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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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큰일입니다, 대표님. N국 쪽에서 사고가 났습니다.”강준은 막 링거 바늘을 뽑은 참이었다.고개를 들어 재환을 바라봤다.“무슨 사고.”“여사님께서...”강준의 미간이 단번에 좁혀졌다.“말해.”“소시정이 여사님을 감시하던 간병인을 살해한 뒤...”재환은 차마 이어서 말하지 못하고 잠시 멈췄다.그러나 숨길 수 없는 진실이었다.“여사님도 살해당하셨습니다. 이미 며칠이 지났고, 관리사무소에서 방문했다가 시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뭐라고?”강준의 동공이 한순간 커졌다가, 급격히 수축했다.혈기가 거꾸로 치솟았다.“소시정은 실험실에 있던 거 아니었어? 어떻게 집으로 가서 사람을 죽여? 어머니는...”강준의 얼굴은 극심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호흡이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재환은 감히 강준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핏발 선, 마치 모든 걸 집어삼킬 듯한 눈빛이었다.“대표님, N국 경찰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 현지로 와서 절차를 진행하실 건지 묻고 있습니다.”강준은 불타는 눈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소시정은? 그 인간은 어디 있어?”“도주했습니다.”“어디로?”재환이 막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려던 순간,핸드폰이 울렸다.모르는 번호였다.재환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네, 접니다.”“뭐라고요?”“이미 신고는 하셨고요?”“알겠습니다.”재환은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왜 나쁜 일은 꼭 한꺼번에 몰려오는지...“대표님...”“또 뭐야.”재환은 이를 악물었다.“사모님께서... 실종되셨습니다.”“뭐?”강준은 귀를 의심했다.“별아가 실종됐다고?”“언제부터야?”“방금 도설 씨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도설 씨와 사모님이 함께 외출하셨고, 지하 주차장에서 도설 씨가 물건을 가지러 잠시 올라간 사이...”“돌아왔을 때 사모님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가방과 차량 키는 차 옆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요. 도설 씨는 누군가 사모님을 납치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별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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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재환의 손에 쥔 핸드폰이 점점 뜨겁게 느껴졌다.수화기 너머에서 도설의 초조한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강 비서님, 하 대표님 전화 좀 받아주실 수 없을까요?][사장님이 계속 연락이 안 돼요. 경찰 쪽에서도 아직 소식이 없고요.][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땐 어떡하죠?]“대표님께서 지금 급하게 처리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재환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 강준의 뒤를 따라 급히 뛰어나갔다.[강 비서님? 여보세요? 여보세요...][이렇게 모른 척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에, 도설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이혼했다고 정말 이렇게 손을 떼는 건가?’‘사장님이 지금 행방불명인데...’‘사장님이야 그렇다 쳐도, 아이는 하씨 가문의 아이잖아.’‘하 대표님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냉정할 수 있지.’‘이제...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 하지?’...별아가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소시정이 서 있는 걸 보고도 이상하게 놀라지 않았다.이번엔 깊은 산속이나 외딴 곳이 아니었다.이곳은 강준이 소시정을 숨겨 두었던 아파트였다.집은 넓었고, 채광도 좋았다.창가에는 자스민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고, 은은한 향이 공간에 퍼져 있었다.별아가 몸을 조금 움직이자, 자신의 몸에 무언가가 잔뜩 묶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정확히는 여러 개의 시한폭탄이었다.‘이 도심 한복판에서 나를 폭사시키겠다는 거야?’별아는 고개를 숙여, 몸에 감긴 무거운 폭약을 내려다봤다.‘위력은 꽤 크겠네.’‘최소한... 아래층 포함해서 서너 개 층은 날아가겠어.’‘그러면 죽는 건 나 하나로 끝나지 않겠지.’“송별아. 설마 이 상황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겠지.”시정은 눈이 움푹 들어가 있었고, 얼굴엔 붉은 반점이 퍼져 있었다.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이번엔 운이 따라주지 않을 거야.”“복수할 사람을 잘못 골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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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이번 생에서 시정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별아를 죽이려 드는 것도, 어쩌면 그 나름의 인과처럼 보였다.원인과 결과가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에서,누가 누구의 업보가 아니겠는가?하지만 별아는 송씨 집안의 세 목숨을 시정의 복수에 함께 묻어줄 생각은 없었다.“소경진의 죽음이 정말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별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네가 네 동생을, 들어가선 안 될 수렁으로 밀어 넣은 거야. 입만 열면 동생 복수라면서, 사실 가장 죽어야 할 사람은 너야. 소경진을 죽인 건 네가 아니야?”시정의 고개가 통제 불가능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무언가에 자극받은 사람처럼.“네가 경진이를 죽였어. 그러니까 네가 경진이 목숨값으로 네 목숨을 내놔야지.”“아니.”별아는 단어 하나하나를 눌러 담듯 말했다.“경진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별아는 시정이 저질렀던 죄를 차분히 끄집어냈다.“네가 먼저 내 동생을 죽였잖아. 그래서 소경진도 죽게 된 거야. 소시정, 너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복수하겠다고 나서서 결국 네 동생까지 죽인 건 너였어.”‘소경진은 죽으면 안 되고, 별현이는 죽어도 되는 거야?’‘별현이는 고작 열여섯살이었어.’‘인생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인데.’‘이건 그냥, 서로 진 빚을 갚는 거야.’별아는 미친 사람과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시정은 친구가 아니라 적이었다.마음을 털어놓을 대상이 아니었다.당연히, 시정은 별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시정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끝까지 별아의 말을 부정했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내 동생을 죽인 건 너야. 바로 너라고!!”“송별아. 죽어!!!”차갑게 말하며 시정은 시한폭탄의 안전핀을 당겼다.10분.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마치 누군가를 위해 맞춰진 모래시계처럼 정확했다.초침 소리가 똑딱똑딱 사람의 신경을 갉아먹었다.시정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자기 몫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처럼.하지만 별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 미치광이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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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공항.전용기는 이미 계류장에 대기한 채, 언제든 이륙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차가운 공기가 활주로 위를 가로지르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강준의 얼굴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재환은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사모님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도 아직 모르는데요. 대표님께서도 좀...”그 순간, 강준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전생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전생에서 강준은 어머니의 병과 별아와의 관계 사이에서 점점 더 무너졌고, 결국 별아가 아이를 낳는 날, 그녀를 영영 잃었다.그리고 지금... 별아는 여전히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별아를 먼저 구하러 가야 하나, 아니면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야 하나.’강준의 가슴이 조여 왔다.“사람은 보냈어? 혹시 연락 온 건 없어?”“이미 사람은 보냈는데요... 아직은...”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까지 아무런 피드백도 없었다.강준은 흔들리고 있었다.어머니는 타살로 세상을 떠났고, 그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어머니의 마지막 길만큼은 직접 배웅하고 싶었다.하지만 별아는?별아는 정말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던가?전생에서 그는 이미 별아에게 너무 큰 빚을 졌다.이번 생에서도 또다시 그녀를 위험 속에 내버려 둔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이 되는가?양쪽 모두를 선택할 수 없는, 잔인한 갈림길.“대표님, 그러면... 제가 여사님 장례는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여기 남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재환의 제안에도 강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침묵 속에서 마음은 더 깊이 갈라졌다.그때, 비행기 안의 모니터에서 속보 뉴스가 흘러나왔다.갑작스럽고도 충격적인 자막이 화면을 채웠다.주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납치 후 살해로 추정되며, 사상자 중 한 명은 하산그룹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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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배수지 씨,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대표님도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수지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냉랭하게 다시 말을 잘랐다.“가고 싶은 데나 가라 그래. 세상 모든 일이 별아 목숨보다 중요하다면서, 이제 와서 왜 울고불고야? 귀신한테 보여 주는 지고지순 사랑 연기라도 하는 거야?”재환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지금 이 순간, 어떤 말도 변명에 불과했고, 전부 공허했다.강준은 결국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어깨가 들썩이며 크게 떨렸다.그런 모습을 보는 것조차 수지는 신경이 거슬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차로 돌아갔다.‘뭐 저런 쓰레기가 다 있어.’‘사람 노릇은 못 하면서, 연기는 일류야.’수지는 손을 뻗어, 옆에 앉아 있는 여자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었다.“누가 알아. 하강준이 너 때문에 우는 건지, 소시정 때문에 우는 건지. 아마 소시정 때문이겠지. 소시정도 거의 폭사 직전이었다던데.”별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사를 오가던 순간이었다.수지와 도설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친구야, 고마워.”“뭐가 고마워.”수지는 거리 두는 말을 싫어했다.“별아, 너 알지? 도설한테 전화 받고 나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어. 바로 제일 잘한다는 경호 업체에 연락해서 사람 데리고 왔어. 진짜... 진짜 다행이야. 네가 살아 있어서.”수지의 눈가가 붉어졌다.별아는 조용히 수지를 끌어안았다.“네가 있어서 다행이야.”‘하강준이랑은 다르다.’‘그 사람은 늘 선택의 순간마다 나를 버렸지.’‘전생의 나는 정말 어리석었어.’‘하강준을 위해 수지 같은 친구를 멀리했으니까.’“나 지금은 그냥 집에 가서 씻고, 푹 자고 싶어.”“기사님, 출발해 주세요.”수지는 운전석을 향해 말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덧붙였다.“아, 그리고. 내일은 내가 직접 경호 업체 가서 사람 하나 붙여 줄게. 앞으로 어디를 가든, 항상 따라붙게. 나쁜 놈들한테 틈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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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텔레비전을 끄고, 별아는 머그잔을 들어 올려 우유를 한 모금 천천히 마셨다.이번 납치 사건 이후, 그녀는 너무 많은 공포를 겪었다.밤마다 잠에서 깜짝 놀라 깨는 일이 반복되었고, 심장은 이유 없이 빠르게 뛰었다.임신 때문인지, 별아는 예전보다 훨씬 더 연약해져 있었다.하루하루가 버거웠지만, 그래도 버텨야 했다.아이를 위해서라도.그때 수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뒤에는 젊고 건장한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키는 족히 190은 되어 보였다.“별아야, 사람 구해 왔어. 이름은 노호진. 특수부대 출신이고, 실력은 말할 것도 없어. 그날 너 구하러 갈 때도 같이 있었어. 앞으로 24시간 네 옆에서 지킬 거야. 호진이 있으면 안전해.”그제야 별아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찬찬히 바라보았다.노호진은 짙은 눈썹과 또렷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고, 이목구비가 깊었다.머리는 아주 짧게 정리되어 있었고, 곧게 선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다.전체적인 분위기는 단정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날렵했다.강준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잘생김이었다.이렇게까지 남성적인 인상을 가진 사람은 별아 주변에 드물었다.무엇보다도,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묘하게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수지, 너...”별아는 말없이 수지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네 마음에 들면 됐지.”수지는 별아의 귀 옆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낮게 속삭였다.“경호원이랑 아가씨 사이에도 말이야. 금기 같은 사랑 하나쯤은 있을 수 있는 거야. 타이밍 왔을 때, 괜히 망설이지 말고.”“나?”별아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임신부인 나한테 무슨 그런 걸 기대해. 너 너무 나를 높게 보는 거 아니야?”“애는 낳으면 되는 거고. 출산하고 나면 그 유혹적인 여자 향기 때문에 이런 남자들 줄줄이 넘어올걸?”수지는 별아가 스스로를 묶어 두지 않길 바랐다.“우린 지금 싱글이야. 누구에게도 구속받을 필요 없어.”별아는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수지의 말이 점점 과해지고 있었다.별아는 다시 호진을 바라보았다.호진은 허리를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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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법적으로 보자면, 손영애는 하명식의 아내가 아니었다.기껏해야 사실혼 관계의 연인에 불과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손영애는 이미 충분히 굴욕을 견디고 있었다.만약 하명식이 겉으로나마 부부처럼 대해 주지 않았다면, 손영애는 오래전에 이 집을 떠났을 것이다.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회장님.”손영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어차피 우리, 진짜 부부도 아니잖아요. 오늘부로 저는 하 씨 가문을 떠나겠습니다. 회장님은 회장님 인생, 잘 사세요. 제가 그동안 한 모든 수고는... 다 헛수고로 하죠.”말을 끝내기도 전에 손영애는 울음을 터뜨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하명식의 얼굴은 굳어졌다.그는 강준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낮게 꾸짖었다.“말을 그렇게 독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어른이고 그동안 너한테 들인 정성도 적지 않아. 사람이면 감사할 줄도 알아야지.”강준은 물러서지 않았다.오히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맞받아쳤다.“아버지께서 정말 감사할 줄 아셨다면, 어머니가 떠난 뒤 그 긴 세월 동안 다른 여자를 곁에 두지 마셨어야죠.”순간, 하명식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그는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눈을 부라렸다.“나랑 네 엄마는 이혼한 사이야. 나는 자유가 있고, 여자를 만날 권리도 있어.”“그만들 해라.”하태산이 결국 나섰다. 더 이상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다.“이 집안에서 고성 오가는 꼴, 보기 안 좋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각자 돌아가 쉬어라.”...별아는 K시를 떠나기 전에 주얼리 세트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이희나를 다시 한번 만나기로 했다.장소는 조용한 디저트 카페였다.희나는 별아 옆에 선, 키 크고 젊으며 탄탄한 체격의 남자를 힐끔거리며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분은...?”“주얼리 세트 얘기부터 하죠.”별아는 쓸데없는 화제를 원하지 않았다.“이대로 계속 미루면 계약상 시효가 지나서 이희나 씨가 요구한 조건들에 대해 저희는 더 이상 답변할 의무가 없어집니다.”희나는 가볍게 웃었다.“송 사장님,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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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호진의 체격은 크고 단단했다.강준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호진은 자연스럽게 별아 앞을 가로막아 섰고, 그 존재만으로도 단단한 안전선이 형성됐다.그 압박에 강준은 결국 한 걸음,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게 네가 고용한 경호원이야?”강준은 세 걸음쯤 물러난 뒤, 몸을 숙여 별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우리 사이에 할 얘기가 있는데, 외부인이 같이 있는 건 좀 그렇지 않나?”“나랑 너는 공적인 이야기만 해.”별아는 감정 없이 계약서와 수정안을 강준 앞으로 밀어 놓았다.“옆에 누가 있든, 그게 그렇게 중요해? 주얼리 세트 문제에 대해서는 선택지가 두 개야. 수정 아니면 배상.”강준은 서류를 보지 않고,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노골적으로 호진을 노려봤다.“경호원부터 물러나게 하면 안 될까?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차갑고 무심한 눈으로 강준을 내려다볼 뿐이었다.강준은 주변을 한 번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여기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겠어.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이렇게 마주 앉을 기회가... 앞으로는 없을지도 몰라. 진짜로 할 말이 있어. 그 경호원에게 나가달라고 하면 안 될까?”별아는 강준이 하려는 말이 무엇일지 대충 짐작했다.사과일 수도 있고 뒤늦은 죄책감일 수도 있고, 혹은 여전히 위선적인 사랑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런 허세 섞인 비굴함에는 조금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우리 사이에 따로 할 말 없어.”“있어. 난 정말 있어.”강준은 한발 물러서듯 말했다.“그럼 최소한 경호원을 조금만 떨어뜨려. 네가 보이는 거리면 충분해. 그 정도는 괜찮잖아.”별아는 더 시간을 쓰고 싶지 않고, 고개를 돌려 호진에게 말했다.“세 걸음만 뒤로 가.”“알겠습니다.”호진은 즉시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시야에서 별아를 놓치지 않는 위치였다.언제든 몸을 던질 수 있는 거리.별아는 다시 강준을 보며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할 말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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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하강준, 또 시작이네. 위선적인 사랑 타령.’‘하지만 난 더 이상 이십대 초반의 아무것도 모르는 송별아가 아니야.’‘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여자가, 어떻게 이런 거짓말을 다시 믿겠어.’별아는 시선을 내리깔지 않은 채,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말했다.“네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어? 소시정은 사랑하지 않았어?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왜 소시정 사진을 끌어안고 따라 죽으려고 했지?”“이희나는?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비싼 주얼리 세트를 왜 줬어?”별아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항상 선택의 순간마다 넌 내 편이 아니었어. 언제나 내 반대편에 섰지. 하강준, 넌 두 번의 인생에서 나를 망가뜨렸어. 이제 와서 아무리 미련한 척해도 난 다시는 너라는 구덩이에 뛰어들지 않아.”별아는 가방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그 순간, 강준이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그건 다 설명할 수 있어. 별아야, 난 너만 사랑해.”별아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아니, 그렇지 않아. 네가 제일 사랑하는 건 너 자신이야. 그리고 어릴 때부터 곁에 없었던 네 엄마지.”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단호하게 덧붙였다.“넌 누구든 사랑할 수는 있어. 하지만 나를 사랑할 자격은 없어. 조금도...”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시어머니의 존재가 떠오르자, 별아의 가슴에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스쳤다.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별아와 그녀의 가족 위에 피를 밟고 올라섰다는 사실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별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자신의 손목을 힘주어 빼냈다.“우리 사이, 이미 끝났어.”“어떻게 해야 용서해 줄 건데?”강준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정확히 말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얼굴이었다.“네가 용서해 준다면... 난 죽어도 괜찮아.”죽음?강준은 모른다.한 번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의 눈물이고, 가슴이 찢어지는 울음이다.떠도는 영혼이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끝없는 고독과 슬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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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동생의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호진에게 여전히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호진은 몇 번이나 깊게 숨을 들이쉰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동생은... 매제랑 지인 소개로 만났습니다. 연애만 삼 년을 하고 결혼했어요. 그땐 정말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호진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동생을 때렸고, 월급이 적게 나오면 때렸고 밥이 마음에 안 든다고 때렸습니다.”“평소에도 때렸고 임신했을 때도 때렸고, 아이를 낳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도 그 사람은 동생의 뺨을 때렸습니다.”별아의 손이 무의식중에 굳어졌다.“이후에 아이가 크게 아팠는데... 매제는 병원에도 잘 오지 않았고 동생에게 쓰는 폭력은 더 심해졌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결국 아이는... 세상을 떠났고 그날 동생은... 홧김에 매제를 찔러 죽였습니다.”호진은 고개를 숙였다.“경찰이 저한테 연락하기 전까지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조차요.”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제가 변호사를 선임했고 결과는... 징역 15년이었습니다.”담담하게 말하려 애썼지만, 그 안에는 감추지 못한 자책과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별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동생은... 그동안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 걸... 호진 씨한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거야?”“아마... 제가 걱정할까 봐서였을 겁니다. 괜히 제 인생까지 엉망이 될까 봐... 그래서 혼자서 다 버틴 거겠죠.”호진의 눈빛에는 깊은 죄책감과 동생을 향한 애틋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형제라는 건... 서로를 그렇게까지 아끼는 관계였다.별아의 머릿속에 별현이 떠올랐다.어릴 때부터 별현은 별아를 유난히 따랐다.전생에 그녀가 강준과 결혼했을 때도 별현은 강준을 진짜 가족처럼 여겼다.‘매형, 매형’ 하며 어린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따랐던 아이.그 아이가 사랑했던 매형은 결국 칼을 든 사람이 되었다.별아는 별현이 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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