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 11화. 제4조 딜레마, 을의 사정

مشاركة

11화. 제4조 딜레마, 을의 사정

مؤلف: Jino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10-15 08:38:07

제4조. 서로에게 진짜로 빠지면 즉시 계약 파기.

(갑과 을은 같은 주에, 같은 조항 때문에, 같은 결론을 내렸다.)

화요일 오전 열 시. 안건은 까치 편지의 줄바꿈이었다.

"편지인데 줄을 못 바꾼다고요?" 서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일부러 올렸다.

"100자에 줄바꿈까지 넣으면 화면이 깨져요." 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안 깨지게 만드는 게 개발 아니에요?"

"깨지는 걸 미리 말하는 게 개발이에요."

"그럼 미리 말하지 말고 미리 고치세요."

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이었다. 뒷자리에서 민지가 조용히 주먹을 쥐는 게 보였다. 씨름 부활이었다.

서윤은 속으로 안도했다. 잘하고 있었다. 5년 동안 하던 대로. 이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나야 했고, 지금 서윤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줄바꿈은 세 번까지만 허용하죠." 이현이 말했다.

"다섯 번이요."

"세 번이요."

"할머니한테 편지 쓰는데 세 줄이 말이 돼요? 안부 한 줄, 건강 한 줄, 끝이에요?"

"할머니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시던데요."

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손주며느리 곱다'. 둘 다 같은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회의실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둘뿐이었다.

"……네 번." 서윤이 말했다.

"네 번." 이현이 말했다.

팀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지금 합의한 거지? 싸운 거 맞지?"

"싸웠습니다." 둘이 동시에 말했다.

자리로 돌아오자 민지가 박수를 치는 시늉을 했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선배, 돌아오셨군요. 정서윤 선배."

"어디 갔었는데."

"한동안 이상했잖아요. 차 선임님이 까치 열두 가지 준다니까 여섯으로 깎고. 그거 보고 씨름 방 사람들 반은 선배가 아픈 줄 알았어요."

"안 아파."

"네, 오늘 보니까 확실히 건강하세요. 목소리가 쩌렁쩌렁."

서윤은 웃었다. 웃으면서 목이 조금 아팠다. 한 톤 올린 목소리를 한 시간 동안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

그날 저녁, 이현은 자기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에는 까치 날개 코드가 떠 있었다. 한 시간째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을 집었다. 사진첩 맨 위, 냅킨 사진. 확대. 네 번째 줄.

제4조. 서로에게 진짜로 빠지면 즉시 계약 파기.

워크숍이 끝나고 나서부터 서윤이 달라졌다. 회의에서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비상계단에서 커피를 건네면, 시럽이 많다고 했다. 반 맞는데. 그가 직접 적었는데.

이현은 원인을 추적했다. 버그를 찾을 때처럼. 마지막으로 정상 작동한 시점은 청솔 연수원 언덕길이었다. 우산. 소매. 소매는 옷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연수원 불빛이 보일 때 그가 걸음을 늦췄다. 그녀도 늦췄다.

아니, 그녀가 늦춘 게 아닐 수도 있었다. 그가 늦춰서, 맞춰 준 것뿐일 수도.

결론. 너무 갔다.

그녀가 눈치챘을 수도 있었다. 이 계약의 을이 서명하기 5년 전부터 이미 위반 중이었다는 걸. 그리고 제4조는 분명했다. 즉시 파기.

파기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회의실 맞은편, 반박하는 동안만 그녀가 똑바로 봐 주는 자리.

처음 싸운 날을 그는 기억했다. 입사 석 달째, 첫 협업 회의. 그녀가 올린 기획서에 그가 '이 기능은 일정상 불가'라고 적었다. 그녀는 회의실에서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불가능한 게 아니라 안 해 본 거겠죠."

연수 강당 맨 뒷줄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그를 정면으로 봤다. 눈썹을 치켜뜨고, 볼펜을 쥐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날 이후 그는 반박을 멈추지 않았다. 반박하는 동안에는 그녀가 그를 봤다. 그가 입을 다물면 그녀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싸우거나, 투명해지거나.

5년 동안 그 자리로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할머니 댁 모퉁이에서 놓지 않던 손을 알아 버린 뒤로는.

이현은 휴대폰을 엎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들키면 끝이다. 그러니까, 들키지 않으면 된다.

그러려면 예전처럼 굴어야 했다. 반박하고, 공수를 따지고, 노트북을 덮는 것. 그녀가 싸움을 원한다면 싸워 주면 됐다. 그건 그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

그래서 수요일부터 회의실은 이상해졌다.

"정 선임 기획은 늘 야근을 전제로 해요." 이현이 말했다. "어제도 열한 시까지 있었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저녁은 드셨어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 안건이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공수 산정에 체력도 들어가니까요. 식사를 거르면 기획 수정이 느려져요."

"그러는 차 선임은요. 커피를 너무 뜨겁게 마셔요. 김이 나는 걸 그냥 마시잖아요. 식도에 안 좋대요."

"그게 안건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개발자 식도가 상하면 일정이 밀리니까요."

팀장이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천천히 이마를 문질렀다.

"……너희 지금 싸우는 거 맞지?"

"네." 동시였다.

"내가 듣기엔 건강 상담 같은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민지가 테이블 밑에서 휴대폰을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그날 씨름 방의 공지는 이랬다.

[분석: 싸움은 부활했으나 내용이 달라짐. 서로의 저녁 식사와 식도 건강을 두고 다툼. 이것은 과연 씨름인가]

[의견: 이거 싸우는 척 아님?]

[의견: 싸우는 척을 왜 함?]

[방장: 조용히. 관찰을 계속한다.]

회의가 끝나고 개발팀 막내가 이현의 자리로 의자를 굴려 왔다.

"선임님."

"응."

"아까 정 선임님한테 저녁 드셨냐고 하신 거요."

"공수 얘기였어."

"네, 그렇죠. 공수." 막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납득하지 않은 끄덕임이었다. "근데 선임님, 저한테는 한 번도 안 물어보셨잖아요. 저 어제 새벽 두 시까지 있었는데."

이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녁 먹었어?"

"……지금요? 어제요?"

"어제."

"컵라면이요."

"그럼 오늘은 제대로 먹어. 공수 떨어져."

막내는 한참 이현을 보다가 의자를 굴려 돌아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다. 이현은 그 휴대폰 화면에 무엇이 떠 있을지 짐작했다. 짐작만 하고, 막지 않았다.

목요일, 비상계단.

이현은 평소처럼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서윤은 평소처럼 받았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한 모금 마시자마자 인상을 썼다.

"시럽 많아요."

"반인데요."

"많아요. 오늘은."

"제가 적었는데요. 1/2."

"적은 거랑 들어간 거랑은 다르죠."

"결과는 같죠."

첫날 회의실에서 한 대사였다. 이번엔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서윤이 '다르죠', 이현이 '같죠'. 둘 다 알아챘다. 둘 다 모른 척했다.

"그럼 내일은 시럽 3분의 1로 할게요." 이현이 말했다.

"반으로 해요."

"방금 많다면서요."

"……오늘만 많았어요."

이현이 서윤을 봤다. 서윤은 컵을 봤다. 컵 옆의 '1/2'이 오늘따라 크게 보였다.

"서윤 씨."

"네."

"요즘 저한테 화났어요?"

서윤의 빨대가 입 안에서 멈췄다. 씹기 직전이었다.

"아뇨. 원래 이랬잖아요, 우리."

"그렇죠. 원래 이랬죠."

"네."

"그럼 다행이네요." 이현이 계단 난간에 등을 기댔다. "저도 원래대로 하려고요."

"……원래대로요?"

"네. 예전처럼. 반박하고, 공수 따지고."

서윤은 커피를 마셨다. 시럽은 정확히 반이었다. 늘 그랬다.

"좋네요." 서윤이 말했다. "그게 편해요. 저도."

"저도요."

둘은 동시에 커피를 마셨다. 비상계단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둘 다 몰랐다. 각자 자기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날 퇴근길, 서윤은 엘리베이터에서 이현과 단둘이 탔다. 12층에서 1층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한마디쯤 비꼬아야 했다. 서윤은 비꼴 말을 찾았다. 없었다.

7층에서 이현이 먼저 말했다. "내일 비 온대요."

"알아요."

"우산 있어요?"

"있어요."

"연수원 비품 말고요?"

서윤은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황급히 내렸다. 문에 비친 이현의 얼굴도 봤다. 그의 입꼬리는 일자였다. 너무 반듯한 일자였다. 억지로 누른 것처럼.

1층에서 문이 열렸다. 둘은 서로 다른 출구로 나갔다. 정문과 뒷문. 제2조였다.

그날 밤 서윤은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누웠다. 저번 주말에는 두부 사진이 왔다. 이번 주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원래대로였다. 5년 동안 이 시간에 그에게서 무언가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래대로가 이렇게 조용한 거였나.

같은 시각, 이현은 부엌에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두부를 반듯하게 썰었다. 사진을 찍었다. 메신저 창을 열었다. 전송 버튼 위에서 엄지가 멈췄다. 원래대로라면, 보내지 않는 게 맞았다.

그는 사진을 지웠다. 찌개는 혼자 다 먹었다. 두부가 이상하게 싱거웠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사내 게시판에 새 글이 올라왔다. 인사팀 과장이 올린 글이었다.

[가을 워크숍 사진첩 공개. 총 128장.]

서윤은 무심코 클릭했다. 바비큐, 2인 3각, 단체사진. 넘기다가 열일곱 번째에서 손이 멈췄다.

밤. 비. 언덕길. 뒷모습 둘이 작은 우산 하나를 쓰고 있었다. 왼쪽 사람의 어깨가 흠뻑 젖어 있었다. 오른쪽 사람의 손이 그 사람의 소매를 쥐고 있었다. 손에 딸기 아이스크림 봉지가 들려 있었다.

사진 설명은 한 줄이었다.

[7조, 우천 시에도 2인 1조.]

استمر في قراءة هذا الكتاب مجانا
امسح الكود لتنزيل التطبيق

أحدث فصل

  •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40화. 제1조,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편의점 냅킨. 아이보리색. '않는다'에서 볼펜이 한 번 번졌다. 1년 전과 같은 볼펜이었다.)"제가 먼저 할게요." 서윤이 말했다."제가 먼저 왔는데요." 이현이 말했다."반차 쓰고 먼저 온 건 반칙이에요.""예약은 양쪽이었다면서요. 직원분이.""그걸 어떻게 알아요?""서윤 씨는 제가 예약한 거 어떻게 알았는데요?"둘은 캔 네 개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노려봤다. 이 파라솔은 회의가 끝나는 곳이었지 시작되는 곳이 아니었다."둘째 이모요." 서윤이 먼저 털어놓았다. "양쪽 다, 라고 했어요. 그리고 편의점 직원분이 양쪽 예약이라고 했고, 팀장님이 양쪽에서 같은 걸 부탁한다고 했어요. 세 군데서 양쪽이 나오면 결론은 하나예요.""……저는 쓰레기통이요.""네?""쓰레기통 뚜껑이 제가 닫은 방향이랑 반대로 닫혀 있었어요. 8월 마지막 토요일에요. 그날 서윤 씨 그릇을 세 번 헹궜어요."서윤은 입을 벌렸다. 이 사람은 쓰레기통 뚜껑 방향까지 봤다."그럼 부칙으로 해요." 이현이 말했다."무슨 부칙이요.""원래 부칙이요. 위반한 쪽은 한 번 져 준다. 우리 둘 다 야근이라고 거짓말했잖아요. 둘 다 위반이에요. 근데 제 거짓말이 더 말이 안 됐어요. 반차 쓰고 야근이라니.""……그건 인정해요.""그러니까 제가 질게요." 이현이 손바닥을 서윤 쪽으로 펼쳤다. "먼저 하세요."서윤은 그를 봤다. 1년 전 이 자리에서 이 사람은 부칙을 제안했다. 위반한 쪽은 회의에서 한 번 져 준다. 그때는 그게 싸움의 규칙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알았다. 그건 이 사람이 지는 법을 만들어 둔 거였다. 그녀한테만.서윤은 지갑을 꺼냈다. 카드칸에서 A4를 꺼냈다. 네 번 접힌 종이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냅킨 옆에.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이현의 아이보리색 냅킨 옆에."청혼 기획서 v1.0입니다."이현이 숨을 멈췄다. 이 사람이 숨을 멈추는 건 처음 봤다.서윤은 발표를 시작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원고를

  •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39화. 추석 연휴 전날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자정까지로 한다.(1년 전 이맘때, 추석을 며칠 앞둔 밤에 편의점 냅킨에 쓴 조항. 지금은 파기됐고, 지갑 카드칸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자정까지'의 번진 자국도 그대로.)"그러니까 차이현 씨 말은, 이 기능을 넣자는 거죠."회의실 화면에는 서윤이 2주 밤을 새운 기획서가 떠 있었다. 슬라이드 제목은 '추석 이벤트: 달토끼의 소원 편지 시즌2'. 최종 점검 회의였다. 오픈은 내일 0시."넣자는 게 아니라." 테이블 맞은편에서 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이미 넣었다는 겁니다."서윤은 레이저 포인터를 멈췄다."……뭘요?""보름달 차오르는 연출이요. 유저가 편지를 쓰면 달이 한 칸씩 차오르는 거."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1년 전 이 회의실에서 서윤은 그 연출이 이벤트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현은 연휴 전에 못 넣는다고 했다. 못 넣는 거랑 안 넣는 거랑은 다르죠. 결과는 같죠. 팀장이 간소화 버전으로 정리했다. 달은 끝내 차오르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편의점에서 냅킨 계약서가 생겼다."시즌2 기획서엔 그 연출 없었잖아요. 제가 뺐어요. 작년에 안 된다고 하셔서.""그래서 제가 넣었어요. 따로.""언제요?""작년 추석 끝나고부터요. 틈틈이.""1년 동안요?""공수가 많이 들었어요. 1년 걸렸어요." 이현이 화면을 넘겼다. 테스트 영상이었다. 유저가 편지를 한 통 쓸 때마다 까만 하늘의 달이 가장자리부터 차올랐다. 은은하게, 천천히. 마지막 편지가 들어가자 보름달이 꽉 찼다. 달 속에서 토끼가 고개를 들었다.회의실이 조용했다. 개발팀 막내 윤재하가 커피 잔을 든 채 굳었다. 옆에서 민지가 조용히 그의 컵을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아 줬다.서윤은 화면을 봤다. 1년 전 그녀가 사흘 밤을 새워 그린 연출이었다. 그대로였다. 아니, 더 좋았다. 그녀가 그렸던 것보다 달이 천천히 찼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이거, 제 원래 기획서 그대로예요.""네. 원본 남겨 뒀어

  •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38화. 역제안

    청혼 기획서 v1.0. 작성: 정서윤. 검토: 없음.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작성 기간 2주. 수정 횟수 열일곱 번. 제1조는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 고친 건 전부 마지막 한 문장이었다.)"선배, '결혼해요'예요, '결혼할래요'예요?"민지가 물었다. 국숫집이 아니라 회사 소회의실이었다. 점심시간. 문에는 '회의 중'이 걸려 있었다. 화면에는 슬라이드가 떠 있었다. 청혼 기획서 v1.0. 열일곱 번째 수정본."그게 지금 제일 큰 이슈야.""청유형이냐 의문형이냐.""청유형은 확신이 있어 보이는데, 상대한테 선택권이 없어 보여. 의문형은 선택권을 주는데, 자신 없어 보이고.""차 선임님이라면 뭐라고 반박하실까요?"서윤은 레이저 포인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현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1년 동안 들어서 토씨까지 외운 목소리."'청유형은 유저가 부담스러워해요. 의문형은 유저가 거절할 수 있어요. 거절 확률이 있는 문장은 공수 낭비예요.'"민지가 박수를 쳤다. "똑같아요. 소름.""그럼 그 사람은 뭐라고 할 것 같아?""그냥 '네' 하실 것 같은데요. 어느 쪽이든."서윤은 슬라이드를 봤다. 마지막 장. 문장이 두 개 나란히 있었다. 결혼해요. 결혼할래요. 둘 다 빨간 줄이 한 번씩 그어졌다가 지워진 흔적이 있었다."……그러니까 더 어려운 거야. 뭘 해도 '네' 할 사람한테 뭘 물어야 할지."민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지는 화면을 보더니 귀가 빨개졌다. 윤재하였다. 둘이 사귄 지 3주째였다. 컵에 쓰는 글씨는 매일 한 줄씩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선배, 제 친구가요, 아니 제가요." 민지가 휴대폰을 엎었다. "재하 씨한테 청유형이랑 의문형 중에 뭐가 좋냐고 물어봤거든요. 어떤 선배 얘기라고 하고.""……민지야.""이름은 안 말했어요! 근데 재하 씨가 그러더라고요. 개발자는 의문형을 좋아한대요. 반환값이 있으니까.""반환값.""네. '네'라는 반환값이요."서윤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웃었다. 이 회사 개발자들은

  •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37화. 거사 준비위원회

    추석 거사 준비위원회 회칙 제1조. 정서윤에게는 비밀로 한다.(방장: 큰이모. 회원 여덟 명. 개설일: 여름휴가 마지막 날 밤, 평상에서 아빠가 보고한 직후.)이현의 휴대폰에는 단톡방이 하나 더 있었다.방 이름은 '추석 거사 준비위원회'. 알림은 무음으로 해 두었다. 무음으로 해도 하루 이백 개가 쌓였다. 서윤 앞에서 휴대폰을 뒤집는 횟수가 여름 이후로 세 배가 됐다. 그 사람은 눈치가 빨랐다. 아마 이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쓰레기통 속 냅킨까지 봤을 리는 없지만.회원은 여덟 명이었다. 큰이모, 둘째 이모, 막내 이모, 서윤 어머니, 서윤 아버지, 할머니, 이현 어머니. 그리고 이현.방장은 큰이모였다. 첫 공지는 이랬다.[큰이모: 회칙 제1조. 서윤이한테는 비밀. 어기면 고추장][큰이모: 회칙 제2조. 방장 퀴즈 통과 못 하면 거사 불허][막내 이모: 제3조 추가 요청. 주선자석 확보][큰이모: 기각]9월 첫째 주 수요일 밤, 이현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회사 앞 편의점 냅킨이 한 묶음 쌓여 있었다. 아이보리색. 스무 장쯤 남았다. 처음엔 오십 장이었다.그는 볼펜을 쥐었다. 셔츠 주머니에 늘 꽂혀 있던 볼펜. 6년 전 입사 연수 때 받은 사은품 볼펜이었다. 1년 전 이맘때 그 밤, '자정까지'를 쓰다 한 번 번진 그 볼펜.냅킨 한 장을 펼쳤다. 썼다.'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거기서 멈췄다.또였다. 서른 번째였다. 그는 기간을 쓸 수 없었다. 공수를 따지는 머리가 자꾸 숫자를 요구했다. 기간은 날짜로 끝나야 했다. 끝이 없는 기간은 사양서에 쓸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끝이 있으면 안 됐다. 막내 이모의 제5조. 이번엔 기간 없이.'평생'이라고 써 봤다. 너무 컸다. 과장 같았다. 서윤은 과장을 싫어했다. 기획서에 '최고의'라는 말이 들어가면 빨간 줄을 그었다.'무기한'이라고 써 봤다. 너무 딱딱했다. 계약 해지 조항 같았다.'영원히'는 쓰다가 스스로 구겼다.냅킨이 또 하

  •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36화. 구겨진 냅킨

    추석 이벤트 시즌2 기획서 제2항. 편지 글자 수는 40자로 제한한다.(1년 전 이 조항 때문에 회의실이 두 번 뒤집혔다. 올해는 발의자와 반대자가 바뀌었다.)8월 마지막 주 월요일, 12층 대회의실.화면에는 슬라이드 첫 장이 떠 있었다. '추석 이벤트: 달토끼의 소원 편지 시즌2'. 작년 슬라이드와 똑같은 폰트, 똑같은 달토끼. 달만 조금 더 컸다."편지 글자 수는 40자로 가겠습니다." 서윤이 말했다.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커피를 들었다. 작년에 이 조항으로 두 시간을 싸웠다. 그때 40자를 밀어붙인 건 이현이었다. 서버에 저장하니까요, 라고. 서윤은 문자도 그보다 길다고 버텼다. 결국 40자로 갔다. 이현이 이겼다. 그리고 유저 게시판 추천 1위는 '40자로는 할머니한테 안부도 다 못 쓴다'였다.그런데 올해는 서윤이 먼저 40자를 꺼냈다.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왜 40자예요?""짧아야 계속 생각나니까요.""작년엔 40자는 짧다고 하셨잖아요.""작년엔 몰랐어요. 짧은 게 좋은 거.""저는 80자를 제안합니다."회의실이 술렁였다. 개발팀 막내 윤재하가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민지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손이 조금 오래 머물렀다."……차이현 씨가 80자요? 공수 늘어나는데요?""등대 편지에서 80자 해 봤잖아요. 유저 반응이 제일 좋았던 게 긴 편지였어요. 기다리는 80초가 설렘이라면서요. 정 선임이 부산에서 그렇게 말했어요.""그건 등대고요. 달토끼는 보름달이 차오르는 연출이라 짧아야 돼요.""긴 편지가 차오르면 더 보기 좋죠.""길면 읽는 사람이 무서워해요.""누가 그래요?""제가 그래요."팀장이 두 손을 들었다. 작년과 똑같은 자세였다. 다만 표정이 달랐다. 작년에는 지친 얼굴이었고, 올해는 즐거운 얼굴이었다."자, 자. 60자로 가자. 중간. 됐지?""네.""네."동시였다.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그리고 동시에 웃었다. 작년 이 회의가 끝나고 탕비실에서 엄마 문자가 왔다. 그리고

  •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35화. 친구 얘기

    제4조 해당 여부 판단 기준표(참고용). 부록. 본 기준표는 필요한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다.(작성자 정서윤. 작년 11월 작성, 12항목. 올해 8월, 처음으로 양도.)8월의 국숫집은 에어컨이 약했다.민지는 냉국수를 시켜 놓고 한 젓가락도 먹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오이채만 옮기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서윤은 그 동작을 알았다. 작년 가을, 이 자리에서 그녀가 빨대를 씹던 동작과 같은 종류였다."선배.""응.""제 친구 얘기인데요."서윤은 국수를 삼키다 멈췄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국물 한 숟가락으로 막았다. 1년 전 그녀가 한 말이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응. 친구.""제 친구가요, 회사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이 회의 때 제 친구가 말할 때만 노트북을 덮는대요."서윤은 이번엔 국물로도 못 막았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왜 웃으세요.""아니야. 계속해.""다른 사람 말할 땐 계속 타자 치거든요. 근데 제 친구가 말하면 딱 덮어요. 반쯤." 민지가 오이채를 또 옮겼다. "그리고 제 친구가 뭘 제안하면 맨날 '안 됩니다'부터 해요. 이유는 그다음에 말하고요.""그래서 친구는 그 사람이 싫대?""아뇨." 민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래요. 안 싫대요. '안 됩니다'를 듣는 게 좀 좋대요. 그 사람이 자기한테만 제대로 반박하는 것 같아서."서윤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 웃을 수가 없었다. 너무 잘 아는 얘기였다."민지야. 그 사람, 키 크고 개발팀이지."민지의 귀가 빨개졌다. "……친구 얘기라니까요.""그 사람 파란등대랑 회의할 때 '안 됩니다' 제일 먼저 가르쳐 준 사람이 나야. 부산 가기 전에 그 사람이 나한테 물어봤거든. 기획자한테 반박 어떻게 하냐고. 그 사람 이름 두 글자지. 윤재하."민지가 냉국수에 얼굴을 묻을 뻔했다."선배 어떻게 알아요!""너한테 배웠어. 촉은 옮는 거래."민지는 한참 오이채를 노려보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서윤 쪽

فصول أخرى
استكشاف وقراءة روايات جيدة مجانية
الوصول المجاني إلى عدد كبير من الروايات الجيدة على تطبيق GoodNovel. تنزيل الكتب التي تحبها وقراءتها كلما وأينما أردت
اقرأ الكتب مجانا في التطبيق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