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Chapter 501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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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1화

기나긴 밤이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은 남백훈은, 결국 이경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 와중에, 이경은 남진의 황궁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으면서도, 쓸데없는 규율도 없었다. 황자와 외국 공주가 궁을 나서려 하자, 문을 지키고 있던 시위도 바로 통과시켜 주었고 그 어떤 통행증 같은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곳은 정말로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아니, 얼마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나라였다. 다른 어느 나라도 아마 남진의 이 자유로움에 만 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내 두 사람은 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산기슭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그런데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경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엽총… 이거 엽총이잖아! 어디서 난 거야?" 설마 이 시대에는 사냥을 활이 아닌 총으로 하는 건가? 게다가 엽총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순간 자신이 어느 시대에 떨어지게 된 건지 판단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걸 알아?" 남백훈은 다소 놀랐다. 이경이 벽에서 들어 올린 물건은, 분명 엽총이라는 물건이었다. 다만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지난 십여 년간 아무도 손대지 않았기에, 사용법에 대해서 몰랐다. "여긴 예전에 누가 지내던 곳인 거지?" 이경은 순간 가슴이 조여들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남백훈은 역시나 그녀가 예상한 답을 주었다. "남성 전하가 있었던 곳이야." 남성! 정말 남성이었다! 이경은 자신이 시공간도 구분되지 않는 이상한 시대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곳에는 그녀처럼 21세기에서 시간을 회귀해 온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 "네가 남성 전하를 흠모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남백훈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손에 든 엽총을 도로 벽에 걸었다. "사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전하를 흠모해 왔어." "그분은…" "이미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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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방금까지의 차분함은 온데간데없는 채, 이경은 자신의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남백훈은 오히려 얕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때 스승님께서는 열다섯 살이었고, 나는 겨우 다섯 살짜리 어린애였지. 스승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따르는 걸 좋아하지는 않으셨지만, 내가 곁에 있는 것만큼은 허락해 주셨어." "열다섯 살…" 이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열다섯 살 때의 어머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나 전에 공관 넷째 아가씨 방에서 보게 된 그림 속의 남성의 모습은 확실히 아주 젊어 보였다. 많아야 열여섯, 열일곱 살쯤 되어 보였다. 봉구경의 밀실에 있던 그림 속 얼굴도 열다섯이나 열일곱 살 되어 보였지만, 그 이목구비는, 그야말로 자신의 어머니와 다른 점이 없었다. 이경의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해, 이경은 고작 다섯 살이었고 어머니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어느덧 이경은 올해 스물세 살이 되었고, 그녀의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지도 이젠 18 년이 되었다. 18년이란 시간 사이에… 만약 열다섯 살의 누군가로 환생하여 한 남자와 결혼했다면… 그러나 이경은 그 남자가 이언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매우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에 한 남자와 함께 딸을 낳았다면, 지금 그 딸의 나이는 대략 열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시간과도 기본적으로 완전히 일치하게 된다. 이경은 주먹을 불끈 쥐고 남백훈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그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 좀 더 해주지 않을래?" "낚시하지 않을래?" 남백훈은 낚싯대를 들고는 그녀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였다. "낚시하면서 얘기할까?" 밤 낚시는, 예전에 이경의 어머니가 특히나 좋아했던 활동이기도 했다. 사실 이경의 기억 속에서 아빠라는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줄곧 엄마와 함께 살아오기도 했고, 그 누구에게서도 자신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게다가 어머니는 전장에서 넘버 투로서 지위가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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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남백훈이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수면 위에 비친 그 얼굴은 마침내 사라지게 됐다. “왜 그래?” 이경은 갑작스레 차가워진 그의 기색에 의아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기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의 기색을 살폈다. “뭔가 생각난 거야? 혹시 남성에 관한 일?” “왜 그렇게 남성한테 신경을 쓰는 거야?” 남백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달빛 아래서나 수면 위에서나, 한결같이 맑고 투명한 그녀의 얼굴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 이경의 눈빛에 무언가 스쳤고, 남백훈은 그녀가 분명히 숨기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떻게든 남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내야만 해.” 그렇게까지 궁금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할 생각이 없는 것인가 싶었지만, 남백훈의 마음은 내심 한결 가벼워졌다. 적어도 이경이 자신을 속이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경이 도리여 해명하려 했다면, 분명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남백훈은 조용히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때, 낚시대가 움직였다. 남백훈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기다리다가, 재빨리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이내 붕어 한 마리가 걸려 올라왔다. 곧이어 남백훈은 이경을 도와 새 미끼를 꿰어주고, 잡아 올린 물고기를 손질하고 씻으면서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열다섯 살에 깨어나신 후, 곧바로 직접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셨지.” “사부님께서는 정예 병사 단 삼천 명 만을 이끌고는, 단 사흘 만에 수만 정예 대군을 보유한 진안 소국을 격파하고 그 단 한 번의 전투로 이름을 떨치시게 된 거야!” “그리고 같은 해, 사부님께서는 전부를 창설하셨지…” “전부?” 이경은 순간 큰 충격에 빠지게 됐다. 전부! 정말로 전부였어! “혹시 전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당시 아주 휘황찬란했던 시대가 잠시 있긴 했지만, 그때 이경은 태어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 들어본 적은 없어. 단지… 단지 너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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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뜻밖에도 봉구경이 전부의 선봉 대장군이었다니! 이경이 아는 자신의 어머니라면, 본인이 신임하지 않는 사람을 절대 중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구경이 선봉 대장군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어머니께서 봉구경을 누구보다도 신임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경은 전에 흠안전에서 엿들은 남양의 얘기가 다시 맴돌았다: 봉구경이 대체 남성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설마 봉구경도 마치 날 배신했듯이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던 건가?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봉구경은 줄곧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심지어 그의 밀실에는 초상화가 가득 걸려 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어머니를 해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또 사람의 마음이란 가장 헤아리기 어려운 법, 어쩌면 거짓된 거일 수도 있었다. 그럼 봉구경은 대체 어떤 사람인 거지? 이경의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남백훈이 그녀의 손에 든 낚싯대를 받아 들면서, 비릿한 생선구이 냄새가 물씬 풍겨오고 나서야,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됐다. "남백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난 방해하지 않을 거야. 그저… 네가 배고플까 걱정돼서 그래." 남백훈은 신선하고 깨끗한 나뭇잎으로 생선 구이를 조심스레 떼어내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많이 뜨거우니까 조심해." 하지만 남백훈의 주의는 늦었다. 이경은 이미 한 입 베어 물고 말았다. 베어 물자마자 그녀의 입술은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아야!" 그녀는 급히 숨을 들이켜고는,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든 생선구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거야!" 남백훈은 그녀를 다시 한번 보게 됐다. 그는 곧바로 이경의 손을 붙잡고는 개울가로 향하여, 맑은 물로 그녀의 부은 입술을 잠시 담그게 했다. 자신의 두 손안에 얼굴을 파묻은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남백훈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 그는 이내 거듭하여 물을 떠 그녀의 입술을 씻겨주었고, 그 덕분에 이경은 마음이 놓일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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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그날 밤, 산들산들 불어오는 저녁 바람과 함께 머리 위로 별빛 가득한 바다가 펼쳐졌다. 그야말로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두 사람은 함께 지붕 위에 앉아있었고, 두 항아리의 복숭아꽃 술은 거의 이경 혼자 마시게 됐다. 안 그래도 향긋한 술 향기에, 복숭아꽃의 은은한 향기까지 섞여 있어 이경으로 하여금 더욱 빠져들게 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었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술맛이 강해졌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비우고 나서야, 이경은 빈 병을 내려놨는데, 이내 병이 굴러 떨어지려고 했다. 남백훈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지붕 끝을 따라 굴러 떨어지려는 술 병을 낚아채어 조용히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이경이 갑자기 그를 와락 껴안았다. "엄마!" 이경은 흐릿한 두 눈으로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엄마..." 그녀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저 남백훈에게서 어머니의 냄새가 난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어머니가 해준 생선, 어머니가 빚은 술, 어머니의 모든 것… "엄마..."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순간 온몸이 굳어진 남백훈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볼긋볼긋한 이경의 작은 얼굴과 흐릿한 그녀의 눈빛이 들어오자, 그저 안겨 있는 것만 해도 만족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어깨를 밀쳐내려 했던 그의 손은 저도 모르게 굳어지게 됐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을 밀쳐내려는 듯한 느낌이 든 이경은, 서러운 마음이 들어 더욱 힘껏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나 버리지 마, 엄마..." 이경의 어머니는 그녀가 다섯 살인 시절에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러니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게 된 지금, 그녀는 두 번 다시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엄마, 보고 싶었어." 이경은 남백훈의 품에 파묻힌 채 끊임없이 볼을 비볐다. 안 그래도 긴장되어 굳어 있었던 남백훈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다. 그의 손은 여전히 이경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그녀를 밀쳐내려는 건지, 아니면 아예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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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아야! 그 순간, 윤세현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세게 부여잡았다. “세자 나리, 왜 그러십니까?” 문정수는 곧바로 그의 이상한 기색을 알아챘지만, 윤세현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앞쪽에 비친 빛을 응시할 뿐이었다. 문정수는 그를 흘깃 보고는 이내 무슨 일이 있는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가 어둑 컴컴한 밤 빛 속에서 황급히 돌아오며 말했다. “나리, 이미 안전한 곳으로 모셨습니다. 청지가 현주랑 만나게 해도 되는지 묻더군요.” 윤세현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모든 게 그들의 계획이긴 했으나,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나리, 저희는 현주를 데리고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는 없습니다. 욱양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언제든지 발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망설이는 듯한 윤세현을 계속하여 재촉했다. “나리, 청지 쪽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입니다!” 그러자 윤세현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해.” …그렇게 이서영은 청지에 의해 이끌려 가게 됐는데, 내내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오라버니께서 정말 나를 만나겠다고 한 거야? 그런데 왜 굳이 궁 밖에서 만나자고 하는 건데? 난 언제든지 영화전을 찾아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담을 넘어야 해? 궁문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거야?” “청지, 왜 아직도 도착 못 한 거야? 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냐고!” 궁궐의 경비는 그리 삼엄한 편은 아니라, 왕자나 공주들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서영은 달랐다. 그녀의 신분은 매우 특별하여, 사람들은 시시각각 그녀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청지는 그녀를 궁문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고, 바로 담을 넘게 한 것이었다. “청지,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야? 얼마나 더 가야 오라버니를 만날 수 있는 건데?” 이서영이 가는 길 내내 질문을 던지자, 청지는 몹시 짜증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곧 도착할 겁니다!” 이 한마디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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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서영은 가끔씩 어리석어 보이긴 하지만, 연기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딸이라 얘기를 듣자마자, 그녀는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윤세현의 팔을 잡으려 했다.그러나 윤세현의 차가운 눈빛에 당황한 그녀는 재빨리 물러섰지만, 마치 이 수많은 사람들 중 오직 그 만을 믿는다는 듯이 윤세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딸이라니요? 이 사람은 누군데요?” 윤세현과 문정수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문정수는 눈앞의 이서영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이내 청지가 문정수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내자, 결국 자리를 떠났다. 갑작스러운 칠조의 등장으로 인해, 초아의 사건과 연루된 모든 이들에 대한 원한이 조금은 누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원한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잠시 후, 문정수가 사라지고 나서야, 이서영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을 거의 모르는 그녀도, 방금은 문정수의 살기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청지가 이서영을 향해 말했다. “현주, 이 분이 바로… 이언 장군님이십니다.” “네? 당신이… 제 아버지라고요?” 이서영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언이 비록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여전히 초라하고 지저분한 기색이 연연했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되나?” “이언 장군님 맞으십니다.” 다만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청지도 아직 설명할 길이 없었다. 윤세현의 표정을 보아도, 아마 이서영에게 따로 설명해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뒤이어 청지가 말했다. “현주, 이 분은 이언 장군님이시자 현주의 아버님이십니다. 세자께서도 이 자리에 계신데, 저희가 현주를 속일 리는 없죠.” 이내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제 상봉하셨으니, 두 분께서는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윤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향하였다. “현주, 저는 바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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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한 낡은 민가였지만, 대충 정리를 하면 당분간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긴 했다. 하지만 부엌 안은 매우 더러운 데다가 곰팡이 냄새로 가득해서, 이서영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한편 문정수는 홀로 약을 달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서영이 들어오는 걸 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서영도 깜짝 놀랐는지 뒤로 물러나 청지의 뒤에 몸을 숨겼다. “청지…” 청지는 문정수를 향해 진정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장군님께 직접 약을 지어 드리고 싶어 하셔.” 이 독한 여자가, 그렇게 호의적일 리가? 문정수는 여전히 차갑게 이서영을 노려보았다. 이언은 이서영의 친아버지이긴 하지만, 이 독한 여자가 친부모한테 진심으로 대할 리가 없다고, 그저 세자한테 잘 보이려는 속셈일 거라고 생각했다. “흥!” 문정수는 차갑게 코웃음 치고는 손에 든 부채를 내던지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대체 왜 날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주시죠!” 이내 청지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는데, 그 뒷모습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서영의 눈가에 맺은 억울함은 점차 원한으로 변하게 됐다. 이렇게 가련한 여자한테 조금의 연민도 없다니! 다들 남자가 맞긴 해? 방금 문정수가 자신을 해치지 못하게 보호할 때만 해도, 이서영은 청지가 자신에게 사적인 마음을 품은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 보니 감정 낭비였다. 일단 이서영은 문정수가 내던진 부채를 다시 집어 들었다. 약을 달여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부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문가로 걸어가 멀리 내다보았는데, 마침 청지와 문정수가 나무 아래에 선 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듯하자, 이내 부엌문을 닫고는 화로 앞에서 품 안에 숨겨두었던 약봉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 그렇게 반 시간이 흐른 후,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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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그래, 좋아.” 이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사발을 입가에 가져갔다. 탕약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그는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고는 심한 기침을 하였다. 병 때문에 여전히 몸이 허약해서인지, 기침을 하고 나자 손까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던 도중 갑자기 약 사발을 떨어뜨리게 됐다. 먼 곳에서 바라보고 있던 청지가 재빨리 다가가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서영 또한 자신의 눈앞에서 약 그릇이 미끄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막으려 했지만, 그녀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오히려 약사발을 받아 든 순간, 손이 미끄러지면서 손등에 약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아악!” 곧바로 손을 거둬들였지만, 어느새 손등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놀란 그녀는 급히 손을 소매 속에 감췄다. “서영아, 괜찮느냐?” 이언은이 불안해하며 데인 그녀의 손을 살펴보려 하자, 이서영은 계속해서 손을 감추고는 그저 낮은 목소리로 답할 뿐이었다. “괜찮아요. 괜찮… 그냥, 그냥 좀 데었을 뿐이에요…” “어디 한번 좀 보자꾸나. 얼마나 덴 거니?” 이언은 그녀를 잡아당기려 했다. 그러자 이서영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괜찮아요, 그나저나… 준비해 온 약이 너무나도 아깝네요. 제가 오래 달였는데…” “제가 문정수더러 다시 달여오라고 하겠습니다.” 청지가 수습하려 나섰다. 이서영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데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그릇을 주우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다시 달일게.” 만약 약에 문제가 있다는 걸 청지가 알게 되면, 도저히 변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지야, 우리 아버지 좀 부탁해. 난 가서 다시 약 좀 더 달여 올게.” 말을 마치고는 방에서 황급히 나와 부엌으로 들어간 뒤에야 데인 손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안 그래도 데어서 피부가 이미 조금 상한 상태인데, 상처 부위에 약물 속 독소가 닿게 되자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해버린 것이다. 일단 청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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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이언은 이서영의 손에 든 단도를 보고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그러자 이서영이 청지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청지야, 내가 아버지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러시죠.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부녀가 십여 년 만에 겨우 재회한 상황에, 청지가 계속해서 참견하는 것도 옳지 않았다. 게다가 날이 저물고 나서 세자가 돌아오게 되면, 그가 이서영을 데리고 다시 돌아갈게 뻔했기에, 부녀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이 순간밖에 없었다. 청지는 두 사람을 위해 조용히 문을 닫아주었다. 이서영은 이내 다시 단도를 들고는 천천히 이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의자에 앉으시죠. 제가 수염을 깎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언이 몸을 굳힌 채 꼼짝도 하지 않자, 이서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 왜 그러시죠?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네가 내 딸인데, 어찌 안 믿겠느냐?” 하지만 이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부녀 사이에 무슨 그런 말씀을. 아버지, 가까이 오시지요.” 이언은 드디어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이서영은 그의 뒤에 선 채 단도를 꽉 쥐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지금 이언을 죽인다면, 윤세현이 그녀에게 내릴 가장 심각한 처분은 무엇일지… 만약 이언이 미쳐 날뛰면서 죽이려 달려들기에, 어쩔 수 없이 한 정당방위라고 하면 믿어줄지…어찌 되었든, 그의 입을 막아야만 이서영이 안전해진다. 게다가 남성의 딸이라는 신분이 있는 이상, 무슨 짓을 저지르든 누구를 죽이든 윤세현이 그녀에게 해를 가할 수는 없었다. 그 생각에 이서영은 다시 단도를 꽉 쥐고는, 이언의 목덜미를 향해 칼날을 조심히 겨누었다. “아버지, 시작할게요. 눈 감고 계세요. 금방 끝낼 겁니다.” “그래.” 뜻밖에도 이언은 아무 반격 없이 눈을 감았다. 예상 밖의 전개에 이서영은 내심 기뻤다. 혹시 이 사람은, 내가 가짜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거지? 어느새 칼날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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