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 아들을 구하려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고예진.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외면한 채, 아들과 함께 자신의 첫사랑을 품에 안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기적처럼 살아난 고예진은 망설임 없이 이혼을 선언했다. “이혼하고 나면, 아들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마.” 처음엔 그냥 그런 협박일 뿐이었다. “그만 좀 해. 이혼 타령, 이제 지겹거든?” 한 달 후엔, 비웃음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6개월 뒤, 고예진 곁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자, 전남편과 아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여보, 우리가 잘못했어. 아이도 당신을 그리워해.” 그러나 돌아온 건 단 하나, 싸늘한 대답. [저기요, 아이 핑계 대며 불쌍한 척은 이제 그만하시죠. 제 아내는 더 이상 그런 말에 흔들릴 사람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고예진은 더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이제 그녀의 인생에, 그 뻔뻔한 부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View More“아린아, 나도 알아. 이게 너한테 얼마나 큰 상처일지. 그래도 나 예진이랑 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어. 그냥... 아이만 필요해. 이안이 병으로 무너지는 거, 그냥 빤히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어.”아린은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뻔했다.‘봐, 부윤제 이 인간은 진짜 최악의 쓰레기야.’‘전처랑 애는 낳겠다면서, 재혼은 절대 아니라고?’‘세상에 이런 이기적인 말이 또 있을까?’‘오히려 고예진이 더 불쌍하네. 부씨 집안에서 다 뜯기고, 남은 게 뭐야.’속으로는 혀를 차면서도 아린은 억지로 착한 척, 이해심 많은 아내의 얼굴을 했다.“내가 안 물어봤으면, 오빠는 도대체 언제 말하려고 했던 거야?”윤제는 고개를 숙인 채 목소리를 낮췄다.“숨기려던 건 아니야. 그냥...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어. 결국은 네게 상처 주는 일이니까.”“고예진은 뭐래? 벌써 허락했어?”윤제는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예진한테도 너무 힘든 일이니까. 당장은 대답을 못 하더라. 그래도 나는 포기 안 할 거야.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예진이한테 다시 애를 낳게 해서 이안을 살려야 해.”아린은 순간 이를 악물었다.‘그래... 결국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남았구나.’하지만 얼굴에는 서럽게 일그러진 표정을 얹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목소리마저 떨리게 만들었다.“나 알아... 이안이 오빠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오빠가 절대 놓지 않을 것도 이해해.”“근데... 나도 그냥 평범한 여자야. 내 남편이 전처랑 아이를 갖는 걸 눈 뜨고 보는 거, 그게 얼마나 잔인한지... 나...”말끝이 흐려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윤제는 그 눈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죄책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그는 손을 뻗어 아린의 어깨를 감싸 쥐고, 억지로 눈을 마주쳤다.“아린아... 미안해. 정말 내가 널 배신하는 거 맞아. 근데 제발 이해해 줘. 예진이 애를 낳으면, 그 아이는 곧바로 우리가 키우는 거야.”“그냥 우리 둘의 자식이
아린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설마... 부윤제가 고예진을 찾아간 거야?’‘진짜로 고예진이랑 둘째를 낳겠다고?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건데...’‘세상 웃음거리가 되겠지.’이안 하나만으로도 이미 벅찬데, 만약 또 다른 아이가 생기고 윤제와 예진이 다시 가까워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그동안 쥐고 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터였다.불안이 짓누르자 아린은 깊게 몇 차례 숨을 들이마시며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눈길이 손에 쥐어진 약병에 닿자 다시 가슴이 뒤숭숭해졌다.이안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발병까지 걸린 시간도 짧고, 원래 몸이 약했던 터라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악화됐다.‘약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거잖아. 그런데 만약... 약이 없다면?’그 순간 아린의 뇌리에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이안이 죽으면... 나는 다시는 힘든 짐을 떠안을 필요도 없고...’‘부윤제도 고예진과 둘째를 낳을 일도 없어지지.’‘그럼 기회는 내게 돌아올 거야.’‘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가 당연히 부씨 집안의 상속자가 될 테니까... 모든 걸 내가 차지할 수 있어.’손에 힘이 들어가며 약병이 찌그러졌다. 아린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굳어 있었다.“이안, 날 원망하지 마. 이건 네가 몸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야.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살길을 찾아야 하는 거야.”“원망할 거면 네 엄마를 원망해. 네가 그렇게 태어난 건 결국 네 엄마 탓이니까.”스스로에게 수 차례 주문을 걸면서 마음을 다잡은 아린은 병원을 나가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비타민 C를 사서 이안의 약과 교체했다.병실로 돌아오는 길, 마침 윤제와 정면으로 마주쳤다.아린은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언제나처럼 다정한 아내의 얼굴을 지어 보였다.“이안은 벌써 낮잠 들었어. 오빠, 근데 오늘 오전엔 어디 갔었어? 애가 계속 아빠 찾으면서 칭얼댔는데.”윤제는 고개만 저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아린에게 확신을 주었다.‘역시... 고예
도서라는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띠웠다.“선재 그 녀석이, 부 대표 같은 잘생긴 친구도 뒀네요.”윤제는 굳은 얼굴로 더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길게 얘기할 시간 없습니다. 말씀드리죠. 당시 소송에서, 서민혁은 사모님 사건을 맡아 원고 측 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사모님 몫의 유산 중 20%를 가져갔습니다.”“사모님 기분이 좋을 리 없지요. 그런데 지금 기회가 생겼습니다. 서민혁을 제대로 흔들 수 있는 기회가요.”“그 일만 성사되면 사모님께서 잃으신 그 20%는 물론이고, 추가로 100억 원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민혁의 이름이 나오자, 도서라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가 곧 다시 미세하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까르르 돌리며 윤제를 빤히 살폈다.“서민혁이 당시 나에게 큰 손해를 입혔지요. 그런데 부 대표는 겨우 100억을 준다고요? 나보고 그 정도 돈에 목을 매라는 건가요?”“서민혁은 법도 정통한 사람입니다. 서민혁을 무너뜨리는 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라고 보십니까?”윤제는 도서라가 굳이 이렇게 맞받아치는 이유가 뻔히 보였다. 어쩌면 그녀는 100억이 적다고 느낀 것이다. 도서라가 일부러 조건을 흘리며 탐색한다는 걸 윤제는 간파했다.“저는 깔끔한 사람입니다. 깔끔한 사람과 일하는 걸 좋아하고요. 사모님이 도와주시면, 사모님에게 돌아가야 할 20% 전부를 보상해드리고, 거기에 추가로 100억을 드리겠습니다. 일이 성사되든 못 되든, 결정은 사모님 한 마디면 됩니다.”그 말을 들은 도서라는 더는 애써 태연한 척하지 않았다. 입가에 장난기 어린, 그러나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마음이 통하는 제안이네요. 쾌감이 느껴집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 일로 손잡지요. 즐겁게 일합시다.”...아린은 초콜릿과 애니메이션으로 이안을 달래서 겨우 낮잠에 들게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나 있었다.마침 그때, 의사가 새 약을 받고 의사에게 오라는 연락이 왔다.
“됐어, 별일 아니니까 너희들은 먼저 가. 예진이 좀 쉬게 해줘.”민혁의 말에 모두들 순간 ‘우린 그냥 이용만 당한 건가’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고분고분 자리를 떠났다.민혁은 시간을 가늠했다. 지금쯤이면 예진이 병실로 올라왔어야 했다. 그래서 병실 앞에서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예진은 보이지 않았다.‘이상하다... 혹시 또 그 윤제가 뭐라고 했나?’‘예진 마음이 상해서 그냥 안 올라온 건가?’불안한 예감이 스치자, 민혁은 발길을 돌려 한산한 계단 쪽으로 향했다. 조용한 6층에 다다랐을 때, 그는 곧장 예진의 모습을 발견했다.얇은 환자복 차림의 예진이 계단 한쪽에 앉아, 반쯤 몸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오늘따라 예진의 뒷모습은 유난히 작고 위태로워 보였다.가쁜 숨결을 내쉴 때마다, 예진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민혁은 순간, 햇살이 스며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예진이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는 착각을 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는데...’‘부윤제랑 얘기하고 나서 이렇게 무너진 건가?’‘설마, 아직도 부윤제에 대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 건 아니겠지.’민혁의 가슴이 서늘하게 죄여 왔다. 하지만 성급하게 다가가 위로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대신, 그는 조심스레 예진 위쪽 계단에 앉았다.텅 빈 복도는 조금의 소리에도 쉽게 울릴 만큼 고요했지만, 오늘따라 예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멍하니 앞만 바라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윤제가 했던 말들이 예진의 귓가에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이안이 병에 걸렸다는 말.사실 예진은 지난번 이안을 만났을 때부터 어렴풋이 눈치챘다. 아이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그럼에도 예진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안은 난산 끝에 태어나긴 했지만, 그동안 자신이 누구보다 세심하게 보살펴왔다.‘불과 반 년... 고작 반 년 만에 이렇게 병을 얻을 리 없어.’예진의 마음속에서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뒤엉켜
예진은 지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차라리 고요하게 화를 내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오히려 답답하고 숨 막히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웃기지도 않아. 이안을 아프게 만든 건 부윤제인데, 왜 내가 책임져야 해?’‘내가 또 뭘 잘못했다고?’윤제도 알았다.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얼마나 섣부른지.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게다가 아이란 당장 원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예진이 이안을 낳을 때도 이미 몸이 많이 상했었다.윤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우리 둘이 지금 둘째를 말하는 게 아니야. 이안의 생명을 말하는 거야. 이게 이안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어.”“네 아들이잖아. 아니, 설령 남의 애라 해도, 이렇게 외면할 수 있겠어?”이어 윤제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넌 왜 이렇게 잔인해? 이안을 두고 떠날 때도 그렇더니, 지금은 병든 애까지 모른 척할 거야?”예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버렸다.‘도대체 누가 누구를 탓하는 거지?’‘바람을 피운 건 부윤제였고, 날 불 속에 버린 것도 윤제와 그 아들이었어.’‘내가 키울 땐 멀쩡하던 애가, 고작 반 년 만에 병투성이가 됐는데...’‘그걸 나한테 뒤집어씌워?’예진은 순간 스스로가 불쌍해지기보다, 과거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그땐 대체 내가 뭐에 씌었던 거야?’‘어떻게 내가 이런 인간을 남편이라고 믿고 살았지?’예진은 차갑게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맞아, 나 잔인해. 나 모른 척할 거야. 이안은 이제 내 아들도 아니고, 엄마도 내가 아니잖아. 골수 검사는 해줄게. 하지만 나보고 또 애 낳으라고? 부윤제, 꿈 깨.”말을 마친 예진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돌아섰다.그러자 윤제가 급히 따라 일어나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예진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그 광경은, 위층 창가에서 모두 보고 있었다.민혁이 처음 창문에 기대어 내려다봤을 때,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에 하나둘씩 옆으로 몰려왔다.
“하, 팔자에도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한집 식구가 괜히 되는 게 아니잖아.”벤치에 앉아 있어도 예진은 위층에서 꿰뚫듯 쏟아지는 민혁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윤제 역시 뒤를 돌아 위쪽을 흘긋 바라봤다.“서민혁이 너를 많이 아끼더라.”예진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날 찾아온 게 이 따위 헛소리하려고 온 거야?”윤제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 끝에 낮게 입을 열었다.“예진아, 예전 일들... 나도 잘못한 거 알아. 네가 원망하든, 미워하든... 다 받아들일 거야.”예진은 냉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지금 와서 동정이라도 구하려는 거야? 불쌍한 척한다고 달라질 게 있어?’“난 당신한테 원망도, 미움도 없어. 그냥 아무것도 없어. 부윤제, 돌려 말하지 말고 할 얘기 있으면 똑바로 해. 내 시간 낭비하지 말고.”윤제는 한숨을 삼키듯 낮게 내뱉었다.“이안이 아파.”예진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단순한 감기나 열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아니었으면 윤제가 이렇게까지 찾아왔을 리 없었다.아무리 이안이 자신을 밀어내도, 결국 자기 뱃속에서 낳은 아이였다.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의 손으로 키운 아이였다. ‘안 사랑한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는 듯했고, 예진은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떨며 물었다.“무슨 병인데. 얼마나 걸리면 나을 수 있는데.”윤제는 고개를 떨군 채 힘겹게 내뱉었다.“백혈병이야. 맞는 골수 이식이 필요해. 우린 다 검사했는데, 전부 불일치였어.”예진의 심장이 순간 멎은 듯했고,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곧 차갑게 눈을 들어 윤제를 바라봤다.“이안이 멀쩡하던 애가 어떻게 갑자기 이런 병에 걸려? 원래도 몸이 약했는데, 고작 반 년 사이에 충치니 뭐니 아프기만 하더니 이제 백혈병까지?”“부윤제, 이게 당신이 말하던 ‘이안을 잘 돌본다’는 거야?”윤제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안의 잇따른 문제들은 전부 이 반년 사이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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