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26화 사각지대의 숨결(2)
"이안 작가님, 제발…… 여기서 이러지 마. 나 진짜 죽을지도 몰라. 도진 씨가 알면……."
"통제 아래 제어된 결과물이라며. 당신 남편이 그랬잖아."
이안의 얼굴이 서아의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올림머리로 고스란히 드러난 하얀 목선을 핥듯 스치고 지나갔다."이것도 통제해 보라고 해."
"흐읏…… 안 돼, 진짜 미쳤어…… 놔!"
서아가 주먹을 쥐고 이안의 가슴팍을 필사적으로 밀어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안은 서아의 발버둥을 즐기듯, 그녀의 골반을 잡은 손을 더 깊고 집요하게 문질러댔다.
벽 너머 메인 홀에서는 사람들의 우아한 대화 소리와 클래식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 작가님, 이번 신작은 언
새벽 1시 무렵.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도로는 한산했다.도진은 운전석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은 짙은 네이비색 맞춤 정장, 빳빳하게 다려진 흰 셔츠, 그리고 단정하게 매듭지어진 실크 넥타이.그는 몇 시간 전 아내가 발밑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한 얼굴이었다.그날 밤, 서아는 결국 실신했다.도진은 바닥에 쓰러진 아내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 친절하게도 주치의가 처방해 준 수면제까지 먹여 재웠다. 그녀는 아마 오늘 늦은 오전까지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울지 마, 당신 탓이 아니야. 내가 다 해결할게.』자신이 뱉어놓고도 참으로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대사였다. 그 한마디에 서아는 도진을 구원자처럼 여기며 그의 품에서 안도했다.이제 남은 것은 이 연극의 조연.아니, 자신의 걸작을 위해 기꺼이 미치광이 역할을 수행해 준 불쌍한 사냥개를 치워버릴 차례였다.끼익-.도진의 검은색 세단이 이안의 작업실이 있는 허름한 상가 건물 앞 골목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도진은 시동을 끄고 룸미러로 자신의 얼굴을 한 번 확인했다. 흐트러짐 없는 머리칼과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퀴퀴한 곰팡내와 함께 진득한 린시드유 냄새가 섞여 나고 있었다. 도진의 구두 굽 소리가 좁은 계단을 타고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또각, 또각.마침내 도착한 굳게 닫힌 철문 앞.도진은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쾅쾅쾅.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도진은 다시 한번,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이안아. 형이다. 문 열어."
"당신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굳이 잘못이 있다면, 그 미친놈을 불쌍히 여겨서 호의를 베풀어준 죄밖에 없지.""……어?"서아의 턱이 덜덜 떨렸다. 귀를 의심했다.잘못이 없다고?이안과 붙어먹은 그 추악한 불륜의 증거가 거실 한가운데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데, 내가 잘못이 없다고?"이안이 그 자식. 처음부터 당신한테 병적인 집착을 보였잖아."도진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마치 타인의 불행을 위로해 주는 듯한, 안타까움이 가득 배어있는 목소리."내 눈을 피해서 당신을 스토킹하고, 협박하고. 갤러리 주변을 맴돌면서 당신을 피 말려 죽이려고 했지.""…….""그 미치광이의 덫에 걸려서,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난 다 알아."서아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도진의 입술만 멍하니 바라보았다.머릿속이 하얗게 엉켰다.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진은 그녀의 불륜을 '자신의 소설을 위한 완벽한 영감'이라 부르며 조롱했었다.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하며 희열을 느꼈다고,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렸었다.그런데 지금.이 남자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도, 도진 씨. 그게 무슨… 당신, 아까는 분명….""쉿."도진이 서아의 입술 위에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가볍게 가져다 대며 말을 막았다."다 알아, 서아 씨."도진의 눈빛이 한없이 깊고 그윽해졌다."당신이 나한테 말하지 못한 이유. 이 가정을 지키고 싶어서 그랬다는 거.""……!""이안이가 당신이 아끼던 후배 작가니까. 내가 받을 충격이 걱정돼서, 차마 말도 못 하고 혼자 그 미친놈의 협박을
[ - 본편 끝 - ]모니터 하단에 새겨진 선명한 문구.그 짧은 문구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성취감이 서재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흐아아아악-!!"도진의 발밑에서는 서아가 거품을 물 듯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고 있었다.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긁어대며, 머리를 대리석 타일에 쿵쿵 찧었다. 이마가 찢어져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아아악! 죽여! 차라리 날 죽여!! 으아아악!!"짐승의 단말마 같은 비명.처절하게 찢어지는 서아의 목소리가 서재 벽에 부딪혀 기괴한 메아리로 돌아왔다.하지만 도진은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고요했다.그는 천천히, 아주 경건한 동작으로 키보드에 올려두었던 양손을 거두었다.딸깍.마우스를 움직여 한글 파일의 '저장' 버튼을 눌렀다.행여나 이 본편의 가결말이 날아갈세라, USB에 백업 파일까지 두 번, 세 번 꼼꼼하게 저장했다.그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야, 도진은 모니터의 전원을 껐다.파앗-.서재를 채우고 있던 푸른빛이 꺼지고, 방 안은 다시 깊은 어둠과 거실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역광만이 남았다."하아…."도진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길고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본편은 끝났다."몇 주를 질기게 괴롭히던 본편의 체증이 싹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혈관을 타고 흐르던 광기 어린 창작의 희열이 서서히 가라앉고, 그 자리에 완벽한 통제력과 평온함이 들어차기 시작했다.도진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으흐흐흑… 끅, 흐어엉……."서아는 이제 비명을 지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서아는 네 발로 바닥을 기어 도진의 책상 밑으로 다가왔다."여보… 도진 씨… 제발……."서아가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도진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손이 도진의 깔끔한 면바지를 구겨 쥐었다. 서아는 도진의 무릎에 얼굴을 처박고 꺽꺽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내가 다 버릴게… 갤러리도, 돈도, 내 인생도 다 버릴게…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러니까… 제발 용서해 줘… 한 번만… 나 한 번만 살려줘… 으허어엉…!"도진의 다리에 매달려 오열하는 서아.그녀의 눈물과 콧물이 도진의 바지를 엉망으로 적시고 있었다. 평소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성격의 도진이었지만, 지금은 그 더러운 오물조차도 성스러운 세례 의식처럼 느껴졌다.도진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우는 서아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자신의 발밑에서 짐승처럼 울부짖는 여자.그녀는 지금 자신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거실에 세워진 거대한 누드화 속에서 다리를 벌리고 헐떡이던 그 천박한 모습과, 지금 자신의 발밑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이 비참한 모습이 완벽하게 겹쳐진다는 사실을.도진은 아주 천천히,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도, 도진 씨… 쓰지 마… 제발…!"도진이 다시 타건을 시작하려 하자, 서아가 기겁하며 도진의 무릎을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도진의 바지를 찢어버릴 듯 꽉 움켜쥐고 악을 썼다."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거 쓰면 나보고 죽으라는 거잖아!! 이 개새끼야, 쓰지 마!! 악!!
오직 무자비한 타건음만이 서아의 비웃듯, 점점 더 빠르고 경쾌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타다다다닥-! 타닥!같은 시각. 서재 안.어둡고 서늘한 방 안, 오직 거대한 모니터 두 대만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도진의 창백한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하아……."도진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새어 나왔다.그의 눈동자는 모니터 화면에 고정된 채 미친 듯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채, 오직 창작의 희열에만 취해 있는 광신도의 그것과 같았다.『거실을 짓누르는 침묵을 찢고, 아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앞에 전시된 것은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타락의 증거물이었다. 붉은 물감으로 짓이겨진 화폭 속의 나체. 그것은 그녀가 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우아한 위선의 성벽이,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도진의 길고 흰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췄다.망설임은 1초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문장들을 손가락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쾅! 쾅! 쾅![도진 씨! 문 열어! 제발 문 좀 열어봐!!]문 밖에서 서아의 절규가 들려왔다. 손톱으로 문짝을 박박 긁는 소리, 짐승처럼 헐떡이는 숨소리, 그리고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오열하는 소리까지.그 모든 소리가 도진에게는 완벽한 배경음악(BGM)이었다."그래. 그렇게 울어야지. 그렇게 철저하게 무너져 내려야지."도진의 입가에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결말부를 가로막고 있던 지독한 체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완벽한 파국의 형태를 찾지 못해 헤매던 지난날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백서아.자신의 완벽한 아내이자, 완벽한
쾅-!단호하고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서재 문이 굳게 닫혔다.그 소리는 마치 백서아라는 여자의 남은 인생 전체를 완벽하게 절단 내는 단두대의 칼날 떨어지는 소리와도 같았다.거실은 다시 지독한 적막 속으로 가라앉았다.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의 불빛만이, 이 끔찍한 지옥의 풍경을 환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아… 아아……."바닥에 엎드린 서아의 입에서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신음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대리석의 서늘한 냉기가 뺨에 닿았지만, 온몸을 불태우는 듯한 공포와 수치심을 식혀주기엔 역부족이었다.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시야 끝에 거대한 캔버스가 걸려들었다.가로 1.6미터, 세로 1.3미터. 거실 한가운데에 오만한 자태로 버티고 서 있는 그 그림은, 단순한 유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서아의 가죽을 벗겨내고 남은 가장 추악한 본성의 박제였다.그림 속의 서아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상태로, 새하얀 시트 위에 네 발로 엎드려 있었다. 쾌락에 젖어 풀려버린 눈동자, 짐승처럼 벌어진 입술, 그리고 온몸에 새겨진 시퍼런 멍 자국과 폭력적인 잇자국들.가장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곳에서 붉은 물감이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묘사는, 그녀가 이안의 밑에서 얼마나 천박하게 뒹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었다.우측 하단에 선명하게 새겨진 서명.[ Ian. ]"흐윽… 끅, 으흐흑……!"서아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위장이 뒤틀리고 식도를 타고 쓴 물이 올라왔다.테레빈유 냄새.이안의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비
제1화 완벽한 식탁의 조건(1)오전 6시 50분.정확히 조율된 스위스제 벽시계의 초침이 서늘한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서아는 눈을 떴다.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미세한 아침 햇살이 정돈된 침대 위에 일정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시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도진은 언제나 자신보다 20분 먼저 일어났고, 그가 머물던 자리는 마치 아무도 눕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서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크 가운의 끈을 단정하게 묶고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흐트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오후 2시 30분.서아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곗바늘이 초 단위로 움직이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정각이었다.서아의 사전에서 '지각'이란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와의 미팅을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그런데 이름 없는 무명 작가, 이안이라는 남자는 무려 30분이나 약속 시간을
제4화 마침표가 없는 방(2)그는 연기 속에서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하지만 담배가 타들어갈수록, 그의 불안감은 다시 피어올랐다.담배가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짧아지자, 그는 재떨이에 비벼 껐다.그는 다시 키보드 앞으로 다가갔다.'한 문장이라도 쓰자. 딱 한 문장만.'그는 눈을 질끈 감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타닥, 타닥, 타닥.[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그는 또다시 'Back Space' 키를 눌렀다.투투투툭.햇살? 너무 흔해. 오후? 그래서?그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가
제6화 완벽한 세계에 떨어진 불씨(2)"지루해……."서아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완벽해서 지루했고, 안전해서 숨이 막혔다.그녀는 나른한 손길로 남은 포트폴리오 더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문득, 가장 아래쪽에 깔려 있던 서류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다른 지원자들의 화려한 가죽 바인더나 고급스러운 클리어 파일과는 전혀 다른, 구겨지고 낡은 크라프트지 서류 봉투였다.봉투 겉면에는 발신인의 이름조차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검은색 매직으로 투박하게 갈겨쓴 두 글자만이 전부였다.[ 이 안 ]"이안……? 성도 없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