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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엇갈린 다짐

Auteur: nomady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5-18 14:31:56

“하아…… 하…….”

거칠게 몰아쉬는 숨이 방금 전 아르덴이 서 있던 공간의 잔열을 집어삼켰다. 심장이 늑골을 부수고 나올 것처럼 뛰었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뺨을 타고 흐르던 그의 서늘한 숨결, 얇은 잠옷 너머로 전해졌던 손바닥의 지독한 열기, 그리고 찰나의 순간 자신을 꿰뚫었던 눈빛.

그 모든 감각이 사슬처럼 그녀의 전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라리엘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그의 숨결이 닿았던 자리가 여전히 화끈거렸다. 마치 낙인이 찍힌 것 같았다.

‘자극하지 말라고?’

그녀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조롱이었다.

가문의 원수이자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용의자, 그 괴물 같은 남자에게 본능적인 전율을 느꼈다는 사실이 그녀를 구역질 나게 했다.

증오해야 마당한 남자에게서 느낀 그 짧은 긴장감은, 라리엘에게 있어 그 어떤 모욕보다도 치욕스러웠다.

그의 품 안에서 잠시나마 숨이 멎었던 것은 분명 생존 본능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머릿속은 배신감 섞인 의문들로 어지러웠다.

‘너는 내게 관심조차 없다더니…….’

아르덴이 보인 그 찰나의 갈증. 그것은 사랑도, 애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소유물을 향한 지독한 갈구이자,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다는 오만한 포식자의 경고였다.

라리엘은 그가 남긴 ‘인내심’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는 자신을 안는 것이 아니라, 짓밟는 것을 참아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만약 방금 그가 멈추지 않았다면?

그 질문은 독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굴복시키려 들었다면, 나는 그를 밀어낼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숨이 막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닥에 짓이겨졌을까.

라리엘의 호흡이 가빠졌다. 이미 끝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몸은 뒤늦게 그 가능성에 반응하고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제멋대로 뛰었고,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비참함은 기어이 그녀를 삼켰다. 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피부를 찢을 듯한 통증이 퍼지자, 그제야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상상들이 잠시 멈췄다.

‘정신 차려, 라리엘 플로렌스.’

그녀는 속으로, 아니 거의 소리 내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플로렌스. 그 이름에는 아직 무게가 있었다. 한때는 존경과 신뢰를 의미했고, 지금은 복수와 생존을 동시에 짊어진 이름.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무너질 수 없다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라리엘은 잠시 숨을 멈췄다. 거울 속에 비친 여자는 낯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핏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 정돈할 힘조차 잃은 머리칼, 그리고 무엇보다도—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눈동자. 그 눈동자 속에는 분노, 두려움,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이런 꼴로는…”

그녀는 중얼거리다 말았다.

찬물을 받아 얼굴을 적셨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때리자 숨이 턱 막혔지만, 동시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물방울이 턱을 타고 떨어지며 세면대에 부딪혔다. 하나, 둘. 마치 시간을 다시 세는 것처럼.

라리엘은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텅 빈 침대 위로 몸을 뉘였다. 아르덴이 누웠을 자리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존재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듯했다.

눌렸던 매트리스의 감촉, 공기 중에 희미하게 남은 그의 향. 그것들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창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치 누군가 억눌러왔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것처럼 점점 거칠어졌다.

라리엘은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뜬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그가 다시 다가온다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는 떨림이 아니라, 서슬 퍼런 칼날을 준비하겠노라고. 그가 어떤 표정을 짓든, 어떤 말을 던지든 흔들리지 않겠다고. 두려움 위에 결의를 덧씌우며, 그녀는 스스로와 계약을 맺었다.

*

한편, 침실 문을 닫고 나온 아르덴의 발걸음은 평소의 우아하고 절제된 리듬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복도의 어둠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잡아 늘렸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 옆에 붙은 침실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갔다. 그리고 마치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듯, 벽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낮게 읊조린 욕설은 방 안에서 메아리도 없이 흩어졌다. 라리엘 앞에서 그토록 서늘하고 여유롭게 굴던 공작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벽을 짚은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자신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르덴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아직도 손끝에는 라리엘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의 곡선, 얇은 잠옷 너머로 전해지던 체온.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마치 피부에 새겨진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턱을 치켜들고 독기를 내뿜던 그녀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쁘게 오르내리던 쇄골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그를 무너뜨릴 뻔했다.

그 찰나, 그는 정말로 자제력을 잃을 뻔했다.

그녀를 끌어안고, 자신을 향해 쏟아내던 그 아픈 말들을 입맞춤으로 막아버리고 싶다는 충동.

그것은 단순한 욕망이라기보다, 홀로 긴 겨울을 버텨온 이가 마침내 마주한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는 절박한 갈증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멈춰야만 했다.

그녀를 안는 순간, 그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계획이 무너질 것을 알았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 성벽이 산산조각 나고, 그 파편이 가장 먼저 그녀를 해칠 것임을—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르덴은 비틀거리듯 탁자로 다가가 독주를 잔에 따랐다. 얼음도 넣지 않은 투명한 액체가 잔을 채웠다.

그는 한 번에 들이켰다. 독한 술이 목구멍을 태우며 내려갔다. 고통스러운 열기가 몸 안에 퍼지자, 미친 듯 날뛰던 심장박동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빗줄기가 쏟아지는 어두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원치 않던 기억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6개월 전. 그 참혹했던 밤.

피비린내와 섞인 흙냄새. 뒤집힌 마차. 그리고 차갑게 식어가면서도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마지막 힘을 짜내 유언을 남기던 플로렌스 백작의 얼굴.

‘아르덴…… 내 딸을…… 라리엘만은 제발…….’

백작의 죽음은 사고도, 그에 의한 살인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제국의 어딘가에서 꿈틀대며 지금도 그녀를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정체 모를 악의 일부였다.

아르덴은 백작의 시신 손에서 발견된 은색 단추를 떠올렸다.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진실을 밝히고 라리엘을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던질 것인가, 아니면 모든 죄를 뒤집어쓴 악마가 되어 그녀를 이 성 안에 가둘 것인가.

“너는 평생 나를 증오하며 살겠지.”

그는 창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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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13화. 기사와 공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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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12화. 어머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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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스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11화. 얼음 가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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