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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2조 붕괴, 화면 공유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15 08:38:13

제2조. 사내에선 비밀.

(비밀은 두 번 새면 비밀이 아니다. 한 번은 사진으로, 한 번은 할머니로.)

금요일 오전 아홉 시 반. 열일곱 번째 사진의 조회 수는 이미 삼백을 넘었다.

"7조면." 탕비실에서 누군가 말했다. "정 선임이랑 차 선임 아니야?"

"에이, 설마. 그 둘이 우산을 같이 써?"

"사진 설명에 7조라고 써 있잖아."

"비가 왔으니까 그랬겠지. 원수라도 비는 같이 피하잖아."

"소매는? 소매 잡은 건?"

탕비실 문 앞에서 서윤은 머그컵을 든 채 돌아섰다. 커피는 안 마셔도 됐다.

자리에 앉자마자 민지가 의자를 굴려 왔다. 눈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무서웠다.

"선배."

"우산이 하나였어."

"아직 아무것도 안 물었는데요."

"물어볼 거잖아."

"딸기 아이스크림이요." 민지가 사진을 확대했다. 봉지가 선명했다. "그거 제가 사 달라고 한 거잖아요."

서윤은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가 켜지는 시간이 오늘따라 길었다.

"우산이 없어서 편의점에 갇혀 있었는데, 차 선임이 지나가다 씌워 준 거야. 인류애로."

"인류애로 소매를 잡아요?"

"미끄러웠어."

"선배, 저 그날 강당에서 봤는데요. 차 선임님 선배 나가고 삼 분 만에 우산 하나 들고 나갔어요. 강당 입구에 우산 열 개 있었는데 제일 작은 걸로 골라서요."

서윤은 모니터를 보는 척했다. 제일 작은 걸로. 그건 몰랐다.

책상 밑에서 휴대폰이 떨렸다.

[차이현: 대응 방침. 비상 대피였다. 우산이 하나뿐이었다.]

[정서윤: 강당에 우산 열 개 있었대요. 민지가 봤대요.]

[차이현: ……]

[차이현: 그럼 인류애로 가죠.]

[정서윤: 저 이미 인류애 썼어요.]

[차이현: 잘하셨어요. 입 맞추죠.]

서윤은 마지막 문장에서 휴대폰을 뒤집었다. 말을 맞추자는 뜻이었다. 알았다. 그런데도 뒤집었다.

파티션 너머 개발팀 쪽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막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임님, 그 사진 선임님이죠?"

"비가 왔어."

"알아요. 근데 우산이 하나뿐이었어요?"

"응."

"강당에 열 개 있었는데요?"

"……인류애였어."

씨름 방은 아침부터 쉬지 않았다. 민지가 보여 주지 않아도 서윤은 알 수 있었다. 사무실 곳곳에서 휴대폰 진동이 파도처럼 번졌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번졌다.

[증거 1호: 워크숍 사진 17번. 우산 하나, 소매, 딸기 아이스크림]

[반론: 비 오면 원수도 우산 같이 씀]

[재반론: 왼쪽 어깨 다 젖음. 원수를 위해 어깨를 버림?]

[방장: 증거 불충분. 결정적 증거를 기다린다.]

점심시간, 비상계단. 이번엔 커피가 없었다. 둘 다 빈손이었다.

"오늘만 버티면 주말이에요." 서윤이 말했다. "월요일이면 다들 잊어요. 사진 조회 수도 떨어지고."

"세 시 회의는요?"

"평소처럼 해요. 저는 기획 의도, 차이현 씨는 시연. 눈 마주치지 말고."

"눈 안 마주치는 게 평소예요?"

"……평소엔 노려보죠."

"그럼 노려볼게요."

"적당히요. 너무 노려보면 그것도 수상해요."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연은 제 폰으로 해요. 모바일 화면 그대로 띄우는 게 본부장님이 좋아하시니까."

"알림 꺼 둬요. 꼭."

"당연하죠. 방해 금지 모드 켤게요."

서윤은 안심했다. 개발자가 '당연하죠'라고 하면 당연한 거였다. 5년 동안 이 사람이 시연에서 실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한 가지를 몰랐다. 이현의 방해 금지 모드에는 예외 연락처가 하나 있었다. 오래전에 등록해 두고 잊어버린 번호. 할머니 전화만은 언제든 울리게.

결정적 증거는 오후 세 시에 왔다.

까치 이벤트 중간 점검 회의였다. 본부장이 참석하는 회의라 회의실이 꽉 찼다. 서윤이 기획 의도를 발표하고, 이현이 시연을 맡았다.

"까치는 모바일 이벤트라서 실제 휴대폰 화면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현이 자기 휴대폰을 케이블로 연결했다. 대형 화면에 그의 휴대폰 화면이 그대로 떴다. 테스트용 앱이 열렸다. 까치 한 마리가 편지를 물고 화면을 가로질러 날았다. 날개가 부드럽게 접혔다 펴졌다.

"오." 본부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색이 다르네?"

"열두 가지입니다. 유저마다 다르게 배정됩니다."

"좋다. 정 선임, 이거 정 선임 안이지?"

"네."

"차 선임이 받아 줬어? 웬일로?"

회의실에 웃음이 돌았다. 서윤도 따라 웃었다.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제2조, 이상 무.

이현이 두 번째 까치를 날리려고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이었다.

화면 맨 위로 알림이 내려왔다.

엄청나게 큰 글씨였다. 대형 화면에서는 한 글자가 주먹만 했다. 추석 때 할머니가 '니 폰도 크게 해라, 내가 보게' 하시며 글씨를 최대로 키워 놓은 걸, 이현은 그대로 두고 있었다.

[할머니: 손주며느리 서윤이 설에 떡국 먹으러 꼭 오라 해라]

회의실이 멈췄다.

까치가 편지를 문 채 화면 한가운데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 위로 할머니의 문장이 걸려 있었다. 서윤이. 회의실에서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이현의 손가락이 알림을 밀어 올리려는 순간, 두 번째 알림이 내려왔다.

[할머니: 사진 보낸다]

그리고 사진. 청매골 마루. 초점은 흔들렸고, 서윤의 얼굴 반과 이현의 뒤통수가 찍혀 있었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전송 버튼을 누른 그 사진이었다. 할머니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드셨는지, 한 번 더 보내셨다.

세 번째 알림.

[할머니: 손주며느리 곱다]

누군가의 커피 컵이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뒷자리에서 민지가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팀장은 볼펜을 떨어뜨렸다. 이번에도 줍지 않았다.

서윤은 빨대를 물고 있었다. 언제부터 물고 있었는지 몰랐다. 씹지도 못하고 그냥 물고만 있었다.

이현은 침착하게 알림을 쓸어 올렸다. 손가락이 한 번 헛나갔다. 두 번째에 알림이 사라졌다. 까치가 다시 날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두 번째 까치는 파란색입니다." 이현이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와 같았다. 귀만 빼고.

본부장이 천천히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서윤을 봤다. 그리고 이현을 봤다. 그리고 다시 서윤을.

"손주며느리?"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까치만 날았다.

"그러니까, 차 선임 할머님이 정 선임을." 본부장이 말을 고르다가 포기했다. "아니, 됐다. 까치 좋네. 일정대로 가자. 수고했어."

본부장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회의실에 남은 사람은 열한 명이었다. 열한 명 중 아홉 명이 동시에 휴대폰을 꺼냈다. 나머지 둘은 서윤과 이현이었다.

테이블 밑에서 누군가의 휴대폰 화면이 켜진 채로 서윤 쪽을 향해 있었다.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글씨가 컸을 뿐이다.

[결정적 증거 도착]

[손주며느리 서윤이]

[할머님 사진까지 보내심. 본부장님 앞에서]

[방장님 어디 계세요]

[방장: 여기 있다. 지금 수습 중이다.]

"잠깐." 팀장이 일어났다. 목소리가 떨렸다. "다들 나가. 정 선임, 차 선임은 남고."

사람들이 줄지어 나갔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문 앞에서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 민지는 세 번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나가며 문을 닫는 척하다가 한 뼘 남겨 두었다. 팀장이 가서 문을 끝까지 닫았다.

회의실에 셋이 남았다.

팀장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창가로 걸어갔다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가, 결국 서윤과 이현의 맞은편에 섰다. 5년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중재만 하던 자리였다.

"내가." 팀장이 말했다. "5년 동안 너네 싸움을 말렸어."

"네." 서윤이 작게 대답했다.

"회의 때마다. 매번. 너네 목소리 커지면 내가 손 들고. 공수 다시 뽑아 오라 하고. 문구 정리하라 하고."

"감사했습니다." 이현이 말했다.

"감사하라는 게 아니고." 팀장이 이마를 짚었다. "내가 말린 게 뭐였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

그는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화면이 계속 깜빡였다. 알림이 멈추지 않았다. 팀장은 그걸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작년 연말 평가 때 너희 둘 협업 점수 최하였던 거 알지? 내가 그거 올리려고 본부장님한테 무슨 말까지 했는지 알아? '둘이 싸우는 게 곧 검수입니다. 서로 구멍을 막아 줍니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서윤이 물었다.

"했지.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근데 이제 보니까."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구멍을 막아 준 게 아니라 구멍을 같이 판 거였네."

서윤은 테이블 위의 자기 손을 봤다. 옆에 이현의 손이 있었다. 한 뼘 거리. 식탁 밑이었다면 잡았을 거리였다.

"그러니까 한 번만 묻자. 솔직하게."

팀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회의실의 공조기 소리만 들렸다.

"둘이, 사귀어?"

서윤이 입을 열었다. 제2조. 사내에선 비밀. 조항은 아직 살아 있었다. 냅킨 앞면, 두 번째 줄.

이현도 입을 열었다. 할머니 문자. 대형 화면. 손주며느리. 부정할 방법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답은 동시에 나왔다. 5년 동안 늘 그랬듯이.

"아뇨."

"네."

팀장이 천천히 의자를 빼서 앉았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엎어 두었던 휴대폰을 처음으로 뒤집었다. 화면을 몇 번 누르고, 다시 엎었다. 뭘 적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나는 아니라고 하고, 하나는 맞다고 하고." 팀장이 중얼거렸다. "5년 동안 너희가 의견 일치한 적이 없긴 했지."

서윤은 옆을 봤다. 이현도 옆을 봤다. 서로 다른 대답을 한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동시에 생각했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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