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hapter 501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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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1화

신병문은 그녀의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후회하며 스스로를 자책했다.역시 신수빈이 말한 대로 이 여자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내가 이런 사람에게 속을 줄이야.’그녀는 그저 이번 일을 분명히 설명하기만 하면 곧바로 왕부에 들어갈 수 있다고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단지 다른 사람이 은전을 주었다고 해서 일이 깨끗이 정리될 것 같으냐? 지금 내 명예는 땅에 떨어졌고, 청운서원도 덩달아 피해를 봤다. 게다가 내 부인과 나 사이도 멀어졌지. 네가 벗어나겠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봉소야는 눈앞의 온화한 남자가 갑자기 강경한 태도를 드러내자, 경계하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 무슨 생각입니까?”그녀는 두 번 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제가 가려는 곳은 왕부입니다. 바로 그 왕야께서 저를 마음에 두셨습니다. 당신이 현명하다면, 왕야께서 이 일을 물으실 때 우리 사이가 깨끗하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저는 절대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왕야께서 분노하신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신병문은 태연하게 손을 들며 말했다.“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내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겠다 이거군. 좋다, 오늘 내가 한번 보마. 만약 왕야께서 사람을 보내 이 일을 물어본다면, 나는 네가 이미 내 곁에 있었다고 말하겠다. 그럼 왕야께서 과연 너를 원하겠느냐?”“당신!”봉소야는 겉보기에는 온순한 신병문이 이렇게 위협할 줄은 몰랐다.“도대체 무슨 심보입니까?”“나는 어쩌면 네 말대로, 왕야께 그날 밤의 일을 해명해 줄 수도 있다. 단, 네가 먼저 솔직히 말해야 한다. 도대체 누가 너를 시켜 내 명예를 훼손하고 청운서원의 명성을 더럽혔는지.”봉소야는 원래 최가를 경계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이제 자신이 신가를 떠나 왕부로 들어가게 된다면, 최가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그녀에게까지 손을 뻗을 수는 없을 것이다.높은 권력자의 보호 아래라면, 그녀는 안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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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사건의 진위가 어떻든, 이미 모두 들으셨을 것이고 봉소야도 분명히 말했습니다.헌데 이 일을 최가에 가서 확인한다 한들 최가는 분명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제가 서원을 세운 목적은 단지 세상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가난한 학자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그들이 훗날 나라에 기여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최가가 청운서원의 명성을 깎아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제 명예가 떨어진 것은 상관없지만, 수치를 입는다면 학자들에게 손해겠지요.”모두 오늘의 사태를 이해했다.경중의 학자들은 청운서원과 왕야가 어떤 관계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오직 봉소야뿐이었다.그녀는 부와 권력에 눈이 멀어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다.“걱정 마시오. 우리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소. 봉소야가 청운서원에서 이런 교활한 수를 부린 것은 우리 학자들에 대한 모욕이오!”봉소야의 전 약혼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이런 사람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봉소야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자 곧장 왕부로 돌아갔다.그러나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지기들이 그녀를 막아섰다.“눈이 멀었느냐?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감히 함부로 들어오다니!”봉소야는 잠시 얼어붙었다.“저, 저는 어제 왕야께서 데려온 손님입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안으로 들어가 관사에게 물어보세요. 그가 저를 압니다. 혹시 제가 무시당한 걸 왕야께서 아시면 분명히 벌을 내리실 겁니다!”문지기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우리 왕야가 데려왔다고? 스스로 거울이나 보고 오거라. 네 꼴은 우리 하녀보다도 못한데, 왕야께서 어찌 너 같은 것을 데려오겠느냐?”봉소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불안해졌다.이미 신병문에게 모든 것을 분명히 이야기했지만, 혹시라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되었다.“믿지 못하겠다면 관사를 불러 확인해 보세요!”“내가 뭐라고. 왕부의 관사가 네 명령을 받을 사람이더냐!”봉소야는 꾸중을 듣고 있었지만,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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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봉소야는 잠시 멈칫했다. 어제 침상 앞에 서서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살펴주던 남자는 지금 눈앞에 선 모습과 많이 달랐었기 때문이다.“누구냐?”급한 마음에 봉소야의 목소리도 자연스레 떨렸다.“왕야, 저… 저 봉소야입니다. 어제 왕야께서 저를 왕부로 데려가셨잖아요. 오늘 아침에도 옷을 보내주셨고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이 옷도 그때 주신 거예요. 헌데 하룻밤이 지났을 뿐인데, 왕야께서 저를 못 알아보시다니….”말투에는 어딘가 애매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고, 입고 있는 옷까지 언급하며 왕야가 자신을 특별히 챙겼다는 인상을 주려 했다.잠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젯밤 봉소야가 왕야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말이었다.그러나 왕야는 냉랭하게 그녀를 한 번 쏘아보더니, 입가에 옅은 조소만 머금은 채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돌려 왕부로 향했다.봉소야가 순간 그를 막아서려 하자, 왕야 곁에 있던 장녕이 한 발로 그녀를 옆으로 밀어냈다.“감히! 왕야의 길을 막다니.”봉소야는 그 한 발에 숨이 턱 막히는 듯했고, 목구멍까지 쓴맛이 치밀어 올랐다.그제야 봉소야는 왕부와 신가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신가 사람들은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않았지만, 왕부는 진짜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이상, 왕부에 들어가지 못하면 뒤에서 그녀를 노리고 있을 최씨 가문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왕야, 저는 혼자 왕부로 들어왔습니다. 겨우 하룻밤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버리시다니요. 왕야께서 제게 설명은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이도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바보 같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장녕에게 말했다.“장녕, 네가 그녀에게 말해주거라. 본왕이 어제 어디에 있었는지.”장녕은 황성시를 통솔하며 생사를 결정하는 일을 맡은 냉정한 인물로, 가장 사나운 도적 앞에서도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는 자였다.그런 그가 지금 봉소야 앞에 서자, 그녀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두근거렸다.“왕야께서는 어제 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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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봉소야는 경악한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신병문과 이야기를 나눈 지 이제 겨우 한 시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어째서 벌써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인가!“무슨 헛소리입니까! 그건 신가에서 꾸며낸 핑계입니다! 먼저 저를 모욕해 놓고 이제 와 발뺌하는 거라고요! 다들 속지 마세요!”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는 그녀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하나같이 어리석은 사람을 보듯 봉소야를 바라봤다.“아직도 발뺌을 하네. 주루며 찻집이며 이미 소문이 다 퍼졌는데. 네가 최가랑 짜고 친 일도 다 알려졌다고. 신가는 돈도 들이고 힘도 들여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그걸 검은 속내의 최가가 함정을 파서 망치려 한 거잖아. 통천서원에 급제생 더 늘리려고 그런 거라며? 퉤! 하늘에도 눈이 있어서 결국 좋은 사람들의 억울함은 밝혀지는 법이지.”주루와 찻집이라니?그때 신가의 대문이 열렸다.정 씨가 하인들과 함께 안에서 나와 짐을 마차에 싣도록 지시하고 있었다.“여러분, 내일이면 대과 시험이 시작됩니다. 우리 부군께서 주작거리에서 장원죽을 끓이게 하셨어요. 경성으로 시험 보러 온 가난한 선비들에게 나누어 줄 예정이니, 장안의 백성 여러분도 가셔서 장원의 복을 함께 나누시길 바랍니다. 훗날 집안에 괴성이 들 수도 있지 않겠어요?”당대 사람들은 원래 이런 길조를 굳게 믿었다.게다가 요즘은 다들 살림이 팍팍한 터라, 한 끼라도 아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사람들은 기뻐하며 가족들을 이끌고 주작거리로 장원죽을 받으러 몰려갔다.정 씨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 봉소야를 그저 담담히 한 번 내려다봤을 뿐, 그대로 몸을 돌려 마차에 오르려 했다.그러자 봉소야의 눈빛이 사납게 일그러졌다.그녀는 그대로 정 씨를 향해 몸을 던졌다.“당신들이 저를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제가 못 살게 된다면 너희도 가만 안 둘 겁니다!”하지만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금자가 다리를 슬쩍 걸어버렸다.봉소야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앞니까지 깨져 버렸다.정 씨는 높은 곳에서 그녀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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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정 씨는 신수빈이 더는 말을 잇지 않자,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처음에는 윤서원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끝내 그에게 속아 다른 사람에게까지 넘겨졌던 일을 떠올리면, 그녀가 다시는 남자를 쉽게 믿지 못하게 된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결국 그 섭정왕과의 혼인을 피할 수 없는 이상, 정 씨로서는 그저 신수빈이 부군과 금슬 좋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빈아, 비록 시작은 좋지 않았고 그 사람이 처음엔 널 다른 이의 대용처럼 여겼다 해도 말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도 마음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는 난 믿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준우가 그날 밤 오직 그 사람만 찾지 않았더냐. 그것만 봐도 그 사람의 됨됨이는 알 수 있지 않겠느냐.”신수빈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안의 손수건만 자꾸 비틀어 쥐었다.정 씨는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봐 온 만큼, 신수빈이 마음속에 생각이 많을 때마다 무의식처럼 보이는 작은 버릇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이토록 영민한 아이가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다만 그녀의 마음속에 도대체 어떤 넘지 못할 골짜기가 자리하고 있기에, 저토록 스스로 마음을 닫아걸고 사랑마저 가두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설령 네가 사랑 같은 건 믿지 못하고,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한다고 생각한다 해도, 적어도 그 사람의 품성만큼은 제대로 봐야 한다. 그이는 그 아이가 자기 친아들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데도 저렇게 대해주지 않았더냐. 단지 너 때문에 아이까지 아껴 준 것만이 아니라, 본래 사람이 올곧고 품행이 반듯해서 그런 비열한 짓을 업신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예전엔 너를 억지로 몰아붙인 적도 있었지만, 워낙 높은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발아래 엎드리는 것에 익숙했던 거겠지. 헌데 본성이 바른 사람은… 훗날 곁에 다른 사람이 생긴다 해도 너를 함부로 대하진 않을 것이다.”정 씨는 황실 사람 가운데 평생 단 한 여인만 곁에 두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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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신가에서 사람이 찾아와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신수빈이 떠나기 전 남겨둔 것으로, 왕야께서 귀부한 뒤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오늘 된통 재수 없는 일을 겪은 장풍은 이번엔 눈치껏 물러나 있었고, 대신 장녕이 편지를 들고 갔다.장녕이 편지를 올리자, 이도현은 그녀가 보낸 편지라는 말을 듣고도 눈꺼풀만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딱히 상대하고 싶은 기색은 아니었다.그는 여전히 손에 든 이번 과거 응시자 명부를 넘겨보고 있었다.장녕 역시 재촉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잠시 뒤, 이도현이 명부를 내려놓고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펼쳐서 읽거라.”마치 제 손으로 읽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장녕은 그대로 편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당신을 보지 못하니 마음이 시름에 잠겨 밥조차 넘기기 어렵고, 잠 또한 편히 들 수 없습니다. 당신을 보지 못하니 근심이 깊어져...”고작 두 줄 읽었을 뿐인데, 편지는 곧 이도현의 손에 낚아채이듯 빼앗겼다.뒤에는 아직도 한참 더 남아 있었고, 장녕은 속으로 신수빈의 문장이 제법 좋다고 감탄하려던 참이었다.이도현은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다시 끝에서 처음까지 훑어보았다.그러다 마지막 부분에 적힌 문장을 본 순간, 시선이 잠시 멈췄다.편지 봉투 안에는 그녀가 호국사에서 직접 구해 온 평안부 하나가 들어 있다고 했다.반달 동안 불전에 올려 두고, 날마다 기도하며 경문까지 베껴 썼다면서, 이번에 가져와 그에게 건넨다고 했다.앞으로 부디 평안하고 순탄하기만을 바란다는 말과 함께.“봉투.”장녕이 얼른 봉투를 건네자, 이도현은 안에서 평안부 하나를 꺼냈다.그는 손안의 부적을 이리저리 한 번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이내 다시 눌러 담았다.“재앙을 막아 준다는 건 여인들이나 믿는 거지.”그렇게 말하면서도 눈가에는 감출 수 없는 흡족함이 어려 있었다.“그래도 양심은 있었군.”장녕이 슬쩍 보니, 그저 호국사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흔한 평안부일 뿐이었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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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신수빈이 호국사로 돌아가는 길에, 금자는 점점 멀어져 가는 성문을 바라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전 마님께서 도련님이라도 보고 가실 줄 알았어요. 왕부에서 하룻밤 묵으셨다가 내일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신수빈은 담담히 말했다.“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멋대로 경성에 돌아온 데다 왕부까지 드나들었으니, 누가 보기라도 하면 괜한 말거리가 되겠지.”무엇보다 그녀 역시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 씨의 말을 곱씹어 볼 시간이 필요했다.신수빈은 마차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이월 초의 장안성 밖은 봄기운이 완연했다.풀은 무성히 자라고 꾀꼬리는 날아다녔으며,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둑가를 스치고 있었다.교외에는 봄놀이를 나온 젊은 공자와 규수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신수빈은 버드나무 곁을 나란히 걷는 한 쌍을 한참 바라보았다.마르고 늘씬한 사내가 마음에 둔 여인의 머리끝에 스친 버들가지를 살며시 치워 주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그 눈빛 사이로 애틋한 정이 길게 얽혀 있었다.그 모습을 보던 신수빈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가능하다면, 마음에 품은 사람과 의심 없이 사랑하며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 걱정 없이 규방에서 웃고 지내던 소녀가 아니었다.칠 년 밤낮 없이 타오르던 불길은 이미 그녀의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이제는 다시 마음 하나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기대어 둘 수 없었다.“앞에 계신 분이 혹 호국부인의 마차이십니까?”마차 밖에서 들려온 물음에 신수빈이 물었다.“누구십니까?”금자가 밖으로 나가 살펴본 뒤,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부인, 숙혜부인과 그 부군께서 앞쪽 정자에 계신데, 부인의 마차를 보고 인사를 청하셨어요.”숙혜부인은 바로 장가와 화이한 뒤 송치연에게 재가한 서 씨였다.어차피 호국사로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이 없던 신수빈은 마차에서 내려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숙혜부인과 송치연은 신수빈이 내리는 모습을 보자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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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신수빈의 눈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새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사람을 기쁘게 만들었다.서하랑은 그녀를 끌어 앉힌 뒤, 눈앞의 신수빈을 바라보았다.화사한 빛을 머금은 얼굴에 자태는 고왔고, 빼어난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그러다 문득 안타까운 듯 말했다.“윤가 같은 집안은 정말 아깝다. 네 나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윤서원 곁에서 세월을 허비하다니.”신수빈은 서하랑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다만 지금 윤서원이 아직 살아 있는 이상,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지금의 윤서원은 딱히 흠잡을 만한 잘못이 없어요. 예전에 제가 화이를 꺼낸 적은 있었지만,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았죠. 지금으로선 이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서하랑 역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세상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사내는 아내를 내칠 수 있지만, 여인이 화이를 하려면 관부에서 절혼서를 내려야 했다.그런데 윤서원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관부조차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서하랑은 그녀의 손을 감싸 쥔 채 조용히 위로했다.“너는 복이 있는 아이니, 진창 같은 곳에 오래 갇혀 있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빠져나올 날이 올 거야. 나는 요즘도 가끔 조옥에 갇혀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 일을 겪은 덕에 내 곁에 있는 게 아군인지 적군인지 제대로 볼 수 있었구나 싶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신수빈은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언니가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나도 나중에서야 깨달았단다. 처음엔 거의 떠밀리다시피 섭정왕 앞에서 지금의 혼사를 받아들였잖니. 헌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불안했다. 세상 사내들이란 대개 박정한 법이니까. 정말 큰일이 닥치면 숲속 새들처럼 각자 흩어져 날아가 버릴 거라 생각했지. 헌데 선항족이 성을 함락시키던 날, 그 사람은 나를 숨겨 두고 스스로 집안 하인들을 이끌고 선항족과 맞섰다. 불쌍하게도 문인에 불과한 사람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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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신수빈은 금자 손에 들린 주머니를 받아 안에 있는 은괴를 전부 쏟아냈다.안에 든 은자는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이었다.그때 은괴와 함께 조잡하게 그려진 손그림 한 장도 바닥으로 떨어졌다.구불구불 이어진 선들이 무언가의 길을 나타낸 듯했지만, 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신수빈은 직감했다.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서하랑도 고개를 기울여 살펴보았다.평소 금이나 은 같은 재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느냐?”신수빈은 은괴를 손안에서 가볍게 무게 재어 보며 말했다.“이 은자들, 십중팔구 가짜가 섞인 것 같아요.”남북이 통일된 뒤 조정은 민간의 주조권을 모두 회수했다.그런데 이런 위조 은자가 나오고, 그 사람이 이토록 큰 상처까지 입고 있으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금자, 은보. 사람을 마차에 태우거라. 우선 성 안으로 데려가 의원부터 보이게 해야 한다.”금자와 은보가 막 사람을 마차 위에 옮겨 태우고 출발하려던 순간이었다.옆 관도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몰아 장안성 방향으로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서하랑은 선두에 선 사람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저 사람...”“아는 사람입니까?”“장가의 관사다. 아마 전 시아버님의 심복일 거야. 예전에 장가에 있을 때 자주 드나들던 걸 봤거든.”신수빈은 멀어져 가는 일행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러고는 이내 금자와 은보를 불렀다.“잠깐. 호국사 큰스님께서는 의술에도 밝으셨지. 그 사람, 호국사로 데려가거라.”말을 마친 뒤 신수빈은 몸을 돌려 서하랑에게 조용히 말했다.“저 사람은 상처가 너무 심해요. 몸에는 가짜 은자까지 지니고 있고, 살아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요. 괜한 화를 부르지 않도록 언니께서도 당분간은 비밀로 해 주세요.”서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태원 서가 출신이었다.집안은 삼대에 걸쳐 이어져 온 명문가였기에, 이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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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신수빈은 괜한 망상을 하는 것이 아닌,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서로 이어져 있다고 느꼈을 뿐이었다.장 가는 여 귀비가 총애를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조정 안에서 세력을 키워 왔다.본래 장 가 자체에는 별다른 생업도 없었기에, 황실에서 내린 하사와 봉읍만으로는 가문이 지금처럼 점점 거대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선황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태후를 지나치게 총애했고, 장 가의 권세 또한 그 틈을 타 더욱 커졌다.그러니 그 시절 손에 쥔 권력을 이용해 사광을 손에 넣은 것은, 어쩌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정말 이 가짜 은자 사건이 장 가와 관련되어 있는 걸까?이전 양회의 염세 문제와 제방 공금 횡령 사건에도 장 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는데... 장 가는 대체 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장 가의 외조카는 이미 천자가 되어 있었다.게다가 이도현이 곁에서 받쳐 주고 있으니 황위 역시 굳건했다.그런데도 그들이 이토록 막대한 돈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신수빈은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과 자신의 추측을 정리해 편지 한 통을 썼다.다 쓰고 봉해 은보에게 보내려던 순간, 그녀는 문득 손을 멈추었다.이도현과 태후 사이가 어떻든, 예전에 이도현은 분명 직접 말했었다.여 귀비는 장 가에게 큰 은혜를 입었고, 자신에게 능력이 닿는다면 장 가 자손들만큼은 평안하게 지켜 주고 싶다고.그렇다면 이 일을 이도현에게 알렸을 때, 결국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적당히 덮어 버리는 건 아닐까?괜히 경계심만 자극하고 끝나는 건 아닐까?신수빈은 망설였다.이번만큼은 한 걸음도 잘못 디딜 수 없었다.전생에서 겪었던 모든 일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장 가가 끝내 어디까지 가려 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그녀가 원하는 건 장 가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며 자손이나 지키는 결말이 아니라, 가문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단 한 사람도 남지 않는 것이었다.신수빈은 한참 동안 편지를 바라보다가 끝내 촛불 곁으로 가져가 불태워 버렸다.재가 되어 흩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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