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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감시 해제 후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6 17:00:00

8월 2일 저녁 일곱 시. 왕성 서쪽 성벽.

카일은 북쪽 경계로 가지 않았다.

그레타가 정했다. 「왕성 성벽 경비. 서쪽.」 서기가 명령서를 건넬 때 카일은 그 종이를 오래 봤다. 서쪽 성벽. 왕성에서 강 건너 백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

카일이 단장실에 가서 물었다. 「왜 서쪽입니까.」 그레타가 파이프를 문 채 대답했다. 「북쪽은 겨울에 춥다. 너는 추위를 못 견딘다.」 카일은 북쪽 경계에서 두 겨울을 났다. 그레타도 알았다.

카일은 더 묻지 않았다.

†

7월 17일 아침 여덟 시. 단장실.

카일은 백탑에서 내려온 그 길로 단장실에 갔다. 잠을 안 잔 얼굴로. 망토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접힌. 귀퉁이가 맞춰진.

“마지막 보고서입니다.”

그레타가 종이를 받았다. 펼쳤다. 읽었다. 1초.

그리고 다시 읽었다. 이번엔 1초가 아니었다.

『감시 보고서 — 7월 16일 / 대상: 가짜 성녀. / 특이 사항: 진짜 사람.』

날짜를 고쳐 쓴 자국. 「7월 15일」에 줄을 긋고 「16일」. 대상 칸 글씨와 특이 사항 칸 글씨가 날짜 칸 글씨보다 조금 컸다. 그리고 종이 귀퉁이에 아주 작게 초록 얼룩. 풀물 든 손끝이 접을 때 닿은.

그레타가 그 얼룩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건 네 손 아니군.”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감시 대상이 감시 보고서를 접어 줬어?”

“…예.”

그레타가 종이를 오래 봤다. 그리고 금고로 갔다. 목에 건 열쇠. 쇠문. 카일 상자 위에 그 종이 한 장을 얹었다. 문을 닫았다.

“세 줄이군.”

“예.”

“읽었다.”

그레타가 의자에 앉았다. 파이프를 물었다. 카일을 보지 않고 창밖을 봤다. 강 건너 백탑.

“에벤하르트. 그 보고서 특이 사항 칸. 그거 감시 보고서에 쓰는 말이 아니다.”

“압니다.”

“그럼 뭐에 쓰는 말이냐.”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타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가서 자. 내일부터 서쪽 성벽이다.”

†

서쪽 성벽 경비는 지루했다. 성벽 위를 걷는다. 오른쪽 끝 망루에서 왼쪽 끝 망루까지. 칠백 걸음. 돌아온다. 다시. 하루 열두 시간.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카일은 걸으면서 강 건너를 봤다. 백탑. 하얀 탑. 일곱 층. 6층 창.

낮에는 창이 닫혀 있었다. 성녀가 축복하러 내려가 있으니까. 오후 한 시에 창이 열렸다. 휴식 시간. 그런데 뒤뜰로 내려가는 모습은 안 보였다. 뒤뜰은 성벽에서 안 보였다. 탑에 가려서.

보르크가 약초밭을 갈아엎었는지 카일은 몰랐다.

저녁 일곱 시. 교대.

카일은 교대하고 내려가지 않았다. 성벽 서쪽 끝 망루에 남았다. 망루 계단에 걸터앉았다. 강 건너를 봤다.

해가 졌다. 백탑이 붉어졌다가 회색이 됐다가 까매졌다.

그리고 6층 창에 불이 켜졌다.

촛불. 작은. 강 건너에서 보면 바늘 끝만 한.

카일은 그걸 확인하고 일어났다. 그날 무사.

†

그게 매일이 됐다.

7월 17일부터. 저녁 일곱 시 교대, 망루 계단, 해 지기를 기다림, 6층 촛불. 켜지면 일어남. 숙소로.

비 오는 날도. 7월 23일엔 비가 하루 종일 왔다. 강 건너가 흐렸다. 백탑이 잿빛 빗줄기 너머에서 희미했다. 저녁 여덟 시가 돼도 촛불이 안 보였다. 카일은 망루 지붕 밑에서 기다렸다. 아홉 시. 열 시. 비가 조금 그쳤다. 그제야 보였다. 바늘 끝. 켜져 있었다. 아까부터 켜져 있었는데 비 때문에 안 보였던 거였다.

카일은 그날 밤 숙소에 돌아와 젖은 망토를 벗으며 손목을 봤다. 회색 실 매듭. 젖어도 풀리지 않았다.

7월 28일엔 촛불이 늦었다. 해가 지고 한 시간. 두 시간. 카일은 망루 난간을 쥐고 서 있었다. 강 건너 6층 창이 깜깜했다. 카일 머릿속으로 온갖 것이 지나갔다. 지하. 창 없는 방. 보르크의 각진 턱. 카일은 망루 계단을 반쯤 내려갔다. 다리를 건너 백탑으로 갈 생각이었다. 무엇을 할지는 몰랐다.

계단 중간에서 돌아봤다. 6층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다음 날 루카스가 전했다. 「어제 성녀님이 저녁 기도 끝나고 대주교님한테 불려 가셨대요. 하지 축제 헌금 얘기로. 두 시간이나. 그래서 늦게 올라가셨대요.」 카일은 그날 망루에서 계단 반쯤 내려갔던 걸 루카스에게 말하지 않았다.

†

소식은 루카스가 날라 왔다.

루카스는 카일이 백탑에서 물러난 다음 날부터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매일 오후 꿀과자를 사서 백탑 정문으로 갔다. 정문 경비는 신전 경비대. 보르크 부하들. 루카스가 꿀과자를 하나씩 줬다. 「더우시죠? 드세요.」

사흘째에 신전 경비병 하나가 루카스에게 말을 걸었다. 「너 기사단이지?」 「예! 루카스요!」 「왜 매일 와?」 「꿀과자 사러 시장 가는 길이에요. 시장이 이쪽이라.」 시장은 반대쪽이었다. 경비병도 알았다. 그런데 꿀과자를 받았다.

일주일째에 경비병 둘이 루카스를 기다렸다. 열흘째에 루카스는 정문 옆 경비 초소 의자에 앉아 꿀과자를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대장님, 오늘 들은 거요.”

8월 2일 저녁. 카일이 망루 계단에 앉아 있을 때 루카스가 올라왔다. 숨을 헐떡이며. 손에 빈 꿀과자 봉투.

“첫째. 성녀님 잘 계세요. 밥은 여전히 반 남기신대요. 근데 이제 수프는 신전 부엌으로 돌아간대요. 소매에 못 넣으신대요. 네모 턱이 식사 때도 옆에 서 있어서.”

카일은 강 건너를 보며 들었다.

“둘째. 약초밭은 반만 갈아엎었대요. 네모 턱이 갈아엎으라고 했는데 석공들이 박하를 밟더니 냄새 좋다고 반은 놔뒀대요. 오렌 사제님이 석공들한테 박하차 끓여 주셨대요. 그래서 반은 살았어요.”

카일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박하. 성녀가 손으로 쓸면 냄새가 확 올라오던. 석공들이 그 냄새에 멈춰 섰다는 게 카일은 이상하게 고마웠다. 이름도 모르는 석공들한테. 언젠가 오렌에게 그 석공들 이름을 물어보리라고 카일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석공들에게 박하차 한 잔씩. 그날 망루에서 카일은 박하 냄새를 떠올리려 했다. 강 건너에서 냄새가 올 리 없었다. 그래도 떠올렸다. 손으로 쓸면 확 올라오던. 성녀 손끝에 늘 묻어 있던.

“셋째. 이름 모를 보라 꽃이요. 그거 살았대요. 오렌 사제님이 화분에 옮겨서 자기 방에 뒀대요.”

“…넷째.”

“넷째는요.”

루카스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성녀님이 밤에 안 나가신대요. 한 번도. 네모 턱이 6층 문 앞에서 의자에 앉아서 자요. 밤새. 그리고 담은 돌을 더 쌓았고, 하수 계단 위에 신전 경비가 하나 더 섰대요. 잿골은 한나 아줌마가 다 하신대요. 저 어제 잿골 가 봤어요. 한나 아줌마가 그러셨어요. 아가씨 걱정 말라고. 근데 아줌마 눈이 빨갰어요.”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째.”

“아직 있어?”

“이게 제일 중요해요.”

루카스가 강 건너를 봤다. 백탑. 해가 지고 있었다.

“경비병이 그러는데요. 성녀님이 매일 저녁 해 지면 6층 창가에 촛불 켜고 한참 서 계신대요. 왕성 쪽 보면서. 네모 턱이 「뭘 보십니까」 하면 「강이요」 하신대요.”

카일은 망루 계단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경비병들이 그러는데요, 강 보는 거 아니래요. 강은 아래에 있는데 성녀님은 위를 보신대요. 왕성 높이.”

루카스가 카일을 봤다.

“대장님. 대장님도 매일 여기 앉아 계시죠. 저 다 알아요. 서쪽 성벽 교대한 애들이 그러던데요. 에벤하르트 경은 교대하고 안 내려가고 망루에서 해 질 때까지 백탑만 본다고.”

카일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해가 졌다. 백탑이 까매졌다.

6층 창에 불이 켜졌다.

루카스가 그걸 봤다. 카일이 그걸 보는 걸 봤다. 카일 어깨가 내려가는 걸.

“…켜졌네요.”

“…그래.”

“저 내일도 꿀과자 사러 가요. 시장이 이쪽이라.”

루카스가 계단을 내려갔다. 몇 칸 가다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대장님 손목에 그 회색 실이요. 저 처음엔 망토 실 풀린 건 줄 알았어요. 근데 매일 있더라고요.”

“…루카스.”

“예. 아무한테도 안 해요.”

발소리가 멀어졌다.

†

카일은 망루 계단에 앉아 6층 촛불을 봤다.

바늘 끝. 흔들리지 않았다. 강 건너, 언덕 위, 탑 6층. 칠백 걸음 성벽을 열 번 왕복해도 닿지 않을 거리.

‘매일 저녁 해 지면 6층 창가에 촛불 켜고.’

카일은 그 말을 다시 생각했다. 석 달 반 동안 6층 촛불은 밤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에 꺼졌다. 성녀가 잿골에 나가는 날엔 열한 시 전에. 해 지자마자 켜는 날은 없었다. 성녀는 해 지면 저녁 기도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해 지자마자 켜졌다. 저녁 기도 시간인데.

‘저녁 기도를 빼먹는다.’

아니면 저녁 기도 전에 6층에 잠깐 올라가 촛불만 켜고 내려간다. 212칸. 올라갔다 내려가는 데 한참 걸린다.

카일은 그걸 알았다. 그게 누구를 위한 촛불인지.

카일이 일어났다. 망루 난간 앞으로 갔다. 난간을 짚었다. 강 건너 6층을 봤다.

그리고 망루 벽에 걸린 등불을 봤다. 경비용 등불. 기름 등. 덮개가 있어서 덮개를 열고 닫으면 빛이 깜빡였다. 기사단이 밤에 망루끼리 신호할 때 쓰는.

카일은 등불을 내렸다. 난간 위에 올렸다. 백탑 쪽으로 향하게. 덮개를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두 번.

강 건너. 6층 촛불. 바늘 끝.

한참 아무 변화가 없었다.

카일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강 건너에서 망루 등불 하나가 보일 리 없었다. 왕성 성벽엔 등불이 쉰 개도 넘게 있었다. 그중 어느 게 깜빡이는지 6층 창에서 알 리 없었다.

카일이 등불을 내리려 했다.

6층 촛불이 꺼졌다.

카일이 손을 멈췄다.

다시 켜졌다.

꺼졌다.

다시 켜졌다.

두 번.

카일은 등불을 쥔 채로 서 있었다. 강 건너 6층. 다시 켜진 촛불. 이제 흔들리지 않는.

카일 손이 떨렸다. 등불 덮개가 달그락거렸다.

카일은 다시 한 번 덮개를 닫고 열었다. 한 번. 그리고 등불을 난간에 둔 채로 오래 서 있었다.

6층 촛불도 오래 켜져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자정이 넘도록.

†

밤 열두 시 반. 기사단 숙소.

카일은 책상 앞에 앉았다. 상자는 없었다. 그레타 금고에. 카일은 새 종이를 꺼냈다. 양식 없는 흰 종이.

보고서를 쓸 일은 이제 없었다. 감시 임무는 끝났다. 서쪽 성벽 경비는 보고서가 없었다. 「이상 없음」 도장만 찍으면 됐다.

그래도 카일은 썼다.

「8월 2일. 서쪽 성벽. 6층 촛불 해 지자마자 켜짐(17일째). 루카스 보고: 대상 무사. 밥 반 남김. 밤 외출 없음. 약초밭 반 살아남음(석공, 박하차). 보라 꽃은 오렌 방 화분.

망루 등불 두 번. 6층 촛불 두 번 답함.」

카일은 마지막 줄을 오래 봤다. 「답함.」

그리고 그 아래에 보고서 양식을 그렸다. 손으로. 세 줄.

『감시 보고서 — 8월 2일

대상: 6층 창. 촛불.

특이 사항: 두 번.』

(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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