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아름답고 넓은 정원이었다.모상원은 활짝 핀 튤립으로 가득했다.윤모가 꽃밭 한가운데 서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흰색 정장을 입고 손에는 새 혼인서약서를 들었다.“달님, 이리 와.”따뜻하게 웃으며 손짓했다.경서는 놀랍고 기쁜 마음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 윤모에게 달려갔다.갑자기 하늘이 아무 예고 없이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뒤엉켰다.경서는 걸음을 더 빨리해 필사적으로 달렸다.쾅!굉음과 함께 윤모가 있던 자리에 눈부신 불꽃이 터졌다. 윤모의 모습이 통째로 사라졌다.“심윤모!
“화지병원의 협력사는 HY캐피탈뿐이어야 합니다.”말을 마친 인우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연결되자 간결하게 지시했다.“S국 화지병원의 새 AI 에이전트 의료 시스템은 HY캐피탈이 반드시 확보해야 해.”“네.”혜니가 경서를 병실로 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우가 올라왔다.혜니는 서둘러 나가 문 밖 창가에서 인우와 마주 섰다.“오늘 밤은 내가 경서 옆에 있을게.”인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혜니를 품으로 끌어당겼다.혜니는 인우의 가슴에 기대 말을 이었다.“혜원으로 돌아가서 나래 잘 봐 줘.”“요
의사가 얼어붙은 다른 의사 두 명에게 소리쳤다.“뭘 보고 있어! 소생술 계속해! 새 약 가져와, 빨리!”두 의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다시 처치를 시작했다.경서는 더는 참지 못했다. 생기 없이 누운 윤모를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심윤모, 이 미친놈아. 버텨! 내가 허락 안 했잖아. 넌 죽으면 안 돼!”“윤모, 숨 쉬어!”“윤모, 내 말 들려?”“거기서 죽은 척하지 마...”욕을 퍼부으면서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죽기만 해 봐... 돌아가서 너희 집안 다 뒤집어 버릴 거야!”절망과 광기가 실린 외침이
장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서가 밖으로 뛰쳐나갔다.일행이 모두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민찬은 벽에 기대서 있었다. 넋이 빠진 사람 같았다.손에는 두툼한 서류 뭉치가 쥐어져 있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가장자리가 구겨져 있었다.“무슨 일이에요?”경서의 목소리가 떨렸다.민찬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무서울 만큼 붉었다. 이를 악문 채 겨우 몇 마디를 내뱉었다.“조금 전에 심 대표님이... 심정지를 일으켰습니다. 지금 의료진이... 소생술을 하고 있습니다.”민찬은 숨이 턱 막히는 듯 잠깐 멈췄다가 힘겹게 덧붙였다.“한 대
“만약에 심윤모가...”경서는 차마 그 뒤를 잇지 못했다.“분명히 깨어날 거야. 널 두고 떠날 리가 없잖아.”혜니가 단호하게 말했다.“정말 그렇게 모질게 굴면, 그때는 그냥 쓰레기처럼 버려. 차 버리면 돼.”경서는 웃고 싶었는데 눈물부터 흘렀다.병실로 돌아오니 문 앞에 어느새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네댓 명이 서 있었다. 다들 체격이 건장했고 표정이 없었다.병실 안에서 누군가 뛰쳐나왔다. 은은한 향이 스치더니 경서를 꽉 끌어안았다.“경서 선배!”아인이 울음을 터뜨렸다.“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선배가 그대로
경서는 잠시 생각하다 곧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아니에요. 나중에 ‘달님’을 삭제했잖아요. ‘달님’을 사랑한 게 아니야. 심심할 때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 생각했을 뿐이지.”경서의 눈에 차가운 조소가 어렸다.“아닙니다!”민찬은 멈칫했다가 경서가 무엇을 오해했는지 알아차리고 서둘러 설명했다.“그 계정을 삭제한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배신감 때문이었습니다!”“하동테크 창립 기념 행사에서 하은서 씨의 나체 사진과 영상이 갑자기 공개됐습니다. 심 대표님은 ‘달님 씨’의 사생활이 문란하다고 생각하셔서 몹시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사실 혜니는 어젯밤에도 인우의 꿈을 꾸었다....은행나무 아래, 매트, 별빛, 이혼하던 날의 마지막 작별. 혜니가 울부짖었고, 인우는 뜨거운 숨을 귓가에 뿌리며 끝을 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했다. “한인우, 이제 그만해.”혜니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음까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인우는 낮게 숨을 내쉬며 혜니를 내려다보았다.뜨거운 기운이 가까이 닿았지만, 인우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렇게 소리칠 힘은 남아 있
“공주님, 얼른 신발 신자. 늦겠다!” 바쁜 아침, 시간에 쫓기는 윤혜니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싫어!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나래는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틀며 말랑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아이고, 우리 착한 아가. 오후에 엄마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 줄게. 딸기 맛이야.” 혜니는 온갖 방법을 다 써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낮췄다.달콤한 회유가 통하자 나래는 마지못해 조그만 발을 내밀었다.혜니는 잽싸게 신발을 신기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내 소새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새연아,
‘내가 취한 건가?’샴페인 한 잔 마셨다고 이럴 리가 없었다.혜니는 접시를 내려놓고 서둘러 인우를 찾았다.인우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하지만 또다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그때 키 큰 남자 하나가 갑자기 혜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가씨,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저랑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요.”혜니는 남자를 피해 지나가려 했다.그러나 남자는 웃으며, 휘청이는 혜니의 몸을 덥석 붙잡았다.“좀 취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정원에 모시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해 드릴게요.
뜨거운 박수가 연회장 안을 가득 채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각계 기업인들이 겹겹이 인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그 사이에는 화려하게 꾸민 예쁜 여자애 세 명도 섞여 있었다.손목에 찬 시계만 봐도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은 되어 보였다.딱 봐도 어느 집안의 귀한 딸들이었다.혜니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조용히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왔다....혜니가 막 문밖으로 나와 숨을 돌리려던 때였다.하이엔드 맞춤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혜니 앞을 막아섰다.“한인우 대표님 비서죠?”“안녕하세요.”혜니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