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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애니
김설은 술 얘기가 나오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안 돼요! 서이 언니 몸도 안 좋은데 술 마시면 안 돼요!”

강서이가 알코올 중독 직전까지 갔던 그때, 김설은 거래처 접대 자리에서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의 상황이 그대로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 김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의사는 조금만 더 늦었어도 강서이는 목숨도 구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서태우는 그 말을 듣자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설 씨, 우리 강 비서님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요? 강 비서님 주량 센 건 모르는 사람도 없죠.”

“예전에 강 비서님이 민도하 대표님이랑 북쪽 가서 프로젝트 얘기했을 때, 스무 명이 모인 자리에서 잔이 두 바퀴를 돌아도 멀쩡했잖아.”

“지금 와서 세 잔도 못 마신다고? 사람 봐가면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우리 노 본부장님 체면을 안 세워주는 건가?”

분위기가 갑자기 삭막해지자 노아리가 먼저 나섰다.

“태우야, 강 비서님도 여자잖아.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

서태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뭘 몰아붙여?”

그러고는 민도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이거 몰아붙이는 거야?”

민도하의 무표정한 눈빛이 강서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입가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아니.”

그 한마디에 서태우는 더 기세가 올랐다.

“봐요, 우리 민 대표님도 아니라잖아. 노 본부장님이 너무 착한 거지. 강 비서님은 상대한테서 이득을 뽑아내는 데 익숙한 노련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도 잘 알고.”

서태우의 비아냥이 쏟아질수록 강서이는 반격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개를 들고 민도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시선에 담긴 건 어딘가 기대 같은 것이었고, 어쩌면 마지막 희망이었다.

혹시나 ‘그만해’ 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혹은 ‘됐다’ 라는 짧은 한마디라도 건네주지 않을까?

‘제발, 한 번만이라도...’

그러나 민도하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 눈동자에는 오직 냉기만이 고여 있었다.

그 무표정함이 목덜미까지 차갑게 파고드는 순간, 강서이는 모든 걸 깨달았다.

마치 뒤에서 얼음물 한 양동이를 뒤집어쓴 듯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 이제 정말 끝이구나.’

강서이는 표정을 가다듬고 피식 웃었다. 다소 흔들리는 손으로 술잔을 들며 평온하게 말했다.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이 술, 마시면 되는 거죠.”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도 수많은 요령을 익혔다.

술 마시기 전 속을 채우고, 우유나 요구르트를 조금 마시고, 가능한 작은 모금으로 천천히 넘기는 그런 요령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많은 전투를 버텨냈다.

그러나 지금, 강서이는 어떤 기술도 쓰지 않았다.

그냥 잔을 비웠다.

한 잔.

두 잔.

세 잔.

독한 술이 콧속을 파고들고, 이미 고통스럽던 위장은 더 격렬하게 뒤틀렸다.

그럼에도 강서이는 다 비운 잔을 민도하 쪽으로 살짝 들어 보였다.

“다 마셨어요. 이제 가도 돼요, 민 대표님?”

민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는지 강서이는 보지 못했다.

애초에 민도하의 대답을 기다릴 여유조차 없었다.

룸을 나서며, 넘쳐오르는 위산을 억지로 삼키는 데 급급했다.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강서이는 변기 앞에 엎드리듯 쓰러져 토하기 시작했다.

토사물과 함께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한 뜨거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나마... 다행이다. 술 마시기 전에 위약 먹은 게 다행이야.’

‘항생제였으면... 큰일 날 뻔했어.’

처음부터 강서이는 술에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프라임로드투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강서이가 민도하와 처음 응대 자리에 나갔던 날, 까다롭기로 유명한 갑이 억지로 술을 권했다.

“이 정도는 마셔야 우리 일을 진지하게 한다고 봐야지.”

그 말에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문제는 민도하가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 입에도 대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강서이가 앞에 나섰다.

그날이 첫 술이었다.

한 입만 넘겨도 목구멍이 불타는 것 같았고 기침이 멎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리만 넘기면 민도하에게 큰 기회가 생긴다’라는 생각에 억지로 삼켰다.

그렇게 강서이는 첫 프로젝트를 따냈다.

민도하는 그때 말했다.

“자기야, 네가 프라임로드투자의 공신이야. 나중에 우리가 성공하면, 이 영광 같이 나눕시다.”

그 말 한마디가 강서이를 움직였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민도하에게 술잔을 넘긴 적이 없었다.

어떤 자리가 오든, 어떤 술상이든, 강서이가 대신 나섰다.

강서이의 주량은 그렇게, 수백 번의 전투에서 다져졌다.

그러나 오늘, 그 모든 경험과 희생이 칼이 되어 돌아왔다.

민도하가 지키고 싶은 첫사랑을 위해, 강서이가 쌓아 올린 방패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그녀에게 꽂혔다.

7년 동안 지켜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이 오히려 강서이의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

EVERYDAY에서 나왔을 때, 강서이의 머리 위로 비가 내렸다.

가을 끝자락에 내리는 비는 예고도 없이 쏟아졌고, 막 토한 탓에 속은 여전히 뒤틀려 있었다.

강서이는 더 창백해진 얼굴로 전화기를 꺼내 차량 호출을 하려 했다.

그때, 민도하의 운전기사 장성만이 강서이를 발견하고 급히 뛰어왔다.

“강 비서님, 끝나신 건가요? 민 대표님은요? 같이 안 나오셨어요?”

“응, 아마 아직 한참 남았을 거야.”

강서이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안에서 분위기 좋던데... 도하는 아리 옆에 있었으니까.’

‘당분간은 나오지도 않겠지.’

장성만은 출입문 쪽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강서이의 얼굴색이 심각하게 나빠 보이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 비서님, 먼저 모셔다드릴까요? 이 시간에 비도 오니까 차 잡기 힘들어요.”

강서이는 거절하지 않았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억지로 버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차량이 절반쯤 이동했을 때, 민도하가 전화를 걸어왔다.

장성만은 있는 그대로 상황을 보고했다.

“대표님, 강 비서님이 속이 안 좋아 보여서... 대표님은 금방 안 나오실 것 같아서 일단 강 비서님 모시고 나왔습니다.”

차량의 스피커로 울린 민도하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누가 네 월급 주는지 기억은 하냐?]

장성만은 등골이 서늘해져 곧바로 대답했다.

“대표님,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끊기기 직전, 민도하의 말투가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바람이 녹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차 곧 갈 거야. 여기 추우니까 안에서 기다려.]

노아리의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그럼 옆에 있어줘, 도하.]

노아리의 말에 대한 반응은 강서이가 들리지 않았다.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장성만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워낙 난감한 얼굴을 한 장성만에게 강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사님, 저 그냥 여기서 내려주세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여기는 택시가 잘 잡히는 구간도 아니었고,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장성만은 죄책감을 느끼는 듯 차에서 내리기 전 자신의 우산을 건넸다.

그래도 운이 따랐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서이는 바로 차량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강서이는 예상대로 열이 올랐다.

기침과 발열, 목의 칼칼함까지 온몸이 휘청거렸다.

유산 이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고, 위장은 늘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상태였다.

몸 안의 면역력은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기에 작은 비바람에도 그대로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서이는 오늘 트웨이의 진우수 대표와 프로젝트 미팅이 잡혀 있었다.

어제 회의에서 민도하가 직접 언급한 그 프로젝트였다.

더 미루면 민도하가 어떤 말로 또 비꼴지 뻔했다.

체온계의 숫자를 확인하니 38.5도를 가리켰다.

당장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괴로운 열이었다. 해열제를 먹으면 조금 나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진우수 대표가 술자리를 선호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협상은 반드시 술 앞에서 해야 한다는 타입이었다.

강서이는 서랍 안의 해열제를 다시 밀어 넣고 손잡이를 닫았다.

‘약 먹고 가면 술 마실 때 큰일 나지. 적어도 의식은 또렷해야 해.’

그리고 서류를 챙겨 바로 회사를 나섰다.

...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강서이는 미리 술과 안주를 주문해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우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식탁 위에 놓인 메뉴들이 모두 자기 취향이라는 걸 확인한 진우수는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었다.

“강 비서님, 정말 트웨이로 옮길 생각 없어요? 연봉은 원하는 만큼 얘기하면 되는데...”

“감사합니다, 진 대표님. 그래도 프라임로드투자와 계약 기간이 남아서요. 아직 이직 계획은 없습니다.”

항상 하는 대답이었다.

강서이의 업무 능력은 업계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탐내는 기업도 많았다.

예전에 한 협력사 대표가 술에 취해 대놓고 강서이를 스카우트하려 한 적도 있었다.

그 자리에 민도하도 있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침대에서는 서늘한 무관심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강서이를 몰아세웠다.

끝내 강서이가 먼저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약속해야만 겨우 화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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