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교환

남편교환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7
Par:  도수정Mis à jour à l'instant
Langu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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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홀대받는 공작부인 루시아,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과거에 구해줬던 소년 디디라고 칭하며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겨울의 왕, 하우젠 대공 에이든. 전남편 데미안 벨루아.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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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itre 1

1화

그녀는 자주 지쳤다는 말로 모든 걸 대신했다. 원망스럽거나 상대가 실망스러울 때, 그에게서 받은 상처가 너무나도 커져서 가끔 그녀의 사랑을 역전해버릴 때. 그러니까 그녀가 겪어야 했던 모든 일들, 당했던 것들을 모두 감당할 수가 없을 때. 마치 노인 같은 거울 속의 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도망가고 싶다느니, 지쳤다느니 하는 말로 제 속을 표현하곤 했다.

지쳤다는 말은 쉬고 나면, 잠시 어딘가로 도망가고 나면, 그러다 그 자리로 돌아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찌되었거나 제 자리는 그의 곁이었으므로. 루시아 아르테미스 벨루아는 데미안 벨루아의 아내요, 제국의 단 둘뿐인 공작가의 공작 부인이었다. 비록 결혼 전에 데미안이 얼마나 지금의 황후인 마리아를 사랑했는지 전제국민이 다 알고 있고 모든 신문에 그 모습이 영원히 박제되었다고 해도, 가문에서 루시아를 팔아치우듯 공작가에 넘겼다는 것도 공작저의 사용인 중 누구도 그녀를 진정한 공작가의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나가던 개가 알았다고 해도.

***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의 문턱에 닿을 무렵이었다. 나무는 여전히 녹음으로 푸르렀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바람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루시아는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좋아했다. 데미안이 태어났고, 그들이 결혼한 시기였다. 그래서 풀벌레가 우는 저녁이면, 고요하게 앉아 테라스에서 밖을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녀의 곁에 그의 마음은 없었으나 그의 곁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어서 그 답답한 집을 떠나 공작부인이라는 조금 더 넓고 반짝이는 새장에 올 수 있어서. 아마 그녀에게 이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었으리라.

짧은 머리를 동경했고, 꾸미는 것보단 자연스러운 게 좋았다. 이를테면 나무 그늘 아래 흙바닥에 주저앉아 드레스가 엉망이 되어도, 머리가 바람결에 망가져도 신경쓰지 않는 쪽이 루시아다웠다.

유별난 아이라고들 했다. 어머니인 레이루나와도 다르고, 여느 귀족가의 영애들하고도 달라서. 그건 어떨 땐 저가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있으면 되니 아주 쉬운 일이었다가 더러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특히 제 모습이 원인이 되어 가족들로 하여금 수치심을 안겨줬을 땐 스스로가 하자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레이루나는 그녀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둘은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때로 그 사랑은 이유를 알 수 없게 루시아의 목을 죄었다.

도망갈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혼사를 치르던 중 혹은 그 전에 사고로 위장해 죽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구애를 하던 수많은 영식들 중엔

기사들도 있었으므로 그들을 따라 남자의 낯선 고향에 자리잡아 은거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다만 루시아가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젋은 황제와 황제파 귀족들의 득세로 세가 약해진 귀족파의 대표격인 아르테미스 백작가의 상황과, 밤에 잠못이루고 한숨짓는 레이루나의 눈가에 생긴 잔주름.

제 아버지나 오라비 제레미의 모진 말들 때문이기도 했고, 절반은 데미안 때문이었다. 현재의 황후를 사랑하여 예전 황태자와 삼각관계에서 사랑싸움을 하다가 끝내 패배한 남자. 돌이 굴러가듯 그 자리에 빠르게 박혀서는 손톱만한 관심 아니 적어도 존중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면 결혼한 지도 3년이 넘은 지금은 자연스럽게 감히라는 말이 생각났다. 감히, 제 아이도 잡아먹은 주제에. 거북하게 치른 관계속에 태어난 아이는 유달리 루시아를 고생시키다가 열흘 정도 살다가 세상을 등졌다. 이름도 없이, 제 아비의 품에 안기는 일도 없이. 그마저도 루시아가 사경을 헤맸기에 의식을 찾고 깨어났을 땐 모든 게 끝난 후였다.

아이의 관은 참나무로 되었는데 그녀의 품에 들어올 만큼 작으면서도 유난히 차가웠다. 그녀에게 있어 행복은 마땅히 주어진 할 일을 해낸 자의 보상이었기에 차마 루시아 자신에게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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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그녀는 자주 지쳤다는 말로 모든 걸 대신했다. 원망스럽거나 상대가 실망스러울 때, 그에게서 받은 상처가 너무나도 커져서 가끔 그녀의 사랑을 역전해버릴 때. 그러니까 그녀가 겪어야 했던 모든 일들, 당했던 것들을 모두 감당할 수가 없을 때. 마치 노인 같은 거울 속의 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도망가고 싶다느니, 지쳤다느니 하는 말로 제 속을 표현하곤 했다.지쳤다는 말은 쉬고 나면, 잠시 어딘가로 도망가고 나면, 그러다 그 자리로 돌아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어찌되었거나 제 자리는 그의 곁이었으므로. 루시아 아르테미스 벨루아는 데미안 벨루아의 아내요, 제국의 단 둘뿐인 공작가의 공작 부인이었다. 비록 결혼 전에 데미안이 얼마나 지금의 황후인 마리아를 사랑했는지 전제국민이 다 알고 있고 모든 신문에 그 모습이 영원히 박제되었다고 해도, 가문에서 루시아를 팔아치우듯 공작가에 넘겼다는 것도 공작저의 사용인 중 누구도 그녀를 진정한 공작가의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나가던 개가 알았다고 해도.***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의 문턱에 닿을 무렵이었다. 나무는 여전히 녹음으로 푸르렀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바람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루시아는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좋아했다. 데미안이 태어났고, 그들이 결혼한 시기였다. 그래서 풀벌레가 우는 저녁이면, 고요하게 앉아 테라스에서 밖을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녀의 곁에 그의 마음은 없었으나 그의 곁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어서 그 답답한 집을 떠나 공작부인이라는 조금 더 넓고 반짝이는 새장에 올 수 있어서. 아마 그녀에게 이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었으리라.짧은 머리를 동경했고, 꾸미는 것보단 자연스러운 게 좋았다. 이를테면 나무 그늘 아래 흙바닥에 주저앉아 드레스가 엉망이 되어도, 머리가 바람결에 망가져도 신경쓰지 않는 쪽이 루시아다웠다.유별난 아이라고들 했다. 어머니인 레이루나와도 다르고, 여느 귀족가의 영애들하고도 달라서. 그건 어떨 땐 저가 가장 편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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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언제나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머니, 레이루나가 부채로 제 표정을 능숙하게 가리며 물었다."루시, 아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니?"그녀가 아주 걱정스럽단 듯이, 루시아의 손을 애절하게 잡으며 말했다. 어릴 적 그녀가 꾸미지 않을 거라고 했을 때, 코르셋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다고 했을 때. 레이루나는 젊었을 적 꾸미지 않으면 언젠가 루시아가 후회할 거라고 했다. 아마도 백작부인으로서의 경험에 비롯하여 조언을 해준 것같았으나 루시아를 위한 말은 아니었다.루시아 아르테미스, 언젠가 팔아치울 백작가의 귀한 상품을 위한 말이었다.인형같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루시아가 말했다. 어머니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그이가 워낙 바빠서요. 어머니. 둘 사이의 일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어요."루시아는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떠올리려고 했다. 아버지인 아르테미스 백작은 주사가 있었다. 여자도 밝혔다. 정부를 들이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레이루나는 아이들, 루시아와 아들 제레미를 위해 참고 버텼다. 불면증도 그때 생겼다.어딘가 의문스러운 마차사고로 아버지가 죽고, 제레미가 백작위를 이었다. 그 뒤로 레이루나의 삶은 전보다 자유로웠다. 백작인 아들. 공작부인인 딸. 선대백작부인인 저의 신분, 넘지는 재산. 남편에게 얽메이지 않는 삶. 그건 사실 이 제국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이었다.때때로 루시아는 어렴풋이 레이루나의 삶이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루시아가 데미안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그가 행복했으면 했다. 매일 황궁으로 출근하는 그가 황후의 정원이 있는 방향으로 몇 분간 시선을 준다는 것은 이미 사교생활이 전무한 그녀의 귀에도 들어올법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예전이라면 질투라도 났겠으나 오르지 못할 나무인걸 너무도 잘 알게된 지금은, 오히려 그가 그걸로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이름도 없는 아이는 언젠가부터 제 속에 생긴 자그마한 폐허에 묻어두고 늘 그래왔듯 루시아 혼자 기도를 올리고 애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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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루시아는 벨루아 특유의 웅장한 저택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제국에서도 손꼽힐만한 명작을 갖춘 저택의 미술관이나 도서관을 무척 좋아했다. 하루 종일 식사를 않고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기도 했다. 최근, 자꾸 새벽에 깨어나 잠이 부족했던 건지 루시아는 도서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한쪽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새소리와 창 밖으로 웅웅대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누군가 제 어깨 위에 겉옷을 얹어주는 게 느껴졌다. 셀레나인가. 무어라 말도 건넨 것같았는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대답하지 못했다. 무척이나 반가워하고 다정한 음성이라는 것만 기억했다.눈을 떴을 때 마주한 건 마지막으로 저를 아주 못마땅해 했던 자안이었다."루시아."그가 드물게 제 이름을 불렀다."손님이 왔소. 저녁 정찬을 함께 해야해."또 코르셋을 입어야겠군. 저절로 싫다고 생각해서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루시아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데미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를 두고 나가버렸다. 루시아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어깨를 둘러싼 털망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국의 양식은 아니었다. 금장이 박힌 것으로 보아 무척 신분이 높은 자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2화이걸 보고도 데미안은.거기까지 미치려 드는 생각을 도중에 끊어 냈다. 루시아는 적어도 스스로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지지는 말자고 자주 되뇌었다. 양뺨을 힘껏 두드린 그녀가 다시 복도를 걸었다. 위태로운 듯 정확한 걸음으로.저택의 대부분 사람들이 루시아의 편이 아니었으나 아르테미스 백작저에서 함께 나고 자란 유모의 딸이자 유일한 친구, 셀레나는 변치 않는 루시아의 편이었다. 가을 호밀을 닮은 갈색 머리. 에메랄드를 닮은 초록눈. 이따금, 루시아는 셀레나가 남자였다면 단연코 데미안이 아닌 그녀와 사랑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죠, 부인"셀레나가 머리를 만져주며 물었다. 루시아는 역시 그녀를 못속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푸시시 새어나가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셀레나 앞에서라면 그래도 된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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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것마저 귀여워 디디가 푸흐흐 웃자 루시도 같이 웃었다. 셀레나는 곁에서 미소지으며 둘을 지켜봤다. 루시가 저렇게 마음 편하게 웃는 걸 언제 보았나. 친구로서 디디라는 소년이 너무 고마웠다.그는, 점점 돌아가지 않을 생각도 했다. 제국으로의 망명을 생각했다. 루시의 곁에 남아 그녀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를 따르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두고온 이들은 살아있을까? 고작 열 살짜리 소년을 믿고 목숨을, 충성을 바치던 어리석은 그의 사람들은.루시는 종종 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걸 알았다. 배우지 않아도 보았다. 원체 영특한 아이였다. 디디는 루시를 오래 속일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꼭 오늘같은 가을이었다.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여름날 소년이 흘린 구슬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던 루시가 이제는 그의 곁에서 숄을 걸치고 앉아있었다."디디, 가야 해?"망설이다가 물은 물음이었다. 반년 가량 숨어지냈다. 그를 찾는 이들도 그의 생사를 더이상 확신하지 못할 시간. 추적자들이 방심한 시간. 이때에 돌아가야 했다."......"하지만, 루시가 남아달라고만 한다면. 그는 남을 작정이었다. 그의 의미는 모두 그녀의 옆에서 생겨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얻은 두번째 생은 모조리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루시가 쓸쓸하게 웃었고, 마침내 그에게 이별을 고했을 때 디디는, 아니 에이든은 둘 사이의 추억을 가슴속에 품고 조국으로 떠났다.그 뒤로는 모두가 살아돌아온 소년이 어딘가 미쳤다고 부르는 나날이었다. 혁명군을 지원하고, 반란을 도모했다. 그러나 그는 황좌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공화정이었다. 그의 사람들조차 반대했던 것. 이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는 것. 하지만 루시가 그랬다."옛날 고대사회에는 공화정이라는 게 있어서 광장에서 사람들이 토론하면서 나라의 문제를 결정했대.""그렇구나."아고라의 이야기구나. 황제학 수업 때 지겹게 들었던 디디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는데 어쩐지 시무룩한 루시가 덧붙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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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러니, 지금의 만남은 따지자면 에이든의 입장에서는 10년만에 만나는 두번째 만남이자, 의식이 있는 루시와는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였다."안녕하십니까, 공작 부인."루시아는 눈을 뜨자 저를 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의 놀랐다. 공작부인이 잠든 걸 지켜보는 외국인 대공?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그녀가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사람들은 물렸습니다."그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전한 조심스러운 성격이 반가웠다."그렇군요, 그런데 어쩐 일이신가요, 하우젠 대공 전하."그와 거리를 두려는 듯 강조하는 대공 전하라는 호칭이 가슴 아팠다. 그걸 모른 척 하면서 태연하게 에이든이 말을 이었다."눈 앞에서 쓰러지셨잖습니까, 너무 걱정이 되어서요."대공이 누구에게나 다정한 성품이라고는 들었으나 그것이 저에게도 해당될지는 몰랐던지라 루시아가 느리게 눈을 껌뻑였다."걱정이요?"그녀가 낯선 외국어를 들은 것처럼 한번 더 발음했다. 공작가에 들어온 이후로 셀레나 이외의 누군가가 저를 걱정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후사를 못낳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루시아라는 여자의 몸이 걱정되는 것같은 눈이었다. 분명한 호의가 담겨있었다. 왜지? 처음본 사람인데."공작부인의 명성은 나스에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그건 비꼬는 것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루시아가 푸른 눈동자를 곧게 마주해왔다."제 잇속도 못차리는 바보같은 여자라고요?"에이든이 말을 정정했다."모지리 남편을 품어주는 다정한 여성이라고요."모지리. 누가봐도 데미안을 뜻하는 단어였지만 루시아는 잠시 인지부조화를 겪었다. 지금 누구더러 모자라다고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건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들여다보니 그가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농담인 모양이었다."놀랐습니다. 그런 장난은 하지 말아주세요."사실 에이든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여성 인권이 몇년 사이 부쩍 높아진 나스에서는 짝사랑에 눈이 멀어 아내를 방치하는 남편 벨루아 공작과 그럼에도 그의 곁을 지키는 공작부인의 이야기에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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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셀레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디디라는 걸 알았다. 황자 신분을 숨긴 게 괘씸했지만, 어쨌거나 루시아를 보러와줬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갔을 땐 이미 두 사람이 회포를 푸는 중이었다."셀레나 오랜만."디디가 손을 흔들었다."나스의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셀레나는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이젠 그럴 필요 없대도."그의 말은 무시한 채로 셀레나가 루시아에게 다가갔다. 아무 일이 없었는지 확인하려고."여기는 제국이고, 듣는 귀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전하."셀레나의 말에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안다는 듯."그래서, 디디는 무슨 일로 온거야?"에이든은 가만히 루시아를 들여다봤다. 결혼식에서 봤을 때 보다 안색이 안좋다. 더 야위었다. 손목이 세게 잡으면 부러질 듯 갸냘팠다. 어릴 적에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그가 제 입안살을 짓씹었다."루시, 나랑 떠날래?"제법 충동적인 듯한 그의 물음에 루시아가 눈을 크게 떴다."뭐?"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 루시가 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지난 여름이었고,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국경 건너에서 들었을 때부터 이미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형편없이 망가지는, 처음보는 모습에 가신들이 그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녀가 눈을 뜨게만 된다면, 포기할 수 있다. 무엇이든. 제 목숨이라도 좋았다. 그렇게 간절히 나스에서 했던 기도가 닿았을까, 루시아가 눈을 떴다. 그리고 일정을 정리하고 제국에 오기까지 꼬박 한 계절이 걸렸다. 그는 농담조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루시는 그가 진심인지 헷갈렸다. 어릴 때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했던 것같은데, 언제 이렇게 능글맞아진거지? 그녀의 말간 디디는 어디가고. 겨울의 왕이 되어서 그런가. 하지만, 분명 나스로 떠나자고. 나스, 명실상부 마지막 황족이었던 에이든이 만든 대륙 최초의 공화정. 그곳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벨루아에 속해있었다. 저가 갈 수 있는 곳은 공작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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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데미안은 복도를 지나치다 대공을 만났다. 그쪽은 공작부인의 방이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곳에서 오지? 의뭉스러운 자였다."대공 전하."데미안이 예를 갖췄고,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접이 융숭했던 탓인지 어제 저녁의 일로도 대공은 벨루아를 탓하지 않았다.여상한 얼굴로 평온을 가장한 채 있었다. 데미안은 짐승같은 감으로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알았다. 굳이 마리아를 제 앞에서 들먹인 것도 분명 속셈이 있는 것같아 보였다. 황궁에 가서 물으니, 황제가 말하기를 하우젠 대공은 황후를 알현하지 않았다고 했다.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왜지? 왜 벨루아로 왔지? 나스의 잔존하는 황실 부흥 세력을 지원한 걸 들킨 건가. 그건 황제의 명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최대한 늦추려는, 기득권의 발악이었다. 데미안은 루시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녀의 가치는 논외 밖이었다. 후사도 볼 수 없었던 여자.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야했다. 하지만 어쩐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저를 두고 간다는 생각만 해도 어쩐지 손에 식은땀이 났다. 그가 어느새 끈적해진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건 조만간 찾아올 불길함을 미리 예측한 것인지도 몰랐다.루시아가 웬일로 집무실에와 그를 찾았다. 데미안이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들라고 했다. 또각또각, 규칙적이고 정확한, 기계같은 걸음새. 아르테미스 백작가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인형이 그에게 말했다."각하."데미안이 아니었다. 그가 못마땅한 마음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주치의에게 들었습니다. 더이상 제가 임신이 어려울 것같다고 들었습니다."데미안도 얼마 전에 들은 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처사를 고민하던 찰나였다. 그때 루시아가 먼저 말했다."이혼해주십시오."이혼이라. 그가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르테미스가 밀어넣은 뻐꾸기알이 이제는 스스로 내버려달라 청하다니."어찌 그러시오."루시아는 그의 속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는 남자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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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오지 않는 왕자
루시아가 통보하듯이 그에게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뒤로 감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에게 훤히 속을 들킬까봐 두려웠다.언제나 꿰뚫어보는 듯한 보라색 눈동자가 오늘따라 저를 끝까지 따라붙는 것같았다. 방으로 뛰어오다시피 한 루시아가 문을 닫자마자 그 자리에 주르륵 주저앉았다.놀란 셀레나가 루시아에게 달려왔다."루시!"품안에 손수건으로 루시아의 땀을 닦아 주었다."괜찮아. 셀리, 나 데미안한테 말했어."식은땀을 흘리던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곤 다시 쓰러졌다. 몸살이었다.더러 악몽을 꿨다. 이미 지나간 시절, 오래된 비명임에도 차마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스물이 넘은 삶을 가지고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평화로웠다. 모든 게 끝났음에도 그녀 혼자 폐허에 남아있는 일이 잦았다. 처녀 시절에 구애하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는 그곳에서 저를 꺼내주겠다고 자신했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루시는 작정이라도 한 듯 깨어나지 않았다. 열은 진즉에 내렸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희박해 그런다고, 에이든이 황궁에서 데려온 황궁의가 그렇게 말했다.그는 기다렸다. 오래도록 곁에 머물며 그녀를 기다렸다. 어느 세계에서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으면서 늦게 온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는 루시라면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자신이라고 탓하며 살아줬으면 했다.루시아는 꿈을 꿨다. 운명, 저에게 그런 게 있다면, 그래서 백마 탄 왕자님이 동화처럼 나타나려면 진즉에 일찌감치 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르테미스 백작에게 학대를 받을 때, 데미안에게 시집가야 했을 때, 그녀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외면 받을 때, 세상에서 더없이 혼자라고 느꼈을 때, 아이를 잃었을 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에 루시는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았고, 늦게 찾아와 미안하다는 남자 디디조차 운명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무리 남들이 둘을 운명이라고 묶는데도.디디, 에이든. 그가 곁에 있는 걸 내내 느꼈다. 셀레나의 목소리도 들렸다. 두 사람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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