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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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이 은전은 원래 그제에 이미 보내져야 했습니다. 하나 세자와 송 아가씨의 혼례가 앞당겨져서 세자대전의 혼사 준비로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바쁜 상태입니다. 제가 그만 정신이 없어 까맣게 잊고 말았군요.”강시아는 은표를 수납하며 곧바로 준비해둔 은전을 상 유모의 손에 쥐여주었다.“부엌일도 바쁘실 텐데 상 유모께서 친히 발걸음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데 서방님의 혼례가 언제로 앞당겨진 겁니까?”상 유모는 손에 은전이 더해지자 얼굴에 웃음이 번지며 이번 걸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마님께 알려드려도 무방하지요. 소서 무렵으로 앞당겨졌다고 해서 시간이 조금 급하긴 합니다.”상 유모는 강시아가 정실의 입궁을 걱정하는 줄로만 여기고는 달래듯 말을 이었다.“마님의 성정이 원만하시니 걱정하지 마세요. 세자께서도 아가씨께서 강아지를 기르는 일까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마음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겁니다. 훗날 아드님 하나 더 낳아드린다면 마님의 일생은 그야말로 근심이 없을 것이지요.”강시아의 얼굴은 순간 굳어졌다. 그러나 곧 다시 평온한 빛을 띠며 화제를 돌렸다.“조만간 제가 비단실을 사 오려고 하는데, 유모께서 혹여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제가 함께 챙겨드리지요.”상 유모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웃었다.“마님의 마음만으로도 족합니다. 괜히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작은 마님의 분부는 잊지 마십시오.”강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대답했다.“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며칠 후면 작은 마님께서도 초안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상 유모가 떠난 후에야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백마사에서 아무 일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혼례는 결국 앞당겨지고 말았다.만약 이것이 정해진 운명이라면 충분히 짓밟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강시아는 담담한 얼굴로 소매 속 은표를 만져보았다.아직은 부족하다.그녀는 결심했다. 반드시 연아에게 한평생 근심 없는 삶을 안겨주리라고 말이다!출문할 즈음, 설강은 자꾸만 강시아를 곁눈질을 하며 훔쳐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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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여서린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강 마님, 어제 마님께서 떠난 뒤 유 대인께서 저를 붙들고 마님에 관한 몇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저와 이토록 많은 말을 나누신 건 처음이었지요.”강시아은 잠시 멍해졌다.“여 아가씨, 전 그분을 모릅니다.”그러자 여서린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오해는 마십시오. 마님을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마님께서는 주 세자의 첩실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마음을 두실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그럼… 아가씨께서는 왜?”강시아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이미 흐릿하게 잊고 있었다. 유한석과 오라버니가 벗이었다 해도 그녀는 정말 기억나지 않았다.“이번이 유 대인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신 날이었습니다.”여서린은 입꼬리를 씁쓸하게 올리며 웃었다.“그분 말씀에 따르면 마님의 오라버니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그의 생명의 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가 마님의 안부를 묻는 것도 모두 벗을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마님을 찾은 이유는…”강시아는 고개를 숙이며 낮게 말했다.“여 아가씨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부디 이것만 그분께 전해주십시오. 제 오라버니께 제가 경성에 있다는 걸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요.”여서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러시죠?”강시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을 돌렸다.“저는 여 아가씨께서 유 대인을 사모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두 분 사이에 다리를 놓아드릴 수는 없습니다.”두 달 남짓 뒤면 그녀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다. 이제 더 이상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여서린은 잠시 얼이 빠져 서 있다가 황급히 그녀를 따라가며 문턱에서 소리쳤다.“강 마님, 설마 그 오라버니께서 마님 집에 찾아와 돈을 뜯어갈까 두려우신 겁니까? 그분은 날마다 마님을 그리워했건만 마님께서는 그저 그분을 경계하기만 하시다니!”강시아는 순간 걸음을 멈칫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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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그 뒤로 며칠 동안 강시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수를 놓는 데에만 몰두했다.활짝 열린 창 너머로 생기 넘치는 정원이 한눈에 들오왔는데, 그 속에서 연아의 맑고 해맑은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담장 밖 영국공부는 온통 경사스러운 기운이 가득하게 다가오는 세자의 혼례 준비로 집안 사람들 모두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설강은 연아에게 갓 엮은 화관을 머리에 씌워주고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창 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자수틀 앞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꼼짝없이 바늘에 몰두한 강시아의 그림자가 있었다.그날 옥보루에서 돌아온 뒤로, 그녀는 벌써 닷새째나 한 발짝도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밤낮으로 바늘을 꿰며 먹는 것도 잊은 채 수놓아 이제는 젓가락조차 들기 힘들 지경이었다.설강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주인의 뜻이 꺾이면 고통을 짊어지는 것은 늘 아랫사람들 뿐이었다. 강시아가 아무리 세자의 보호를 받는다 한들, 정실이 들어오면 모진 시련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때 만약 송하윤이 연아을 앞세워 강시아를 억누르려 든다면 그녀는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겉으로 보기에는 온통 꽃비단 같은 풍경이지만 그 속에 깃든 고통은 오직 그 안에 선 사람만이 아는 법.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이라 한 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설강.”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자 창가에 서 있던 강시아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강시아는 수틀에서 수를 뜯어내어 건네며 말했다. “이걸 지금 가지고 가서 큰 마님께 여쭤보거라. 서수의 입에 물린 것을 진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은실로 놓아야 할지.”그 서수는 설강이 옆에서 매일 지켜보며 완성한 것이었는데, 지금 막 떼어내어 바라보니 금세라도 살아 움직일 듯 생생했다.설강은 수 놓이지 않은 공허한 수복의 복숭아 자리를 보며 억울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이 자수 한 폭 때문에 마님께서는 한 달 넘게 등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셨사옵니다. 심지어 지금은 수저조차 들기 어려운 처지지요. 한데 송 아가씨께서는 복숭아 하나 덧놓는 것으로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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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강시아는 몇 번이나 손에 닿았으나 끝내 받지 못한 돈주머니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다짐했다. 물고기가 제법 크니 이제는 거두어 들일 때가 되었다고. 그녀는 은은한 웃음을 띠며 돈주머니를 받아들며 말했다.“연아가 요 며칠 내내 집안에만 갇혀 있어 답답했을 것이다. 오늘은 나가 바람도 쐬고 기분도 풀어주자꾸나.”연아는 밖으로 나간다는 말에 금세 환하게 얼굴을 빛내며 폴짝 뛰어올랐다.경성에서 이름난 주루라면 덕흥루가 으뜸이긴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곳이 바로 회월루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회월루는 음식을 파는 주루인 동시에 뒤편에 연계된 별루가 있어 은밀한 풍류의 장으로도 이름이 높다는 것이다. 회월루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흥을 즐기려는 사내들이다. 그러나 그곳의 대주방장이 내놓는 별미만큼은 천하제일이라, 달마다 새로운 요리를 선보여 사방의 맛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각 가문의 하인들이 오로지 음식을 사러 이곳을 찾는 일도 잦았다.잠시 후 강시아가 몇 사람과 함께 가마에서 내렸을 때, 하 유모는 그만 기절초풍할 뻔했다.“마님, 여, 여기가 대체…?”강시아는 태연하게 답했다.“여기도 그저 어디까지나 음식을 파는 집일뿐인데, 뭐 그리 놀라는 것이냐?”회월루라 해도 아예 아가씨들이 드나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실로 드문 일이긴 했다. 점소이는 그들을 보자마자 서둘러 인도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삼층의 별실로 향했다.방의 창을 활짝 열자 중정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공으로 쌓아 올린 바위, 졸졸 흐르는 물, 만발한 꽃과 푸른 버들잎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풍광뿐만 아니라 음식 또한 뛰어나, 만약 뒷간의 풍월 자리가 없었다면 덕흥루의 명성도 회월루에게 내주어야 했을 정도였다. “어머니, 여기는 정말 예뻐요!”연아는 작은 손으로 의자에 올라서 창턱을 꼭 붙잡았다. 그 순간, 마침 맞은편 1층 마당에 사람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호기심에 어머니의 팔을 붙들고 몸을 내밀었다. 강시아는 서둘러 그녀의 뒷덜미를 움켜쥐어 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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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설강이 헐떡이며 다락방 문을 밀고 들어서자, 방 안에는 이미 낯선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다. 강시아는 얼굴이 잿빛으로 질린 채로 주종현의 품에 단단히 끌어안겨 있었다. 그때, 강시아의 코끝을 스친 것은 은근한 피 냄새였고 등 뒤로는 그의 팔에서 스며드는 축축한 온기가 옷자락을 적지고 있었다.아까만 해도 그녀는 창 아래서 소휘와 몇 마디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주종현이 곧바로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움직이지 말라는 말만 뱉어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살기를 잔뜩 품은 사내 서너 명이 잇달아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연아는 아직도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강시아 품에 안겨 천진난만하게 물었다.“어머니, 연아의 밤떡은 어찌하여 아직도 오지 않은 겁니까?”주종현은 태연히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대체 무슨 일로 이리 급하게 들이닥친 것이냐? 설마 본 세자가 돈을 내지 않을까 두려운 게냐?”사내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저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정말 영국공부의 세자인지를 말이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 중 하나가 두 손을 모아 읍했다.“회월루에 도적이 들었는데, 저희가 쫓아가다가 실수로 세자를 방해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주종현은 코웃음을 흘렸다.“도적이라? 본 세자가 훔친 게 너희 집의 쌀이더냐, 아니면 반찬이더냐? 어서 주인을 불러오너라!”그 순간, 강시아의 허리께가 은밀히 꼬집혔다. 그녀는 곧바로 눈치를 채고 부드럽게 나섰다.“이분들도 다 임무를 따른 것일 뿐입니다. 서방님, 오늘은 그냥 넘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아까 연아와 이미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식사를 마치면 연을 날려주신다고요.”연아는 때맞추어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환성을 질렀다.“연 날릴 겁니다!”주종현의 얼굴빛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아직도 나가지 않고 뭐 하느냐? 썩 물러가거라.” 그렇게 사내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주종현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빛은 오히려 더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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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하 유모와 설강은 작은 마차에 남겨졌다. 강시아는 연아를 품에 안고 주종현의 마차에 올랐다. 그 마차는 그녀가 평소 타던 작은 마차보다 두 배는 넓었다. 모녀 둘이 함께 뒹굴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주종현은 소매를 걷어올리더니 거즈 가장자리를 따라 피부가 검게 변해가는 것을 보고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그놈들의 칼에 독이 묻어 있었군.”그때, 위심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세자, 누군가 뒤를 쫓고 있사옵니다.”강시아는 눈살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았다.“돌아갑시다.”주종현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지금 돌아가면, 저들이 이걸 핑계 삼아 국공부까지 샅샅이 뒤질 것이다.”뒤진다니?강시아의 머릿속에 곧바로 대나무 숲의 흔적들이 스쳤다. 아직 하대우가 찾아내지 못한 은전이 그곳에 묻혀 있을 터였다. 만약 수색이 들어온다면 절대 숨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주종현의 상처로 옮겨졌다. 이대로라면 그는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지금 그가 죽어서는 안 된다. 그가 쓰러지면 그녀가 도망칠 길은 다 막혀 버릴 게 분명했다.“의관으로 가야 합니다!”강시아는 단호히 결정을 내리고 몸을 돌려 스스로의 목구멍을 꾹 눌렀다.“우엑!”방금 삼켰던 음식이 거의 치밀어 올라왔다. 주종현은 곧 눈치를 채고 명령을 내렸다.“회림의관으로!”마차가 길모퉁이를 급히 틀자 뒤따르던 이들도 미처 따라잡지 못해 우왕좌왕했다.강시아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바퀴에 기대어 회월루에서 먹은 음식들을 죄다 토해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자 그녀는 이를 악물며 속으로 저주했다. 차라리 오늘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난 생에는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그는 살아있었다.뒤따라온 마차에서 내린 하 유모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마님, 혹시 몸에 기쁜 소식이 있는 게 아니겠사옵니까?”주종현은 은근히 시선을 흘려 여전히 뒤를 밟고 있는 자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이를 악물며 부상당한 팔로 딸을 끌어안았다. 연아의 치맛자락이 절묘하게 찢어진 소매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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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설강은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홱 돌렸다가 송하윤이 음울한 낯빛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황급히 하 유모의 팔을 끌어 문가 쪽으로 몸을 피했다.중정에 가지런히 놓인 약 받침대가 시야를 가려주고 있었기에 송하윤이 이쪽으로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강시아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었다. 설강은 그녀와 크게 부딪친 적은 없었지만, 작년에 송하윤이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들어온 뒤부터 종종 국공부에 드나들면서 그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큰 마님의 뜰에서 시중을 들던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우아하고 오만한 태도를 취하던 여인이 돌아서자 곧장 살얼음 같은 얼굴로 소영에게 채찍 형벌을 받으라 명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러니 이런 인물은 차라리 멀리하는 게 상책이었다.“어머니! 이 잎사귀 모양이 꼭 강아지 같아요!”청아한 소녀의 목소리가 중정을 울리자, 막 계단을 오르려던 송하윤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약 받침대 사이로 비치는 사람 그림자들을 주시했다가 곧바로 발길을 돌려 곧장 중정으로 향했다.강시아는 연아가 약 받침대에 부딪칠까 두려워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곳에서 나오자 마침 정면에서 송하윤과 눈이 마주쳤다.강시아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며 본능적으로 계단 쪽을 흘끗 보았다.“송 아가씨께서 어찌 의원에 오셨습니까?”송하윤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강 마님, 혹시 몸이 불편하십니까?”강시아는 그제야 조금 전 의관 문 앞에서 토하던 모습을 들켜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얼른 몸을 낮추며 말했다.“첩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다만…”“저보다 먼저 서자라도 낳으려는 것이 아닙니까!”그녀의 말이 거칠게 끊겼다. 강시아는 송하윤의 눈에 가득한 적의를 바라보며 백마사에서 나눴던 말을 떠올렸다.그러고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웃음은 송하윤의 다치기 쉬운 심장을 정확히 찌르는 비수였다. 그녀의 독한 본성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보아온 터였다.그때도, 지금도 강시아는 늘 피하기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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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강시아는 눈을 깜빡이며 다소 억울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송 아가씨,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첩은 오늘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송하윤이 만약 이 자리에서 손찌검을 한다면 조 씨가 굳이 그녀를 두둔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뒤에서 불쏘시개 역할은 기꺼이 해 줄 터였다!“아가씨!”사태가 더 악화되기 직전, 소영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러고는 겨우 숨을 고르더니 마침내 서 유모를 모셔왔다.송하윤이 돌아보자 서 유모가 무겁고 단정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그녀의 치켜 올라간 매서운 눈매가 강시아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녀는 곧이어 법도에 맞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그대가 바로 강 마님이셨군요. 부디 평안하시길. 저의 시가는 서 씨. 지금은 아가씨 곁에서 살림을 맡아보는 관사유모입니다.”강시아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닭이 새끼를 감싸듯 연아를 등 뒤로 감싸안으며 숨겼다.지난 생에 연아를 송하윤 곁에 기르도록 제안한 것도 바로 이 늙은 독사였기에, 그녀를 음탕한 혐의로 몰아 죽게 만든 일에도 분명 이 여인의 손길이 얽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첩과 서녀를 죽게 만드는 계책을 짜낸 장본인, 서 유모.그 따위 흉수한 수법이 대체 무엇이 대단하다고!강시아의 눈빛에 스친 경계심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서 유모는 그저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송하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아가씨, 시간이 늦었사옵니다. 이제 부로 돌아가셔야지요.”송하윤은 계속 말을 이으려 했으나 서 유모는 단호히 그녀를 붙잡아 마차로 이끌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타일렀다.“아가씨, 마님의 말씀을 벌써 잊으신 겁니까? 저 여인은 그저 첩일뿐, 그녀와 언성을 높이는 것은 신분을 더럽히는 일입니다.”송하윤은 참지 못하고 마침내 눈물을 터뜨렸다.“유모, 보지 못하였느냐? 그 여인이 날 무슨 취급을 했는지 아느냐? 고작 한낱 첩 따위가 감히 날 눈에도 두지 않는다고! 게다가 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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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마님, 실을 사왔사옵니다.”“잘 됐구나. 나는 곧 마무리니 하니, 잠시 후 네가 큰 마님께 보여드리고 그다음 바로 송부로 보내거라.”강시아는 고개를 들어 막 돌아온 설강을 흘끗 보았으나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서수의 입에 진주를 꿰매어 달아주고 감쪽같이 실매듭을 숨기자 그제야 한 폭의 수가 완성되었다. 창밖에 햇살이 드리우자 입에 보물을 머금고 내려앉은 서수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설강은 놀라움에 손을 뻗어 털결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드러난 자수를 쓸며 말했다.“마님, 이건 보내실 것도 없사옵니다. 방금 전 송 아가씨께서 오셨더군요.”강시아의 손목을 주무르던 손길이 순간 멈췄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럼 내가 함께 가마.”그러자 설강이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마님, 송 아가씨는 장차 정실이 되실 분 아닙니까? 어찌 이때 한순간의 기세를 부리려 하십니까? 더구나 송 가는 본디 큰 마님의 친정….”차마 큰 마님이 공평하게 재단할 리가 없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지만, 강시아는 그걸 알고 있는듯 담담히 답했다.“나도 안다. 잠시 기다리거라. 옷만 갈아입고 나오마.”설강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큰 마님의 뜰로 향하는 길, 강시아는 우연히 주종현과 마주쳤다. 그녀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의 오른팔에 떨어졌고, 속에서 원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자기가 목숨을 건져준 은인인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은전 한 닢도 없다니.주종현은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팔에 멈춘 것을 보고 그녀가 자신의 상처를 걱정하는 줄로 착각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한결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이제 많이 나았다. 임 의원은 본디 조부를 따라다니던 군의관이었지. 의술이 뛰어나지만 나이가 있어 먼 길을 못 다니게 되자 경성에 의관을 열고 자리를 잡으신 것이다.”강시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했다.“그렇습니까? 나았다니 다행이군요.”그러고는 애써 한마디 덧붙였다.“첩은 걱정이 되어 밤새 뒤척이다가 결국 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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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강시아는 속으로 몇 번만 더 서 있으면 그 자리에는 발자국 모양의 움푹 팬 자국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종현은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손자, 할머니께 문안드립니다.”그러자 강시아도 그에 따라 무릎을 굽혀 예를 표했다.“큰 마님의 평안을 빕니다.”큰 마님의 두 눈에는 자애가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곧이어 손자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네가 문안을 올리러 온다 하기에 이 할미가 너를 위해 밤떡을 남겨 두었단다.”그러면서 옆에 서 있던 고 유모를 가리켰다.“고 유모도 특별히 밤전을 부쳐 두었지.”주종현은 오직 큰 마님 앞에서만 어린아이 같은 의지와 그리움을 드러냈다.“예, 오늘은 손자가 배부르게 먹겠습니다.”큰 마님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마지못해 시선을 뒤로 돌려 강시아를 바라보았다.“연아, 그 아이도 자기 아비처럼 밤떡을 좋아하니, 이것 좀 가져다 주거라.”강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답했다.“큰 마님께 감사드립니다.”큰 마님의 눈길은 순간 그녀 손에 들린 자수로 옮겨졌다.“수는 이미 완성되었느냐?”“예.”강시아는 두 손으로 수놓은 비단을 바쳤는데, 곧 고 유모가 다가와 그것을 펼쳤고 그 순간 그녀조차 넋을 잃고 말았다.서수는 마치 눈앞에 살아 있는 듯 생생했고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자 수놓인 털결마저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수놓은 천이라는 걸 망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한 신령스러운 짐승 같았다!고 유모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강 마님의 자수 솜씨가 스승님을 능가했구려!”강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었다.“고 유모께서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것 같습니다. 첩은 천박하고 재주가 얕은 몸인데 어찌 감히 이런 찬사를 받겠습니까?”그녀의 자수는 본디 상 상궁에게서 정통으로 배운 것으로 만들었는데, 이번 서수 그림에 사용한 기법은 전생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만든 것이었다.그 전생은 바로 딸 연아에게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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