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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작가: 금붕어
최수빈은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즉시 일어나 한재준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이번에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한재준은 전용차를 타고 연구원으로 돌아갔다.

육민성은 차로 최수빈을 데려다주었다. 최수빈이 한재준과 대화하는 동안 그는 주예린에게 맛있는 간식과 문구류, 장난감을 두 손 가득 사주었다.

실컷 즐겁게 논 주예린은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뭘 이렇게 많이 사줬어요?”

육민성은 최수빈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애한테 사준 건데 그것도 돈을 주려는 건 아니지? 돈 말고 나중에 열심히 일이나 해.”

최수빈이 웃었다.

“선배는 계획이 다 있었네요.”

육민성이 물었다.

“딸 데리고 호텔에 머물 생각이야?”

“집 찾고 있어요.”

그녀는 어린이집 근처의 집을 찾고 있었다.

“원하는 조건 있으면 나한테 보내. 나도 더 찾아볼게.”

최수빈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선배. 집값은 너무 비싸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직 수입이 없기에 너무 비싼 집에 세 들어 살 수가 없었다.

주예린과 함께 내내 호텔에 머무는 것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

집으로 돌아온 후 최수빈은 컴퓨터를 켜고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

현재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다 그녀는 이미 수년간 이러한 기술을 조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오른쪽 하단에 이메일 알림이 떴다.

클릭해 보니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 참가 초대장이었다.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던 최수빈은 살짝 당황하며 화면 속 초대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에 참가했을 때로 돌아간 듯 기억 속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마도 하늘이 정말로 그녀를 불쌍히 여겨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반드시 기회를 잡을 거다.

그녀는 복귀를 다짐하며 다시 한번 프로젝트 준비에 집중했다.

한편 항공 전시회를 보고 난 주시후는 비록 기쁘긴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걸 보고 마음속에 작은 실망감이 밀려왔다.

저녁에 엄마가 만든 야식을 먹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미 며칠 동안 먹지 못해 익숙한 음식이 그리웠고 장수미가 만들어도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을 내지 못했다.

엄마와 같이 자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고 그녀는 벌써 며칠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기에 정말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빠.”

주시후는 장난감 로봇을 안고 서재 문 앞에 서서 주민혁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는 어디 갔어요? 언제 돌아와? 엄마가 보고 싶어요...”

주민혁은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며 아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주시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1시경, 대회 준비에 집중하고 있던 최수빈은 전화벨 소리에 방해받고 발신자를 확인하지 않은 채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에서 주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언제 돌아와요? 보고 싶어요.”

주시후의 목소리를 들은 최수빈은 잠시 멈칫하며 얼굴을 찌푸린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친아들로 생각하며 5년 넘게 키워온 자식이라 그래도 주시후에겐 감정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친엄마를 선택하니 자연히 그녀도 주시후를 포기했다.

그랬던 아이가 전화를 걸어오니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매번 새엄마를 원한다면서 이제 와서 그녀가 보고 싶단다.

최수빈은 깊게 숨을 쉬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이제 네 엄마가 아니야. 그렇게 부르지 마.”

전화기 너머 주시후가 잠시 멈칫하더니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린 이모를 가깝게 지내니까 질투하는 거죠?”

엄마가 정말 그를 버릴 리가 없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사랑해 주며 심지어 주예린보다 그를 더 아꼈다.

최수빈은 아이를 상대로 논리적으로 따질 수도 없고 지금은 바쁘기도 해서 이렇게 대꾸했다.

“할 말 없으면 끊을...”

뚜뚜뚜...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주시후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

이 정도 작은 해프닝에는 신경 쓰지 않고 최수빈은 계속해서 트랙 테스트에 집중했다.

전화를 끊은 주시후가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

‘허, 엄마가 먼저 잘못해서 집을 나간 건데 내가 왜 먼저 사과해? 절대 안 해!’

아이는 카펫을 밟으며 위층으로 올라가 잠을 자려다가 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주민혁과 마주쳤다.

남자는 아들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주시후가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엄마가 돌아오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망설이는 것 같아요. 내가 돌아오라고 애원하길 바라는 것 같은데 절대 그럴 일은 없어요.”

주민혁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주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이야?”

“그럼요. 엄마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아빠는 엄마가 정말 날 버릴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절대 너를 버릴 리가 없어. 다 홧김에 하는 말이야.”

주시후는 아빠에게서 만족스러운 답을 듣고 엄마가 단순히 화가 났을 뿐이며 아마 며칠 후면 돌아올 거라고 더욱 확신했다.

그때면 엄마가 만든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

다음 날 최수빈은 일찍 일어나 주예린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돌아가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오후에 주예린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 주민혁의 연락을 받았다.

아직 이혼하기 전이라 주민혁이 이혼합의서에 사인한 후 절차를 마치길 기다려야 했기에 그의 번호를 차단하지 않았다. 괜히 그때 가서 연락을 못 받아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에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주머니가 휴가를 냈어. 난 시간이 없으니까 시후 좀 데리러 가.”

상의가 아니라 명령하는 어투였다.

그녀를 대하는 주민혁의 태도는 늘 이런 식이었다. 꼭 하인을 부리는 것처럼.

최수빈은 지난 생의 자신이 참 보살이라고 생각하며 차갑게 웃었다.

“난 시간 없으니까 박하린한테 말해.”

주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시후 보호자니까 알아서 데리러 가.”

말을 마친 그는 최수빈이 뭐라고 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최수빈은 다소 늦게 어린이집에 도착했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주예린이 최수빈을 보자마자 웃으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

“엄마.”

“엄마, 왜 이제야 와요?”

주시후가 싫은 기색을 드러내며 곧장 차량 뒷좌석에 올라탔다.

“아빠가 분명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요? 하린 이모는 매번 내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그리고 왜 이렇게 낡은 차를 끌고 와요? 다른 애들이 보면 비웃을 거예요.”

아이는 투덜거리면서 명령하는 어투로 말했다.

“빨리 날 레이싱 장으로 데려다줘요. 엄마 때문에 하린 이모 경기 놓칠 수 없어요. 응원하러 간다고 했단 말이에요.”

“주시후,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주예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꾸짖었다.

“그건 예의가 없는 행동이야.”

“엄마가 꾸물거리다가 늦은 거잖아!”

아이는 다시 짜증스럽게 재촉했다.

“엄마, 빨리 가요. 늦으면 안 돼요!”

최수빈은 주시후를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시후, 난 널 데리러 온다고 말한 적 없어. 당장 내 차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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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갑작스러운 그의 사과에 최수빈은 잠시 멈칫했다. 목이 무언가에 꽉 막힌 듯 숨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그녀는 주민혁의 눈을 바라봤다. 깊고 짙은 그 눈빛 속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겹겹이 뒤엉켜 요동치고 있었다.우울증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병이 아니고 심지어 강지원 같은 전문의가 봐도 ‘상당히 심각한 상태’라고 말할 정도였다.최수빈은 입술을 살짝 움직이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요. 그때 민혁 씨가 어떤 선택을 했든 출발점은 항상 나랑 예린이를 위한 거였잖아요. 민혁 씨는 민혁 씨가 할 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80화

    이 모든 조치를 마친 뒤에야 최수빈은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그렇게 막 짐을 정리하고 퇴근하려는데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심 대표님’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최수빈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혀졌다.심종연 역시 이번 프로젝트의 협력 담당자 중 한 명이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철저히 업무에 한정돼 있었다.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거의 없었고 더더욱 퇴근 시간에 전화가 올 이유는 없었다.‘이 시간에 왜 전화를 걸어오신 거지?’최수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심 대표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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