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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오늘도 버티는 밤

Penulis: 이레나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30 16:37:53

비 오는 거리를 걷고 또 걸어, 마침내 목적지인 고깃집 앞에 도착했다. 설화는 낡아빠진 우산을 접고, 눅눅해진 옷을 추슬렀다. 기름진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열기와 고기 냄새, 연기가 한꺼번에 얼굴을 덮쳤다.

사장님이 설화를 보고 눈짓으로 인사했다. 가게 안은 이미 손님들로 북적였고, 빈 테이블 위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굳은 고기와 빈 소주병, 흩어진 쌈 채소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불판을 들고 움직이던 지원 언니가 설화를 보자 장난스럽게 볼을 한 번 잡아당기며 피식 웃었다.

"왔어? 오늘따라 손님 오지게 많다. 각오해."

"새삼스럽게요."

"설화, 왔나? 비 한번 징그럽게 온다."

주방 이모가 고무장갑 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설화는 조금 전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을 잠시라도 잊어보려고 입가를 끌어올렸다.

"네, 이모. 우산을 써도 소용없네요."

"맞다. 빨리 빠진 테이블부터 정리 해줘."

검은 앞치마를 허리에 단단히 둘러매고 손님이 빠진 테이블부터 돌기 시작했다. 빈 접시와 널브러진 쌈 채소를 쟁반에 담고, 소주병 목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손안에 빈 병 세 개가 가볍게 잡혔다.

이마저도 익숙한 일이었지만, 편의점에서 받았던 그 기분 나쁜 시선이 아직 가시지 않아 몸이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취기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최 사장이 설화의 손목을 낚아채고 히죽거렸다. 근처에서 나름 큰 규모의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쁜아, 여기 물 좀 줘."

"네, 알겠습니다."

설화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짓고 손목을 빼냈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가져다주었다. 이내 몸을 돌려 다른 테이블을 정리했다. 주방 쪽에서는 설거지 소리가 더 빨라졌고, 계속해서 손님이 밀려들었다.

좁은 테이블 사이를 설화는 곡예를 하듯 오가며 저녁 피크타임을 버텼다.

쌓여 있는 그릇을 주방으로 옮기고, 테이블에 흘린 소스를 행주로 닦았다. 홀 구석에는 설화의 손목을 낚아챘던 최 사장이 같이 온 직원들과 소곤거리며 설화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괜찮지?"

"사장님 너무 어린 거 아닌가요."

"어린 게 좋은 거지."

때아닌 품평회였다. 설화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단골이기도 하고, 매번 손님들을 몰고 오는 쪽이라 가게에서도 대놓고 뭐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설화는 그 시선을 못 본 척하며 마음속으로만 짧게 빌었다.

제발, 오늘은 별일 없이 끝나길…….

고깃집 안은 이미 하루 종일 구워진 고기 냄새와 기름 섞인 공기로 가득했다. 어느덧 마감 시간이 가까워오자 설화는 빠르게 남은 반찬과 그릇을 쟁반에 쓸어 담았다. 지원 언니는 정리를 마친 뒤 앞치마를 풀고 우산을 툭툭 치며 구시렁거렸다.

"매일하는 일인데 오늘따라 더 힘드네."

"비가 와서 몸이 늘어져 그럴걸요."

"넌 애 늙은이 같은 소리만 한다."

"들어가요. 언니."

주방에서는 이모가 음식물을 모아 담고 그릇을 뒤집어 놓는 소리가 달그락거렸다. 설화는 물수건을 들고 구석구석을 닦으며 벽시계를 힐끗 바라봤다.

오후 11시.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 주방 이모가 가방을 둘러메며 설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설화야, 오늘도 고생 많았다. 먼저 간다.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고."

"네, 이모도요."

홀 한쪽에선 아직 자리를 비우지 못한 남자 손님 두 명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여기, 소주 한 병만 더 줘요!"

주방 불은 꺼졌고, 지원 언니도 없고, 사장님조차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런 때가 제일 난감했다. 설화는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마감 시간이 지나서 더는 주문이 어렵습니다."

"돈 내고 마시겠다는데 뭐가 이리 말이 많아."

술기운이 오른 남자가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높였다. 설화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취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것도 구실을 만들어 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서비스 드릴게요."

"허. 서비스? 서비스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술."

다른 한 명이 빈 소주잔을 테이블에 쾅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설화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지만, 남은 안주 그릇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야! 우리 아직 안 나간다고. 왜 치워?"

"이제 문 닫아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윽박지르는 소리에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때 자리를 비웠던 사장님이 돌아와 테이블 앞에 섰다.

"손님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저희 직원도 이제 퇴근해야 해서요."

사장님의 단호한 말에 마지못해 남자들은 혀를 차고 비틀거리며 가게를 나서자, 설화는 그제야 조용히 한숨이나마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남긴 테이블을 치우고 닦았다.

이제 진짜 퇴근할 시간이었다. 기름기와 연기, 남겨진 술 냄새가 뒤섞인 텅 빈 가게가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설화는 앞치마를 벗어 가게 구석에 걸어두고, 지갑을 열어보았다. 구겨진 만 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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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60화 당기거나 물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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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58화 별이 내려온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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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57화 텅 빈 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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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56화 그늘에서 피어난 웃음

    팽팽하게 이어지던 하루는 오후 여섯 시가 지나서야 느슨해졌다.설화는 직원 대기실에서 땀과 먼지가 밴 유니폼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울 속 얼굴에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가방에서 립밤을 꺼내 입술 위에 덧바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누군가와 저녁을 먹기 위해 퇴근 준비를 하는 일이 낯설었다. 업무도 거래도 아닌 약속이었다.매니저와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정문으로 나가자, 난간에 기대선 진우가 보였다. 설화를 발견한 그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오래 기다렸어요?” “여섯 시라더니 삼십 분은 더 지난 것 같은데요.”진우의 투정 섞인 말투에 설화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죄송해요. 마감 정리가 늦어져서요. 뭐 드실래요?” “일단 걸어요. 배고픈 사람이 메뉴 고르는 게 제일 빠르니까.”진우가 앞장섰고, 설화는 그의 옆에 맞춰 걸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하루 종일 달아올랐던 얼굴을 식혀 줬다. 백화점 안의 기계음과 안내 방송이 멀어질수록 발걸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저는 검사님처럼 지갑이 두둑하지 않아서 비싼 곳은 안 돼요.” “제가 그렇게 속물처럼 보입니까?”진우가 웃으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저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삼겹살 먹고 싶네요.”삼겹살이라는 말에 설화의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불판 앞에 서서 손님들의 고기를 뒤집고, 기름 냄새가 밴 옷으로 집에 돌아가던 날들이 떠올랐다. 진우는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도 모른 척 계속 걸었다.“근처에 아는 곳 있으세요? 저는 이 동네를 잘 몰라서요.” “자주 가는 데가 있어요. 분위기는 기대하지 말고.”백화점 뒤편 골목으로 들어서자 낡은 네온 간판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진우가 멈춘 곳은 ‘생삼겹살 전문’이라는 환한 간판이 걸린 식당 앞이었다.문을 열자 고기 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설화는 잠시 입구에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냄새였지만, 오늘은 앞치마를 두르지 않아도 됐다.직원이 물병과 물수건을 내려놓으며 진우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0화 세상은 언제나 문을 닫았다.

    뭐가 이렇게 불편한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여자 하나가 방 안에 잠들어 있을 뿐인데, 그런데도 손끝에 닿았던 설화의 부드러운 살결과 입술의 촉감이 기어이 잔상처럼 달라붙었다.아주 오래전 닫아 둔 문 안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손잡이를 건드리는 것처럼.비가 내렸다. 회색 하늘 아래, 굵은 빗방울이 낡은 식당 문을 쉼 없이 때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그 작은 식당 앞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열 평 남짓한 식당은 젊은 여자와 어린 소년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엄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9화 닫힌 문 안쪽에서

    설화가 차가운 기운을 느꼈는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더 둥글게 웅크렸다. 강현의 커다란 재킷 아래로 가냘픈 어깨가 파묻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강현은 그 위태로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강제로 시선을 뚝 끊어냈다. 그런데도 의지는 배신하듯 다시 고개가 돌아갔다.확인하듯, 아니면 상황을 부정하려는 사람처럼.……이건 아니야.그는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눈물처럼 붙어 있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닿는 순간마다 감각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고, 단단히 손끝에 들어가 있던 통제력은 허무하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8화 비에 젖은 여자

    축 늘어진 설화를 품에 안은 채, 강현은 빗속을 가로질렀다.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의식 없는 몸 하나쯤 옮기는 일에 버거움을 느낄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품 안에 닿은 체온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런데도 그 작고 힘없는 무게가 불쾌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강현은 설화를 조수석에 눕힌 뒤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벨트가 가느다란 몸 위로 걸리는 순간,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마치 그 멈칫거림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그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뒷좌석의 재킷을 집어 들었다.축축하게 젖은 상체 위로 재킷을 덮어 주는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화 평범했던 여름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여름의 문턱을 먼저 넘어와 있었다. 인문관 계단은 오후 햇살을 오래 머금어 뜨끈했고, 문을 나서는 순간 에어컨의 냉기는 금세 뒤로 밀려났다. 잔디밭 위로 흘러가는 바람마저 미지근했다. ​"아… 더워. 진짜 여름 됐네." ​설화는 손에 든 과제물을 부채처럼 파닥이며 인문관을 나섰다. 프린트 가장자리가 손바닥을 스칠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강의실 안에서 교수님 목소리에 졸음 섞인 집중을 붙들고 있던 애들이 맞나 싶게 캠퍼스는 벌써 한껏 풀어진 분위기였다. 잔디밭에는 삼삼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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