기씨 손자의 일이 생각나 생각없이 한마디 물었다.“화가는 어떻게 되었느냐?”“왕야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우문호는 조금 의외라 생각했다.“보아하니 이의원의 의술이 훌륭한가보구나.”“네…그렇습니다!”기씨 어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우문호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꿰뚫어 보았다. 담담하게 기씨 어멈을 보더니 물었다.“기씨 어멈, 본왕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가?”기씨 어멈은 몸을 움찔하더니 재빨
건곤전 안에서 태상황은 명원제, 예친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조금 피로해지자 그들을 물렸다. 그리고 태의들도 모두 밖으로 보냈는데 유독 원경능만 내전에 남겼다.명원제는 나가기 전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원경능을 흘끔 보았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전 안은 고요했다. 휘장이 겹겹이 드리워져서 바람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원경능은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침상 옆에 서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태상황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매섭게 말했다.“꿇어 앉아!”원경능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자금탕의 약효가 떨어져서 온몸에 아프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무릎을 꿇는 것이 앉은 자세보다 훨씬 편했다. “너의 죄를 알렸다?”태상황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원경능은 태상황이 최소한 지금은 자신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태상황이 이 속세에 미련이 있는 한 자신은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원경능은 고개를 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네.”“무슨 죄냐?”“의술이 신통하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나선 죄입니다.”원경능은 큰 죄가 아닌 작은 죄를 택했다. 태상황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의술이 신통하지 못하다니. 너는 어의원의 태의들을 모두 돌팔이로 만들어 버리는구나.”원경능은 이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태상황이 자신의 의술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순조로워질 것이다. 태상황은 또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이곳에 앉아서 과인의 병을 말해보거라. 죽느냐, 사느냐? 죽는다면 언제 죽고, 산다면 언제까지 사는 것이냐?”원경능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감히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태상황께서 제가 진찰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아직도 우두커니 서서 무엇 하느냐? 와서 진맥하거라.”태상황은 원경능이 어느 곳에선가 이상한 물건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 이상한 물건을 귀에 걸더니 웃으며 말했다.“먼저 심장소리를 먼저 들어봅시다….”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