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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감시 마지막 밤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5 17:00:00

7월 16일 밤 열 시. 백탑 6층.

마지막 밤이었다.

낮에 카일은 인수인계를 했다. 보르크에게. 백탑 계단 212칸, 6층 복도, 창 하나, 문 하나, 의자 하나. 성녀 일과표. 식사 시간. 축복 시간. 뒤뜰 휴식.

뒤뜰 얘기를 할 때 보르크가 말했다. 「약초밭은 갈아엎을 거요. 대주교님 명이오. 성녀가 흙을 만지면 안 된다고.」

카일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박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풀 세 포기. 보라색 꽃이 피려고 합니다.」 보르크가 카일을 봤다. 「그게 무슨 상관이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담 얘기는 하지 않았다. 개구멍 얘기도, 담이 낮아지는 자리 얘기도. 보르크가 묻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오후에 신전 석공 둘이 와서 뒤뜰 담 낮은 자리에 돌을 더 쌓았다. 개구멍 자리엔 쇠창살을 박았다.

†

밤 열 시. 카일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일 아침 다섯 시 보르크가 올라온다. 그때 카일은 내려간다. 212칸.

문 안은 조용했다. 저녁 기도 뒤로 성녀는 나오지 않았다. 에마도 오늘은 일찍 내려갔다. 계단에서 카일을 지나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카일 손에 무엇을 쥐여 주고 갔다. 삶은 달걀. 첫날 의자 위에 놓였던 것과 같은.

열한 시. 문 안에서 소리가 났다.

맨발 소리. 문 쪽으로 왔다. 멈췄다. 문에 귀를 댄 숨소리. 첫날 밤과 같은.

문고리가 돌아갔다. 천천히. 문이 열렸다. 손바닥만큼이 아니라 다.

성녀가 서 있었다. 갈색 잠옷. 머리를 풀어 어깨에. 맨발.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빵도 촛대도.

“들어와요.”

카일은 문턱 앞에 섰다.

“…감시 대상 거처에 들어가는 건.”

“내일부터 감시 대상 아니잖아요. 오늘 밤은 마지막이니까 아무거나 해도 돼요.”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규정이 없으면 해도 되는 거예요. 기사님이 그랬어요. 열 났을 때. 의자에 앉아도 되는 규정이 없어서 앉았다고.”

카일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성녀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카일은 문턱을 넘었다.

†

성녀 방. 창가 탁자. 질그릇 단지. 돌절구. 벽에 마른 풀 다발. 침대보 없는 침대. 이불 한 장. 탁자 서랍.

성녀가 창가로 갔다. 창을 열었다. 7월 밤바람이 들어왔다. 덥고 축축한 바람. 강 냄새. 그리고 뒤뜰 박하 냄새. 아직 안 갈아엎은.

카일이 창가로 갔다. 성녀 옆에 섰다. 세 걸음 뒤가 아니라.

창 너머로 왕도가 보였다. 강, 다리, 왕성. 기사단 본관 3층 불빛. 그레타 방. 그 아래 기사단 숙소. 카일 방 창.

“저기가 기사님 방이에요?”

성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확하게.

“…어떻게 압니까.”

“밤마다 불이 꺼지는 시간이 기사님 교대 시간이랑 같아요. 석 달 반 동안 봤어요. 여기서.”

카일은 성녀를 봤다. 성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새벽 세 시쯤 한 번 켜졌다 꺼질 때도 있었어요. 그날은 기사님이 잠을 못 잔 날이에요. 다음 날 아침에 눈 밑이 파랬어요.”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석 달 반 동안 카일은 매일 밤 숙소 창에서 6층 촛불을 봤다. 촛불이 꺼지는 시간을 셌다. 새벽에 다시 켜지는 날을 셌다. 그게 감시 일인 줄 알았다.

성녀도 세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

“기사님.”

“예.”

“마지막 보고서는 뭐라고 쓸 거예요?”

카일은 망토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접힌 종이. 어젯밤의 빈 보고서. 날짜만 있는.

꺼내서 성녀에게 보였다.

성녀가 종이를 받아 펼쳤다. 읽었다. 「감시 보고서 — 7월 15일. 대상: (빈칸). 특이 사항: (빈칸).」

성녀가 카일을 올려다봤다.

“…못 썼어요?”

“처음입니다. 9년 동안.”

성녀가 종이를 오래 봤다. 그리고 탁자로 갔다. 서랍을 열었다. 펜과 잉크. 성녀가 글 연습하던 것. 성녀가 펜을 카일에게 내밀었다.

“지금 써요.”

“…지금.”

“여기서요. 제가 볼게요. 감시 대상이 직접 보는 보고서. 처음이죠?”

“처음입니다.”

카일이 펜을 받았다. 종이를 탁자 위에 놓았다. 「7월 15일」을 줄로 긋고 위에 「7월 16일」이라고 고쳐 썼다.

대상.

펜이 멈췄다. 성녀가 옆에서 봤다.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카일은 처음으로 「대상」 칸에 다른 말을 썼다.

「대상: 가짜 성녀.」

성녀가 그걸 봤다. 숨을 들이켰다. 아주 작게.

카일은 펜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칸.

「특이 사항: 진짜 사람.」

펜을 놓았다.

성녀가 종이를 봤다. 두 줄. 「가짜 성녀」. 「진짜 사람」. 카일 글씨. 반듯하고 작은. 9년 동안 세 줄 안에 열 가지를 쑤셔 넣던 글씨가 이번엔 두 줄에 여섯 글자씩.

카일이 소리 내 읽었다. 낮게.

“감시 보고서. 7월 16일. 대상, 가짜 성녀. 특이 사항, 진짜 사람.”

방이 조용했다. 창밖 강물 소리. 박하 냄새.

“…세 줄이 아니네요. 두 줄이에요. 날짜 빼면.”

성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갈라진 것도 떨리는 것도 아닌.

“날짜까지 세 줄입니다.”

“그럼 됐어요.”

성녀가 종이를 접었다. 반듯하게. 귀퉁이를 맞춰서. 카일에게 내밀었다.

“단장님한테 내세요. 내일.”

“…이건 단장님이 안 읽습니다.”

“세 줄이잖아요. 읽어요.”

카일은 종이를 받았다. 망토 안주머니에 넣었다. 개구멍 쪽지 옆에.

†

성녀가 카일을 봤다. 창가에서. 달빛이 성녀 얼굴 반쪽을 비췄다. 왼쪽 귀 밑 점.

“기사님.”

“예.”

성녀가 손을 내밀었다.

카일은 그 손을 봤다. 초록 손끝. 풀물. 석 달 반 동안 고름을 짜고 쑥을 찧고 맥을 세고 발을 주무른 손. 강림식 날 빛을 내던 손. 카일 손바닥 상처에 쑥을 바르고 매듭을 묶은 손. 탁자 위에서 카일 새끼손가락 옆으로 한 마디를 건너온 손.

카일이 그 손을 잡았다.

처음이었다. 회랑에서 손목을 잡은 건 잡아 세운 거였다. 계단에서 받은 건 넘어지는 걸 받은 거였다. 업은 건 업은 거였다. 이건 손을 잡은 거였다. 손과 손.

성녀 손이 작았다. 카일 손 안에 다 들어왔다. 차가웠다. 그런데 금방 따뜻해졌다.

성녀가 손에 힘을 줬다. 꽉.

“다시 와요.”

성녀가 말했다. 카일을 올려다보며. 아무 표정 없이. 그런데 눈이 젖어 있었다.

카일은 그 말을 들었다. 다시 와요. 감시하러가 아니라. 호위하러가 아니라. 그냥.

카일이 대답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9년 동안 쓴. 석 달 반 동안 이 사람 앞에서 모든 뜻으로 쓴.

“…확인했습니다.”

성녀가 웃었다. 젖은 눈으로. 소리 없이. 그러다 소리 내서. 짧게.

“그게 무슨 뜻이에요?”

카일은 성녀 손을 놓지 않았다.

“다시 온다는 뜻입니다.”

†

문 밖 계단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쉿!”

에마 목소리였다. 아주 작게. 그리고 다른 목소리. 더 크게.

“아 왜요,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루카스였다.

카일이 문 쪽을 돌아봤다. 문이 손바닥만큼 열려 있었다. 언제 열렸는지. 문틈으로 눈 넷. 위에 둘, 아래에 둘. 아래는 에마, 위는 루카스.

에마가 루카스 팔을 꼬집었다.

“쉿이라니까요! 지금 제일 중요한 데예요!”

“아야! 저 기사예요!”

“기사면 조용히 해요!”

문이 닫혔다. 쾅.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발소리 둘. 하나는 가볍고 빠르고, 하나는 무겁고 쿵쿵.

성녀가 카일 손을 잡은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크게. 6층 방이 울렸다. 석 달 반 동안 이 방에서 이렇게 큰 웃음은 처음이었다.

카일은 웃지 않았다. 그런데 입가가 움직였다. 아주 조금. 성녀가 그걸 봤다.

“기사님 웃었어요.”

“안 웃었습니다.”

“웃었어요. 처음이에요.”

“…보고서에 안 쓰십시오.”

“저 보고서 안 써요.”

성녀가 카일 손을 놓았다. 탁자 서랍을 열었다. 회색 실 한 타래를 꺼냈다. 카일이 물통을 고칠 때 쓰고 남은 그 실. 성녀가 실을 한 뼘쯤 끊었다. 이로.

“손 줘요. 왼손.”

카일이 왼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흉이 있는. 루카스 칼에 베였던, 성녀가 실을 뽑아 준.

성녀가 실을 카일 손목에 감았다. 한 바퀴. 두 바퀴. 그리고 매듭을 묶었다. 작고 단단하게. 손목 안쪽에.

“이건 뭡니까.”

“매듭이요. 들꽃골에선 먼 길 가는 사람 손목에 묶어 줘요. 풀리기 전에 돌아오라고.”

“…풀리면.”

“안 풀려요. 제가 묶었어요.”

카일은 손목을 봤다. 회색 실. 기사단 망토와 같은 색. 아무도 눈치 못 챌.

“씻을 때도 안 풀어요?”

“안 풀어요.”

“검 잡을 때도요?”

“…안 풉니다.”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얼굴로. 매듭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눌러 봤다. 단단했다. 성녀가 그 손목을 놓지 않고 한참 내려다봤다. 실 매듭 아래 맥이 뛰었다. 성녀가 엄지를 그 위에 얹었다. 세는 건지도 몰랐다.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얹고만 있었다. 카일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실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들꽃 꾸러미 옆에.

†

새벽 다섯 시. 백탑 6층.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 무겁고 규칙적인. 보르크.

카일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밤새. 성녀가 자정쯤 「주무세요」 하고 문을 닫은 뒤로. 성녀 방 촛불은 새벽 세 시까지 켜져 있었다. 카일은 그걸 문 아래 틈으로 봤다.

보르크가 6층에 올라왔다. 하얀 망토. 각진 턱. 카일을 봤다.

“교대요.”

“…예.”

카일은 문을 봤다. 닫힌 하얀 문. 두드리지 않았다.

카일이 계단으로 갔다. 첫 칸을 디뎠다.

그리고 셌다. 212칸. 머릿속으로. 하나, 둘, 셋.

열 칸쯤 내려갔을 때 위에서 소리가 났다. 창문 여는 소리. 6층. 복도 끝 창이 아니라 성녀 방 창.

카일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내려갔다. 서른, 마흔, 쉰.

탑 안쪽 벽 계단이라 창이 안 보였다. 그런데 소리는 들렸다. 창문이 열린 채로 닫히지 않는 소리. 바람이 들어가 커튼을 흔드는 소리.

백, 백오십.

이백십이.

1층. 쪽문. 카일이 뒤뜰로 나왔다. 새벽 다섯 시. 동쪽이 밝았다. 약초밭. 박하, 카밀레 마른 줄기, 이름 모를 풀 세 포기. 보라색 꽃이 하나 피어 있었다. 오늘 아침에.

카일은 고개를 들었다.

백탑. 하얀 탑 일곱 층. 6층 창. 열려 있었다. 창가에 사람이 서 있었다. 맨발로. 갈색 잠옷. 머리를 풀어 어깨에.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일도 손을 흔들지 않았다. 올려다봤다. 오래.

그리고 돌아섰다. 정문 쪽으로. 망토 안주머니에 종이 두 장. 「다음엔 개구멍으로 오세요」와 「대상: 가짜 성녀. 특이 사항: 진짜 사람.」

정문을 나설 때까지 카일은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창문이 계속 열려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감시 보고서 — 7월 16일

대상: 가짜 성녀.

특이 사항: 진짜 사람.』

(20화 끝 ·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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