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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꼬마어
떠나기 전에 괜히 눈치채게 해서 일이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김소아는 잠시 침묵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상처가 남아 있는 발을 조심스레 디디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앞으로 향했다.

30분 뒤, 두 사람은 서씨 가문 별장에 도착했다.

환하게 불이 밝혀진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김소아의 눈에 임지연이 들어왔다.

우아한 명품 투피스를 입은 임지연은 서준우의 어머니 한미정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 서영훈도 옆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화목한 가족처럼 보였다.

“준우 왔구나!”

한미정이 반갑게 다가왔다.

마치 김소아는 없는 사람처럼 그대로 지나친 채 아들의 팔부터 붙잡았다.

“지연이는 한참 전부터 기다렸어.”

서준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심코 김소아를 돌아봤다.

서운해하거나 애써 속상함을 감추는 모습이라도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김소아는 그저 담담히 서 있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처럼.

“소아 씨도 오셨네요?”

임지연이 놀란 척하다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어서 앉아요. 편하게 있어요.”

그제야 한미정이 김소아를 힐끗 바라봤다.

“왔으면 얌전히 있어. 우리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김소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가 시작되자 한미정과 임지연은 상류층 지인들 이야기를 나눴다. 서영훈과 서준우는 회사 일에 대해서 대화를 이어 갔다.

김소아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소아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식사를 했다.

한미정이 보란 듯이 던지는 말만 간간이 들려왔다.

“결혼은 역시 집안이 비슷해야 해. 세상에는 자기 분수도 모르는 애들이 있다니까.”

“지연이랑 준우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서로를 잘 알잖아. 얼마나 잘 어울려.”

이미 수도 없이 들어 본 말이었다.

처음에는 서준우도 굳은 얼굴로 말을 끊곤 했다.

그런 뒤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

“엄마, 그만하세요.”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었다.

김소아는 고개를 숙인 채 국물을 떠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뒤 서준우는 두 사람을 태우고 돌아갔다.

임지연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았다.

김소아 혼자 뒷좌석에 자리했다.

차 안에는 임지연이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임지연은 웃으면서 아까 있었던 일들을 서준우와 이야기했다.

김소아는 창밖으로 번지는 불빛을 바라보다 문득 몇 년 전 겨울을 떠올렸다.

그때 서준우는 중고 자전거에 김소아를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줬다.

김소아는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꽁꽁 언 손을 외투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소아야,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꼭 좋은 차 살게. 다시는 당신이 추위에 떨게 안 할 거야.”

지금은 정말 돈이 많아졌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김소아가 아니었다.

그때 눈앞으로 강한 불빛이 쏟아졌다.

김소아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대형 트럭 한 대가 중심을 잃고 이쪽으로 돌진했다.

쾅!

거대한 충돌음이 터졌다.

그 순간 김소아는 똑똑히 봤다.

서준우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수석 쪽으로 몸을 던지면서 임지연을 감쌌다.

김소아는 충격에 그대로 앞으로 튕겨 나갔다.

앞좌석에 이마를 강하게 부딪혔다.

순식간에 흘러내린 피가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정신을 잃기 직전, 김소아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도 서준우가 지키려 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걸.

...

다시 눈을 떴을 때 김소아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마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상처가 채 낫지 않은 발까지 다시 다쳐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한미정이 구두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김소아, 내가 출국하라고 했지?”

한미정은 김소아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직도 안 가고 뭐 해? 설마 아직도 우리 집안에 들어올 생각이야?”

김소아는 담담히 한미정을 바라봤다.

“아니에요. 아직 비자가 안 나왔어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비자만 나오면 바로 떠날게요. 멀리 갈 거예요. 준우 씨가 절대 찾지 못할 곳으로.”

한미정이 비웃었다.

“그 말 꼭 지키길 바라.”

바로 그때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서준우가 굳은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떠난다고?”

서준우의 시선이 김소아에게 향했다.

“누가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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