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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축척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3 19:40:00

『황궁 공보: 겨울 첫째 달 18일, 전시 지도의 검토를 청한다.』

군무청에서 온 청원서에는 보급 계획서의 사본 목록이 붙어 있었다. 엘리네는 아침 식사를 물리고 봉투를 열었다.

『황궁 지도 전시회의 오류에 관한 감정을 청합니다. 북부군 사령관 칼릭스 아르벤.』

지도 기사가 옮겨 그린 선과 군무청이 보관한 원본을 대조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엘리네가 전시장에서 지적한 부분도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방문 허가를 기다린다는 문장이 붙었다.

마리엔이 빈 찻잔을 거두다 물었다.

“위층으로 모실까요?”

“아니. 응접실에 탁자를 비워 줘.”

엘리네는 첨부 목록을 다시 읽었다. 군사 지도 사본, 전시 지도 가장자리의 본, 길 이름 대조표. 물건마다 군무청의 반출 인장이 찍혀 있었다.

지도 감정을 청하는 서류였다. 황후궁에 칼릭스가 드나들 이유도 거기에 적혀 있었다.

“문은 닫지 말고, 너와 시녀 한 명이 함께 있어 줘.”

마리엔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누가 뭐라고 할까 봐요?”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려는 거야.”

엘리네는 허가란에 서명했다. 펜촉을 닦은 뒤에는 서랍에서 접는 자와 은 컴퍼스를 꺼냈다. 남은 산길 지도는 가져가지 않았다.

빠진 장이 있던 자리는 빈 종이로 구분해 두었다. 엘리네는 그 종이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서랍을 잠갔다.

◊

응접실 문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났다.

“칼릭스 대공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엘리네는 창가에서 돌아섰다. 칼릭스는 문턱 앞에서 멈춰 허리를 숙였다. 외투는 벗어 맡겼고, 손에는 가죽 지도통과 서류 묶음이 들려 있었다.

“황후 폐하. 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시장에서 말씀드린 일이니 확인해야지요. 앉으세요.”

마리엔은 벽 쪽에 섰다. 다른 시녀는 찻주전자 옆에서 잔을 데웠다. 문은 복도에 선 문지기가 보일 만큼 열려 있었다.

칼릭스는 맞은편 의자에 지도통을 세웠다. 탁자 위에 서류부터 놓고 반출 목록을 펼쳤다.

“이 자리에 가져온 것들입니다. 황후궁에서도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엘리네는 목록과 종이의 장수를 맞췄다. 마리엔이 옆에서 반입 장부에 적었다.

“원본은 없군요.”

“군무청 밖으로 가져오지 못합니다. 보관 담당자 앞에서 뜬 사본입니다.”

“사본을 만든 뒤 크기를 바꾸지는 않았나요?”

“그 작업 기록은 없습니다. 직접 확인한 범위는 여기까지입니다.”

칼릭스가 목록의 끝을 짚었다. 담당자의 확인란에는 사본을 뜬 날짜와 종이 규격이 적혀 있었다.

엘리네는 그 서류를 따로 놓았다.

“그럼 종이부터 보겠습니다.”

군사 지도는 탁자 가운데를 덮었다. 접힌 자국이 회색 고개 아래를 지나갔다. 엘리네는 그 자리를 손등으로 눌러 폈다.

“눌러 둘 것이 필요하십니까?”

칼릭스가 물었다.

“모서리만 고정하면 돼요. 잉크병은 말고요.”

마리엔이 작은 문진을 가져왔다. 다른 시녀도 받침을 내려놓고 종이 끝을 잡았다. 소매의 단추가 접힌 부분에 걸리자 시녀가 급히 손을 뺐다.

“죄송합니다.”

“그대로 있어요. 당기면 찢어져요.”

엘리네가 종이를 조금 들어 단추를 빼냈다. 시녀는 소매를 접어 올리고 다시 모서리를 눌렀다.

“이쪽 빈 곳을 잡아 주세요. 선 위에는 손을 놓지 않아도 돼요.”

시녀가 자리를 옮겼다. 지도는 찢어지지 않았다.

칼릭스는 문진을 하나 더 가져다 가까운 모서리에 놓았다. 엘리네가 종이를 다 펼칠 때까지 서류를 옮기지 않고 기다렸다.

지도 아래쪽에 축척이 적혀 있었다.

『축척 1:100,000』

엘리네는 접는 자의 마디를 폈다.

“전시 지도에서 틀렸던 등고선과 같은 부분인가요?”

“예. 다만 이 사본에는 전시 지도에 없던 숙영지와 길 표시가 있습니다.”

“같은 원본에서 옮긴 건지부터 봐야겠네요.”

엘리네는 전시 지도의 본을 옆에 댔다. 강이 꺾이는 곳과 능선이 갈라지는 곳을 차례로 맞췄다. 등고선이 잘못 이어진 자리도 겹쳤다.

칼릭스가 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엘리네는 팔꿈치를 거두고 자를 세로로 돌렸다.

탁자는 넓었지만 지도 한 장을 함께 보려면 같은 쪽을 짚어야 했다. 칼릭스는 일어서지 않았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은 펜대를 들어 가리켰다.

“여기부터 길이 다릅니다.”

“길이 아니라 옮겨 그린 위치가 달라요.”

엘리네의 대답이 빨라졌다.

“이 능선 아래에는 길을 낼 수 없어요. 바닥에 돌이 많고, 비가 오면 그 아래로 물이 흘러요. 길은 오른쪽 골짜기에 있어야 합니다.”

칼릭스가 펜대를 내렸다.

“표시를 해도 되겠습니까?”

“사본 위에 덧그리지 마세요. 얇은 종이를 주세요.”

마리엔이 종이를 찾으러 갔다. 엘리네는 그동안 접는 자를 지도 테두리에 댔다.

바깥 눈금은 고르게 나뉘어 있었다. 종이가 접힌 곳도 벌어지지 않았다. 엘리네는 긴 변과 짧은 변을 잰 뒤 확인서에 적힌 규격을 보았다.

“종이가 줄거나 늘어난 흔적은 없네요.”

“그러면 길을 잘못 옮긴 겁니까?”

“아직은 몰라요. 다른 곳도 봐야 해요.”

마리엔이 얇은 종이를 가져왔다. 엘리네는 그 위에 강이 꺾인 지점과 봉우리 표시를 옮겼다. 자를 접었다 펴며 다음 지점으로 옮기는 손이 빨랐다.

접는 마디가 탁자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칼릭스의 시선이 자를 따라왔다. 엘리네가 종이를 돌리자 그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가 오른손에서 멎었다.

엘리네는 자를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잉크가 묻었나요?”

“아닙니다.”

칼릭스가 곧 지도 쪽으로 눈을 내렸다.

“필요한 자리를 바로 찾으시는군요.”

“외워서 그래요.”

엘리네는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자 아래로 밀었다. 펜을 오래 쥐어 굳은 곳이 종이에 스쳤다.

“어릴 때는 이 길이 왜 굽는지 몰랐어요. 지도에는 곧게 그리면 편하니까요. 걸어 보고 나서 고쳤어요.”

“얼마나 걸으셨습니까?”

“같은 길을 여러 번요. 날이 맑을 때와 눈이 녹을 때가 달라서요.”

마리엔이 찻잔을 옮기다가 웃음을 참았다.

“돌아오시면 신발부터 숨기셨어요. 흙 묻었다고 혼나실까 봐요.”

“마리엔.”

“지도 말리는 곳에 두셔서 늘 들키셨지만요.”

엘리네는 자를 내려놓고 마리엔을 보았다. 마리엔이 입을 다물며 찻주전자를 들었다. 맞은편에서는 칼릭스가 손등으로 입가를 잠깐 눌렀다.

“차 드세요. 식겠어요.”

엘리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칼릭스는 잔을 들어 지도에서 먼 곳으로 옮겼다. 엘리네도 자신의 잔을 물리고 종이를 당겼다.

회색 고개에 가까운 곳은 지형의 굴곡이 많았다. 길이 얼마나 굽었는지에 따라 잰 거리가 달라질 수 있었다. 엘리네는 거기서 자를 뗐다.

대신 봉우리와 강의 합류점 사이를 짚었다.

“걸어가는 길 말고, 두 지점 사이를 곧게 재 보겠어요.”

“어느 구간입니까?”

엘리네가 이름을 읽어 주자 칼릭스는 길 이름 대조표를 넘겼다. 엘리네는 얇은 종이에 점을 찍고 그 사이를 쟀다.

“여기는 5센티미터예요.”

칼릭스가 축척란을 보았다.

“적힌 대로면 5킬로미터군요.”

“실제 거리는 6킬로미터예요.”

칼릭스는 답하지 않고 두 지점을 다시 보았다. 엘리네는 대조표를 받지 않은 채 다음 구간을 쟀다.

“이쪽은 10센티미터. 적힌 대로라면 10킬로미터여야 해요. 실제로는 12킬로미터고요.”

“산길을 따라 잰 거리와 섞인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길을 재지 않았어요. 봉우리와 합류점은 위치가 바뀌지 않으니까요.”

엘리네는 두 점을 잇는 선을 얇은 종이에 그었다. 군사 지도에 그려진 길은 그 선에서 아래로 굽어 있었다.

“길을 따라가면 여기서 더 길어져요. 지금 보는 건 지도 위의 간격이에요.”

칼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기록과 맞춰 볼 수 있습니까?”

“제 지도와 대조할 수 있어요. 지금 가져오지는 않았지만요.”

엘리네는 대답한 뒤 자를 내려놓았다. 칼릭스도 지도통에서 손을 뗐다.

열린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문지기가 누구에게 방문 목적을 묻고 있었다. 마리엔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탁자 옆에 섰다.

칼릭스가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

“가져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사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부탁드립니다.”

엘리네는 칼릭스를 잠깐 보았다. 남은 지도를 펼치라는 말도, 기억하는 길을 더 설명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군무청에서 보관한 거리 기록을 붙여 주세요. 지도에서 베낀 숫자 말고, 현장에서 잰 기록으로요.”

“알겠습니다.”

칼릭스는 요청 사항을 따로 적었다. 엘리네가 확인할 수 있도록 종이 방향을 돌려 놓았다.

기록의 출처, 측정 방법, 두 지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엘리네는 그 아래에 짧게 덧붙였다.

『사본을 뜨기 전 원본의 축척 확인.』

펜을 돌려주려다 탁자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칼릭스는 엘리네가 손을 거둔 뒤에 펜을 집었다.

시녀가 잔에 차를 채웠다. 그동안 엘리네는 지도 가장자리의 눈금을 다시 살폈다.

“전체를 작게 베꼈다면 이것도 함께 줄었어야 해요.”

엘리네가 눈금과 확인서를 번갈아 짚었다.

“종이 규격도 맞고, 테두리도 맞아요. 지도 안쪽에 들어간 지점 사이만 좁아요.”

“그리는 사람이 부분마다 다르게 옮겼을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 있어요. 원본을 여러 장 이어 붙일 때도 잘못 맞추고요.”

엘리네는 전시 지도의 본을 들어 군사 지도 위에 겹쳤다. 틀린 등고선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테두리를 맞추자 강과 봉우리의 위치가 조금씩 어긋났다.

이번에는 강의 합류점을 맞췄다. 멀리 있는 봉우리일수록 차이가 커졌다.

칼릭스가 빈 종이 한 장을 가까이 밀었다. 엘리네는 그 위에 겹친 지도를 옮겨 놓았다.

“보이세요?”

“같은 지점을 맞추면 다른 끝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벌어지는 정도가 일정해요.”

엘리네는 전시 지도의 본을 거두고 군사 지도만 남겼다. 접는 자를 다시 폈다. 처음 잰 곳에서 떨어진 구간을 골라 길이를 확인했다.

마리엔이 받아 적으려 하자 엘리네가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한 곳 더 볼게.”

마지막 구간은 노르덴 안쪽이 아니었다. 회색 고개에서 북부 요새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엘리네는 길 위에 적힌 지명을 읽었다.

“이 두 지점 사이의 실측 기록도 있나요?”

칼릭스가 행군 수첩을 꺼냈다. 펼친 장에서 길 상태를 적은 줄 아래를 가리켰다.

“있습니다. 도로를 보수할 때 잰 거리입니다.”

엘리네는 수첩을 받아 숫자 옆의 설명부터 읽었다. 길을 따라 잰 거리와 두 지점 사이의 직선거리가 따로 적혀 있었다.

자를 댄 손이 멈췄다.

여기도 같았다. 축척에 적힌 거리보다 실제 거리가 더 길었다.

“고개 양쪽이 모두 이렇군요.”

엘리네는 수첩을 돌려주고 자신이 잰 값을 종이에 적었다. 칼릭스는 숫자를 따라 읽었다.

“적힌 축척을 그대로 쓰면 안 되겠습니다.”

“1:100,000이 아니에요. 이 안의 지점 간격은 1:120,000이에요.”

칼릭스가 지도 아래쪽의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엘리네는 그 옆에 얇은 종이를 대고 두 축척을 나란히 적었다.

“다르게 적을 수도 있잖습니까. 아래 숫자만 고치면 되는 일인데요.”

엘리네는 곧 답하지 않았다. 접는 자를 접지 않고 테두리 쪽으로 밀었다.

등고선을 잇다 실수한 기사라면 원본과 대조해 고칠 수 있었다. 다른 지도를 이어 붙이다 생긴 차이라면 어느 곳에서 어긋났는지 찾아야 했다.

하지만 서로 떨어진 구간들이 같은 비율로 좁아져 있었다. 지도 바깥의 눈금은 정확했다.

엘리네는 얇은 종이에 표시한 점들을 손끝으로 짚었다. 가까운 곳, 먼 곳, 고개 건너편까지 차례로 확인한 뒤 칼릭스를 보았다.

“누가 일부러 틀리게 그렸어요. 거리가 짧아 보이게.”

(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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