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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온전히 깨어난 그녀

환생 후, 온전히 깨어난 그녀

Oleh:  딱그만큼Tamat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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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리는 스무 살에 우지호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스물두 살에 그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 후 다섯 해가 지나도록 아이는 없었지만 우지호는 집안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늘 그녀만을 감쌌다. 그때만 해도 다들 서유리가 그의 전부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지호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이 터져 나왔다. 그는 폭우 속에서 온종일 무릎 꿇고 변명했다. 모든 것이 실수였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고 오직 그녀만을 사랑하겠노라 맹세했다. 이에 서유리는 아이는 받아들이되 아기 엄마는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아기 엄마 백은채가 우씨 저택에 들어와 태교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우지호는 그녀를 위해 회의를 빼먹고 서유리를 제쳐두면서까지 그녀와 바람 쐬러 다니기 바빴다. 심지어 서유리와의 약속을 번번이 백은채 때문에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서유리가 처음으로 이혼을 꺼냈을 때 그는 욕실에서 손목을 그었다. 유서에는 그녀와 백년해로하지 못한다면 죽음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이혼 요구에는 다급하게 그녀를 붙잡았다. 그러나 반복되는 갈등 끝에 우지호는 점차 무뎌져 갔다. 아흔아홉 번째 싸움, 서유리는 집을 나갔고 우지호는 더는 그녀를 쫓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올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서유리는 비 내리는 그 밤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혼외자의 존재를 알게 된 바로 그날이었다. 서유리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편집장님, 그 종군기자 자리, 제가 가겠습니다.” 상대는 외지 발령이라 외부와의 연락이 어렵고 남편의 동의도 필요하다고 일렀다. 이에 서유리는 차분하게 답했다. “남편과는 이혼할 거예요. 정확히 일주일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이제 우지호는 그 어디에서도 서유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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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제1화

사람들은 전부 우지호가 서유리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믿었다.

나중에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다면 서유리 역시 죽는 순간까지 우지호의 진심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잔인한 법.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저택의 대문을 막 밀고 들어서던 그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유리 씨? 갑자기 왜 왔대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주도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유리는 그의 시선을 넘어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녀의 남편 우지호가 그녀의 절친 백은채의 입가에 연신 전복죽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에는 다정한 설렘이 가득했고 그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다.

주도겸이 그녀의 뒤를 따라붙으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유리 씨, 오해하지 말아요. 유리 씨 생각처럼 그런 게 아니에요! 지호도... 실은 다 유리 씨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서유리는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

얼마나 가소로운 변명인가. 지난 생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핑계였다.

지난 생, 백은채가 임신한 몸으로 나타났을 때도 우지호는 똑같이 말했었다.

그때 서유리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백은채 모자에게 쏟아지는 우지호의 다정함, 그리고 서유리에게 점점 조여오는 소외감이었다. 결국 그녀는 이혼하러 가는 길에 죽음을 맞닥뜨렸다.

“유리 씨...”

“닥치시죠!”

서유리는 마치 그림 같은 한 쌍의 연인을 바라보며 결혼반지를 바닥에 내던지고 뒤돌아섰다.

집에 돌아와 현관의 조명을 켜기도 전에 등 뒤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지난 생과 똑같이 남자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유리야,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다 설명할게.”

“설명?”

서유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나왔다.

“백은채가 왜 계속 네 아이를 품고 있는지 설명할 거니?”

우지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머니가 아이를 원하셔. 그 소원만 들어드리면 우린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거야.”

우지호가 손을 잡으려 하자 서유리가 잽싸게 거둬들였다.

이에 우지호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유리야, 약속할게. 아이가 생긴다 해도 내겐 오직 너뿐이야. 너만이 내 유일한 여자라고.”

상자 안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주고 산 ‘유일’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담겨 있었다. 서유리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냉소를 터트렸다. 지난 생에서 이 목걸이의 주인은 백은채였다.

다만 지금 우지호 이 인간이 불륜 상대에게 줄 선물을 자신에게 건네고 있었다.

‘지호야, 너의 유일이란 건 왜 이렇게 값싸고 천박해?’

그녀는 우지호가 목걸이를 채우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차가운 다이아몬드가 피부에 닿자 역겨움만이 치밀어 올랐다.

우지호는 ‘세 식구가 될 미래’를 달콤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가정부에게 맡길 테니 둘만의 시간에 방해될 일은 없을 것이며 서유리는 평생 이 집의 유일한 안주인으로 살게 될 거라고 맹세했다.

그때 거실 탁자 위의 휴대폰이 진동하고 백은채의 메시지가 떴다.

[지호 오빠, 나 지금 오빠가 사준 잠옷으로 갈아입었어요. 언제 와요?]

메시지 아래에는 배가 불룩한 채 검은색 시스루 잠옷을 입은 백은채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우지호는 서유리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화면을 꺼버렸다.

“유리야,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자. 기다리지 말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거칠게 닫혔다. 우지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서유리는 목걸이를 거칠게 낚아채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마치 아무 가치 없는 쓰레기를 내던지듯이 말이다.

“아쉽다, 지호야. 전생이었다면 감동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아니야. 네가 말하는 유일함 따위 전혀 원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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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사람들은 전부 우지호가 서유리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믿었다.나중에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다면 서유리 역시 죽는 순간까지 우지호의 진심을 굳게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잔인한 법.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저택의 대문을 막 밀고 들어서던 그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유리 씨? 갑자기 왜 왔대요?”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주도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서유리는 그의 시선을 넘어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녀의 남편 우지호가 그녀의 절친 백은채의 입가에 연신 전복죽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에는 다정한 설렘이 가득했고 그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다.주도겸이 그녀의 뒤를 따라붙으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유리 씨, 오해하지 말아요. 유리 씨 생각처럼 그런 게 아니에요! 지호도... 실은 다 유리 씨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나를 위해서?’서유리는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얼마나 가소로운 변명인가. 지난 생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핑계였다.지난 생, 백은채가 임신한 몸으로 나타났을 때도 우지호는 똑같이 말했었다.그때 서유리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하지만 그 대가는 백은채 모자에게 쏟아지는 우지호의 다정함, 그리고 서유리에게 점점 조여오는 소외감이었다. 결국 그녀는 이혼하러 가는 길에 죽음을 맞닥뜨렸다.“유리 씨...”“닥치시죠!”서유리는 마치 그림 같은 한 쌍의 연인을 바라보며 결혼반지를 바닥에 내던지고 뒤돌아섰다.집에 돌아와 현관의 조명을 켜기도 전에 등 뒤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지난 생과 똑같이 남자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유리야,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다 설명할게.”“설명?”서유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나왔다.“백은채가 왜 계속 네 아이를 품고 있는지 설명할 거니?”우지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어머니가 아이를 원하셔. 그 소원만 들어드리면 우린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거야.”우지호가 손을 잡으려 하자 서유리가 잽싸게 거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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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다음 날 아침, 서유리는 무언가가 긁히는, 귀청을 찌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거실로 나가자 인부 몇 명이 벽에 걸린 서유리와 우지호의 결혼사진을 거칠게 떼어내고 있었다. 액자 유리가 바닥을 긁으면서 긴 흠집을 남겼다.“무슨 짓들이에요?”서유리는 갓 잠에서 깬 탓에 목소리가 잠겨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서늘한 기운은 뚜렷했다.우두머리로 보이는 인부가 거드름을 피우며 대꾸했다.“우지호 씨가 시킨 겁니다. 이 집안에 새 안주인이 들어올 테니 벽에 다른 여자 사진이 걸려 있는 게 영 불편하시다고 하네요.”‘새 안주인?’서유리는 지난 생을 떠올렸다. 그날 아침, 자신의 결혼사진이 공사 인부들에 의해 뜯겨 나간 것을 발견하고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그들을 말리려 했었다. 곧이어 백은채와 우지호로부터 메시지가 왔는데 뜬금없이 이사를 들어온다고 통보했다. 그밖에 백은채는 그녀에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진들을 수없이 보냈다. 충격에 휩싸인 서유리는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여 우지호가 백은채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히스테리를 부리며 난리를 피웠다. 결국 돌아온 것은 우지호의 경멸 어린 시선과 백은채의 승리감에 찬 미소였다.하지만 지금, 보물처럼 여기던 결혼사진이 구겨진 채 쓰레기봉투로 처박히는 꼴을 보는데도 서유리의 마음은 아무런 파동이 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스꽝스러웠다.심장을 찢는 듯한 고통도 한번 겪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상대는 바로 백은채, 수십 장의 사진이 쉴 새 없이 알림창을 채웠다.우지호가 볼록하게 나온 그녀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모습, 부엌에서 백은채를 위해 정성스레 요리하는 모습, 소파에 나란히 기대앉아 있는 두 남녀와 발그레해진 백은채의 뺨까지...사진마다 오른쪽 하단에 날짜가 선명하게 찍혔는데 전부 우지호가 말했던 ‘출장’과 ‘회의’ 날짜와 정확히 일치했다.뒤이어 도발적인 메시지가 도착했다.[유리야, 실은 지호 오빠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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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 날 아침, 우지호가 손님방에서 나오다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문을 열어보니 서유리가 세면대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왜 그래, 유리야?”그는 선뜻 다가서며 물었다.“어디 불편해?”서유리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아니, 그냥 좀 울렁거려서.”우지호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한참 뒤 서유리가 진정되자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유리야, 네가 은채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걸 어제 어머니도 다 아시게 됐어. 그래서 말인데... 나보고 이제 더 이상 숨기지 말래.”서유리는 고개를 들고 거울 속에 비친 남자를 쳐다보았다.“어머니가 오늘 본가로 들어오래. 은채도 데리고 와서 가족끼리 밥 먹자고 하시더라.”‘가족?’서유리는 소리 없이 웃었다. 우지호에게 백은채란 이미 ‘가족’의 범주에 들어온 모양이었다.그녀는 지난 생에 우씨 가문 본가에서 있었던 그 만찬을 떠올렸다. 만찬이 끝난 후, 그들은 교통사고를 당했고 백은채는 아이를 잃었다. 그 후 우지호는 죄책감이라는 명목으로 백은채를 극진히 보살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건 죄책감이 아니라 이 남자가 백은채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증거일 뿐이었다.“힘들면 쉬고 있어. 이따가 기사 부를게.”말을 마친 우지호는 화장실을 나섰다.서유리는 끝내 우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우씨 가문 본가.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시어머니 진세희가 백은채를 달래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때 눈치 빠른 가정부 장미선이 서유리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귓속말을 건넸다.“회장님, 사모님, 유리 씨 오셨습니다.”거실에 흐르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진세희는 서유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금세 웃음기를 거두고 건조하게 내뱉었다.“왔으면 앉아. 곧 밥 먹을 거니까.”서유리는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식탁 위 홍어회 냄새가 코를 찌르자 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왜? 우리 집안 음식이 입에 안 맞니?”진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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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선생님, 설마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서유리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그녀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의사를 뚫어지라 쳐다보았고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전생에는 없었던 아이였다.한편 의사는 이런 반응이 익숙한 듯 초음파 사진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서유리 씨, 임신 6주 차예요. 잘못 본 거 없고요, 여기 초음파 사진에도 분명히 나와 있어요.”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서유리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냉혹하게 말했다.“유산기가 심한 편이라 착상 보조제를 처방해 드렸으니 반드시 침대에 누워서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만약 이 아이를 지키지 못하면 서유리 씨 몸 상태로 다시 임신하기가 어렵습니다.”서유리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평평한 아랫배를 내려다보며 무심코 손을 가져다 댔다. 그곳에서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변수는 그녀가 환생한 이래 늘 잔잔했던 마음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병원을 나섰을 때, 한여름의 햇살이 눈부시게 쏘아붙였다.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우지호와의 대화창을 열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입원해 있는 며칠 동안에도 이 남자는 전생과 마찬가지로 전화 한 통, 문자 하나 없었다.‘지호에게 알려야 할까? 우리 아이가 생겼다고?’이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서유리는 스스로를 질책하며 짓밟았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 익숙하면서도 반복적인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말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에겐 이미 다른 아이가 생겼는데...어쩌면 그녀가 환심을 사려고 임신이라는 거짓말을 둘러댄다고 여길지도 몰랐다.서유리는 감히 도박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겨우 현관문을 열었을 때, 2층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자의 부서진 신음과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귀를 확 덮쳤다. 정말이지 음란하고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였다.서유리는 신발을 벗다 말고 동작을 멈췄다.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한 걸음씩 계단을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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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서유리는 변호사 안정원과 통화를 마치고 몸을 돌리자마자 아기방에서 나오는 우지호와 마주쳤다.우지호는 그녀를 발견하고 나서야 그 존재를 떠올린 듯 표정에 잠시 부자연스러움이 스쳤다. 곧이어 무심하게 툭 던지듯 말했다.“유리야, 나 대신 최고급 인테리어 디자이너 좀 알아봐 줘.”서유리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우지호는 그녀를 힐긋 보더니 다시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어갔다.“아니, 아까 보니까 아기방에 있는 것들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게 너무 많더라고. 전문가 불러서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해야겠어.”서유리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에 안 들어? 백은채가 싫어해서겠지! 우지호, 너 이제 연기하는 시늉조차 안 하는구나?’그녀는 손님방으로 돌아가 우지호가 선물했던, 한때 소중히 여기며 찬장 안에 두었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벽 모퉁이에 놓인 금속 화로에 던져 넣었다.이미 떠나기로 결심한 이상, 우지호가 선물했던 이 물건들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백은채에게 남겨주기엔 역겨웠다.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밸런타인데이에 선물했던 오르골을 집어삼켰고 곧이어 정교한 발레리나 인형마저 불태웠다.“안 돼!”서유리가 거칠게 밀쳐졌다. 얇은 잠옷 차림의 백은채가 달려와 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화로 속 물건을 움켜잡으려 했다.“유리야, 대체 왜 내 물건을 태워?”서유리의 움직임이 멈칫했다.‘내 물건?’“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어?”백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으며 억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나한테 남은 건 이것들뿐인데 대체 왜 이것마저도 망치는 거야? 너한테는 지호 오빠도 있고 이제 곧 태어날 우리 아기의 엄마가 될 거잖아...”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지호의 거대한 실루엣이 문 앞에 나타났다.그는 어지럽게 널린 물건들과 울고 있는 백은채를 보더니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유리 너 대체 무슨 짓 한 거야?”서유리는 그저 그를 응시할 뿐 한마디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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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서유리는 휴대폰 속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이거 내가 한 거 아니야.”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한 파도처럼 고요했다.“너 아니면 누군데?”우지호는 전혀 믿지 않았고 날카롭게 추궁했다.“너 말고 누가 은채를 이렇게 몰아붙일 동기가 있겠어? 누가 감히 이런 악랄한 수법을 쓰겠냐고!”백은채는 옆에서 낮게 흐느끼며 그의 분노를 부추겼다.별안간 서유리는 모든 것이 너무 지쳐서 변명조차 하찮게 느껴졌다. 그저 조용히, 한때는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 남자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지금 다른 여자를 위해 서유리를 매정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그녀는 입꼬리가 희미하게, 거의 형체도 없이 흩어질 듯한 미소를 그렸다.“그래서 뭐?”“당장 인터넷에 해명 글 올려. 은채한테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씌운 게 다 너라고 밝히란 말이야!”우지호의 말투는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다는 듯 단호했다.서유리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농담이라도 들은 것만 같았다.“지호야, 넌 머리가 장식이니?”그녀는 한 글자씩 또렷하게 내뱉었다.“내가 한 것도 아닌데 대체 뭘 해명하라는 거야?”“오빠...”그때, 줄곧 우지호를 뒤따르던 백은채가 나약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적절히 끊었다.그녀는 깨끗한 환자복 차림에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서유리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움츠렸지만 애써 강한 척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유리야, 싸우지 마. 다 내 잘못이야. 아이만 낳으면 바로 나갈게. 그러니까 제발 오빠랑 다투지 마.”우지호의 몸을 감싸던 냉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휘청거리는 백은채를 부축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가자, 이만 가서 쉬어야지.”“유리 넌 생각 좀 정리하고 와서 은채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거야.”말을 마친 남자는 더 이상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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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서유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코끝에는 진한 소독약 냄새가 감돌았다.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더듬었지만, 그곳은 텅 비었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휩쓸려 오는 고통이 사지로 퍼져나갔다.아이... 그녀는 아이를 잃었다.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문득 병실 문이 열리고 우지호가 들어섰는데 눈가에는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았다.그는 서유리가 깨어난 것을 보고 긴장했던 신경이 조금 풀린 듯 침대 맡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목소리는 이미 잠긴 상태였다.“깼어?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의사 선생님 부를까?”서유리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공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우지호는 그녀의 시선에 괜히 마음이 찔렸다. 무심코 눈길을 피하며 슬쩍 손을 잡으려 했다.“유리야, 일단 내 말 좀 들어봐. 이미 경찰에 신고했으니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누가 그랬든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서유리는 그의 손길을 피해서 천천히 손을 빼냈다.우지호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그는 목울대를 삼키며 목소리를 더욱 부드럽게 가다듬었다.“네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아이는 나중에 또 생길 수 있어. 이제 컨디션 회복하면 같이 바람 쐬러 가자. 어디든 좋으니까 우리 함께...”“나가.”서유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다만 우지호는 어안이 벙벙했다.“유리야...”“나가라고.”그녀는 한 번 더 반복하며 남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 후 며칠 동안 우지호는 매일같이 찾아왔다.태블릿 PC를 들고 와서 침대 맡에 앉아 그녀에게 신나게 여행 계획을 늘어놓았다. 몰디브의 푸른 바다와 하늘, 스위스의 설산 풍경까지 닥치는 대로 쉴 새 없이 나불거렸다.“유리야, 여긴 어때?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독채 수상 가옥이야. 매일 일출에 일몰까지 보면서 아무 생각 안 하고 지내도 돼...”“다 좋아.”그녀의 시선은 줄곧 창밖을 향해 있었고 대답 또한 건성이었다.“그럼 이건? 스위스에서 스키 타는 거. 너 줄곧 설산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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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우지호가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백은채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었다.“오빠, 왔어요? 그 사람들한테 돈 보냈죠?”그녀의 목소리는 끈적하고 달콤했다.“겨우 그런 일로 나 불렀어?”우지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백은채의 손을 무심하게 뿌리치며 말했다.“네가 원하던 액수대로 보냈어. 백은채, 이번이 마지막이야!”그는 백은채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유리가 퇴원하면 우리 당분간 여행 떠날 거야. 너는 여기서 혼자 지내게 될 테니 얌전히 있어.”“유리 돌아오면 그때부터 너도 몸가짐 잘해. 원하던 건 이미 다 줬으니까 아이 태어나는 대로 돈 가지고 내 앞에서 깨끗하게 사라져.”백은채는 그의 말을 들으며 얼굴의 핏기가 싹 가셨다.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층으로 향하는 저 남자, 그녀에게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쾅 소리와 함께 서재 문이 닫혔다.백은채는 텅 빈 거실에 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대체 왜? 왜 서유리만 저렇게 복에 겨운 건데?’그녀는 몇 달 전 어느 오후를 떠올렸다.“아이 지워.”우지호는 임신 진단서를 보며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할 수 있어.”백은채가 휴대폰을 들어 올렸는데 화면에는 통화 중인 번호가 떠 있었다.“지호 오빠, 정말 잔인하네요. 어머님, 다 들으셨죠? 어머님 아들이 금쪽같은 손자를 지우라네요.”전화기 너머로 우지호의 어머니 진세희의 위엄 있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호야, 이 아이는 우리 집안 혈통이니 반드시 낳아야 해. 아기 털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봐. 당장 주총 열어서 우성 그룹 대표 자리에서 내쫓아버리는 수가 있어!”“들었죠, 오빠?”백은채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더없이 거만하게 웃었다.“아이를 낳고 말고는 오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우지호의 손가락이 천천히 굳어지고 뼈마디가 가볍게 뚝뚝 소리를 냈다. 그는 백은채를 깊숙이 바라보았다. 눈빛에 담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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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알았어, 먹여줄게.”우지호는 숟가락을 들어 기계적으로 죽을 백은채의 입가로 가져갔다. 스스로도 역겹다고 느낄 만한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이제 착하네요, 우리 오빠.”백은채는 만족스럽게 죽을 삼키고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러더니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오빠, 나 이제 밖에 살기 싫어요. 여기는 너무 불편해. 나 오빠네 별장으로 들어가서 살래요.”“선 넘지 말라고 했다!”“그게 어떻게 선을 넘은 거예요?”백은채는 배를 어루만지며 순수하면서도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아기가 자기 집을 미리 알아두면 좋잖아요. 약속할게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잠깐 들어가서 살다가 아이만 낳으면 우리 둘 다 깨끗하게 헤어지는 거예요. 그런데...”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가에 득의양양함이 스쳤다.“유리랑 얘기 잘해야 할 거예요. 난 손님방 싫거든요. 안방에서 잘래요.”우지호의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졌지만 결국 타협했다.그렇게 백은채는 안방에서 지내게 되었고 서유리와 우지호의 침대를 떡하니 차지했다.우씨 가문 본가에서는 우지호의 옆에 앉아 기고만장하게 굴었다.가장 뻔뻔했던 것은 서유리의 보석함에서 가장 각별한 의미를 지닌 아이리스 목걸이를 망설임 없이 꺼내 제 목에 걸었던 그 일이다.따르릉.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백은채를 과거의 기억에서 끌어냈다.그녀는 발신자 표시를 흘끗 보더니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알았다고! 사람 시켜서 돈 부치는 중이니까 재촉 좀 그만해.”전화를 끊고 그녀는 위층 서재의 굳게 닫힌 문을 올려다보며 차갑게 웃었다.‘지호 오빠, 아직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꿈 깨! 이미 오래전부터 불가능해졌어.’다음 날 이른 아침, 우지호는 미리 준비해둔 보온병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평온함을 안고서...그는 이제 모든 것을 결정했다. 곧 병원에 가서 서유리를 퇴원시키고 그녀와 함께 스위스의 설산을 보러 갈 계획이었다. 그녀가 늘 가고 싶어 했던 그곳,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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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우지호는 휴대폰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서유리의 번호를 눌렀다.[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번, 세 번, 네 번... 연거푸 걸었다.서유리는 휴대폰 전원을 끄는 법이 없다. 우지호가 걱정할 것을 아니까.그는 걸음을 휘청거리며 병원을 뛰쳐나와 별장으로 질주했다. 가는 내내 핸들을 꽉 쥐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어쩌면 서유리는 그저 혼자 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냥 엇갈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집에 돌아가면 그녀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수도 있다.현관문을 열자마자 우지호는 재빨리 2층 손님방으로 뛰어 올라갔다.문은 열려 있었고 옷장은 텅 비었으며 화장대마저 휑했다.“아니야. 말도 안 돼.”그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미친 듯이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모든 서랍과 구석구석을, 심지어 바닥에 엎드려 침대 밑까지 확인했으나 자신이 사준 물건들 말고는 서유리의 흔적이라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그녀가 정말로 떠나버렸다.우지호는 침대 맡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어깨가 하염없이 떨리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대표님, 여기 이분, 안정원 변호사님께서 대표님께 직접 전해드릴 물건이 있다고 하십니다.”가정부가 말끔한 양복을 입은 남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안정원? 서유리의 변호사를 말하는 걸까?우지호는 고개를 번쩍 들고 눈가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유리 어디 있는지 알죠? 유리가 오라고 시킨 거 맞죠?”“우지호 씨, 이건 서유리 씨가 맡겨주신 이혼 합의서입니다.”안정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건넸다.“뭐라고요?”우지호가 벌떡 일어섰다.“나는 그 어떤 이혼 서류에도 사인한 적 없는데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안정원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여전히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우지호는 순순히 마지막 페이지로 넘겼는데 서명란에 그가 휘갈겨 쓴 [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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