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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자선 만찬

مؤلف: nomady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6-12 08:01:26

아르덴은 대답 대신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뒷짐을 진 그의 손가락이 초조하게 얽혔다. 뒷모습에서조차 숨 막히는 압박감이 뿜어져 나왔다.

창밖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 겨울을 앞둔 정원이 들어왔다.

화려하던 꽃들은 진즉 시들고, 잎을 거칠게 떨군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하인들이 만찬 준비를 위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완벽한 공작가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르덴은 알고 있었다. 그 평온한 수면 아래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균열이 숨어 있다는 것을.

속에서 뜨거운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지금 당장 응접실로 들이닥쳐 트리샤를 끌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가식적인 웃음, 나긋나긋하지만 뼈가 있는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 라리엘의 순진함을 저울질하는 그 계산된 눈빛을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주먹을 꽉 쥐며 그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 과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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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72화. 진실의 파편

    트리샤는 대답 대신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숲바람이 그녀의 뺨을 거칠게 때리고 지나갔다. 한참 동안의 지독한 정적 끝에, 마침내 그녀의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이 힘겹게 달싹였다.“……바보 같은 노인네.”혼잣말처럼 나직하게 내뱉은 가느다란 목소리에는, 평생 자신을 버려두었다고 믿었던 아버지를 향한 짙은 원망과, 제 존재가 결국 아버지의 목을 죄는 덫이 되었다는 지독한 비참함이 복잡하게 뒤섞여 울컥 흘러나오고 있었다.어느덧 사방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아르덴은 위장 마차에 먼저 오르며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그가 수행한 임무가 무엇인지 모른다면서, 왜 그렇게까지 동요하는 거지? 생각보다 별 것 아닌 임무였을지도 모르지 않나?”트리샤는 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홱 돌려, 아르덴의 얼음 같은 눈동자를 서늘하게 쏘아보았다.이 비극적인 순간조차 결코 놓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진실을 떠보는 그의 지독하리만치 치밀하고 집요함에 완전히 질려버린 표정이었다.“부탁이니까 지금은 그냥 아무말 말고 조용히 가죠?”하늘이 온통 타들어 가는 듯한 짙은 주홍빛과 핏빛 노을로 무겁게 물들 무렵,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숲속의 비밀 별장에 가까스로 다다랐을 때였다.마차가 멈춰 서자, 줄곧 침묵을 지키던 트리샤가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따가…시간 좀 내줘요.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늦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르덴의 임시 집무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트리샤는 낮 동안의 충격과 동요를 어느 정도 가슴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정리한 듯, 얼음처럼 차갑고 건조하게 정돈된 얼굴을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71화. 제이드의 치부

    마침내 약속한 깊은 숲길 속, 버려진 폐허 근처에 마차가 이르렀다.한때는 신성한 예배당이었을지도, 혹은 국경을 감시하던 군사들의 초소였을지도 모를 정체 모를 석조 건물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이제는 지붕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린 채 겨울의 시린 하늘을 흉물스럽게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이끼가 잔뜩 낀 커다란 돌덩이에 등을 기댄 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트리샤는,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랄프의 마차를 발견하자마자 신호를 보내기 위해 건물 안쪽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잠시 후, 붕괴된 건물 잔해 사이로 아르덴이 등장했다.이런 먼지 날리는 폐허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갈하고 단정한 남작가의 예복 차림을 한 고결한 자태였다.랄프는 귀족의 서슬에 기죽지 않으려는 듯, 일부러 짐짓 어깨를 으쓱하며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마차 뒷좌석에 실린 작은 목재 궤짝의 쇠사슬을 풀고 뚜껑을 탁 소리가 나게 열어 보였다.“자, 로드릭 남작님. 약속했던 약속의 물건입니다. 우리 녹스가 자랑하는 최상급 물건들이니 눈이 번쩍 뜨이실 겁니다.”대기하고 있던 트리샤가 아르덴의 눈짓을 받고 궤짝 앞으로 다가갔다.독특한 향을 은은하게 내뿜는 환각제의 고운 가루를 손끝으로 살짝 묻혀 문질러 보았다. 품질을 확인하는 완벽한 연기를 펼친 그녀는 아르덴을 향해 고개를 아주 천천히 한 번 끄덕였다.물건에 장난질은 없다는 뜻이었다. 아르덴은 랄프의 신경을 긁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음, 가져온 물건의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은 모양이군……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아쉽기는 하군. 비록 어제 탈레스 씨에게 직접 제이드 크로이츠가 현재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설명은 들었지만, 내심 그가 이번 거래의 전담자로 오길 바랐거든.”&lsqu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70화. 말단의 야심

    자신의 말에 그 어떤 일말의 의심이나 경계의 기색도 전혀 담기지 않은 맑은 반응을 보이자, 클로디아는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을 풀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생긋 웃어 보였다.“어머나,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요! 부인의 귀한 휴식 시간에 제가 너무 눈치 없이 오래 머물러 폐를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그렇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해가 완전히 기울 무렵, 라리엘의 배웅을 받으며 클로디아를 태운 백작가의 고급 마차가 미끄러지듯 공작저 저택의 정문을 나섰다.마차는 수도의 화려하고 번화한 중심가를 빠르게 지나, 이내 인적이 뜸하고 사방이 컴컴한 한적하고 어두운 변두리 골목 어귀에 다다랐다.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외진 곳에 잠시 멈춰 서자,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 숨어있던 사내 하나가 소리도 없이 문을 열고 민첩하게 마차 안으로 휙 올라탔다.마차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아까 전까지 공작저 응접실에서 해맑게 웃던 클로디아의 앳된 얼굴에서 무해한 온기가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사라졌다.그녀는 혐오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으로 제 맞은편에 주저앉은 험악한 사내를 향해 딱딱하게 굳은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지시하신 대로 접근했지만, 그 여자에게선 별다른 의심스러운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던데요. 공작과의 정략결혼 생활은 본인 입으로도 별로 행복하지 않고 기대 이하라고 털어놓았고, 그저 틈만 나면 징징거리며 고향 플로렌스의 따뜻한 남부 땅을 많이 그리워하는 유약한 여자 같았어요.”어둠 속에 동공을 빛내던 사내가 낮고 거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단순한 감상 따위를 들으려고 널 그 철옹성 같은 곳에 밀어 넣은 줄 아나? 또 무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69화. 덫

    클로디아는 방금 전의 진지함은 어디로 갔냐는 듯, 이내 소녀다운 조금 들뜬 활기찬 목소리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오늘 이렇게 저를 귀한 저택에 초대해 주시고 환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가 알브릭 저택의 정원을 구경하고, 공작 부인과 차까지 마시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라리엘은 조잘거리는 클로디아의 모습이 귀여워,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가볍게 팔짱을 끼며 친근하고 다정하게 속삭였다.“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말아요, 클로디아 양. 앞으로도 마음이 답답하거나 혼자 나누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이 저택의 문을 두드려도 된답니다.”그 다정한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클로디아의 아래로 내리깐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빛났다.무언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한 찰나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들며 다시 반달처럼 휘어진 눈웃음으로 라리엘을 살갑게 바라보았다.“정말…… 너무나도 과분하고 감사한 말씀이에요, 부인.”두 사람은 이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응접실의 커다란 벽난로 앞에 폭신한 소파에 마주 보고 자리 잡았다.붉게 달아오른 참나무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며 내는 낮고 안정적인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기분 좋게 채웠다.고급스러운 대리석 테이블 위로, 시녀들이 정성스레 우려내어 향긋하고 붉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최고급 홍차와 오늘 아침 갓 구워낸 달콤한 냄새의 구움과자들이 정갈하게 차려졌다.클로디아는 따뜻한 온기가 절실했던 모양인지 찻잔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쥐고 한 모금 축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그러나 호기심 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공작님은 어떠신가요? 부인께서 결혼하신지 아직 일 년도 안되었다고 들었어요. 신혼이라니…!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68화. 쓸데없는 걱정

    론체스터 영지 외곽,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별장은 불과 이틀 만에 완벽한 '로드릭 남작의 저택'으로 감쪽같이 탈바꿈해 있었다.웅장한 철제 대문에는 오랜 세월의 풍파를 맞은 것처럼 정교하게 급히 새겨 넣은 남작가의 문장이 걸렸고, 별장 내부는 방금 마친 공사 흔적 대신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적당히 손질된 때와 아늑한 온기가 감돌았다.알브릭 가문의 가신들이 그림자처럼 움직여 만들어낸 완벽한 위장이었다.트리샤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기가 찬 얼굴로 혀를 내두르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대대로 가문을 이어온 귀족의 취향이 묻어나는 고풍스러운 거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공작저에서 비밀리에 내려온 하인과 하녀 몇 명이 숨소리조차 죽인 채 분주하게 오가며 별장의 단장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공작님의 수하들은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네요.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대대로 이 땅을 지켜온 남작의 집이라고 믿겠어요.”트리샤는 말을 멈추고 창밖을 응시하는 아르덴의 뒷모습을 보았다.여관에서의 대담한 도발부터 이 치밀한 별장 준비까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제이드를 찾는 걸까.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제이드와 엮일 만한 고리는 그가 플로렌스 가문의 집사였다는 사실뿐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트리샤가 입을 떼려는 찰나, 아르덴이 고개를 돌렸다.“계획에도 없던 환각제 밀수를 하게 생겼군. 지불할 금화 8만 개야 가문의 자금으로 채우면 그만이다만, 거래가 성사된 후 손에 들어올 그 엄청난 양의 환각제는 도대체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중요한 질문의 타이밍을 놓친 트리샤는 아쉽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이내 본업으로 돌아와 자신만만한 태도로 손가락을 들어“수도에 가져가서 다른 귀족들에게 웃돈을 얹고 홀랑 팔아버리면 되죠.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67화. 탐욕의 움직임

    아주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아르덴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옆에 있는 트리샤를 힐끗 보며 무심하게 물었다.“글쎄, 그 이름이 뭐였지? 취기가 오른 채로 건네받은 이름이라 가물가물하군.”트리샤는 뻔뻔함에 기가 찬다는 듯, 오직 아르덴만 볼 수 있는 각도로 입술을 깨물며 살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이내 탈레스를 향해 고개를 돌릴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매끄럽게 대답을 지어냈다.“마르세즈라는 이름의 사내였어요. 성까지는 모르겠네요.”탈레스는 그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마르세즈라, 알겠소.”아르덴과 탈레스는 형식적인 악수를 나누었고, 협상은 그렇게 끝났다. 여관방을 나서는 아르덴의 등 뒤로 트리샤의 따가운 시선이 박혔다.인적이 완전히 끊긴 한적하고 어두운 산길 초입 길목에 접어들었을 때였다.앞서 걷던 트리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홱 돌아서며 아르덴을 쏘아보았다.“미쳤어요? 거기서 아버지 이름을 그렇게 대놓고 꺼내면 어쩌자는 거예요!”트리샤는 목소리를 낮추려 애쓰면서도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자칫 교묘한 말장난 하나에 놈들이 의심을 품었다면 자신들의 정체뿐만 아니라, 녹스 내부 어딘가에 유폐되어 있을 제이드의 목숨줄까지 단번에 위험해질 수 있는 그야말로 대범한 도발이었다.그러나 아르덴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탈레스의 대답을 들었잖아. 그는 제이드가 ‘죽었다’거나 ‘도망쳤다’고 하지 않았어. 조직의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했지.”아르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론체스터 시내 쪽의 불빛들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4화. 플로렌스의 장미

    “저기 연못에 무지개가 떴어!” 아르덴은 숨을 고르며 달리다가도 그 말을 듣자 속도를 조금 더 냈다. “천천히 가, 라리엘.” 그는 애써 침착한 척 말했지만, 심장은 그녀보다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무지개는 도망가지 않아.” “도망가면 어떡해! 비가 그친 지 얼마 안 됐단 말이야!” 라리엘은 결국 연못가에 먼저 도착해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연못 위에는 햇빛이 굴절되어 일곱 빛깔의 띠가 흔들리고 있었다. 물결이 살짝 일 때마다 색은 부서지듯 흩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라리엘은 숨을 죽인 채 그것을 바라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3화. 그림자

    라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 역시 그가 설계한 잔인한 연극의 일부일지도 몰랐다. 경계를 늦추게 만든 뒤, 가장 아픈 곳을 찌르기 위한 전조. 그녀는 가운을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몸을 잠식한 한기가 너무도 지독해 결국 그 온기에 기댄 채 몸을 웅크렸다. 잠시 후, 욕실 문이 열리고 아르덴이 나왔다. 그는 상체를 드러낸 채 머리칼을 거칠게 털어내며 방을 가로질렀다. 거울을 통해 그의 모습이 라리엘의 시야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이 탄탄한 근육으로 다져진 상체,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선 위로 맺힌 물방울이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2화. 검은 결혼식(2)

    결혼식은 기괴할 만큼 조용하게 끝났다. 사람들의 박수는 의무적이었고, 던져진 꽃가루는 장례식의 헌화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연회장으로 옮겨온 뒤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화려한 음악과 산해진미가 차려졌지만, 공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아르덴은 라리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연회장의 귀족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훑었다. 그러다 돌연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표정 관리 좀 하지.”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긁었다. 그의 숨결이 닿는 곳마다 소름이 돋았다. “누가 보면 장례식인 줄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1화. 검은 결혼식(1)

    성당의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샹들리에는 단순한 조명 기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의 폭포였고, 그 아래 서 있는 라리엘에게는 날카로운 바늘의 군집이었다. 화려하게 세공된 수백 개의 수정 조각들이 빛을 굴절시킬 때마다 성당 내부의 공기는 비현실적으로 일렁였다. 거울처럼 매끄럽게 닦인 대리석 바닥 위로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는 빛줄기들은 라리엘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제단으로 향하는 길은 핏빛 이었다. 수천 송이의 장미 꽃잎들이 양탄자처럼 두껍게 깔려 막 꺾어낸 꽃 특유의 짙고 달큰한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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