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진우는 수진과 이혼한 뒤 약 두 달 만에야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아이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유치원 복도 저 끝에서 아빠를 발견하고 달려와 안긴 아이들의 무게는 예전보다 가벼워진 듯해 진우의 가슴 한구석이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저릿했다. 품에 들어온 아이들의 작은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만이 그간의 그리움을 겨우 달래주었다.
현수와 현지는 진우와 함께 지낼 때보다 훨씬 철저하게 관리받는 모습이었다. 칼같이 다림질되어 주름 하나 없는 원생복, 은행원이었던 진우가 선뜻 사주기 힘들 정도로 비싼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구두들. 수진이 아이들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장식품으로 활용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겉모습은 화려했으나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한 생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사랑받는 아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당당함 대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소리에도 움찔거리는 아이들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진우는 자신이 자리를
구치소 독방의 서늘한 바닥에 누워 있던 찰스는 눈을 차갑게 빛내며 이를 악물었다. 신출내기 변호사를 통해 올린 뒤늦은 SNS 해명글마저 대중의 냉소와 비웃음으로 끝이 나자, 찰스는 이제 품격이나 명예 따위는 모두 던져버리기로 결심했다.그 와중에 CB 그룹이 공식 성명서를 통해 '찰스 CP의 표절 행위에 대한 정밀 내사에 착수했으며, 표절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강력한 처벌과 함께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실제 내사 팀을 가동했다는 소식이 접견실 변호인을 통해 전해졌다.사건의 모든 원인을 자신이 표절했다는 전제하에 내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찰스는 마침내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다. 강도진이 자신을 위해 립서비스나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신에게 모든 혐의를 덮어씌워 감옥으로 쳐넣고 매장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찰스의 이성이 사정없이 산산조각 났다."내사……? 내가 남의 스케치를 베꼈다고 전제하고 내사를 진행해?! 강도진 그 새끼가 나를 완벽하게 버리고 사지로 밀어 넣어?!"찰스는 변호인을 통해 강도진에게 끊임없이 면담을 요구했다."이건 강도진한테 똑바로 전해! 죽어도 나 혼자는 절대 안 죽는다고! CB가 표절 사실을 몰랐다고? 정말 몰랐을까? 계속 그렇게 나를 무시해 봐. 내가 아무것도 없이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큰 오산이야!"찰스는 서늘한 독을 품은 경고만을 도진에게 날렸다.찰스의 협박을 전달받은 강도진은 겉으로는 코웃음을 쳤지
찰스의 상해 및 살인미수 현행범 체포 속보가 터지자마자, 사전에 법무팀을 소집해 만반의 준비를 마쳐 두었던 강도진은 지체 없이 긴급 기자회견 대신 'CB 그룹 대표이사 강도진' 명의의 공식 성명서를 언론에 발표했다.[CB 그룹은 이번 찰스 CP(Chief Producer)의 불미스러운 개인 범죄 및 표절 논란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경영진으로서 개별 디자이너의 세세한 창작 과정까지 모두 감독하지 못하고, 찰스 CP를 과도하게 신뢰했던 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합니다.현재 CB 그룹은 자체 내사를 정밀하게 진행 중이며, 만약 찰스 CP의 표절 및 디자인 약탈 행위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에게 가장 강력한 법적·인사적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 아울러 이로 인해 발생한 CB 그룹의 브랜드 이미지 실추 및 재정적 손실 역시 찰스 개인에게 엄중히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입니다.또한, 본인은 오늘 남미 현지 정부와의 남미 광산 개발 최종 정식 계약 체결을 위해 출국합니다. CB 그룹은 단순한 패션·보석 디자인 브랜드를 넘어, 원자재 채굴부터 제조 및 유통까지 직접 총괄하는 글로벌 종합 기업으로 도약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근거 없는 과한 억측이나 악의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소문에 대해서는 법무팀을 통해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 대응할 것임을 밝깁니다.]도진의 속전속결 성명문 발표는 즉각 언론과 대중의 여론을 사정없이 갈라놓았다.찰스 CP의 야만적인 폭행 행위에 대해서는 전 국민적인 비난이 일치했지만, CB 그룹과 강도진 대표를 향한 시선은 인터넷
대표 집무실 문을 부서져라 닫고 나온 찰스는, 분노로 사정없이 씩씩거리며 사옥 복도를 걸어 나갔다.'강도진, 어린놈의 새끼가 감히 나한테 소리를 질러? 내가 누군데! 망해가던 CB 디자인팀을 기사회생시키고 명성을 다시 올려놓은 게 누구 덕인데!'찰스는 강도진이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보며 법무팀을 집결시켜 '꼬리 자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오직 도진이 자신이라는 독보적인 거장을 감히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헛된 자만심과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도진의 차가운 경고를 이행하지 않았다간 자신의 입지나 성과급에 차질이 생길 것은 분명했기에, 찰스는 어떻게든 유현을 찾아내 사적으로 합의를 끌어내기로 결심했다.한편, 유현은 찰스의 난입 위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정식 소장이 접수되면 코너에 몰린 찰스가 틀림없이 유현의 거처나 개인 작업실로 난입해 행패를 부릴 것이라 예견한 유진의 배려 덕분이었다. 유현은 예전에 유진이 운영하던 매장이자 현재는 유진의 개인 작업실로 탈바꿈한 안전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다.찰스는 유현의 집을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번번이 헛걸음을 쳤다. 분노와 조급함 속에서 도진의 차가운 경고가 머릿속을 스치자 찰스의 피가 바짝바짝 말라갔다.'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내 발로 오지 않을 놈이라면…… 오게 만들면 되지.'간교한 꾀를 낸 찰스는 CB 디자인팀의 막내 디자이너를 포섭했다. 찰스의 악독한 압박을 받은 막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유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앤더슨 교수의 차가운 폭로가 연회장을 때린 직후, 파티장은 순간 얼음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 뒤에 거대한 동요가 일렁였다."교, 교수님! 잠시만요!"강도진은 당황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급히 마이크를 틀어잡으며 스태프들에게 거칠게 손짓했다."여러분,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앤더슨 교수님께서는 학자로서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셨을 뿐입니다. 단상 위 화면을 봐주십시오!"도진은 급하게 자신이 원하는 최상의 결과만을 도출해 냈던 사설 지질 조사 기관들의 희망적인 분석 데이터와, 남미 현지 정부 관료들에게 뒷돈을 집어넣고 받아낸 관제 보고서들을 대형 스크린에 마구잡이로 띄웠다."보시다시피 현지 정부 공식 문서와 저명한 조사 기관에서는 매장량과 채굴 가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투자 가치는 이미 완벽하게 입증되었습니다!"그러나 목에 핏대를 세우는 도진의 열변에도 불구하고,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파티장의 분위기를 돌이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산가들과 투자자들은 냉소적인 눈빛으로 내밀어진 서류를 툭 내팽개치거나 쯧쯧 혀를 차며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공식 정부 문서? 어이구, 남미 관료들 호주머니에 돈 몇 푼 넣어주면 서류 만들어주는 건 일도 아닌데 누구를 바보로 아나.""그러게 말입니다. 앤더슨 교수가 불합격 보고서를 썼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요."
파티장 로비의 눈부신 역광을 뚫고 들어선 두 사람을 보며, 강도진은 한참 동안 이지수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혼 후 공식 석상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그 지수가 CB의 연말 갈라 파티장에 직접 발을 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까닭이다.도진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지수의 우아한 딥 네이비 실크 드레스뿐만이 아니었다. 지수가 가볍게 클러치를 쥐고 있는 왼손 손가락, 그곳에서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였다.'영원한 사랑'과 닮은 듯하면서도 완벽하게 다른 디테일.희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촘촘한 세공이 보석의 입체감을 극대화한 독보적인 반지는, 얼마 전 지수가 SNS에 사진을 올려 사교계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던 바로 그 디자인이었다. 마침내 그 반지가 실물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멍하게 반지를 내려다보던 도진의 신경을 사정없이 깨운 것은 모친 김미자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냐!"김미자의 히스테릭한 목소리에 이어, 그 곁에 서 있던 부친 강수한 회장의 묵직하지만 조심성 없는 호통이 날아들었다."넌 어른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어디서 못된 버릇이냐!"그러나 지수는 그들의 거친 고함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그들을 차갑게 지나쳐, 연회장 안쪽에서 지수를 반갑게 바라보고 있던 강인주 여사에게로 걸어갔다. 제이아우라 시크릿
김미자의 고집과 독단은 파티 준비 단계부터 스태프들과 정지상 팀장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뜯게 만들었다.정지상이 기획했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미니멀리즘 연출안은 김미자의 손에 들어간 지 단 10분 만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미자는 호텔 대연회장 입구부터 촌스러운 대형 금빛 아치와 요란한 원색 조명을 도배했고, 사교계 사모님들의 눈길을 사로잡겠다며 CB의 신상 드레스와 보석들을 조잡하게 나열한 초대형 디스플레이 존을 강행했다."사모님, 제발 재고해 주십시오. 겉으로는 CB의 연말 갈라 파티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 자리의 본질은 남미 광산 유치를 위한 거액 투자자들을 위한 자리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정지상의 절박한 건의에도 김미자는 명품 클러치를 쥔 손끝을 까딱거리며 비웃음을 날렸다."내가 설마 그것도 모를까 봐 그래? 어휴, 답답하긴! 투자가들도 우리가 가진 재력과 세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안심하고 선뜻 투자할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 그리고 또! 그 투자가들이 혼자 오니? 다 자기 마누라나 파트너 손 잡고 와. 생각보다 그 안사모님들 입김이 사업 결정에 얼마나 센지 네가 잘 몰라서 그래!""하지만 사모님, 이건…….""토 달지 마! 어디서 감히 대표 모친이 지시하는 일에 일일이 토를 달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해!"결국 파티장은 품격 있는 명품 투자설명회의 무대가 아닌, 억지로 자본력을 과시하려 애쓰는 기괴하고 조잡한 삼류 연회장으로 변질되어 갔다.
이지현은 비서 슬비가 가져온 서류를 검토하다거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서류 봉토 안에는 동생 지수의 처절한 결혼 생활과 강도진의 외도 증거들이 빠곡히 담겨 있었다. "하, 이지수,, 이딴 남자 때문에 그렇게 속상해하고 있었던 거야?" 지현은 화가나고 속상한듯 서류를 구기며 슬비를 봤다."박비서님은 지수의 친구이기도 하니 당분간 A국에서 가서 지수 옆에 있어 주실수 있다요? 이건 상사로서 명령이라기 보다는 지수 오빠로서의 부탁입니다. 아 그리고 지수가 부탁한 사람은 이 이사람이 좋겠군요""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날 시어머니에게 수모를 당하고 돌아온 지수는 K국에 있는 오빠 이지현에게 연락을 했다. " 오빠~ 잘 지내? 너무 오랫만에 연락했지? 실은 나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 지금 K국은 아침 6시였다. 지현은 시차도 잊은 채 걸려온 동생의 목소리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우리 공주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 줘야지. 무슨 일인데. 말만해. 오빠가 다 처리해 줄께."여전히 자신을 아껴주는 오빠의 음성이 지수는 목이 메었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 " 오빠 나 아이가 생기면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기
3일간 안정을 취한 지수는 외출준비를 서둘렀다.거울 앞에 선 지수의 차림새는 단조로웠다. 연한 하슬색 원피스에 검은색 C사의 핸드백이 전부였다. 초췌해진 얼굴은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ㅇ낳았고 푸석해진 머릿결과 여전희 볼록하게 남아있는 복부는 지수를 실제보다 훨씬 지쳐보이게 했다.누가 이모습을 보고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라 할까. K국의 공주님으로 불리던 지수는 이제 A국의 가정부보다 못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지수는 거울 속 낯선 여자를 뒤로 한채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집을 나섰다.그녀의 차는 도진이 3년전 결혼 기념으로 사준
7일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영양제로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지수는 배아 이식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도진에게서는 단 한통의 연락도 없었다.지숙 역시 먼저 손을 내밀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적막하고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거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지수의 귓가에 가정부의 은밀한 전화 통화 소리가 드려왔다."네 사모님 진짜라니까요. 그 여자가 일주일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분명 다른 남자가 생긴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장님은 방치할수는 없는 거죠 . 네 ,맞아요 제가 어떻게 사모님께 거짓말을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