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서랍은 초하가 세 번에 나누어 날랐다.한 번에 넷씩 포개 안고 마당을 건넜는데, 세 번째에는 맨 위의 서랍이 턱을 밀어 올려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편원 문지방에 발끝이 걸리자 서랍 하나가 품에서 미끄러져 전돌 위에 엎어졌다."어머, 이걸 어째!아가씨, 이거 비싼 거예요? 안 비싼 거죠?안 비싼 거라고 해 주세요!"엎어진 서랍 둘레로 마른 뿌리 조각이 흩어지자, 한경은 쪼그려 앉아 한 조각을 주워 앞니로 끊었다.혀뿌리가 떫게 오그라들어 마른침이 넘어갔다."비싼 거야."초하가 남은 서랍을 안은 채 그 자리에 굳었다."이름만."초하가 굳은 채로 눈만 끔벅이다가, 뒤늦게 어깨를 들썩이며 킥킥거렸다.한경은 흩어진 조각을 서랍에 도로 쓸어 담고, 서랍 앞에 붙은 이름 딱지를 손톱으로 떼어 냈다.한경은 서랍들을 벽 아래 들뜬 종이 앞에 한 줄씩 괴어 올렸다.서랍마다 한 줌씩 덜어 흰 사발에 담고 물을 붓자, 사발 여섯의 물빛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천천히 우러났다.누런 것, 불그죽죽한 것, 맹물처럼 맑은 것.사발이 비면 초하가 우물에서 새 물을 떠 왔고, 그러는 동안 문틈으로 든 볕이 전돌을 타고 옆으로 옮겨 갔다.허리를 펴려다 벽을 짚은 한경의 손끝이 어느새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저녁때 벽 아래 약장에는 이름 딱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떼어 낸 딱지는 서랍마다 바닥에 도로 붙었고, 서랍 앞에는 먹으로 찍은 표만 있었다.점 하나, 점 둘, 짧게 그은 가로줄.어떤 서랍에는 아무 표도 없었다.초하가 약장 앞에 쪼그려 앉아 점과 줄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아가씨, 약방에선 맨 윗줄이던 게 여기선 맨 밑에 가 있어요.글자도 하나도 없고요.그럼 나중에 누가 약 찾으러 오면 어떡해요?소인은 까막눈이라 글자가 있어도 못 읽지만, 약방지기 아저씨는 그래도 글자 보고 찾던데요.""그러니까 나 말고는 못 찾아."---옷궤에서 빼 온 서랍은 캉 발치에 놓여 있었다.위쪽에 쌓인 것들은 유월부터 한경이 아침마다 알갱이를 골라낸 향낭이
Last Updated : 2026-08-1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